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0일,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서울시교육청 주차장에서 단식 농성을 시작했다. 그날 밤 경찰과 교육청 직원들은 퇴거를 요구했다. 하지만 오랜 시간 교섭에도 노사가 돌파구를 찾지 못한 상황이라 노조로서는 선택지가 많지 않았다. 노동자들은 농성을 풀지 않겠다고 했다. 다음 날 아침 7시, 갑자기 농성장에 총무과 직원들이 몰려들었다. 직원들은 농성 중이던 노동자들을 교육청 문밖으로 끌어냈다. 그날은 조희연 서울시 교육감이 취임 2년을 맞은 날이었다.
진보 교육감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교육청 문밖으로 밀려난 건 처음이 아니다. 지난해 12월에도 서울지역학교비정규직연대회의(연대회의) 대표자들이 교육청 접견실에서 경찰에 연행되는 사건이 있었다. 당시 대표자들은 접견실에서 학교 공무직 업무 재구도화와 관련해 처우 개선을 요구하며 교육감 면담을 요구하고 있었다. 교육청 측은 접견실 퇴거를 요구하는 요청서를 보내고, 대표자들의 저녁 식사 반입을 막다가 급기야 경찰에 강제 퇴거를 요청했다. 지난 5월 교섭이 난항을 겪어 주차장에서 농성을 시작했을 때도, 그리고 이달 1일 단식 농성장 강제 퇴거까지도.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는 한 평의 주차장과 접견실조차 허용하지 않았다.
조희연 서울시 교육감은 소위 ‘진보 교육감’이라 불린다. 진보 진영 단일 후보자로 출마하기 위해 시민 투표를 거쳤고, ‘진보 진영 단일 후보’라는 타이틀을 걸고 당선이 됐다. 그의 당선은 시민 사회와 노동자들의 전폭적인 지지가 기반이 됐다.
조 교육감은 후보 시절부터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처우 개선을 강조해 왔다. 2014년 5월 교육감 선거 운동이 한창이던 시기, 조희연 교육감은 민주노총에서 학교 비정규직 들과 만나 “보수 (교육감) 후보들은 저와 비교할 처지가 못 된다”며 “임기 내 교육청 자체 예산으로 비정규직 노동권 보호, 모범적 노사 관계를 수립하는 것이 저의 우선 공약 사항”이라고 강조했다. 주요 공약으로 ‘학교 비정규직의 권익과 참여 증대’를 내세우기도 했다.
“이럴 줄은 몰랐어요”
서울시교육청으로 향하는 길목에는 수많은 현수막이 줄지어 있다. 그 속에 담긴 수백 개의 문구들은 교육청을 향한 학교 비정규직의 목소리다. ‘조희연 교육감이 직접 나와라’라는 목소리가 교육청 담벼락에 나부낀다.
서울시교육청 맞은편에는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차린 농성장이 있다. 서너 사람이 들어서면 꽉 차는 변변찮은 비닐 농성장이다. 장마철 굵은 빗줄기가 종일 비닐 지붕을 두드려 댄다. “우리 손으로 만든 교육감이잖아요. 그런데 이럴 줄은 몰랐어요. 보수 교육감이나 진보 교육감이나 다른 게 없습니다.” 농성장에서 만난 용순옥 전국학교비정규직노조 서울지부장이 말했다. 지난 5일 만난 그녀는 비닐 농성장에서 일주일째 단식 농성을 이어 가고 있었다. 연대회의에 소속돼 있는 공공운수노조 전국교육공무직본부도 릴레이 농성을 진행 중이다.
