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삼샘’. 밀양 송전탑 반대 투쟁에서 알려지기 전부터 이계삼을 알았던 이들은 계삼샘이라고 불렀다. 이름에 ‘계’ 자가 들어가서 그런지 입에 착착 달라붙는다. 중요한 건 ‘계’ 자가 아니다. 그 뒤에 붙는 ‘샘’이다. 엉클샘도 옹달샘도 아닌 ‘선생님’의 약자. 그 ‘샘’이다. 그는 경기도 김포에서 교사를 시작해 태어난 밀양으로 학교를 옮긴 후 사직서를 내기까지 11년 동안 국어 ‘샘’이었다.
글 쓰는 데 온 힘을 다하는 국어 교사. 그것도 전교조 교사. 《삶을 위한 국어 교육》(교육공동체 벗, 2013)이란 책도 낼 만큼 교육에 애착도 많았다. 계삼샘은 이 책 “‘세상의 모습’을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라는 꼭지에서 이렇게 썼다. “이들(학생들)은 예비 노동자이다. 이들에게 ‘남들은 몰라도 열심히 공부하면 너만큼은 성공할 수 있다’고 가르치는 것은 허위다. 비정규직 문제는 1970년대 이후 자본의 세계적인 이윤율 저하 경향과 연관되는 구조적인 문제다. 그리고 지금과 같은 추세로 비정규직이 확산된다면, 사실상 인간으로서의 품위 있는 생존 그 자체가 불가능해진다. 정규직 교사들이 노동 문제, 특히 비정규직 문제에 무심하고 둔감한 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단견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2013년 한전이 밀양 송전탑 반대 농성장에 행정 대집행을 한 이후 수많은 기자에게 뿌려진 보도 자료의 담당자는 ‘밀양765KV송전탑반대대책위 이계삼 사무국장’이었다. 계삼샘은 어느새 탈핵 활동가가 되어 있었다.
이제 계삼샘은 활동가를 넘어 정치 전선에 서 있다. 지난 20대 총선에서 녹색당 비례 대표 2번으로 녹색 정치의 오리엔테이션을 거쳤다. 0.76%라는 지지율을 확인한 후에도 녹색당에 남아 있을지, 혹은 정치를 계속할지 궁금했다. 녹색에 빠진 사무국장이 계삼샘일 적 책에서 말한 노동 문제와 어떤 접점을 찾으려 하는지도, 신고리 5, 6호기 핵발전소 건설 승인 후 밀양 주민들 근황도 궁금했다. 특히 그의 글쓰기는 더.
많이 바쁘신 것 같습니다. 총선 이후 어떻게 지내는지요
밀양에서 늘 하던 일 그대로 하면서 지내요.
신고리 원전 5, 6호기 승인 때문에 어떻게 싸워야 하나 고민하고 있고요. 밀양은 시즌3이라고 해서 탈핵-탈송전탑 교육원을 준비하고 있어요. 밀양에 연대나 농활을 많이 오시는데 밀양 주민의 경험과 탈핵-탈송전탑 이야기를 체계적으로 하고 숙박도 가능하게 하려고 시설도 고치고 교육 내용도 정리 중입니다. 연대자들과 체계적으로 만나는 체제를 구축하려고 해요. 또 얼마 전 6.11 행정 대집행 2주년 행사 준비로 한 달 정도 바쁘게 다녔습니다. 주로 마을의 여러 가지 일을 다니면서
하고 있죠.
녹색당 선거 운동에 대해 많은 사람이 호평하고 화제도 됐는데요, 그에 비해 0.76%라는 당 지지율은 기대보다 너무 낮은 느낌입니다
선거 끝나고 그 부분이 많이 괴로웠죠. 개인적으로 3% 지지를 목표로 했지만, 1%는 최소한 넘어야 한다고 봤는데 너무 못 미쳐서…. 생각해 보면 18만 표를 받은 건데, 저희가 4년 동안 열심히 활동하고 일궈 낸 활동의 총체라 생각하고 여기서 시작해야죠.
