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의 위안부》 논란, 모두 화가 나 있다
위안부 논의, 민족주의 감수성과 순결한 소녀 이미지 넘어설 수 없나
성지훈 기자
사진 | 정운 사진기자
문을 열자마자 안경에 김이 서렸다. 실내에는 수용 한계 인원을 훌쩍 넘겨 가득 찬 사람들이 뿜어내는 열기가 후끈했다. 밖에는 폭우가 쏟아졌고 복도에는 우산 십수 개가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었다. 어지간해서 문밖 출입도 하지 않을 날씨에 이토록 많은 사람이 모여든 곳은 재일 교포 사학자 정영환 메이지가쿠인대학 교수의 저서 《누구를 위한 화해인가 – ‘제국의 위안부’의 반역사성》 출간 기념 강연회 현장이다. 지난 1일 서울 종로구에 있는 ‘푸른역사 아카데미’에서 열린 강연회에는 정영환 교수 강연을 듣기 위해 모인 50여 명의 청중과 박노자 오슬로대 교수, 서승 리쓰메이칸대 코리아연구센터 연구 고문, 김창록 경북대 교수 등이 자리했다. 강연회 사회는 강혜정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실행위원이 맡았다. 정영환 교수를 비롯해 모두 《제국의 위안부》에 비판 입장을 지속해 밝혀 온 이들이다.
정영환 교수의 책은 박유하 세종대 교수의 저서 《제국의 위안부》의 주장을 본격적으로 검증하고 논박한다. 정영환 교수는 박유하 교수가 《제국의 위안부》를 통해 “위안부 문제 본질의 수정을 시도한다”고 비판한다. 정 교수의 주장에 따르면 《제국의 위안부》가 일본 지식인 사회에서 호평을 받은 이유는 “《제국의 위안부》가 일본이 원하는 위안부 이미지를 제공했기 때문”이다. 출간 기념 강연회에서 강연한 박노자 교수와 김창록 교수 역시 《제국의 위안부》를 비판하는 강연을 했다. 박노자 교수는 《제국의 위안부》에 대해 “제국주의와 파시즘, 자본주의 역사를 옹호하는 역사 수정주의의 갈래 속에 있다”고 말했다. 박노자 교수의 뒤를 이어 강연한 김창록 교수는 “박유하 교수가 위안부 문제의 법적 책임에 대한 논리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강연회에는 정영환 교수가 비판한 《제국의 위안부》의 저자 박유하 교수도 참석했다. 박 교수는 출간 기념 강연회가 열리기 하루 전 강연회 개최 소식을 알았고 출판사 측에 본인의 참석 가능 여부를 물었다. 출판사 측은 “학문적 교류가 이뤄지길 바란다” 는 ‘초청 공문’을 박 교수에게 보냈다. (출판사 측은 박 교수에게 보낸 건 ‘초청 공문’ 이 아니라 ‘안내문’이었다는 입장을 밝혔고 이 과정에서 실무자의 착오가 있었다는 입장을 밝혔다.) 박유하 교수는 강연이 끝나고 이어진 간담회에서 공식적인 발언 시간을 달라고 요청했지만 토론자 자격으로는 발언 시간을 얻지 못했다. 박유하 교수에게 발언 기회가 주어진 건 종료 시각 20여 분을 남겨 둔 시점의 청중 질의 응답 시간이었다. 박유하 교수가 정영환 교수와 논박을 벌이던 짧은 시간에 청중들은 박 교수에게 야유를 보냈다.
