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의 위안부》, 오독과 정독
성지훈 기자
사진 | 정운 기자
2014년 6월 17일, 위안부 피해자 지원 단체인 ‘나눔의 집’이 위안부 피해자 9인을 원고로 《제국의 위안부》 저자인 박유하 교수와 출판사 대표를 고발했다. 저자가 《제국의 위안부》에 위안부 피해자의 명예를 훼손하는 허위 사실을 109곳에 걸쳐 기재했다는 주장이다. 원고는 형사 고발과 동시에 1인당 3000만 원씩 2억 7000만 원 민사 배상을 요구했다. 전면적 출판, 판매 금지와 위안부에 대한 접근 금지를 요청하는 가처분 소송도 함께 제기했다. 지원 단체는 기자 회견을 열고 《제국의 위안부》가 위안부를 ‘자발적 매춘부’로 표현했다고 비판했다. 박유하 교수와 《제국의 위안부》에는 국민적 비난이 쏟아졌다.
2015년 2월, 서울동부지방법원은 원고 측 가처분 신청 주장을 일부 받아들여 34곳을 삭제해야 출판과 판매를 할 수 있다는 판결을 내렸다. 올 1월에는 박유하 교수가 원고 측에 9000만 원의 손해 배상을 해야 한다는 판결도 나왔다. 박유하 교수는 곧바로 항소했다. 항소와 함께 국민 참여 재판도 신청했다. 현재 소송은 준비 재판만 다섯 차례 열렸다. 소송이 제기된 지 2년이 지났지만 비난 여론은 여전하다. 박유하 교수는 대중이 책을 읽고 책의 진의를 파악하고 논의를 시작하기도 전에 일부 지원 단체가 만들어 놓은 프레임으로 오독을 하게 됐고, 이를 확산하는 일부 지식인들에게도 그 책임이 있다고 지적한다.
동지적 관계
가장 문제가 된 건 ‘동지적 관계 ’ 란 표현이다. 박유하 교수가 지적하는 ‘오독’의 핵심이기도 하다. 《제국의 위안부》에서 박유하 교수는 일본 군인과 조선인 위안부가 기본적으로 ‘동지적 관계’를 맺고 있었다고 기술했다. 국내 위안부 피해자 지원 단체들과 일부 위안부 피해자들은 이 동지적 관계라는 말이 피해자들의 명예를 훼손했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소장을 통해 “피해자를 동지로 표현하는 것은 피해자에게 있어서는 끔찍한 명예 훼손이며 이는 피해자 개인이 아닌 침략당한 피해자 국가 전체에 대한 모욕적인 발언”이라고 지적했다. ‘동지’라는 표현은 “자발적으로 일본군에게 자신의 성을 바치며 위로했다는 것”이며 피해자를 자발적 매춘부로 둔갑시킨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박유하 교수는 “위안부를 자발적 매춘부라고 주장하지도, 동지적 관계를 통해 일본 군인의 무죄를 주장하지도 않았다”는 입장이다.
박유하 교수의 주장은 위안부 동원 방식의 다양한 층위가 일본 군인과 조선인 위안부 간에 다양한 관계를 형성했음을 지적하는 것이다. 박유하 교수는 위안부 피해자의 직접 증언과 일본 군인의 회고 등의 사료를 통해 다양한 동원과 관계의 층위를 제시한다. 국가의 요구에 협력한 민간인 업자들에게 끌려온 조선인 위안부들은 자신들을 끌고 온 업자로부터의 폭압적 상황에서 벗어나고자 일본군의 보호받기를 원했다. 높은 지위의 군인과 연애를 하는 예도 있었고, 간호사 역할을 하거나 함께 훈련을 받고 전장에서 살아 돌아오라는 격려를 하기도 했다는 것이다. 일종의 ‘동지적 관계’ 가 형성되는 셈이다. 그러나 박 교수는 이 관계가 위안부 피해자들이 “위안부로서 피해를 당하지 않았다는 주장이 아니며 일본군이 가해자가 아니라는 주장 역시 아니”라고 밝혔다. 박 교수의 주장은 조선인 위안부들이 민간인 업자들에게 동원돼 성적 착취를 당하는 노예가 됨과 동시에 일본 군인과의 관계에선 전쟁을 치르는 같은 황국의 신민으로서 ‘위안’을 해 줘야 하는 애국자 역할까지 강요받았다는 것이다. 조선인 위안부는 두 가지 역할로 착취를 당하는 셈이지만 ‘애국’이라는 내면화된 국민 동원 이데올로기가 이 이중의 착취와 폭력성을 은폐할 수 있었다는 주장이다. 즉 박 교수가 주장하는 동지적 관계의 의미는 ‘일본 군인과 조선인 위안부가 동지였다’ 는 주장이 아니라 제국주의 체제가 ‘동지적 관계’를 가장해 직접 폭력과 피해마저 은폐했다는 주장에 가깝다.
