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나리 기자 / 사진 정운
구미는 박정희의 도시다. 곳곳에서 그를 추모하고 기억한다. 생일을 기념하는 탄신제부터 등굣길 걷기를 체험하고 박정희 생가 곶감을 따고 테마 밥상을 발굴한다. 적게는 수천만 원에서 많게는 수백억까지 예산을 투자한 구미시는 추모 예산이 과하다는 지적에 아랑곳하지 않고 사업을 늘려 가고 있다. 구미가 기억하고 기록하는 박정희는 무엇일까. 6월 28일 구미를 찾았다.
반인반신, 박정희를 기리다
구미 톨게이트를 지나자마자 보이는 건 박정희 전 대통령 생가의 위치를 안내하는 표지판이다. 구미대로를 지나 새마을로, 박정희로에 들어서기까지 곳곳에 안내판이 배치돼 있다. (구미시는 박 전 대통령이 태어난 곳 일대의 도로명 주소를 ‘박정희로’라고 이름 붙였다. 구미시 상모동 171번지였던 생가 주소 역시 구미시 박정희로 107로 바뀌었다.) 구미 톨게이트를 지난 지 15분 만에 박정희 대통령 생가 주차장에 도착했다. 주차장에 들어서자마자 새마을기가 나부꼈다. 리어카를 끄는 이와 뒤에서 미는 이의 조형물에서는 새마을 운동이 지녔던 포부와 ‘하면 된다’는 활력을 느낄 수 있었다. 주차장을 지나면 박 전 대통령의 생전 업적을 알리는 홍보판이 우뚝 서 있다. ‘내 생명 조국을 위해 (1976년 5월 1일) 대통령 박정희’라는 낙관이 찍힌 홍보판에는 의료 보험 제도 시행(1963), 국민복지연금법 제정(1973) 등 박 전 대통령의 업적이 사진과 함께 친절히 소개돼 있다. 주차장에서 내려 몇 걸음 걷지 않았는데 새마을기와 새마을 운동을 상징하는 조형물,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업적까지 학습할 수 있었다.
생가에 앞서 마주한 것은 ‘보릿고개 체험장’이다. 체험장은 그 시대 먹거리를 판다. 막걸리(小)에 두부 1개는 3000원, 막걸리(大)에 두부 2개가 6000원. 곳곳에 평상이 놓여 있다. 60대 이상으로 보이는 대여섯 명이 한 평상에 모여 앉아 있다. 먹거리 체험은 미루고 생가 가기 전에 자리한 민족중흥관을 찾았다. 민족중흥관 입구 기념품 가게부터 들렀다. 우표, 핸드폰 줄, 7만 원에 달하는 박 전 대통령의 미니 동상, 통장 지갑, 부채 등을 판매한다. 마침 한 중년 부부가 들어왔다. 그들은 박근혜 대통령과 박정희 전 대통령이 함께 있는 사진을 찾았다. “죄송합니다만 합성 사진은 준비돼 있지 않네요.” “아니 박근혜 대통령이 아버지랑 함께 있는 사진이 있어야지. 그 둘을 딱 놓고 같이 봐야 하는데….” 아쉬움이 담긴 목소리로 부부는 어쩔 수 없다며 휴대폰 줄을 골랐다. 앞면에는 박 전 대통령의 사진이, 뒷면에는 육영수 여사의 사진이 담긴 기념품이다. 아내가 하나를 고르자 옆에서 남편이 “에이 당신, 뭐하는 거야. 3개는 사서 주위 사람들한테 돌려야지”라며 3,000원짜리 휴대폰 줄 3개를 샀다. 스마트폰이 등장한 이후 뒤안길로 사라진 줄 알았던 휴대폰 소품이 이곳에서 제 몫을 톡톡히 하고 있었다.
민족중흥관, 3D․4D를 뛰어넘는 영상미를 구현하다
구미시가 2012년 3월, 58억 5천만 원을 들여 완공한 ‘박정희 대통령 민족중흥관’은 박 전 대통령만의 기념관이다. 기념관이라는 제 역할에 충실하게 ‘대통령의 향기’와 ‘대통령의 발자취’로 전시실이 나뉘어 있다. 대통령의 향기실 입구는 대통령 내외가 함께 찍은 거대 사진이 걸려 있다. ‘작은 거인의 출생’으로 박 전 대통령이 세상에 나온 순간을 기리고, 작지만 야무진 성격 때문에 붙여졌다는 ‘대추 방망이 소년’으로 박 전 대통령을 소개한다.
대통령의 발자취실은 박 전 대통령의 모습과 주요 기록이 담겨 있다. 민족중흥관 해설사는 ‘세계를 감동시킨 새마을 운동’이 친절히 소개돼 있어 이곳을 찾는 저개발국 사람이 많다고 설명했다. “아무래도 놀랍겠죠. 어떻게 이런 발전을 할 수 있었을까 싶고. 미얀마, 아프리카 같은 저개발 국가에서 새마을 운동의 위대함에 대해 알아보려고 꼭 들르셔요.”
