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강은 개타쿠가 열어 보인 알루미늄 트렁크 안의 드론을 살펴보았다. 익숙하면서도 낯선 물건이었다. 해병대에서는 작전용으로 무소음 로터가 달린 머스탱-X를 운용 중이었는데 이것은 그 선조 격인 모델이었다. 이미 개타쿠가 로터 블레이드와 프레임을 탄소 나노 튜브로 교체한 상태였다.
“메인 로터 2개, 전후 보조 로터 4개, 그리고 가변 로터 2개, 메인 로터 2개는 압축 초전도 모터를 사용해 소음이 거의 없습니다.”
“하지만 나머지 모터들은 BLDC 모터들 일테니 여기서 나는 소음들은 어쩌지 못하겠군요”
미강이 손으로 보조 로터와 가변 로터를 가리키자 개타쿠는 금세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다.
“네, 그 때문에 이 녀석의 속도만 믿는 수밖에 없습니다. 최대한 빠르게 치고 와야죠. 길어야 10분도 안 걸릴 겁니다.”
“10분 안에 어림잡아 10킬로그램은 되어 보이는 저 변압기를 포함한 짐을 이 드론에 실어서… 저기 냉각탑 위에 안전하게 착륙시킨 다음 철수한다? 저기까지 직선거리 재 봤어요?”
“1.5킬로미터입니다. 비행시간과 하중 모두 계산해 봤어요. 화물을 냉각탑 위에 내려놓을 때의 체공 시간이 좀 필요하지만 그것까지 고려해도 10분 안에 끝낼 수 있습니다.”
방 안의 사람들은 모두 개타쿠의 말에 이견이 없는 듯했지만 오직 미강만은 떨떠름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지민은 드론과 변압기, 포장된 칼로리 바를 둘러보다가 노땅에게 말했다.
“여러분들은 혜영 씨가 계속 저기서 농성을 이어 가기를 원하는 것인가요?”
노땅은 말없이 지민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질문의 의도가 불쾌하다는 표정이었다. 다른 이들도 질문 안에 포함된 의미 때문에 표정이 굳어 버렸다.
“기혜영 씨가 입사한 지는 몇 년이나 되었나요? 여기서 혜영 씨와 같이 근무했던 분은 몇 분이나 되죠?”
“혜영이와 함께 처음 저 냉각탑을 점거했던 노조원들은 모두 떠났어요.”
노땅의 말에 지민은 맞받아쳤다.
“그럼 가장 나이 어린 여자애 혼자서 200일째 저곳을 홀로 지키도록 놔두는 이유가….”
“그 친구들 모두 세상을 떠났다는 소리요.”
지민은 입을 닫아 버렸다.
“그런 건 기사로 쓸 만한 이야기가 못 되나 보군.”
노땅은 자리에서 일어나 테이블 쪽으로 걸어가 드론을 살펴보았다.
“회사의 복직 약속을 믿고 내려왔던 노조원들은 모두 내려가자마자 복직 대신 고소장을 받았어요. 평생 일해도 못 갚을 막대한 금액들로. 뻔한 거 아니오? 오히려 속아 넘어가지 않은 혜영이가 영리한 거지. 저 아이는 탑에서 내려와도 사실상 죽음을 맞이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어요. 스스로 목숨을 끊은 다른 동지들처럼 될까 봐 못 내려오고 있지.”
그는 투박하고 거친 손끝으로 포장된 칼로리 바를 만지작거렸다.
“서른 명이 목을 매달고, 강물에 뛰어들고, 아파트 옥상에서 화단으로 추락하는 동안 제대로 된 기사나 부고 한 줄 써 주는 곳이 없었어요. 혜영이랑 같은 라인에 있던 조장이 일가족과 함께 자살했을 때 그날 저녁 뉴스에 뭐가 나왔는지 봤어요? ‘소주를 따기 전에 흔들면 시원하게 마실 수 있다.’ 이런 게 뉴스 시간에 나옵디다. ‘냉장고에서 막 꺼낸 소주를 이렇게 막 흔들면 살얼음이 끼어서 시원하게 마실 수 있다!’ 그런 게 저녁 뉴스에 나오더라고. 그때는 저곳에 전원이 끊기지 않았던 터라 혜영이도 자기 폰으로 뉴스를 볼 수 있었어요. 어떻게 이럴 수 있느냐며 목 놓아 울었어. 같이 일하던 직원은 식구들과 함께 차에 탄 채 강물로 뛰어들었는데 뉴스에서는 소주병을 흔들면 시원하게 마실 수 있다는 소리만 하고 있냐고.”
뒤에서 잠자코 듣고 있던 와타시가 태블릿을 들어 동영상 하나를 열어 보였다.
“지난달까지는 혜영이도 곧 내려오리라는 기대를 하고 있었어요. 은행과 채권단이 회사의 매각 조건에 해고자 복직도 포함하려 한다는 보도에 희망을 품고 있었거든요. 없던 기운도 솟아났는지 이 난리였죠.”
동영상 속의 혜영은 탑 위에서 춤을 추고 있었다. 들떠서 노래도 부르고 있었는데 음정 박자는 고사하고 가사도 알아들을 수 없을 정도로 엉망이었다.