전쟁 범죄에 앞서
‘동지적 관계’를 지적하는 박유하 비판자들의 맥락은 결국 ‘박유하는 일본의 전쟁 범죄를 부인하거나 위안부 피해자들이 그 범죄의 동조자라고 말하는 것’이라는 데 닿아 있다. 이 맥락은 박유하 교수의 연구가 일본 우익들의 주장을 답습한다는 주장으로 이어진다. 박유하 교수는 “책을 제대로 읽지 않았다는 의미”라고 일축했다. 박 교수는 “위안부 문제가 전쟁 범죄가 아니라는 의도의 이야기는 책의 어느 부분에도 없고, 오히려 그동안 전쟁 범죄라는 표현을 안이하게 사용해 온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박 교수는 “그동안 정대협을 비롯한 지원 단체들은 위안부 문제를 일본군이 납치하고 강간하고 폭행하는 형태의 전쟁 범죄로만 이해했다”고 주장했다. 때문에 제국주의와 식민지의 구조적 착취가 위안부 문제를 어떻게 만들어 왔는지를 규명하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박 교수는 이 문제의 해결은 ‘전쟁 범죄’의 측면뿐 아니라 식민지와 제국주의의 문제, 젠더와 계급의 문제로까지 시야를 확장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일본군과 일본 정부가 동원한 물리적 강제와 동시에 위안부 제도가 용인되고 운영된 구조적 강제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것. 《제국의 위안부》는 일본군의 만행이라는 범주 외에도 여성에 대한 성적 착취가 정당화된 ‘가부장제 국가’라는 젠더의 문제, 그리고 가난한 여성이 주로 표적이 되는 계급의 문제를 지적하는 데 많은 지면을 할애한다. 전쟁터의 남성에겐 여성의 성이라는 ‘위안’이 필요하고 성욕 해소의 도구로 전쟁에 복무하는 것이 용인되거나 조장되는 ‘동원 이데올로기’의 구조를 살펴야 한다는 주장이다.
박 교수는 위안부 제도를 공적으로 용인하고 정당화했던 구조적 강제성을 충분히 살펴야 제대로 된 역사적 평가와 반성이 이루어질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합법적이고 공적인 구조와 체계를 만들어 낸 장본인으로서 당시의 일본군과 정부, 국가의 책임, 나아가선 대중 의식의 차원까지 책임을 묻고 반성하는 것이 위안부 문제를 비롯한 과거사 청산의 핵심이라는 주장이다.
사료의 신빙성
박유하 교수의 연구가 비판받는 또 하나의 지점은 ‘사료의 신빙성’이다. 정영환 교수와 박노자 교수 등 박유하 교수 비판자들은 박유하 교수가 사료를 과잉 해석 하거나 왜곡했다고 주장한다. 박유하 교수는 일본 군인과 조선인 위안부의 ‘동지적 관계’를 설명하기 위해 일본의 언론인 센다 가코의 저서 《목소리 없는 여성 8만 명의 고발, 종군위안부(声なき女”八万人の告発)》(1973)를 인용한다. 그러나 정영환 교수는 “센다 가코의 저작 원서에는 위안부 피해자들이 그런 얘기를 한 대목이 없다”고 주장한다. “동족이나 애국을 운운한 것은 위안부의 말이 아니라
일본군의 말”이라는 것이다. 박노자 교수는 박유하 교수의 연구가 일본 입장에서 일본인이 쓴 몇몇 자료를 토대로 과도한 일반화를 했다고 주장했다. “역사 연구의 기본적인 사료 비판도 이루어지지 않은 창작 소설에 가깝다”는 것이다.