신기한 체험도 했다. ‘구미시의 어제와 오늘, 내일’을 스크린으로 확인하는데 ‘에어 터치’로 작동한다. 지정된 곳에 서서 공중에 팔을 들고 메뉴의 원하는 위치에 갖다 대면 클릭의 역할처럼 해당 화면이 작동하는 것이다. 구미시의 어제나 오늘, 내일이 별로 궁금하지 않았지만 에어 터치 기능이 신기해 이리저리 팔을 움직였다. 물끄러미 지켜보던 관람객 몇 명이 내 뒤에서 차례를 기다렸다. 옆에는 ‘포토 방명록’도 준비돼 있다. 이름이나 주소, 남기고 싶은 말을 쓰는 기존의 방명록에서 더 나아가 박정희 전 대통령 내외와 함께 사진을 찍을 수 있는 공간이다. “에이 부끄러워하지 말고 이리 오세요. 대통령님과 사진 한 장 남기셔야죠.” 자원 봉사자 2명이 나를 포토 존 앞에 세웠다. 그 중 1명이 스크린을 클릭하니 사진이 찍혔고 ‘박정희 대통령 민족중흥관 방문을 환영합니다’라고 쓰인 종이에 사진이 프린트돼 나왔다. 채 5분도 걸리지 않았다. “오늘 정말 운이 좋으신 거예요. 하루에 보통 200~300명이 오는데, 오늘은 그나마 사람이 없어요. 주말이면 1,000명 넘게 와서 사진을 찍고 가져가세요. 저기 저분 보이시죠, 저분은 매일 와서 하루에 한 번 꼭 사진 찍으세요.”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존경심으로 자원봉사를 시작했다는 중년 여성이 환하게 웃었다.
민족중흥관의 백미는 ‘돔 영상관’이다. 아시아 최초 하이퍼 돔 시스템과 실사로 만든, 세계적으로도 보기 드문 영상이라는 안내에 코웃음을 쳤지만, 진짜였다. 영상을 보며 ‘우와아’ 나도 모르게 감탄이 나올 정도였다. 돔 영상관은 매일 한 시간 단위로 총 7회에 걸쳐 13분의 영상을 상영한다. 시간에 맞춰 영상관에 들어가자 관계자가 영상관에 대해 말했다. “이곳을 제대로 보시려면 한가운데 서서 보는 게 제일 좋습니다. 그런데 워낙 어르신들이 많이 방문하시고 서서 보기 힘들다 하셔서 저희가 의자를 설치했어요. 이게 360도 어디서든 화면을 볼 수 있어서 어르신들은 조금 어지러울 수 있으세요. 방석을 드리니까 가운데에서 누워서 보셔도 됩니다. 그럼 전체 화면을 아주 잘 볼 수 있어요” 누워서도 볼 수 있는 영상관이라니. 방석을 집어 들고 가운데 누웠다. 함께 관람한 11명 중 6명이 대자로 누워 박 전 대통령의 업적을 감상했다.
영상에 소개된 업적을 보니 나비 효과가 생각났다. 새마을 운동이라는 날갯짓이 2012년 무역 실적으로 연결됐다. 근거가 무엇인지 영상으로는 알 수 없었다. 참 희한한 결과인데 강렬한 영상과 함께 보면 고개가 절로 끄덕여졌다. 전쟁으로 인한 삶의 궁핍함을 설명할 때는 탱크가 코앞까지 몰려오는 거 같아 몸을 움츠렸고, 수출 실적을 설명할 때 등장하는 배의 위용에 ‘우와아’ 감탄사가 흘러나왔다. 옆자리에 누워 보던 이들도 함께 감탄사를 내뱉었다. 안경을 쓰고 본 3D 영화의 생생함이나 흔들리는 의자에서 본 4D 영화의 현장감 그 이상이었다.
생가는 상상했던 것과는 차이가 있었다. 생가는 안채와 사랑채, 변소와 우물, 추모관으로 이루어져 있다. 해설사에게 안내를 부탁했다. 건립 당시 안채는 초가였으나 1964년 현재의 모습으로 개조됐다는 설명이 이어졌다. 지금은 CCTV를 확인하고 업무를 보는 사무실로 사용하고 있다. 해설사는 ‘박 대통령께서 공부하시던 방’이라 쓰인 곳 앞에서 가난의 어려움에도 공부를 놓지 않았던 대통령에 대해 말했다.
