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이름 붙인 이 지면은 ‘청년 자영업 보고서’다. 말 그대로 젊어 고생을 ‘돈 주고 사서’ 하는 청년 창업자 이야기 대부분은 ‘도전과 실패, 그렇지만 먼 미래를 응시하며 다시 시작’이라는 알 수 없는 포장이 덧대어지는 경우 앞에서 늘 고개가 갸우뚱했기 때문이다. 어쨌든 오늘은 이 연재명에 한 단어를 더 덧붙이고 싶다. 어쩌면 요즘 한국 사회에서 가장 주목받는 단어, ‘여성’을 말이다. 그래서 이번 호 제목은 ‘청년 여성 자영업 보고서’다.
지난달 서점 이사를 마치고 며칠 후, 한낮에 혼자 있을 때였다. 동네 주민으로 보이는 웬 어르신이 문 밖에 서서 말을 걸어 왔다. “죽어 가던 동네에 이런 서점이 생기니 얼마나 좋은지”라며 사람 좋게 웃어 보였다. 며칠 후 그분이 또 문 밖에 서서 말을 붙이기에 들어와서 구경하라고 안내했다. 그때부터 시작이었다. 그날 그분은 적어도 다섯 번은 서점에 찾아왔다. 처음에는 책을 정가에 파는지로 시작해, 자신이 과거에 무슨 일을 했고 지금은 어디에서 일하는지, 그러고는 내 나이와 결혼 유무를 묻고 자신이 중매를 서주겠다는 말로 이어 갔다. 중매 이야기가 나온 순간 아니다 싶어 슬슬 내 얼굴과 말씨에서 친절을 거두었지만, 그날 서점 행사 후까지도 가게 앞에 와 나와 행사 관련자들과 손님을 귀찮게 했다. 낮부터 밤이 되는 동안 그분의 얼굴은 점차 붉어졌고 알코올 냄새도 짙어졌다.
이 일이 있고 다음 날, 건물주 할머니가 오시더니 그분과는 말을 섞지 말라고 경고하셨다. 다른 동네에 사는 데도 가끔 찾아와 사람들을 귀찮게 굴 뿐 아니라, 술 마시면 정신이 이상해지기도 하고, 성추행범이라는 소문까지 있다며 얼굴에 근심을 가득 담아 말을 건네셨다. 다음에 그 아저씨가 또 오면 절대 친절하지 않으리라 다짐하고 있었는데, “성추행범”과 “정신이 이상해지기도”라는 대목은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알고 보니 서점을 하루에 댓 번 찾아온 그날, 서점과 대각선 방향에 있는 꽃집에도 몇 번을 드나들었다고 한다. 여자 두 분이 운영하는 그 공간과 여자 하나가 운영하는 이 공간을 오가며 말을 붙인 것이다.
화와 겁이 동시에 났다. 여자들만 있는 공간만 오고간 사실에 화가 났고, 정신이 이상한(?) 성추행범이라는 소문에 겁이 났다. 사회생활을 처음 시작할 때 두 달을 지냈던 고시원에서 변태 도둑과 마주쳤을 때도 그랬지만, 이런 경우 난 화가 먼저 난다. 그리고 뒤늦게 덜컥 겁을 내곤 하는데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이런 내 생활을 들은 지인 몇몇은 다산콜센터에 전화해 상담을 하라고 했다. 그래서 금방이라도 해결책을 말해 주지 않을까 싶은 기대로 전화를 걸었는데, 잘 모르는 부분이라 일단 경찰청 번호를 안내해 준다는 답을 반복했다. 출근길에 이미 근처의 치안 센터에 들렀지만 ‘순찰 중’ 표시만 보고 발길을 돌린 터라 허탈함이 거듭되는 기분이었다.
당시는 서점에서 열흘간 ‘릴레이 낭독’ 행사가 이어질 때라 어느 새 행사 준비와 서점 일에 밀려 경찰청과의 상담은 자꾸만 미루게 됐다. 한번은 대낮에 그분이 또 지나가다 인사를 하길래 눈만 마주치고 대꾸를 하지 않았다. 나도 모르게 정색해 버린 것이다. 그러다 결국 며칠 후 밤, 서점에서 사람들과 낭독을 이어 가고 있는데 ‘덜컹’ 소리가 나서 문 쪽으로 고개를 돌리니 그분이 문고리를 잡고 당황한 듯 웃고 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오려다 소리가 크게 나자 본인도 멋쩍어진 표정이었다. 마침 그때는 내가 낭독을 하고 있을 때였고, 나는 나도 모르게 손짓까지 곁들여 “가세요!”라는 말을 외쳤다. 그분은 어정쩡한 표정으로 고개를 꾸벅 숙이고는 발길을 돌렸다. 벌건 얼굴에서 술기운이 느껴졌다.