박유하 비판의 논지
2013년 7월, 박유하 교수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다룬 《제국의 위안부》를 출간했다. 책은 나오자마자 반향을 일으켰다. 박 교수는 《제국의 위안부》에서 ‘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가 주도해 온 한국의 위안부 운동을 비판했다. 정대협의 활동이 위안부 문제를 ‘순결한 소녀’의 이미지로 박제하고 있다는 비판이었다. 박 교수는 위안부의 동원 방식과 위상에 다양한 층위가 존재하며 그 다양한 층위를 이해하는 것이 위안부 문제의 올바른 해결을 위한 선결 과정이라고 주장했다. 같은 맥락에서 일본 군인과 위안부 사이를 ‘동지적 관계 ’ 라 표현한 것도 도마에 올랐다. 이 표현을 놓고 정대협과 ‘ 나눔의 집 ’ 등 위안부 피해자 지원 단체들은 박 교수가 피해자들의 명예를 훼손했다고 주장했다. 지원 단체들이 박 교수를 비판하고 나서자 박 교수에 대한 비난 여론이 일기 시작했다. 박 교수는 ‘친일파’로 지칭되기 시작했다. 2014년 6월에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을 지원하는 ‘나눔의 집’이 《제국의 위안부》에 대한 출판 금지 가처분 신청을 냈다. 피해자 1인당 3000만 원씩 총 2억 7000만 원의 민사 손해 배상을 요구했다.
《제국의 위안부》 논란은 지식인 사회에서 덩치를 키웠다. 박 교수의 주장을 두고 갑론을박이 이어졌다. 박유하 교수 비판의 선두에 서 있는 건 정영환 교수다. 정 교수는 박유하 교수가 위안부 문제를 일본의 입장에서 해석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박 교수가 이를 위해 사료를 과잉 해석하거나 의도적으로 왜곡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정 교수는 “정치적 의도가 의심된다”고 말했다. 정 교수는 《누구를 위한 화해인가》와 강연회 등에서 “ 동족이나 애국을 언급한 것은 위안부의 말이 아니라 일본군의 말”이라고 지적했다. 《제국의 위안부》에 쓰인 위안부 피해자 황순이의 “ ‘운명’이라는 말로 용서하는 듯한 그녀의 말”이란 증언 역시 증언집에 나오는 문구와는 다르다며 “할머니의 증언을 과잉 해석 했다”고 비판했다. 정 교수는 또 한일협정, 국민기금, 고노 담화와 무라야마 담화에 대한 박 교수의 우호적인 평가 역시 박 교수의 ‘일본 입장의 시각’에 기인한다고 지적한다.
정 교수는 1일 열린 출간 기념 강연회에서 “사료와 증언의 왜곡 등 여러 문제에도 불구하고 일본 지식인들이 이례적일 정도로 책을 절찬한 배경에는 일본 지식계의 우경화, 그리고 일본 리버럴도 이해할 수 있는 위안부 이미지를 제공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정영환 교수가 일본에서 박유하 교수 비판의 물꼬를 텄다면 국내에서 박유하 비판의 대표 선수로 나선 건 박노자 교수다. 박노자 교수는 박유하 교수의 연구와 주장을 ‘언어도단’이라고 비판한다. 박유하 교수의 주장은 역사 기록과 관계없는 주장이라는 견해다. 박노자 교수는 박유하 교수의 주장처럼 일본 군인과 위안부 사이에 ‘동지적 관계’가 성립할 수 없다고 지적한다. “ 2등 국민으로 민족적 차별을 받고 있던 조선인 여성, 거기에 더해 전시 성폭력의 피해자가 가해자인 일본 군인과 동지적 관계를 형성했다는 건 어불성설”이라는 것이다. 박노자 교수는 박유하 교수의 주장을 “거대 자본의 자본가와 착취당하는 노동자들이 동지적 관계를 형성했다는 것과 마찬가지의 주장”이라고 말했다. 박노자 교수는 “내지 호적을 따로 두고 조선인을 2등 국민으로 취급하는 등 식민지 시대에 민족적 차별이 분명히 존재했기 때문에 그 민족 차별을 정확히 지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노자 교수는 위안부 문제 해결 방식에서도 박유하 교수와 입장이 엇갈린다. 박유하 교수는 “일본의 법적 배상, 국회 결의를 통한 사죄와 배상은 사실상 실현 가능성이 없고 요구할 근거가 불충분하다”고 주장한다. ‘범죄’로서 물을 ‘ 법 ’ 자체가 당시의 국가 시스템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반면 박노자 교수는 “일본은 당시 국제 여성 인신매매 방지 조약에 가입해 있었고 일본 국내법에서도 인신매매를 금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법적 책임을 물을 근거가 충분하다”고 반박한다. 박노자 교수는 또 “우경화된 현재의 일본 정부가 이 같은 요구를 들어줄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점은 인정하지만 쟁취할 수 없더라도 온당한 투쟁을 하는 것이 옳다”는 입장이다.