“상상해 보세요. 이렇게 작은 방에서 호롱불에 의지해 공부하시던 대통령님을요. 평생 이 시절을 기억하며 검소하고 소박하게 오직 국민을 위해 일하셨던 분의 시작이 이 작은 방이었습니다.” 그는 사랑채 뒤편에 있는 감나무 앞으로 가 설명을 이어 갔다. 1929년 봄, 박 전 대통령이 어머니와 함께 심었다는 감나무다. “이 감나무는 6.25 때 일부가 탔지만 살아남았어요. 생전에 박 대통령님께서 생가에 오시면 관리인에게 감나무가 잘 자라도록 부탁을 하셨다고 해요. 참으로 은혜로운 감나무지요. 지금도 매년 감이 열린답니다. 저희가 매년 감을 따다 박근혜 대통령님에게 보내고 있어요. 아버지가 사랑한 감나무라는 의미가 있으니까요.”
“다른 자식들에게는 안 보내나요?” 함께 설명을 듣고 있던 이가 물었다. 해설사는 당황한 듯이 손으로 입을 가리며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어머, 뭐 그게 셋이서 나눠 먹기에는 좀 부족한 양이기도 하고요. 매년 40알 정도를 수확해서 세 분에게 다 보내기가 쉽지 않네요.”
평일 오후 5시경이었는데도, 10명이 넘는 사람이 생가를 둘러보고 있었다. 그때 한 중년 남자가 옆으로 다가왔다. “내가 여기를 수십 번을 더 왔어요. 부산에 사는데 구미 올 때마다 들러요. 생가 보며 인사도 드리고, 저 아래 보면 박정희 대통령님이 육영수 여사에게 쓴 시가 있는데, 구절구절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몰라. 그것만 보면 참 마음이 따뜻해져요. 여기만 오면 마음이 탁 열리고 편해져요.” 해설사가 “어쩐지 낯이 익다”며 알은체를 했다. 해설사의 말에 따르면 올여름부터 구미 시내 초등학교를 대상으로 효행 체험을 진행한다. 2박 3일로 예정된 효행 체험 사업비는 구미시가 보조한다. 학생들은 하루 2~3시간 이곳을 방문해 예절 교육과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업적을 배우게 될 예정이다. “사실 아직 알려지지 않은 사실인데요, 생가 바로 뒤에 대나무 숲이 있어요. 이곳을 야외 수업장으로 꾸미고 학생들에게 효행 수업을 진행할 계획이에요. 구체적인 프로그램은 아직 준비 중이지만 예절 교육과 박정희 전 대통령님에 대한 퀴즈를 맞히는 것들을 하지 않을까 싶어요.” 방문객의 60% 이상이 중장년이라는 생가가 머지않아 초등학생으로 채워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에게 박정희 대통령 테마 밥상에 대해 말을 꺼냈다. 테마 밥상은 구미시가 박정희 전 대통령의 근검절약 정신을 되새기고 관광 자원화를 통한 지역 경제 활성화를 목적으로 5400만 원을 들여 발굴·재현한 것이다. 현재 구미 시내 ‘박정희 대통령 테마 밥상의 시범 판매 업소’로 지정된 한 식당에서 ‘보릿고개 상’과 ‘통일미 상’을 1인분에 8,000원에 판매한다. 하루 전에 4인분 이상을 주문해야 한다. 테마 밥상 이야기가 나오자 그는 입을 가리며 작게 말했다. “어머, 거기 테마 밥상이 좀 골칫거리인가 보더라고요. 수익이 나지 않는대요. 시에서 하라니까 일단 한 거라는데, 뭐 일반인들이 거길 가서 얼마나 먹겠어요. 생가 주변에 바로 위치한 것도 아니고. 그래서 하루 전에 주문도 해야 하고 4인분 이하는 받지도 않고 그러나 봐요.”
생가를 나와 동상으로 향했다. 남유진 구미시장의 건의로 2009년 설립된 5미터 높이의 동상이다. 박 전 대통령은 동상에서 국가 비전을 제시한 연설문 두루마리를 쥔 모습으로 위용을 드러내고 있다. 동상 앞에는 의료 보험 제도 시행, 7·4 남북 공동 성명 발표, 자주 국방 실현 등 18가지가 적힌 작은 동판이 설치돼 있다. ‘새벽종이 울렸네. 새 아침이 밝았네. 너도 나도 일어나 새 마을을 가꾸세.’ 박 전 대통령이 작사‧작곡한 것으로 알려진 새마을 노래도 끊임없이 흘러나온다. 동상 앞에 한 중년 남성이 앉아 동상을 어루만지고 있었다. 가까이서 보니 매일 기념관에 들러 포토 방명록을 남긴다는 이다. 동상 주변 벤치에는 노인들이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강아지를 산책시키는 이가 동상을 향해 간다. 이들에게 박정희 동상을 둘러싼 풍경은 자연스럽고 편안한 쉼터 같았다.
