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지자본주의? 매우 낯설고 생뚱맞다. 대중적으로도 생소하며 학계에서도 그리 친숙하지는 않다. 인지자본주의를 얘기한다는 것은 철 지난 이야기에 불과할 수도 있다. 지난 2006년 프랑스의 인지자본주의를 처음 소개할 때만 해도 사람들이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았지만(전병권. <인지자본주의의 문제 설정>, 《진보평론》 27호, 2006), 《문화/과학》에서 2010년 겨울호 특집으로 인지자본주의를 다루고 단행본 《인지자본주의》(조정환, 갈무리, 2011)가 출판되며 지대한 관심과 수많은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인지자본주의는 최근 유행(?)하고 있는 ‘인지’, ‘인지 과학’의 성과를 인지(cognition)라는 관용어로 어느 정도 수용함으로써, 인식에서 파생된 어떤 형태가 자본 축적의 새로운 단계를 만들었다는 문제의식에서 연관성을 찾는다. 이들의 공통 지반은 정보화와 지식 기반 사회이다. 지식 기반 사회 담론은 물론이고 연구의 융복합 필요성을 강조하는 담론에서 중심을 차지하는 것은 여전히 ‘과학주의적’ 관점이다. 예전 하버드대 생물학자 에드워드 윌슨이 주창한 ‘지식의 통섭’에서도 그것은 마찬가지였다.
인지의 사전적 의미가 “생명체가 지각하고 느끼고 이해하고 판단하고 의지하는 활동에 포함되는 정신적 과정을 총칭”한다면, 우리는 매일매일 무엇을 어떻게 인지하는가가 중요하다. 학문적으로 인지는 특정한 분야와 관계없이 적용 가능하다. 따라서 인지 과학 역시 인간의 마음에서 정보 처리 과정이 어떻게 이루어지는가에 대해 다양한 분야의 학제 간 연결을 통해 통합적으로 연구하는 분야가 되는 것이다.
우리는 매일매일 ‘인지’적 삶을 지속한다. 아침에 일어나서 눈을 뜨면 가장 먼저 스마트폰을 확인하거나 컴퓨터를 켠다. 잠들기 직전까지 모니터를 쳐다보고, 전화와 문자 메시지, 채팅으로 대화를 해결한다. 육체 노동은 점점 사라지는 것처럼 보이고 감정과 인지의 노동이 지배한다. 모든 영역을 인지화시키는 이 힘은, 다름 아닌 자본의 힘이다. 오늘날 거의 모든 노동자는 일상적 삶까지도 독점 자본에 포섭된 것이다. 이미 우리의 마음에 깊숙이 침투한 자본은 네트워크와 커뮤니케이션 방식을 재구성했다. 정보화, 금융 자본화된 사회 속에 유례없이 수동적인 객체가 된 우리의 ‘마음’이 단순한 자본 축적과 생존의 도구로 전락하는 것을 넘어서기 위한 혁명은 가능할 것인가?
인지자본주의는 정보와 지식이 새로운 부의 창출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자본주의 사회를 말한다. 이는 20세기 초에서부터 21세기에 이르는 자본주의의 역사 발전 과정에서 이해되어야 한다고 한다. 오늘날 우리는 제3기 자본주의인 인지자본주의 시기에 살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기존의 전통적인 방식인 ‘경쟁 자본주의 – (국가) 독점 자본주의 – 신자유주의(금융 자본주의)’라는 세 단계에 따라 경쟁과 독점에 초점을 맞추어 자본주의를 인식하는 것에서 벗어난 것이다. 따라서 인지자본주의는 상업 노동이나 산업 노동이 아닌 인지 노동을 중요한 착취 대상으로 삼는다. 이것은 자본주의와 노동이라는 문제 설정을 새로운 방식으로 재개하는 것이다.
인지자본주의 입장에서는 비물질 노동, 곧 인지 노동이 지배적이 된 지금 시대에서 노동 시간을 척도로 하는 전통적 노동 가치론이 유효하지 않다는 주장을 재확인했다. 물질 노동을 중심으로 생산과 교환 관계를 표준으로 삼았던 산업 자본주의 때와는 달리 인지자본주의 시대에는 비물질적인 인지 노동이 생산적 노동으로 바뀌어 사람의 삶 자체가 착취 대상이 됐다는 것이다.
