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게 벌어 잘 살기’의 서글픔
차경희
해방촌 문학 서점 ‘고요서사’ 편집자.
7월 말이면 퇴사 1주년이다. 서점 운영은 9개월로 접어든다. 이전에 출판 일을 했기 때문에 원래도 많은 돈을 번 것은 아니지만, 그때보다 더 적은 돈을 벌며 살아온 지 9개월째란 뜻이다. 아니 이건 사실과 다르다. 더 적은 돈을 번 게 아니라, 이미 모아 둔 적은 돈을 가능한 한 더 적게 허물 방법을 고민하며 산 지 9개월 됐단 뜻이다.
출판 편집자를 직업으로 택할 때도 그랬고, 서점을 하려고 맘먹었을 때도 그랬다. 벌 수 있는 돈의 양은 크게 고려하지 않았다. 다만 조건이 있다면, 가족에게 손 벌리지 않고 최소한의 독립된 생활을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 다행히도 지금까지는 그 조건을 힘겹게나마 지켜 가고 있다. 아니, 이것도 사실이 아닐지 모른다. 나는 과연 경제적으로 온전한 독립을 잘 지켜 가고 있다고 할 수 있을까?
졸업 직후 예상보다 빨리 일을 시작하게 됐을 때 집이 멀어 통근은 무리라고 판단했다. 그래서 아빠가 주는 첫 달 고시원비 33만 원을 들고 집을 나와 얼떨결에 자립을 시작하게 됐다. 그 고시원비를 끝으로 1인 가구로서의 생활은 온전히 내 책임이었다. 이런저런 생활용품을 가족의 도움으로 구하게 되는 경우도 있었지만, 내가 먹고 자고 유흥을 즐기며 학자금을 갚는 데 쓰는 돈은 오로지 내가 번 만큼만 가능했다.
이런 상황이 바뀌어 가족들에게 손을 벌려야 했던 때가 딱 한 번 있다. 첫 직장을 그만두고 다른 출판사를 알아보던 사이였다. 이번에는 꼭 다니고 싶은 데라는 확신이 들어야 입사하겠다고 결심하고 나니 이직 기간, 즉 백수 기간이 7개월로 늘어나 버렸다. 마지막 두 달 동안에는 하루에 돈을 하나도 안 쓰기를 목표로 살아 보기도 했고, 같은 백수 처지인 친구와 홍대에서 만나 놀 때도 도시락을 싸서 놀이터에서 먹고, 돈을 들이지 않고 구경할 수 있는 곳들을 미리 검색해 하루를 알차게 보내며 뿌듯해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고정비로 필요한 월세와 학자금 납입은 바닥을 드러내는 은행 잔고로 어찌할 수 없었다. 결국 처음에는 아빠, 두 번째에는 엄마에게 생활비를 빌렸고 월세 계약을 갱신할 때 필요한 보증금은 언니의 도움을 받았다.
생활비와 보증금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가족에게 털어놓기까지 수없이 망설였다. 이직에 대한 부담을 전혀 주지 않는 가족들이었기 때문에, 더욱더 실망스럽게 만드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앞섰다. 그럼에도 당장 ‘내일’을 살려면 그 돈이 필요했다. 너무 늦지 않게 재취업을 하여 생활비는 몇 달 뒤 바로 갚고, 언니에게 빌린 보증금은 3년 후에 다 갚을 수 있었지만, 당시를 떠올리면 한 사람이 자신의 삶을 책임지며 살기란 꽤나 어렵다는 생각이 다시 든다.
이미 지난 궁상맞은 이야기를 다소 길게 풀어 놓은 이유가 있다. 요즘 자꾸 그 백수 시절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자영업자’라는 이름으로 살고 있으면서 노동은 직장에 다닐 때 이상으로 하지만 통장에 남는 돈은 없는 상황에서 가끔 실소가 나올 때도 있다. 원하는 곳으로 이직을 못 하게 되면 전혀 다른 일을 할 수도 있는, 한 치 앞의 미래가 보이지 않았던 그때와 같은 막막함은 없지만, 당장 ‘내일’을 살기 위한 ‘생존 비용’을 마련하기 위한 걱정은 그때나 지금이나 비슷하게 느껴진다.
우스운 말이지만, 사실 나는 내가 돈을 적게 벌면서도 자립해 살아가는 데에 묘한 자부심과 자긍심을 지니고 있었다. 다소 거창하게 말하자면, 자본주의 사회를 뒤집지 않으면서도 그 시스템에 매몰되지 않는 대안적 삶의 실천을 추구하려는 자신이 나쁘지 않게 느껴졌다. 그리고 안다. 이런 생각이 자본주의를 옹호하며 많은 돈을 벌고 떵떵거리며 사는 것을 인생의 목표로 삼는 사람들에게 느껴지는 ‘저속함’과 크게 다르지 않을 수 있음을 말이다.
