6년 전, 한 대학에서 기자의 평균 수명이 67세라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체육인, 작가, 언론인이 11개 직업군 중 가장 짧게 산다고 한다. 인생은 육십부터인데, 기자는 고작 7년을 더 살고 죽는다. 헬조선에 사는 대부분 노동자가 그렇듯 기자의 일도 괴롭다. 단독 압박과 참신한 기획의 압박이 양쪽 어깨를 짓누른다. 하늘 아래 더 새로운 것이 나올 리 만무하다. 대부분 그런 목표에 실패하지만 시지프스의 바위처럼 다시금 새로운 기획을 밀어 올린다. 마감이 끝나면 또 다른 마감이 시작된다. 취재원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 역시 어렵다. 취재원과 후다닥 잡힌 약속에 나가기 위해, 오래전에 잡혀 있던 가족이나 친구와의 약속은 깨지기 일쑤다. 주체적으로 살고 싶어서 기자가 되었지만 그럴 만한 동력이 점점 떨어져 가는 게 느껴진다.
개인적인 만족 때문에 주말에 취재하고 밤새 기사를 썼다. 하지만 그럴수록 기사로 말하는 것과 진짜 나 사이의 괴리감이 커졌다. 나는 노동자의 권리를 얘기하는데 정작 노동자로서 내가 가진 권리엔 애써 눈을 감았다. ‘기자가 괴로운 만큼 독자는 더 좋은 기사를 읽게 되는 법이야.’ 이런 말을 한두 번씩 들었던 것 같다. 주변의 동료와 선배들 대부분이 그랬다. 매번 넘치게 일하고도, 그 결과를 보며 괴로워했다. ‘조금만 더 나를 채울 수 있는 시간이 있다면’, ‘취재 시간이 조금만 넉넉하다면’ 생각을 해 보기도 하지만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전엔 어려워 보인다. 이번 ‘위클리매드코리아’에서 무리한 욕심을 내 보기로 했다. 법정 근로 시간인 주 5일, 하루 8시간 노동을 준수해 보기로 한 것이다. 아찔한 일주일이었다. 이기적인 기자로 사는 것은 생각보다 더 많은 용기가 필요했다.
1일 차. 6월 28일 화요일
8시간만 일하기로 한 첫날. 머릿속으로 오늘 할 일, 내일 할 일을 헤아려 봤다. 마감이 내일인데 오늘과 내일 8시간을 일한다 치면 도저히 계산이 맞지 않는다. 이번 호에 들어갈 기사가 지면 7장, 글자 수로는 1만 8천 자다. 스트레이트 기사 하나도 끙끙거리면서 쓰는데 큰 이슈를 맡게 되면 눈앞이 까매진다. 이런저런 걱정을 하면서 법원 재판 일정을 챙기러 갔다. 배태선 민주노총 조직실장에 대한 검찰 구형이 떨어지는 날이었다. 12시쯤 법원에 도착해 밥을 먹고 쓰고 있던 다른 기사를 썼다. 출근 시간이 애매했지만 12시에 출근한 것으로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재판은 변호사, 검사의 최후 변론, 피고의 최후 진술까지 4시간이 걸렸다. 법원 1층에 있는 카페에서 재판 내용을 정리하니 1시간이 걸렸다. 재판을 토대로 기사를 마무리하니 오후 8시가 조금 넘었다. 함께 1일 8시간 노동을 결의한 선배 기자는 오늘 일정을 마무리하자고 제안했다. 잔업 역시 없어야 하므로 나머지 일은 반드시 내일 하는 것으로 얘기했다. 내일은 마감일이다. 마감 전날 이래도 되나 싶었지만, 이것 역시 취재의 연장선이었다.