박정희 전 대통령 생가 주변은 여전히 공사 중이다. 동상 뒤편에는 생가 원형 재현과 추모관이 건립된다. 구미시가 2006년 2월부터 지난해 말까지 ‘박정희 대통령 생가 주변 공원화 사업’에 들인 돈은 286억 원으로 알려졌다. 생가를 복구했음에도 생가 원형이 재현되고, 5미터 동상을 뒤로하고 인물상을 건립한다. 2013년 ‘박정희 대통령 96회 탄신제’에서 박 전 대통령을 하늘이 내린 반인반신으로 기린 남유진 구미시장의 애착이 묻어나는 현장이다.
“사실 딱히 먹을 게 없어요”
박 전 대통령이 다닌 구미초등학교는 그를 어떻게 기리고 있을까. 구미초등학교를 찾았다. 이곳은 지난해 구미초등학교와 정수초등학교 학생들이 ‘박정희 대통령 등굣길 걷기 체험 행사’를 한 곳이기도 하다. 학생들은 박정희 생가 앞에서 출발해 구미초등학교까지 6.3킬로미터를 2시간 넘게 걸은 것으로 알려졌다. 초등학교 입구에는 ‘훌륭한 선배님이 지내 오신 길’이라는 비석이 세워져 있다. ‘우리는 박정희 대통령 각하의 자랑스러운 후배이다’로 시작해 ‘선배님을 본받아 다른 어린이보다도 더욱 열심히 몸과 마음을 닦아 내 고장 내 나라 발전을 위해 크게 이바지할 것을 굳게 다짐합시다’로 마무리된 이 비석은 1976년에 세워졌다. 초등학교 정문에 세워진 동상은 넥타이를 매고 정장을 입은 박정희 대통령이 한 손을 들고 한 손은 뒷짐을 지고 있는 모습이다. 동상에는 ‘금오영봉의 정기는 님의 드높은 기상을 길렀고 굽이도는 저 낙동강의 자애는 애국 애족하는 님의 정을 기르셨으니 오늘 나 또한 이 교정에서 태양보다 더 뜨거운 님의 얼을 가슴 속에 깊이깊이 새기련다’는 글이 새겨져 있다. 동상 앞을 쓸고 있던 관리자는 많으면 하루 20명 이상이 동상 앞에서 사진을 찍는다고 말했다. 작은 학교 곳곳에 박정희 대통령을 기리는 비석과 동상이 3개나 자리
잡고 있었다.
구미초등학교에서 10분 거리에 보릿고개 밥상을 파는 식당이 있다. 하루 전에 4인분 이상을 주문해야 해서 맛을 보지는 못하지만 일단 찾아갔다. 한국 전통의 맛과 멋을 살렸다는 이곳은 한우를 파는 고급스런 식당이다. 식당 입구에는 박정희 대통령 테마 밥상에 대한 안내와 막걸리를 마시고 미소 짓는 사진이 걸려 있다. 현재 이곳에는 보릿고개 밥상과 통일미 밥상, 혼‧분식 밥상을 판매하고 있다. 주문하며 테마 밥상을 못 먹어 아쉽다고 얘기하자 식당 관계자가 놀라워했다. “사실 일반인들이 잘 드시러 오지 않거든요. 밥상을 판매하기 시작한 4월쯤에 기관장들이 몇 팀 온 거 말고는 거의 찾지 않으세요. 이걸 드시러 굳이 오지는 않죠. 된장찌개에 밑반찬 몇 개라 먹을 게 없어요. 다른 걸 추가 주문해서 먹어야 밥 먹는 거 같지 안 그러면 부족하죠. 우리도 뭐 시에서 지정한 거라 하는 거죠.”
하는 수 없이 돌솥영양밥 정식을 시켜 먹었다. 정면에는 웃는 박 전 대통령이 측면에는 손짓하는 박 전 대통령의 사진이 걸려 있다.
하루 동안 둘러본 구미는 그를 기억하는 사람을 위해 모든 것이 준비된 곳 같았다. 최첨단 시설을 보유한 기념관부터 그가 즐겨 먹었던 막걸리와 두부를 파는 체험관, 완공을 앞둔 테마 공원까지. 박정희 전 대통령의 모든 것을 안내했다. 동시에 철저히 그의 업적으로만 채워진 공간이기도 했다. 대한민국의 산업화와 근대화를 이끈 위대한 지도자로서의 안내는 있지만 민주주의를 유린한 독재자의 면모는 찾을 수 없는 곳. 그가 즐겨 마셨다는 소박한 막걸리 차림상은 있지만 궁정동 만찬과 생전 마지막으로 마셨다는 ‘시바스리갈’은 찾아볼 수 없는 곳. 인혁당 사건, 동백림 사건 등 유신 독재 시절의 면면이 삭제된 곳. 기억하고 싶은 것만 기억하게 만드는 공간, 구미시가 품은 박정희다.
(워커스 17호 2016.07.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