정신이 이상할지도 모른다는 사람에게 화를 내고 말았으니 잘못 대처한 건 아닌가 싶어 다음 날 바로 경찰서로 전화를 걸었다. 내 상황을 말하고 정기적 순찰과 밤 행사가 있는 날을 지정해 추가 순찰을 요청하며 앞으로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물었다. 나와 통화한 여경은 그분이 오면 무조건 신고를 하라고 했다. 그분이 별다른 행동을 하지 않아도 영업 방해 경고 조치가 필요하니 보내지 말고 시간을 끌라는 것이었다. 그러면 경고 조치 후에 그분이 또 와서 나쁘게 굴면 어쩌냐는 질문에도 “신고가 제일 좋은 방법”이라는 단호한 답이 돌아왔다. 상상은 두려움만 더할 뿐이다. 신고와 경고 후 내가 혹은 손님이 당할지도 모를 상황들은 언론의 기사화된 문장들로 점점 구체화되며 머릿속을 헤집고 다녔다.
이곳으로 서점 자리를 옮기기 전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가게에 남아 불 몇 개만 켜고 외주 작업을 하던 그 밤, 자신이 경찰이라며 문을 열어 달라던 남자가 있었다. 아무리 봐도 허술한 사복 차림이 미심쩍어 “다음에 오세요~” 했더니 “네~” 하고는 갔다. 그리고 난 또 겁이 덜컥 나서 경찰에 신고를 했고, 경찰 세 명이 십여 분 후 가게에 도착했다. 다행히(?) 그분들은 왜 늦은 시간에 혼자 있느냐며 나를 타박하지 않았다. 자신들이 순찰을 돌 테니 더 있을 거면 문을 꼭 잠그라고 했고 새벽에도 전화를 걸어 상태를 확인했다.
얼마 전엔 서점 행사 후 뒤풀이를 마친 늦은 시간에 택시를 탔다. 처음부터 반말로 말을 걸어 오는 기사의 태도에 난 그저 형식적으로 최소한의 답을 했다. 그러다가 집 근처 사거리에서 다소 긴 신호가 걸리자 그 기사는 고개를 뒤로 돌려 나를 훑어보더니, “공주님”, “몸매”, “얼굴” 등의 단어를 넣어 무어라 내뱉었다. 순간 난 내가 칼럼니스트 곽정은 씨에게 “공주님” 발언을 한 택시 기사를 만난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대략 새벽 두 시에 가까운 그 시간, 택시 안에 기사와 단 둘이 있는 그 공간, 과연 무어라 해야 옳았을까? 애매하게 성희롱이라 말할 수 없는 수위의 그 말들은 아마 손님들의 반응에 따라 그 수위가 달라질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말했다. 내 말을 정확히 옮기면, “기사님, 손님들한테 그런 얘기 하지 마세요”였다. 그러자 어처구니없게도 그 기사는 “뭐? 잘 안 들려”라며 딴청을 피웠다. 그래서 남에게 지지 않을 목청으로 말했다. “그런 말 손님들한테 하지 말라고요.”
서점에 나타나 나와 손님들을 귀찮게 한 그 아저씨를 잡상인 쫓듯 쫓아낸 이후 무슨 일이 벌어졌을까? 그분은 이제 서점 앞을 지나가도 내 쪽으로 고개도 안 돌린다. 그러면 그 택시기사는 나에게 무어라 답을 했을까? “으으음…”이라며 소리를 내고는 그 뒤 다시는 입을 열지 않았다. 이쯤에서 난 다시 화가 난다. 나의 되바라진(?) 태도에 그들이 더 공격적으로 굴지 않은 것은 나에게 다행이다. 하지만, ‘미안하지만, 난 당신들의 약자가 될 생각이 없다네’라는 분명한 태도 앞에 꼬리를 내린 그들이 난 우습다. 내가 잘했다는 것도, 위험과 두려움 앞에 큰소리를 치라는 뜻도 아니다. 그저 내 순간적인 선택들이 불러온 결과 앞에 냉소가 지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사실 나도 하나 반성할 게 있다. 서점에 나타나는 그분의 존재가 여자 손님들에게 알려질까 봐 한때 걱정했다. 나는 그분이 나와 내 손님들에게 해를 입히지 않도록 분명한 조치를 취하고 있고 앞으로도 취할 것이다. 만약 그래도 또 다른 위험 상황이 생긴다면, 이 사실을 숨기지 않는 게 옳다고 생각한다. 여성 안심 귀가 서비스나 택배 보관 서비스 등이 정책화되고 있다. 그런 흐름이 이어져 여성 혹은 사회적 약자가 운영하는 공간에도 ‘안전’을 위한 장치가 더해지면 좋겠다. 30대 초반 여성 자영업자로서 “가게에 혼자 있으면 무섭지 않냐”는 질문을 더 이상 듣고 싶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