현재 정착된 8시간 노동은 투쟁으로 쟁취한 산물이다. 1830년대, 영국에서 차티스트 운동이 일어나 10시간 노동법이 도입됐다. 1886년, 미국 노동자들은 ‘하루 8시간 노동’을 외치며 거리로 나왔다. 메이데이로 기록하는 5월 1일, 일리노이 주 시카고에서 총파업이 시작됐다. 경찰의 탄압으로 6명의 노동자가 사망했다. 파업 지도부는 사형까지 받아야 했다. 이 같은 희생 끝에 8시간 노동을 쥘 수 있었다. 1917년 러시아도 혁명을 통해 8시간 노동을 법제화했다. 100년이 지난 한국의 현실을 들여다보자. OECD 국가 중 최장 노동 시간을 기록하고 있다. 한 정치인이 내놓은 ‘저녁이 있는 삶’이란 슬로건이 대유행한 데엔 이런 배경이 있다.
일정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전철에서 마음 편히 노래를 들었다. 못하면 못하는 대로, 엉망이면 엉망인 대로 되라지. 심란한 마음을 뒤로하고 며칠 전 선물받은 책을 읽기 시작했다. 김언수 작가의 《캐비닛》이었다. 몇 주일 만에 일기도 썼다. 하루를 되돌아보는 건 기분 좋은 일이었다.
2일 차. 6월 29일 수요일
기자가 속한 노동·정치팀 마감일이었다. 8시간 이상 노동하기 딱 좋은 날이다. 오전 10시에 선배 기자를 만나 기사 마감에 들어갔다. 지금껏 써 놓은 기사에 내용을 추가하고, 흡입력 있도록 구성을 바꾸고, 틀린 팩트는 없나 확인하는 작업을 계속했다. 이날 저녁 9시 47분, 마지막 원고를 넘겼다. 8시간을 가뿐히 초과했다. 마감이 있는 한 매일 8시간 노동은 힘들 것 같다. 함께 일한 선배와 닭 꼬치를 하나씩 사 먹고 헤어졌다. 트럭 닭 꼬치 사장님이 농을 건넸지만 간신히 웃을 힘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
전날 조금 더 일했다면 좀 더 여유 있게 마무리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도 들었다. 만약 이날까지 8시간 노동을 고집했다면, 잡지는 정상적으로 나왔을까? 데스킹, 교정 교열, 편집디자인, 인쇄로 이어지는 시스템에 과부하가 걸렸을 것이다. ‘어쩔 수 없이’ 초과 노동을 하는 날이 늘어날까 걱정이 됐다.
노동 시간, 노동 강도는 동시에 조정이 이뤄져야 하는 패키지다. 시간 단축과 동시에 업무량이 조절돼야 한다. 우린 이미 다른 산업에서 경험했다. 인력 구조조정 후, 생산량은 조절하지 않아 남은 노동자가 독박 쓰게 되는 일을. 기자가 주 40시간 노동을 지키기 위해선 지금보다 작업량이 훨씬 줄어야 한다. 지금도 많은 기자가 1명 이상의 몫을 하고 있다. 게다가 언론 출판 지형의 변화는 기자에게 계속 새로운 역할을 요구하고 있다. 살기가 점점 팍팍해진다.
3일 차. 6월 30일 목요일
전국을 취재처 삼아 다니는 기자에게 어디서부터 출장이라 볼 수 있을까? 국어사전에 따르면 출장의 뜻은 ‘용무를 위하여 임시로 다른 곳으로 나감’이다. 취재를 위해 항상 다른 곳으로 나가 있는 기자는 매일이 출장이다. 출입처가 따로 없는 《워커스》 기자의 경우, 서울이나 수도권을 돌아다니며 취재한다. 출장의 경계가 모호하지만 수도권을 벗어나면 출장으로 봐야 할 것 같다. 이날은 춘천지방법원에서 열리는 국민 참여 재판을 참관해야 했다. 재판은 오전 11시에 시작했다. 내비게이션을 찍어 보니 자동차로 1시간 남짓 걸렸지만, 혹시나 모르는 교통 상황에 대비해 그보다 훨씬 일찍 출발하기로 했다. 3시간 전에 출발했는데 중간에 휴게소도 들르고 길도 한 번 잘못 드니 30분 전에 도착했다.