진보 교육감 취임 이후 그래도 교육청과 소통이 원활해지지 않았느냐 묻자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지금껏 한 번도 교육감과 마주 앉아 이야기해 본 적이 없다고 했다. 진보건 보수건 애초에 만날 수가 없는데 어떻게 변화를 감지할까. 신임 노조 지도부가 교육감과의 상견례를 요청하기도 했지만 번번이 퇴짜를 맞았다고 했다. 심지어 교섭이 난항을 겪고 있는데도, 얼굴을 비친 적이 없다며 울분을 터뜨렸다. “8개월간 교섭에서 진전된 게 거의 없어요. 계속 시간만 낭비하고 있어요. 교섭을 위임받아 테이블에 앉는 교섭 위원들과 이야기가 잘 안 돼요. 교섭하는 내내 무시로 일관하고요. 우리의 사용자는 교육감이잖아요. 그래서 교육감이 직접 교섭에 나오라고 요구를 하지만 단 한 번도 얼굴을 비친 적이 없습니다.”
많은 걸 바라지는 않습니다만
지난달 23일부터 서울과 제주 지역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이틀간 대대적인 총파업에 돌입했다. 핵심 요구는 정기 상여금 연 100만 원 지급 등 차별적 저임금 현실을 개선하라는 것이다. 전국 시·도교육청 중 서울과 제주, 두 곳의 교섭 진행 상황이 가장 더뎠다. 다른 지역들은 타결이 되거나 잠정 합의가 이루어지고 있다. 파업 후, 서울과 제주 지역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단식 농성을 이어 갔다. 그리고 지난 5일, 제주 지역에서 9일간 단식 농성을 벌이던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가 결국 쓰러져 병원으로 후송됐다. 신기하게도 제주 지역도 ‘진보 교육감’이 취임한 지역이다. 전교조 출신의 이석문 제주특별자치도 교육감도 조희연 서울시 교육감과 함께 일명 ‘진보 교육감’이라 불린다.
조형수 전국교육공무직본부 서울지부 조직국장은 “이상하게 한 발짝씩 늦다”고 말했다. 조희연 교육감이 학교 비정규직 차별 개선에 관해서는 타 지역을 따라가지 못한다는 말이었다. “교사와 (학교에서 일하는) 공무원들은 한 달 급식비가 13만 원이에요. 지난해부터 학교 비정규직도 급식비를 받기 시작했습니다.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에서 정규직의 절반은 주자고 결정했는지, 타 지역들은 8만 원의 급식비를 지급했습니다. 그런데 서울만 유독 4만 원뿐이었어요.”
실제로 전국 17개 지역 시·도교육청 중 14개 지역은 8만 원을 지급하고 있었고, 대구와 충남은 각각 10만 원과 13만 원의 정액 급식비를 지급했다. 급식비가 4만 원인 곳은 서울뿐이다. 유급 병가나 육아 휴직 기간 등 학교 비정규직 처우에 있어 서울은 언제나 최하위다.
“조희연 교육감이 내놓은 공약만 이행한다면 노조를 결성할 이유가 없어요.” 조형수 조직국장이 조희연 교육감의 학교 비정규직 10대 정책 공약을 건넸다. 호봉제 도입과 고용 형태에 따른 각종 차별 해소, ‘학교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및 처우 개선 대책 마련을 위한 교육감 직속 특별 기구’ 설치 등의 내용이 담겨 있다. 지켜진 공약이 있느냐는 질문에 ‘ 1번 공약은 이행이 됐다’ 는 답변이 돌아왔다. 학교 비정규직의 직제 명칭을 ‘교육공무직’으로 변경한다는 공약이다. 예산이 들지 않는 공약이다. 지난해 연대회의는 조희연 교육감 취임 1주년을 맞아 학교 비정규직 관련 공약 이행률을 분석했다. 그 결과 조희연 교육감의 공약 이행률은 15%였다.
“왜 서울의 학교 비정규직들은 항상 우선순위에서 밀릴까요?” 지난해에도, 그리고 올해도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질문은 같다. “17개 시·도교육청의 상황이 다르고, (처우에 관해) 느끼는 바가 다르지 않겠습니까.” 서울시교육청 관계자의 답변이다. 조희연 교육감의 임기는 이제 2년이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