개인적으로는 선거 운동은 어떤 경험이었나요
선거 시작할 때는 여러 의무감에서 시작했어요. 밀양 투쟁이 정치 세력화해야 한다는 것과 여러 어르신 고통을 정치 과정에서 의제화해야 한다는 강박 관념, 녹색당 운동의 당위에서 했는데 정치적 오리엔테이션을 거친 느낌이랄까요. 두려움이었고 벽이라 생각한 정치의 문턱을 넘어 보니 활동가는 정치인이 되어야 하고 정치인은 활동가가 되어야 한다는 상호 관계를 느꼈고 가능하다고 봅니다.
얼마 전 신고리 5, 6호기 건설 승인이 났습니다. 그 뉴스를 보고 탈핵-탈송전탑 운동을 오랜 시간 해 온 밀양 어르신들 생각이 났습니다. 밀양 분들 반응은 어떤가요
굉장히 속상해하셨습니다. 원자력안전위원회(원안위) 위원 구성상 위원회 안에서 5, 6호기 건설 승인을 저지하는 것은 어려울 거라 봤어요. 위원회가 기술적 문제만 다루고 자기들(승인 찬성 위원들)이 압도적인 정보로, 반대 의견을 무찌르는 과정이었거든요. 그런데도 말도 안 되는 요소가 많아 팽팽하게 논쟁이 이어질 거라 생각했는데 논쟁 전개도 안 된 상태에서 기습 표결이 되자 너무 속상해 하셨어요. 신고리가 쟁점도 못 되고 묻힌 느낌이 들어 속상합니다.
어떤 부분에서 논쟁이 이어질 거라 보셨나요
다수 호기의 안정성 평가 문제인데요. (원전이) 2기 이상이면 다수 호기라고 해요. 기존에는 단일 부지 안에 아무리 여러 기(다수 호기)가 있다 하더라도 한 개 한 개 단일 호기 안정성만 평가하는 패러다임이었어요. 후쿠시마 원전 사태 이후 IAEA(국제원자력기구)가 다수 호기는 단일 호기 안정성뿐 아니라 연관된 다른 발전소와 위험 파급이나 단속 등 복합적 연관 관계를 평가하라고 권고했어요. 캐나다 같은 경우 달링턴 신규 다수 호기 평가 미비로 승인 자체를 보류한 사례가 있거든요. 실제 심의 과정 내내 큰 쟁점이었던 부분이에요.
저도 위원회 회의를 참관했는데 PSA(확률론적 안전성 평가 툴)가 확립되려면 5년 정도 걸린다고 해요. 캐나다 사례를 보면 그때까지 승인을 보류하는 게 맞는데, 원안위 논리는 그때 PSA가 만들어진다고 해도 그 자체(확률치)에 논란이 생길 수밖에 없다는 거예요. 현재까지 가능한 방법론으로 평가했을 때는 (사고) 확률 자체가 매우 미미하고 획기적으로 (결과가) 달라질 것 같지 않으니 일단 승인을 하고 (건설) 과정에서 평가 툴을 개발하면 검증하자는 논리였죠. 이미 건설에 들어가면 되돌릴 수 없는데도 말이죠. 몇조 원이나 되는 매몰 비용을 어떻게 처리할지 계획도 없어요. 그런 논리로 종결된 것이 뼈아프죠.
제일 중요한 것은 한 곳에 원전 10기를 만드는 곳은 세계적으로 없어요. 지금도 고리가 밀집도 1위거든요. 5, 6호기 들어서면 압도적인 세계 1위예요. 380만 명이 살고 있는데… 아이고, 휴…. 전기가 남아돌고 있고, 울산 시민 70% 이상이 반대하고, 당선된 야당 부산, 울산, 경남 의원들이 일제히 반대 입장도 밝혔지만 그냥 강행한 것은 폭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사실 그날 표결이 안 될 줄 알았어요. 쟁점도 많이 남았고, 병력이 배치되는 등의 기미도 안 보였거든요. 그런데 기습 표결을 하는 바람에 제대로 저지할 기회도 못 얻고 항의하다 끌려 나왔어요. 저와 대책위 신부님, 주민 어르신 3명이 참관하고 있었거든요.