오전에 시작한 재판은 오후 7시가 넘어서야 끝났다. 이동 시간을 제외하더라도 이미 초과 노동이 시작되고 있었다. 서울에 도착하는 데 1시간 반이 걸렸다. 간단하게 저녁을 먹고 헤어졌다. 오늘 초과한 노동 시간에 이동 시간이 포함돼야 하는지, 초과한 노동 시간은 언제 상쇄할 수 있을지 고민했다. 기자의 초과 노동은 대부분 ‘취재비’로 퉁쳐진다.
<근로기준법> 제58조는 기자, PD 등과 같이 업무 성격상 노동 시간 계산이 어려운 업무에 대해서는 노사 간 서면 합의를 통해 노동 시간을 정하도록 한다. 《워커스》는 통상 오전 9시~오후 6시를 따른다는데 외근자든 내근자든 그 이상을 일하고 있다. 《워커스》의 한 기자는 “일어나자마자 일을 시작한다”며 “노동 시간이 불안정해질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증언했다. 인터넷만 있으면 어디서든 일을 할 수 있으니 집과 회사의 경계가 무의미하고 일과 생활의 경계도 희미해진다. “이 동네 일이 다 그런 식으로 돌아가네요.”
4일 차. 7월 1일 금요일
편집부 전체 회의가 있는 날이다. 오랜만에 모여 서로 얼굴을 볼 수 있는 날이기도 하다. 이날 회의는 오후 6시 30분에 끝났다. 회의 준비 시간과 회의 시간을 따지니 6시간 30분 정도 일을 했다는 계산이 나온다. 평소에 비하면 일찍 끝난 편이었다. 시간이 되는 몇 사람이 남아 저녁을 함께 먹었다. 맥주 한 잔을 하고 집에 가는 길이 그렇게 피곤하지 않았다. 이틀을 온전히 쉬는 주말을 생각하니 쏟아지는 비도 짜증나지 않았다.
5일 차. 7월 2일 토요일
8시간 노동의 효과일까. 주말이면 매번 오후까지 뻗어 잤지만, 이날은 달랐다. 오전 7시에 저절로 눈이 떠지는 건 알람 사고가 아닌 이상 일어날 수 없는 일이다. 물론 다시 잤지만 희귀한 경험을 했다. 오후엔 오랜만에 중학교 친구들을 만났다. 직장인 셋에, 취업 준비생 1명의 조합이다. 친구들이 다니는 홍보 회사나 IT 회사 모두 꿀 직장과는 거리가 멀다. 외국계 홍보 회사에 다니는 A는 아침 7시까지 출근한다. 그렇다고 퇴근 시간이 남들보다 빠른 것도 아니다. 보통 오후 6~7시에 퇴근한다. 야근도 아닌 새벽 근무는 낯설다. A는 언론사별로 기사 스크랩을 해야 해서 새벽에 나가야 한다고 했다. IT 회사에 다니는 B도 잦은 야근에 시달린다. 가끔 B에게 전화하면 회사에 있다고 할 때가 많았다. B가 다니는 회사에선 자신의 실적을 PPT나 각종 수치로 증명한다. 이번 달에 무슨 일을 했는지, 그에 따라 접속자가 얼마나 늘었는지, 컴플레인이 얼마큼 줄었는지 자료를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그 실적에 따라 연봉이 결정된다. 업계 특성상 공부도 많이 하는데 대부분 일을 위한 공부다. 하지만 이 시간은 노동 시간에 포함되지 않는다. 교육이 사용자의 지시 명령 때문에 이뤄지고 노동자가 이를 거부할 수 없을 때 노동 시간에 포함된다. 일을 위해 따로 내는 시간은 왜 노동이라 볼 수 없을까.
6일 차. 7월 3일 일요일
‘월요병’은 대개 일요일 오후부터 시작된다. 해시태그로 ‘#월요병’을 검색하니 온갖 푸념이 쏟아진다. 다시 5일 이상 일을 해야 하니 그 부담감이야 짐작하지 못할 바는 아니다. 다수의 설문 조사에 따르면 직장인의 60~80%가 월요병을 겪는다고 한다. 전문가들은 중압감과 주말에 복구됐던 생체 리듬 파괴를 원인으로 꼽는다.
