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의 가벼움 중에서 사람이든 동물이든 생명을 가볍게 여기는 문화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가까운 예로 세월호 참사를 봐도 그렇고, 지난 10여 년 동안 OECD 국가 중에서 자살률 1위를 굳건히 지키고 있는 것을 봐도 그렇다.
자살은 개인의 선택이기도 하지만, 사회적 영향에 의한 것이기도 하다. 자살의 원인이 되는 정신병과 우울증이 사회적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는 아직도 자살의 원인을 개인의 선택으로만 여기는 경향이 있다.
그런 의미에서 막스 베버와 함께 근대 사회학의 양대 산맥인 에밀 뒤르켐(Emile Durkheim, 1858~1917)의 《자살론(La Suicide)》(1897)은 자살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제공해 준 혁신적인 이론이자 저작이다.
뒤르켐에 따르면 자살은 엄연히 사회 현상이며 자살의 원인 역시 사회적이다. 자살은 산업 사회에서 증가하는 경향을 보인다. 경제적인 풍요와 정치적인 자유가 보장되는 나라에서 오히려 자살률이 높고, 산업화가 덜 된 나라에서 자살률이 낮은 편이다. 산업화와 자살률 사이에 상관관계가 존재한다. 산업 사회가 곧 경제적 풍요로움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그 경제적 풍요로움을 따라가야 하는 어려움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경제적 어려움이 자살의 가장 많은 이유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 그 근거이다.
그리고 뒤르켐의 연구가 보여 주는 것처럼 집합 의식이 높은 사회나 집합 의식을 강조하는 종교일수록 자살률이 낮다. 반대로 집합 의식이 낮은 사회에서 자살률이 높다고 뒤르켐은 강조했다. 집합 의식과 자살률 사이에 상관관계가 존재한다. 하지만 사회에 의한 비합리적 집합적 강제가 높은 사회에서는 자살률이 높다. 외모 지상주의 사회일수록, 물가 수준이 높고 과시적 소비가 높은 사회일수록 자살률이 높은 것이다.
뒤르켐은 19세기 말 프랑스와 프로이센, 작센, 함부르크, 스웨덴, 덴마크, 영국, 오스트리아, 이탈리아 등의 정부 자료를 이용해 가난과 고통, 권태와 우울증, 혹은 명예를 위해 자살하는 사람들의 원인과 나이와 지역, 기후와 건강, 결혼의 여부에 따른 자살률의 변화와 자살 방지법이 무엇인지 분석한다.
그는 자료들을 활용해 자살을 선택할 만큼 그 이유가 정말 괴롭고 힘든 것인지, 왜 많은 사람이 자살을 선택하는지, 비슷한 상황이어도 자살을 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차이는 무엇인지 등을 분석했다.
그 결과 사람들이 생각하던 것과는 달리 정신병이나 신경 쇠약증 같은 것이 자살과 확정적인 관계가 없다는 것을 밝혔다. 또한 유전적 요소, 개인의 체질, 밤낮의 길이, 계절에 따른 온도의 영향 등 다양한 신체적, 물질적 조건이 자살 현상을 설명하기에는 부적합하다는 것을 밝혔다. 뒤르켐은 자살의 유형을 사회 통합도에 따라 ‘이기적 자살(egoistic suicide)’과 ‘이타적 자살(altruistic suicide)’로 구분했고, 사회적 규제에 따라 ‘아노미적 자살(anomic suicide)’과 ‘숙명적 자살(fatalistic suicide)’로 구분했다.
첫째, 이기적 자살. 오직 자살자 자신만의 자원에 의존한 채로 하는 자살. 이 유형은 현대 사회의 지나친 개인주의 경향으로 인해 일어나며, 개인이 사회에 통합되지 못하고 소속감을 상실해 발생한다. 개신교도, 이혼자, 미망인, 독신자, 교육자 등의 자살이 여기에 속한다.
둘째, 이타적 자살. 여기에서 이타적이라는 단어는 자살의 이유가 자기 본위적이지 않고 타자 본위적 곧, 남을 위해 죽는다는 의미를 지닌다. 이 유형은 강력한 통합력이 작용하는 – 주로 기계적 연대에 기초한 사회 – 환경에서의 자살로, 개인이 집단에 완전히 동화되어 있어 집단의 목적이나 정체가 자기 자신의 것과 동일시될 때 발생한다. 예컨대, 태평양 전쟁 당시 가미카제나 오늘날의 자살 공격, 정치적 메시지 전달의 방법으로서의 분실 자살, 종교인의 순교, 가문의 영광을 지키기 위한 자살, 침몰하는 선박과 함께 자살하는 선장 등의 유형으로 현대 사회에서는 드물다.