반면 박유하 교수는 “연구의 기본적인 사료는 모두 피해 당사자들의 증언집”이라고 반박했다. 실제로 박유하 교수가 저서에서 가장 많이 인용한 자료는 1993~2001년 사이에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에서 출간한 군위안부들의 증언집 《강제로 끌려간 조선인 군위안부들》 다섯 권이다. 일본 측 사료를 인용한 것에 대해선 “오히려 위안부 동원을 부정하는 일본 측에 당신들의 선조도 자신들이 저지른 짓을 인정했다고 말하려는 의도로 사용한 것”이라고 말했다. ‘동지적 관계’가 일본군을 옹호하기 위한 개념이 아니었던 것처럼 일본 측 사료 역시 일본 옹호를 위해 쓰인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박 교수는 이어 “《제국의 위안부》는 역사서라기보다는 역사를 둘러싼 담론 분석에 가깝다”고 밝혔다. 역사서가 아니라 “팩트가 어떻게 형성됐는지를 알아내기 위한 메타 비평서”라는 것. 박 교수는 “역사서가 아니므로 역사가의 시각으로는 학문 방법의 접근에서 낯설 것”이라고 설명했다. 박 교수가 일본인 작가 후루야마 고마오의 소설을 일본 군인과 조선인 위안부의 관계를 이해할 사료로 채택한 것도 작자의 체험과 기술을 통해 당시 상황을 분석하는 방법의 일환이다.
강제 연행과 소녀상, 정대협
《제국의 위안부》 에는 정대협이 대표하는 한국의 위안부 운동에 대한 문제 제기도 담겨 있다. 박 교수는 정대협이 ‘정대협과 함께하는 일부 피해자’를 앞세워 다른 피해자들을 배제한다고 주장한다. 정대협을 비롯한 위안부 피해자 지원 단체들이 ‘동지적 관계’ 표현을 비판하는 것은 ‘순결한 소녀’의 이미지를 강조하기 위해 ‘강제 연행’과 ‘성 노예’ 사례만을 드러내기 위해서라는 주장이다. 박 교수에 따르면 이미 학계에서는 강제 연행을 통한 위안부 동원은 일부에 그치고 조선인 업자를 통한 동원 등 위안부 동원 방식에 다양한 경로가 존재했음이 정설로 굳어졌다. 그러나 대다수 대중은 여전히 인신매매와 강제 연행의 이미지에 경도돼 있는데, 이런 혼란은 “정대협의 방치로 인한 것”이라고 박 교수는 말했다. 위안부 피해 사례에 대한 단편적인 인식이 다양한 피해자들의 사례를 배제하게 한다는 주장이다. 김규항 《고래가 그랬어》 발행인 역시 “정대협의 오랜 활동을 존중하고 존경심을 표한다”면서도 “지금은 위안부 동원에 대한 단편적인 사고방식을 넘어서야 할 때”라고 지적했다. “여기에(강제 동원 사고방식에) 대중이 호응하기 때문에 정대협이 먼저 스스로 개선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정대협은 이에 대해 “1990년대 초반에는 사회 전체의 의식이 그러한 문제를 지적할 만큼 성숙하지 못했을 뿐 지금은 한계를 극복했다”고 반박한다.
박유하 교수는 《제국의 위안부》 집필 의도를 “식민지와 제국주의의 문제를 위안부 문제를 통해 풀어 본 것”이라고 밝혔다. “한국인들은 식민지 상황을 겪은 이들을 일괄적으로 저항의 주체로 교육을 받아 왔고, 그렇지 않은 주체가 드러나는 것에 대한 당혹감이 있다”는 것. 박 교수는 “식민지 시대를 살았던 주체들을 총체적으로 이해하지 못하는 건 거꾸로 이른바 친일파에 대한 올바른 비판조차도 어렵게 한다”고 말했다. 과거사를 올바르게 청산하고 견실한 비판을 하기 위해서라도 다층적인 시각과 총체적 접근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