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로 나가는 것이 불가능한 곳이에요. 나에게 불리할 수 있어서 이의 제기도 하지 않았어요.”
“경비원과 항공사 직원에게 나쁜 말을 수없이 들었고 그들은 항상 나에게 ‘한국은 당신의 나라가 아니니 본국으로 돌아가라’고 했어요.”
시리아 난민 신청인들이 난민네트워크와 대한변호사 협회가 공동으로 진행한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이들이 인천공항에 구금된 지 길게는 반년이 지났다. 이들에 대한 비인간적 처우가 세상에 알려지면서 다양한 보도가 나왔지만 개선된 것은 거의 없다. 난민 신청자들은 지난 2월 11일 난민 인정 심사를 받지 못하게 한 한국 정부를 고소하고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이들은 행정 소송을 낸 지 4개월이 지난 6월 17일과 24일 1심 선고를 앞두고 있다. 그러나 이들이 재판에서 이겨도 송환 대기실(정식 명칭은 출국 대기실)에서 나올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다. 이번 선고 기일도 한 차례 연기된 날짜다.
《워커스》는 인천공항 출입국관리사무소(출입국사무소)의 난민 인권 침해 논란을 다룬 바 있다(“인천공항 시리아 난민 잔혹사… 반년 가까이 구금”, 《워커스》 9호). 이번에는 일부 난민 신청인이 6개월째 사는 송환 대기실 문제를 집중 조명한다.
사실 송환 대기실은 무법 시설이다. 대한민국의 영토가 아니다. 그래서 한국 정부는 이들을 책임지지 않는다. 송환 대기실은 지난해 기준 하루 평균 16만 5,453명이 이용한 북적거리는 인천공항 건물 출입국장 2층에 있다. 그러나 난민에게 이 공간은 영화 <올드보이> 속 장면처럼 고립된 구금 시설일 뿐이다. 이 같은 송환 대기실은 김포, 제주 등 국제 공항에 8개가 있다. 여기서 난민 지위 신청인들은 입국 목적 불분명자나 위/변조 여권 소지자들과 함께 구금돼 있다.
민간 업체에 책임 떠넘겨
‘사실상’ 구금 상태는 애초 정부가 난민 신청을 자의적으로 불허한 데 원인이 있다. 하지만 관련 법도 없이 정부가 시설 운영을 민간 업자에 맡기면서 문제가 커지고 있다.
9일 《워커스》에 밝힌 법무부 입장에 따르면, 지난 2002년 2월 출입국사무소는 유관 기관들과 회의를 열어 “송환 대기실은 인천공항 항공사운영위원회(AOC)가 운영·관리하고, 인천공항 출입국사무소는 임대료만 부담한다”고 결정했다. 이에 따라 난민 신청자에 대한 송환 여부 심사가 결정되면 출입국관리소의 역할은 끝난다. 출입국관리소는 인천공항공사로부터 송환 대기실로 사용하는 공간을 임차할 뿐이다. 실제 운영은 인천공항에 취항하는 67개 항공사 모임인 항공사운영위원회가 한다. 난민 신청자 통제도 송환 집행도 모두 항공사운영위원회 책임이다. 이에 필요한 인건비, 식대 등 일반 관리비도 항공사들이 전액 부담한다. 항공사운영위원회는 난민 신청자에 대한 식사 제공, 통제와 출국 집행 등의 업무를 다시 경비 용역 업체에 위탁하고 있다.
인천공항 송환 대기실을 관리하는 주요 업체는 ‘프리존 서비스’라는 민간 업체다. 프리존 서비스는 25명을 파견해 관리를 대행하고 있다. 하지만 이 업체는 용역, 인력 알선 업체로 난민 신청자에 특화된 업무를 이행하는 것과는 거리가 있다. 프리존 서비스 관계자는 8일 《워커스》에 “식사 제공과 항공기 승차를 안내하는 업무를 맡고 있다. 용역은 일반 취업 규칙에 따라 채용한다. 안전 및 관리 교육을 하지만 특별히 난민 관련 교육은 없다”고 밝혔다. 일반 용역 업무와 다르지 않게 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난민 처우를 강제하는 규정도 없어 송환 대기실 비용을 전액 부담하는 항공사들에게 난민 신청자들은 눈엣가시가 되기 십상이다. 이러다 보니 난민 신청자의 인권은 뒷전일 수밖에 없다.
송환 대기실, ‘개방형’이라 주장하지만
정부는 송환 대기실이 ‘개방형’이라고 주장한다. 정부의 말을 들으면 항공사가 운영하는 대기실에서 체류하다가 출국하면 그만이라는 생각이 든다. 민간이 운영하든 정부가 운영하든 큰 상관이 없다. 하지만 사실상 구금이라는 점에서 문제는 달라진다. 당국이 난민 심사를 허락하지 않은 신청자에 송환을 지시해 일단 억류되면 신체 및 이동의 자유가 제한된다. 모든 절차가 끝날 때까지 송환될 수 없어 사실상 구금이 되고, 이 구금 시설을 민간 용역이 운영하면서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다.