셋째, 아노미적 자살. 이 유형은 지금까지 당연하게 여겨진 가치관이나 사회 규범이 혼란 상태에 빠졌을 때 자주 일어난다. 집단 무질서적 상황에서 현재와 미래를 유의미하게 연결해 주는 자기 연속성(self-continuity)을 확보하지 못하는 개인은 자살 충동을 느끼게 된다. 예컨대, 인기가 순식간에 떨어지거나 오른 연예인의 자살, 갑작스러운 실직에 따른 자살 등의 유형이 이에 속한다.
넷째, 숙명적 자살. 아주 강력한 압력 곧 구속적 통제가 가해지는 극단의 상황에서 일어나는 자살의 유형. 노예의 자살, 전쟁 포로나 장기 복역수의 자살 등이 있다.
결론적으로 개인은 그보다 큰 도덕적 실체, 즉 집단적 실체에 지배되고 있다. 각국의 국민은 사망률보다 더욱 확고한 자살률을 보인다. 하루, 한 달, 한 해에 따라 나타나는 자살률의 변화는 사회생활의 리듬을 반영한다는 것이다. 결혼, 이혼, 가족, 군대, 종교 등의 제도는 명확한 규칙에 따라 자살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러한 자살의 결론을 통해 뒤르켐은 사회라는 제도를 실재하고 살아 있는 능동적인 세력으로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그런 제도가 사회를 구성하는 개인에게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방식을 통해서 제도 그 자체가 개인으로부터 독립된 존재임을 입증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자살을 줄이고 방지하기 위해 ‘조합’을 유력한 대안으로 제시한다. 당시 유럽 사회가 중세적인 가족 제도와 장원 제도, 그리고 종교의 지위와 역할, 사회적인 통합, 커뮤니케이션에서 영향력을 급속히 상실했고 국가 역시 그 역할을 대신하기가 불가능하므로 직업과 교류 시간, 통합력과 소통 가능성을 고려해 당시 폭발적으로 늘기 시작한 ‘조합’이 그런 기능을 대신해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조합’을 더욱 확대하고 활성화해야 한다고 결론을 내린다.
한국의 사회 문제는 세계 최고 수준이다. 한국 사회는 다른 나라와 비교해 상대적으로 사회 압력이 높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자살률이 높은 것 역시 각종 사회 압력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로 보인다.
이것은 한국 경제가 눈부신 성장을 이뤘지만, 그 과실이 개인의 행복으로 이어지지 않았다는 방증이다. 최근 통계에 의하면 놀랍게도 50대 남성의 사망 원인 2위가 자살이다. 50대 남성이 점점 더 불행해지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것은 한국 사회에 존재하는 부정적인 집합적 힘, 즉 사회 압력이 다른 나라보다 더 강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울증이나 각종 정신 질환이 자살의 주요 원인으로 손꼽히지만, 우울증이나 정신 질환의 원인도 개인의 문제만이 아니라 사회 압력의 영향에 의한 부분이 적지 않다. 경제 수준보다 상대적으로 높은 주택 가격, 사교육비, 생활 비용 등이 그 하나이고, 다른 하나는 다른 나라보다 상대적으로 강한 사회 문화적 압력이 그것이다. 예를 들어 가부장적 권위주의, 외모 지상주의, 사회적 과시, 음주 문화 등이 그것이다.
따라서 한국 사회의 자살률을 줄이기 위해서는 각종 사회 압력을 축소하거나 해체해야 한다. 개인의 경제적 부담을 가중하고 있는 주택 가격, 물가, 교육 비용 등을 축소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며, 사회적으로 불합리한 집합적 강제력인 외모 지상주의, 사회적 과시, 음주 문화 등의 사회 압력 역시 축소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참고 문헌
에밀 뒤르켐, 《에밀 뒤르켐의 자살론》, 황보종우 옮김, 청아출판사, 2008.
한국사회이론학회 엮음, 《뒤르케임을 다시 생각한다 – 에밀 뒤르케임 탄생 150주년 기념》, 동아시아, 20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