그럼에도 서점을 준비하며 읽은 히라카와 가쓰미의 책들이 전하는 메시지처럼, 동네 안에서 일하고 먹고 자고 현명한 작은 소비를 실천하는 삶에 점차 다가가고자 했다. ‘돈’이라는 단어 앞에서 의연할 수 있는 사람이 되려고 했다. 적게 벌어도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데 필요한 소비를 누리고 사는 정도로 삶의 균형을 맞추려고 했다. 당장 운영할 수 있는 가게, 누워 잘 수 있는 집, 먹을 수 있는 것들이 있는 삶에 충분히 만족하려고 했다.
그렇지만 언제든 의연할 수 있는 ‘돈’이라는 단어 옆에 ‘가족’이 붙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내가 지향하는 삶이 나쁘지 않아’라는 생각 끝에 자꾸만 물음표가 따라붙는다. 나는 나 혼자 먹고살 수 있는 데 족하지만 가족의 생일, 명절, 그 외 집안 행사들이 있을 때마다 그들에게 해 줄 수 없는 일들이 나를 초라하게 만들 때가 있다. 지금 당장 좋은 걸 해 주지 못해도 언젠가는 상황이 나아지고, 그때 잘해 주면 된다고 생각을 하다가도 그 ‘언젠가는’이 보장받지 못하는 경우를 상상하면 마음이 조급해진다.
지금은 가족들 전부 각자 자신의 생활을 책임질 수 있는 경제 활동을 하고 있지만 그 활동을 그만둘 시기가 다가오는 부모님, 그리고 점차 문제를 일으키는 그들의 건강. 좋지 않은 상황이 발생할 때마다 온전히 내 생활을 책임질 만큼만 벌자는 내 생각의 철없음에 스스로 놀라울 때가 있다.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사는 즐거움과 만족 뒤에는 항상 이 서늘한 걱정과 경악이 웅크리고 있다.
그래서 가족이 주는 돈은 슬프다. 서점을 시작했다는 사실을 가족에게 차례로 알렸을 때 언니와 엄마의 입에서 나온 말은 “책 살 돈 필요하면 말해”였다. 퇴사도 서점 개업도 가족에게 알리지 않고 시작했고, 우연히 한 매체에 인터뷰 기사가 나간 다음에야 그 기사를 보여 주며 약간의 포장을 곁들여 모든 사실을 고백했다. 사실상의 통보였는데, 비난 혹은 걱정이 쏟아질 거란 예상과 달리 가족들은 모두 내 경제 상황을 염려했고, 자신들의 주머니에서 조금이라도 무언가 덜어 주려고 했다.
이렇게 쓰면 무척이나 화목하고 이상적인 가족 같지만 그렇지 않다. 누구나 비슷한 이유로 행복하고 누구나 비슷한 이유로 비극적인 가족 이상 이하도 아니다. 가족들이 돈으로 지원해 주려고 한다는 이야기를 약간 웃긴 에피소드처럼 개인 SNS 계정에 올렸더니 누군가가 “그래도 가족들이 돈이 좀 있나 보네요. 다행이네”라고 댓글을 달았을 때 순간 당혹스럽기도 하고, 그렇게 볼 수도 있겠다 싶었다.
가족들이 주는 돈이 슬픈 이유는, 서로에게 애정과 관심을 보여 줄 방법으로 오로지 ‘돈’ 과 ‘외식’ 밖에 모르기 때문이다. 몇십 년을 표현하는 법을 모르고 살아왔고, 앞으로도 모를 것이며, 이렇게 ‘줄 수 있는 것을 주는’ 식이 이어질 것이다. 하지만 안다. 우리 모두 온전히 제 삶을 지탱하기에도 벅찬 가운데 누군가에게 줄 수 있는 것이 남아돌지 않는다는 사실을 말이다. 내가 누릴 것을 줄이고 아끼며 다음 기회로 미루고, 도움이 필요해 보이는 가족과 나누는 것이기 때문에 ‘돈’과 ‘가족’이 만났을 때 한없는 슬픔이 남는다.
하지만 어쨌든, 가족들의 돈을 나는 사양 않고 덥석 받았고 엄마의 생신 용돈은 엄마의 말에 설득당해 어쩔 수 없다는 듯 패스했다. 자립이고 무엇이고 간에 도움이 필요한 것을 인정하는 법부터 다시 배우고 있다. 가족의 인생을 책임지겠다는 생각은 애초에 없다. 그래도 늦지 않은 언젠가, 내가 덥석 받은 돈을 다른 가족의 손에 덥석 쥐어 줄 수 있는 정도는… 바라도 되겠지? 오늘도 고요한 서점에서 6월 매출 기록과 정산 비용을 놓고 씨름하며 엄마가 준 돈으로 산 공기 순환기의 바람을 맞는다. 에어컨도 아닌 것이, 바람이 참 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