지난달 26일 난민네트워크와 대한변호사협회가 공동으로 발표한 <2016년도 공항에서의 난민 신청 실태 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인터뷰 대상자 전원이 출입이 자유롭지 않다고 답했다. 항공사에서 음식 제공이 중단돼 음식을 사고 싶어도 나갈 수 없고, 담배를 피우기 위해 문밖으로 잠시 나가는 것조차 자유롭지 않다. 다만 병세가 심각한 경우 긴급 상륙 허가를 받아 공항 내 병원에서 진단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긴급 상륙 허가는 출입국 공무원과 항공사 직원 모두에게 받아야 하는데 변호인 등의 조력 없이는 쉽지 않다.
난민 신청자들은 송환 대기실에 들어가기 전 이용 신청서를 작성하는데 이 또한 사실상 구금이라는 불법을 회피하기 위한 수단으로 비판받고 있다. 출입국 공무원은 이용 신청서 작성을 요구하면서 해당 내용을 설명하지도 않는다. 난민 신청자 인터뷰 대상자 24명 중 23명이 내용을 모른 채 서명했다고 밝혔다. 송환 대기실에 들어가지 않으려면 환승 구역 내 유일하게 존재하는 호텔에 들어가야 한다. 하지만 호텔 숙박비는 하루 150달러(약 17만 3천 원) 이상이라 이용하는 난민이 거의 없다. 출입국 공무원은 호텔에 머물 여력이 되면 송환 대기실에서 나가라고 하지만 나갈 수 없는 상황이라 이는 구금을 받아들이라는 협박이나 회유에 가깝다는 지적이다. 송환 대기실은 민간이 운영한다는 점에서 사실상 ‘사설 구금 시설’이라는 점도 문제다. 사설 구금 시설은 국내에서도 2010년 아시아 최초로 설립된 소망 교도소만 있을 뿐이다. 여전히 우리 사회는 구금을 공적 영역으로 보는 시각이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 강성준 천주교인권위원회 활동가는 “구금은 권리의 제한을 수반하지만 권리의 제한은 구금의 목적에 따라 최소화돼야 한다. 난민 신청자들이 범죄를 저지른 것도 아닌데 공적 권리 구제를 청구하기도 어려운 사설 기관이 시설을 운영한다는 것은 인권 침해의 소지가 크다”고 지적했다.
정부가 송환 대기실 책임져야
이 때문에 난민 인권 단체들은 송환 대기실을 정부가 책임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출입국사무소는 송환 대기실 관리가 항공사운영위원회 책임이라고 반박한다. 그러나 인천지방법원은 2013년 11월 인천공항으로 입국을 시도한 난민 신청자가 청구한 재판에 대해 출입국사무소가 동일한 수용자라고 판결하여 출입국사무소에 피수용자의 수용을 즉시 해제하라고 명한 바 있다. 당시 인천지방법원은 “인천공항 출입국관리사무소 역시 항공사운영위원회와 함께 실질적으로 송환 대기실을 운영하는 수용자에 해당한다고 봄이 상당하다”고 지적했다. 인천지방법원이 출입국사무소를 항공사운영위원회와 함께 공동의 수용자라고 본 까닭은 출입국사무소가 항공사운영위원회와 협의해 송환 대기실 관리, 운영 체계를 공동으로 결정한다는 점, 임차료를 부담하며 실질적으로 그 운영에 관여하고 있다는 점 등 때문이었다.
현재 인천 지역 이주 운동 단체들이 연대한 ‘인천이주운동연대’는 2주 전부터 인천공항 앞에서 난민 신청자의 조속한 구금 해제를 요구하면서 1인 시위를 진행하고 있다.
박정형 한국이주인권센터 상담팀장은 “송환 대기실은 실제로 당국이 운영하는 구금 시설인데 사설 용역 업체가 이 시설을 관리하고 있다. 그러나 사설 경비에게 사람을 구금할 권리가 있는지 모르겠다”고 제기했다. 랑희 인권운동공간 활 활동가도 “제일 큰 문제는 시설에 대한 규정이나 공간에 관한 정의가 없고 법도 없는 상태”라며 “공항은 항공사에 떠넘기기를 하고 있고 항공사는 울며 겨자 먹기로 관리하고 있다. 그래서 시설, 식사 관리 질의 하락 문제가 생긴다. 감독하는 태도도 존중이나 배려가 없다”고 지적했다.
소송을 함께 맡고 있는 김세진 공익법센터 어필 변호사는 “송환 대기실은 강제 퇴거 명령 집행을 위해 잠시 대기하는 장소다. 따라서 강제 퇴거 명령 집행이 불가능한 난민 신청자나 현재 난민 인정 심사 불회부 결정을 취소하라며 재판 중인 사람들을 송환 대기실에 구금하는 것은 법적인 근거가 없다”며 “이들에 대한 책임은 정부가 져야 하는데 용역에 위탁 관리하고 있어, 난민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일부 용역 직원들은 폭언과 협박 또는 허위 정보 제공으로 난민들을 더욱 불안하게 하고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