모두 화가 나 있다
학술 논쟁이 이어지는 것처럼 보이지만 문제는 이성적이고 건설적인 학술 토론보다는 감정과 화가 앞선 다툼으로 번져 가고 있다. 박유하 교수는 학술 연구의 결과를 공개하는 데 사법부의 판단을 기다리는 상황이 됐다. 정영환 교수의 출간 기념회 직전 열린 기자 회견에선 박유하 교수를 고발한 지원단체들의 소송에 연대하겠다는 발언도 나왔다. 학술의 영역에서 쓰이는 언어, 논리적인 비판이라고 보기 어려운 표현들이 동원됐다. 한 사회학자는 “박유하는 학문적으로 파산했다”고 말했다. 박노자 교수는 “박유하 교수의 연구는 역사 연구라기보다 창작 소설”이라고 비판했다. 정대협 관계자는 박유하 교수에 관해 묻자 “대응하고 싶지 않다”는 반응을 보였다. 박유하 교수가 일본 우익의 논리에 복무한다는 비난은 박유하 교수를 비판하는 입장을 가진 이들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말이다. 정영화 교수도 박유하 교수에게 “정치적 의도가 의심된다”고 말했다.
김규항 《고래가 그랬어》 발행인은 박유하 교수의 주장을 수용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대표적인 지식인이다. 김규항 발행인은 “지금 박유하를 비판하는 논조 자체가 정상적인 지적 접근이 어려운 상태”라고 말했다. “이 문제를 바라보는 학자들이 화가 나 있고 흥분해 있다”는 지적이다. 김 발행인은 “위안부 문제는 우리의 화와 트라우마를 건드리는 문제기 때문에 감정적 한계를 돌아보고 진영 논리에서 벗어나 더욱 냉철하게 접근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박유하 교수로부터 직접적인 비판을 받은 정대협 역시 이에 대해 논리적인 반박을 펴진 않는다. 박유하 교수는 고노 담화와 무라야마 담화의 결과, 관민합작으로 조성된 ‘아시아여성평화기금 ’ 을 비교적 높게 평가하고 실질적 보상의 의미를 강조한다. 반면 정대협은 이 기금의 수령을 거부하고 이 기금을 수령한 일부 피해자들에게 국내에서 조성된 다른 지원 기금을 받을 자격을 제한하기도 했다. 박노자 교수 역시 이 기금에 대해 “일본 정부의 입막음 비용에 가깝다”고 비판했다. 아시아여성평화기금 수령에 대한 입장 차이와 기금을 수령한 피해자를 배제한다는 비판에 대한 정대협의 입장을 물었으나 정대협 관계자는 “잘못된 기금이기 때문에 반대한 것뿐”이라는 답을 내놨다. 기금 수령자에 대한 배제를 묻는 말에도 “일본의 이간질”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일본 정부가 잘못된 기금을 만들었는데 그걸 왜 정대협에 책임을 묻느냐”는 말도 덧붙였다. ‘학술 비판’을 ‘운동 감성’으로 대응하는 듯한 태도도 엿보인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와 반성매매 연구에 매진하는 중앙대 사회학과의 이나영 교수는 “1시간만 수요집회에 나와서 앉아 있어 보라”고 말했다. 정대협 관계자 역시 “김규항과 박유하 모두 수요집회 한 번 나와 보지 않은 사람들”이라며 비판의 ‘자격’을 강조했다.