밀양 어르신들은 어떻게 지내시나요? 송전탑이 들어선 일상은 어떤지
송전탑 건설 후 현장에서 부딪히는 일은 없어졌기 때문에 겉으로 보기엔 일상으로 돌아간 거죠. 계속 연대 방문을 받고 연대 다니고 계셔요. 일상에서 여전히 힘든 건, 비가 오거나 바람이 불 때 송전탑 500미터 이내 주민들을 괴롭히는 저주파 소음이에요. 철탑을 바라봐야 하는 심리 스트레스도 여전히 크고요. 제일 중요한 건 마을 공동체 분열이에요. (송전탑) 찬반 앙금이 있고, 반대 주민의 비중이 85:15로 소수예요. 심적으로 힘들어하시죠. 게다가 찬성 주민들이 (마을 기금으로) 받은 돈은 명목상 마을 발전 기금에 써야 하는데 실제 땅을 사서 되팔고 돈을 나눠서 가지고 누구는 받았네 못 받았네 하고 있어요. 그 돈으로 관광도 가고요.
산업부와 경제지 등은 5, 6호기를 건설하면 조선업 200만 명을 재고용하는 효과가 있다며 연일 홍보전을 하는데요, 자본과 권력이 적록 연대의 약한 고리를 아는 것 같아요
산업부의 주장은 검증해야 하는데요, 실제 울산 중공업 계통 노동자 얘기를 건너 들으면 거짓일 가능성이 100%예요. 플랜트 자체가 (원전 건설과) 메커니즘이 달라 주로 고용될 노동자는 단순 노무직에 불과해 고용 창출 효과는 없을 거라는 거고요. 중공업 플랜트 중 해상 플랜트가 가장 많은데 중공업을 해상 풍력 플랜트로 전환할 수 있는 가능성을 타진해 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는 소음 등 육상 풍력 조건이 안 좋지만 해상 풍력은 가능한 영역이라고 봐요.
적록 연대는 어떤 방식으로 가능할까요
기본 탈핵 관점을 바탕으로 고용 문제뿐 아니라 장기적인 사회 안전과 가치적인 면에서도 노동운동과 녹색 운동이 핵발전 신규 건설에 맞서 연대하는 게 옳다고 보는 거죠. 실제 당장 해고 노동자들을 받기 위해 핵발전소를 더 지어야 한다는 논리와 어떻게 맞서야 하는가 문제인데 저희도 기술적 대안을 찾아야 하고. 또 한 가지는 핵발전이 가진 반노동자성과 고용 창출의 단기성, 해상 풍력보다 노동 창출 효과가 미미한 지점을 지적해 나가야겠죠.
“해고 노동자들의 투쟁을 지지하지만 그렇다고 고용을 회복해서 공장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주체가 돼서 우리 사회의 전환을 이끌 수 있도록 해야 한다”(《오늘의 교육》 3·4월호 인터뷰)고 하셨습니다. 신자유주의 지배 구조는 변하지 않는데 해고 노동자가 공장으로 가지 않고 농사짓는다고 우리 사회 전환을 이끌 수 있을까요
녹색 세상으로 가기 위해 산업 노동 말고도 여러 일자리가 있습니다. 해고 노동자들이 다시 공장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시골에 가서 농사짓고 일할 기반을 마련해 달라는 거죠. 저희는 적정 기술이라 얘기하는데요, 자동차 같은 걸 만드는 게 아니라 공동체에 기여할 여러 기술을 배우고 그런 방식의 삶으로 전환할 수 있도록 우리 사회 중간 인프라가 필요하다는 거예요. 그러면 현금 소득이 줄기 때문에 그 완충을 위해 기본 소득이 필요하고요. 적정 기술 등으로 전환할 교육이나 사회적 인프라를 마련하는 것이 녹색 일자리의 출발점이라고 생각합니다. 농업 기술이나 적정 기술, 지역 사회에서 가능한 일자리를 특별한 동기나 결의가 아니라 쉽고 편하게 선택할 수 있도록 기본 소득 같은 최적화된 법과 질서, 제도를 정치적으로 정비해야 합니다.