“아이돌 되기는 글렀다고 생각했죠.”
덴샤의 말에 와타시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노동자 아이돌이라는 전무후무한 타이틀을 받았잖아요. 이때 방송 조회 수가 10만을 넘었거든요. 지금 이 지원 본부를 만들게 된 것도 이때가 계기가 되었고요.”
“난 그전부터 팬이었어. 원조는 나야.”
개타쿠가 손을 흔들며 끼어들었다.
지민은 말없이 창가에 붙어 망원경만 붙들고 있는 싫어요정을 손으로 가리켰다.
“저분은 팬 2호. 드론 레이서예요. 이 드론의 조종을 맡을 거예요. 드론 레이싱 그랑프리에서 챔피언이기도 했고요. 3년 전 일이지만.”
“그때 기록은 아직도 안 깨지고 있기 때문에 아직도 레코드 챔피언이에요.”
와타시의 설명에 말없이 망원경을 지켜보던 싫어요정이 덧붙였다.
“그나저나….”
싫어요정이 말했다.
“협상단이 나오고 있는데요?”
지민은 망원경이 있는 창가로 달려갔다. 미강은 태블릿을 꺼내어 업데이트된 뉴스가 있는지 확인했다. 삼용나노텍의 인수를 추진 중인 인도 뭄바이 얼라이언스 그룹의 협상단 대표가 몇 명의 기자를 앞에 놓고 협상 내용을 설명하는 모습이 보였다. 미강은 라이브 뉴스 채널을 뒤적거리다가 현장의 중계 채널을 찾아냈다. 동시 통역기를 통해 번역된 협상단 대표의 발언은 문장 상태가 엉망이었지만 대략적인 내용은 이해할 수 있었다.
뭄바이 얼라이언스 그룹은 삼용나노텍이 진행 중인 인력 구조조정과 채권단의 협상 내용해 대해 구체적인 실현 결과가 보일 때 인수를 긍정적으로 고려할 것이다.
“구체적인 ‘실현 결과’라….”
와타시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한마디로 혜영이를 저기서 못 끌어내리면 매각 협상은 기대하지 말라는 소리 같네요.”
와타시의 말에 덴샤는 희망 어린 기대를 버리지 않았다.
“반대의 의미로도 해석할 수 있지 않아요? 점거 농성 문제를 해결해야 협상을 계속하겠다는 의미니까, 복직을 받아들이고 인력 구조조정을 노조의 협상안대로 공동위원회가….”
노땅이 덴샤의 말을 잘랐다.
“그럴 거였다면 벌써 했겠지. 지금으로써는 혜영이만이 유일한 목소리야. 저 아이마저 없으면 지난 모든 투쟁이 물거품으로 돌아가. 혜영이 혼자서 회사를 압박하고 있는 거야. 인도 애들이 협상에서 간접적으로라도 언급했다는 사실은 어떤 식으로든 회사 쪽의 움직임을 끌어낼 테고. 채권단 쪽에서는 인도 협상단이 귀국하기 전에 구체적인 답을 듣고 싶어 할 거야. 그러기 위해서는 복직 문제에 대한 결말을 지어야 할 테고.”
“지금보다 더 혜영 씨를 고립시키려 하겠군요. 제 발로 내려오든가….”
지민의 말에 미강이 덧붙였다.
“아님 죽도록 놔두던가.”
해가 저물 무렵에 변압기와 칼로리 바를 실은 드론이 비행을 시작했다. 여섯 대의 모니터를 눈으로 삼아 싫어요정은 머스탱 샐리(개타쿠가 드론에 붙인 이름이었다)를 빠르게 공장 상공으로 접근시켰다. 경찰의 경고 방송이 공장 전체에 울려 퍼졌고 샐리는 냉각탑에 접근하기도 전에 나타난 다섯 대의 드론에 가로막혔다. 포획용 그물을 장착한 드론이 접근하자 샐리는 믿을 수 없는 곡예비행을 하며 그것들을 피해 나갔지만 하부에 매달린 짐 때문에 얼마 못 가 균형을 잃고 불안한 궤적을 그리다가 냉각탑으로부터 100미터 떨어진 공장 지붕 위에 추락했다.
개타쿠는 “아직 할부도 안 끝났는데…”라며 망연자실한 얼굴이 되었고, 싫어요정은 테이블을 발로 걷어차다가 발가락이 부러졌다.
지난 줄거리
멸망을 앞둔 태양계의 지구 문명을 다른 행성계로 복원하는 오메가 플랜이 진행 중인 가까운 미래. 오메가 플랜의 데이터 분석학자 지민은 복원을 위해 백업 중인 역사 데이터에서 주요 전환점의 사건들에 개입해 역사를 바꾸는 실험 중이다.
인물 소개
지민: 인공 지능체 에이도스에 저장된 역사의 분기점에 개입하는 시간 여행자.
에이도스: 새로운 행성에 복원할 인류의 문명과 역사를 백업하는 인공 지능체.
하미강: 오메가 섹터의 격리 구역 보안 책임자.
기혜영: 삼용나노텍 노동자, 정리 해고자에 대한 복직 투쟁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