정대협이 대표하는 위안부 운동이 민족주의 감수성에 경도돼 논의를 이성적으로 진행하지 못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박유하 교수는 우리 사회가 위안부 피해자들을 ‘순결한 소녀’의 이미지로 고정하고 다른 층위의 피해자들은 배제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김규항 발행인 역시 “위안부 운동이 순결한 소녀에 방점을 찍는 매우 전근대적 여성관에 기초한 방식”으로 이뤄진다고 비판했다. 김 발행인은 “민족주의는 카타르시스를 끌어내는 매우 효과적인 방식이지만 사실에 부합하는 운동은 아니”라고 덧붙였다.
감정 섞인 말은 자칭 진보라는 언론에서도 이어진다. 정영환 교수 출간 기념 강연회를 취재한 <한겨레> 기자는 기사를 통해 박유하 교수의 주장을 ‘일본군 무죄론’으로 단순화했다. 박유하 교수의 발언 시간 요구를 ‘이상한 논리’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박유하 교수의 주장은 “일본인들의 사죄 의식을 끌어내고 키우기 위해서는 과거사는 덮어 둬야 한다는 것”, “ ‘화해’는 진상 규명과 재발 방지가 아니라 오직 망각을 통해서만 이룰 수 있다는 것이냐는 의문이 들었다”는 말도 있다.
제자리걸음
논의가 생산적인 토론보다 감정 다툼으로 비화하면서 정작 담론의 발전은 정체하고 있다. 대표적인 게 ‘아시아여성평화기금’에 대한 입장 차이다. 박유하 교수는 이 기금이 실질적 보상이며 관이 관여한 일본의 공식적인 보상에 가깝다는 입장이다. 《제국의 위안부》에서도 “과거에 기금에 반대했지만 지금은 그때 받아들였으면 좋았을 것”이란 김문숙 민족과여성역사관장의 말을 인용해 기금 수용이 필요함을 강조한다. (김문숙 관장은 정대협 결성 초기부터 정대협 활동에 관여했고 부산 정대협 대표를 지냈다.) 그러나 정대협은 이 기금의 수령을 거부하고 피해자들에게 기금을 수령하지 말 것을 호소했다. 박유하 교수는 이 기금의 수용을 거부하면서 일본 내부의 양심적인 시민, 지식인들과의 연대도 어려워졌다고 주장한다. 기금에 대한 갈등과 사실 이상의 비난이 일본의 양심적인 시민들과의 관계마저 차단했기 때문이다. 박유하 교수에 따르면 아시아여성평화기금의 발기인인 와다 하루키 교수는 “일본 정부가 기금의 부족분을 충당하기로 약속했다”고 말했다. 박유하 교수는 “일본 정부가 기금 조성에 직접 관여하고 있다는 의미”라고 설명한다. 기금에 대한 논의가 중요한 까닭은 비단 금전 보상의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기금에 대한 입장 정리는 고노 – 무라야마 담화의 정치적 의미, 일본의 공적 보상 범위에 관한 규정, 일본 정부에 대한 위안부 피해자들의 입장 변모까지 규정하는 논의다. 정대협은 기금 거부에 대한 비판에 구체적인 답을 내지 않고 있다. 기금 수령을 거부하면서 일부 피해자들을 배제했다는 비판에만 “기금을 받은 피해자 할머니들과도 정대협이 함께 활동하고 있다”는 입장을 내놨다.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운동 방식에 대해서도 논의는 멈춰 있다. 순결한 소녀의 이미지, 민족주의 감수성을 내세운 운동 방식에 대한 비판이다. 정대협 측은 1990년대 초반 정대협 결성 이후로 여성주의 운동과 함께 정대협의 운동 방식도 변모해 왔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김규항 발행인은 “정대협 역사도 변화가 있었지만 대중 일반에게 작동하는 위안부 운동의 이미지는 ‘우리 민족의 순결한 소녀’ 에 맞춰져 있다”고 지적한다. 박유하 교수 역시 “대중은 위안부 피해자들을 저항의 주체로 교육받아 왔고 그렇지 않은 주체, 다른 층위의 피해자들이 드러나는 것에 당혹감을 느끼고 그래서 부정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정대협을 비롯한 운동 세력은 운동을 위해 민족주의의 틀로 그 인식을 이용해 왔다”는 비판도 더했다.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새로운 시각을 제기한 셈이다. 그러나 박유하 교수가 제기한 문제에 대한 구체적인 연구와 반론은 아직 없다. 정영환 교수는 박유하 교수의 지적들에 대해 “위안부 문제에 대한 몰이해와 지적 퇴락”이라고 답했다. 김규항 발행인은 “위안부 문제에 관해 토론할 여건도 갖춰지지 않은 상태”라며 “구체적 해결 방식에 대한 논의와 연구 자체가 불가능하고 토론 자체가 안 되는 게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아이러니