따라서 노동 가치론에 매몰된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에 집착하지 말고, 마르크스가 산업 자본주의 당시 노동 가치론 연구를 통해 자본주의를 극복하려 했던 것처럼 인지자본주의 시대에 맞는 새로운 가치 개념을 발전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마르크스의 잉여 가치론을 산업 자본주의에 조응하는 입장으로 간주하고 인지자본주의에는 가치 법칙을 수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노동의 정체성이 역사적으로 변천한다는 가정에 근거하여 마르크스의 가치론을 수정해야 할 필요를 도출한다.
한마디로 인지자본주의의 가장 커다란 쟁점은 상품화되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는 현실에서 노동자가 부단히 탈상품화하는 오늘날의 현실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이다. 이것이 마르크스주의를 확대 심화하고 재구성하는 가장 커다란 쟁점이다. 왜냐하면 마르크스주의 입장에서 자본주의는 분업 – 상품 생산 – 가치화 – 화폐화로 이어지는 노동 가치론과 가치 법칙 없이는 논구될 수 없기 때문이다. 실제 자본주의 현실에서는 이러한 추상적인 핵심이 어떻게 관철되고 드러나는지가 중요하다.
이에 대해 전통 마르크스주의 입장에서는 첫째, 인지자본주의가 노동 가치론을 물질 노동, 육체 노동 등에만 적용되는 것으로 인식하는 등 마르크스 정치 경제학의 총체적인 모습을 단순화하거나 불충분하게만 이해하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전희상, <인지자본주의의 노동 가치론 해석에 대한 비판을 재확인한다>, 《마르크스주의 연구》 제9권 제1호, 2012). 마르크스의 노동 가치론은 자본주의의 내재적인 원리에 기초해 그것의 불안정성과 자기 파괴적 성격을 드러내고 있으므로 아직 유효한데, 인지자본주의는 외부적 비판으로 해석하고 있기에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둘째, 경제와 정치, 물질과 비물질, 육체와 정신, 산업 자본주의와 인지자본주의 등의 이분법을 통해 ‘기존의’ 마르크스주의자는 어느 한쪽만 강조했다는 혐의를 씌우고 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이런 시도는 현실에 대해 종합적인 접근을 펼쳤던 마르크스주의의 지적 흐름에서 벗어나고 있어, 노동 가치론을 기각해야 할 이유가 오히려 불분명하다고 말한다(박현웅. <인지자본주의론에서의 ‘가치론’의 문제>, 《마르크스주의 연구》 제9권 제1호, 2012).
셋째, 인지자본주의론자는 가치 이론의 기반이 ‘측정 가능성’이라기보다는 다른 상품들의 끊임없는 비교와 동등화, 그리고 그 결과로서 ‘사회적 평균’을 형성하는 것이라는 점을 놓치고 있다. 비물질 노동이라고 해서 가치 측정이 불가능한 것이 아니라, 다른 노동과 끊임없이 비교되고 어떤 방식으로든 동등화되는 과정에서 그 가치가 산출되고 있다는 것이다(김공회, <인지자본주의론의 가치 이론 이해 비판>, 《마르크스주의 연구》 제9권 제1호, 2012).
인지자본주의에서 비물질 노동은 노동의 지출을 노동의 지속 시간으로 측정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므로 노동 가치론의 범위에 들 수 없다고 주장한다. 작가가 자본에 고용되어 소설을 쓰면 가치를 생산하는데, 이는 원리적 가능성이며 현실화되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참고 문헌
김공회, <인지자본주의론의 가치 이론 이해 비판>, 《마르크스주의 연구》 제9권 제1호, 한울, 2012.
박현웅, <인지자본주의론에서의 ‘가치론’의 문제>, 《마르크스주의 연구》 제9권 제1호, 한울, 2012.
백욱인, 《정보 자본주의》, 커뮤니케이션북스, 2013.
전병권, 《인지자본주의의 문제 설정》, 《진보평론》 27호, 진보평론, 2006.
전희상, <《인지자본주의》의 노동 가치론 해석에 대한 비판을 재확인한다>, 《마르크스주의 연구》 제9권 제1호, 한울, 2012.
조정환, 《인지자본주의》, 갈무리, 2011.
조정환·황수영 외, 《인지와 자본》, 갈무리, 2011.
(워커스14호 2016.06.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