나는 ‘월요병’ 중증 환자다. 평소에도 늦게 자는 편이지만 일요일은 그 정도가 더 심하다. 주말에 해야 할 일을 다 못 했다는 부채감이 심했다. 금요일 저녁, 마치 방학 계획을 세우듯 할 일들을 정해 놨다. 사전 취재, 공부 등 기사를 위한 준비 작업이었다. 그렇지만 욕심 부린 계획들이 지켜질 리 만무했다. 주말을 헛보냈다는 괴로움과 손에 안 잡히는 다음 주 일정으로 골이 아팠다.
그다음 주 써야 할 기사가 2개였다. 하나는 취재가 전혀 안 된 상태. 망했다 생각하면서 애써 잠을 청했다. 의연해지려 했지만 걱정이 그렇게 쉽게 없어지는 게 아니다. 이날도 뜬눈으로 새벽 3시를 넘겼다.
7일 차. 7월 4일 월요일
정년을 앞둔 아버지는 좀처럼 늦게 퇴근하는 일이 없다. 1년 사이, 술도 끊어서 귀가 시간이 점점 빨라진다. 지난해 입사한 나는 좀처럼 일찍 집에 오는 일이 없다. 1년 사이, 술도 늘어 틈이 나면 술을 마신다. 집에선 일이 안 된다는 이유로 나가 돌기 일쑤다. 함께 사는 부모님과의 연결 고리가 점점 약해져 간다.
오후 6시, 정시 퇴근 완료. 오랜만에 일찍 귀가하니 부모님은 어색하다 하면서도 들뜬 목소리다. 해가 지기 전에 집에 들어온 딸이 반가웠나 보다. 한마디라도 더 하고 싶어 하는 부모님을 두고 방으로 들어와 《캐비닛》을 완독했다. 그리고 또 다른 소설을 읽기 시작했다. ‘매일 오늘만 같아라!’ 바랐다. 지난 일주일, 8시간 노동을 못 지킨 적도 있었지만, 전체 시간을 따져 보면 주 40시간 노동을 지켰다. 처음엔 어리둥절했고 나중엔 이 실험이 끝나 가는 게 아쉬웠다. 어찌 저찌 일주일을 보냈지만, 같은 팀 선배 기자의 배려와 절묘한 스케줄이 아니었다면 할 수 없었을 것 같다. 이슈를 따라가는 기사라도 맡으면 어김없이 일 8시간 노동은 무너지고, 주말에 빠질 수 없는 일정이 생기면 주 40시간 노동은 금방 깨져 버린다. 나뿐 아니라 모두가 이렇게 버티고 있다는 걸 위안으로 삼고 싶진 않다.
건강할 권리를 지키자
모두가 잔업 특근을 향해 달려간다. 피곤이 덕지덕지 낀 얼굴로, 어제의 일을 채 끝내지 못한 찝찝함으로 터덜터덜 직장으로 향한다. 몸에 무리가 오는 것도 당연하다. 야근, 보고서 작성, 주말 출근으로 인한 속 쓰림을 ‘퇴사’로 극복한다는 짤방이 우리를 웃프게 한다.
장시간 노동은 우리 몸과 마음을 손상한다. 근골격계 질환, 뇌·심혈관계 질환, 생식 건강 등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 다수 연구 결과였다. 특히 자살 등과 직접적 연관이 있는 우울증에 미치는 영향 역시 주목해야 한다. 노르웨이의 단면 연구(Kleppa 등, 2008)에서는 주당 노동 시간 40시간 이하인 군에 비해 주당 노동 시간 41시간 이상인 경우 불안 증상은 35%, 우울 증상은 42% 높았다.
내 몸 챙기고, 주변도 돌보면서 좀 더 이기적으로 일하고 싶다. 이기적인 기자가 좋은 기사를 쓸 수 있는지 확인하려면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