아이러니는 박유하 교수와 그녀를 비판하는 진영 모두가 제시하는 위안부 문제의 궁극적 해결 양태가 대동소이하다는 점이다. 박유하 교수의 주장은 일본과 식민지 조선이라는 민족적 관점에 국한된 사고에서 벗어나 더욱 다양한 층위의 가해자와 피해자의 구조를 살피자는 것이다. 박 교수는 위안부 동원 과정의 실상, 인신매매 구조, 가부장 사회의 책임, 제국주의의 속성, 순결한 소녀 이미지가 가진 한계 등을 두루 살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박유하 교수는 “위안부 문제는 근본적으로 성의 위계 차이에서 발생한 문제이며 거기에 계급의 문제, 제국주의에서 발생한 국가 대 개인의 착취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어 “성 격차의 문제라는 걸 알면서 근본적인 문제를 지적하지 않는 아이러니가 있다”고 말했다. ‘일본 군인에 의한 조선인 여성의 피해 ’ 라는 구도에서 나아가 계급의 문제, 젠더의 문제로 논의의 지평을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런 진단은 정대협을 비롯한 박유하 비판 진영에서도 비슷하게 내놓고 있다. 박노자 교수는 “필리핀 성노예 문제에 대해 정대협과 위안부 피해자들이 연대했을 때가 가장 고무적이었다”고 밝혔다. 정대협 역시 국내의 미군 위안부 문제를 수면 위로 등장시킨 것이 정대협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였음을 거론하면서 위안부 운동이 보편적 여성운동으로 발전하고 있음을 주장한다. 결국 이 문제의 궁극적 해결이 국제주의, 보편주의로 방향을 잡아야 한다는 데에 양측은 이견이 없다. 같은 주장과 방향을 갖고서도 서로를 공격하다 감정의 골이 깊어지는 아이러니다.
박유하 교수는 “ 어렵사리 국제 연대도 만들고 입장도 정리해 놓은 상태에서 가해자를 일본으로만 국한하려고 하니 문제가 다시 꼬이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이 같은 주장에 대해서 박노자 교수와 정영환 교수 등은 ‘ 역사 수정주의’라는 입장이다. 같은 말을 이미 여러 차례 반복하면서 논의는 접점과 해결에서 점차 멀어지고 있다. 김규항 발행인은 “논의는 서로를 깎아내리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의견을 상승 시키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민족주의 감수성을 걸러내고 박유하의 새로운 의견을 개방적 태도로 수용해 토론해야 한다”는 지적. 김 발행인은 “ 당장은 대중의 호응도가 떨어질 수 있지만 논의를 지속하면 대중도 호응하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정영환 교수는 박유하 교수의 연구를 ‘화해론’이라고 이름 붙였다. 최근 저서의 제목도 《누구를 위한 화해인가》다. 박 교수의 ‘화해’가 섣부른 수정주의라는 주장이다. 그러나 박유하 교수는 “정영환 교수의 오독”이라고 지적했다. 박유하 교수는 “화해를 강요하는 게 아니라 양쪽 간의 기본 정보가 너무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최대한 많은 정보를 올바르게 알아야 대화가 시작된다. 기본적으로 정보의 지평을 똑바로 만들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국가 간이건 사람 사이건 ‘화해’를 위해서는 기본적인 정보 습득이 우선이다. 귀를 기울여 서로의 이야기를 듣는 것. 정보를 취득하고 이해하는 데 감정을 최대한 배제하는 것. 깊어진 감정의 골은 같은 편을 적으로 만들기도 한다. 화해를 강요하는 것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