탈핵은 전기 만능의 시대에 삶의 방향을 바꿔야 하는 문제인 것 같아요
삶의 방향을 바꾸는 것도 정치적으로 핵발전 폐기 투쟁과 같이 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우리 삶이 엄청나게 전기화됐는데 거기에 대한 자각과 전환을 위한 개인적 노력을 병행해야 할 것 같습니다. 보통 양자가 충돌하는 경우가 있어요. 구조적 문제, 개인적 노력 둘 다 중요하지만 모든 사람이 선하고, 올바른 세상이 아니라 ‘쉽게 올바를 수 있는 사회’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쉽게 선해지려면 중요한 게 정치적 노력이라고 생각해요. 가정용 전기가 전체 전기 소비량의 18%이고 사업용, 산업용이 80% 정도거든요. 그런 비율을 보더라도 과소비의 가장 큰 책임은 자본에 있는 거잖아요. 자본이 전기를 쉽게 펑펑 쓸 수 있도록 최적화된 전력 시스템이에요. 총체적 노력이 같이 가야 하지만 상대적으로 자본 쪽 시스템 문제를 변혁하기 위한 정치적 노력이 지금은 중요합니다.
말씀하신 대로라면 탈핵은 정치적인 힘이 필요한데요, 현재 정치 구조에서 탈핵은 어떤 경로로 가능할까요
야당이 탈핵을 트렌드처럼 내세우지만, 원안위 결정 과정에서도 소수 의원만 관여하고 거의 문제의식이 없었다고 봅니다. 탈핵은 실제 자본과의 투쟁이에요. 한수원과 핵발전으로 이익을 얻는 대자본, 핵발전 유지 운영 대자본들과 맞서야 하거든요. 거대 야당은 그럴 의지가 없어 보입니다. 정치적으로 가능한 경로가 있다면 기본적으로 녹색당을 필두로 탈핵을 위해 잘 싸울 수 있고 잘 알고 있는 이런 정치 세력이 시민권을 얻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정치를 생각하시나요
(의회) 안에만 있으면서 밖에 있는 에너지를 낸다는 것은 말은 그럴듯하지만 현실 불가능합니다. 두 공간을 같이 넘나들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최장집 교수 같은 분은 제도 정치 안에서 골몰함으로써 원내에서 다 해결하자는 식으로 얘기하는데, 룰이 압도적으로 저들에게 유리하거든요. 안에서 싸우려면 바깥에서 밀어주는 힘이 있어야 합니다. 그 힘은 절실한 현장과 절실한 에너지를 계속 만나고 밀어줘야 나옵니다. 요즘 진보 정당 운동이 투쟁 현장에 직접 연대하고 싸우는 흐름이 약해지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늘 녹색당이나 노동당 같은 원외 정당만 많이 있고.
요즘 녹색의 가치는 핵 문제보다는 미세 먼지나 옥시 문제로부터 더 주목받는 것 같아요. 최근 이런 환경 사안 이후 사람들의 변화된 태도 같은 게 있을까요
안타깝죠. 필요한 것은 정치적 해결인데, 사람들이 정치에 절망한 나머지 개인화하려는 흐름이 커요. 마스크를 사고, 미세 먼지로부터 안전한 곳을 찾으려는 흐름이 느껴지는데, 기본적으로 자동차 산업과 석탄 화력 발전 등 에너지 체제의 문제잖아요. 석탄 화력 발전소 등 온실 가스부터 당장 줄여 나가는 등 총체적인 해결책을 찾아야 합니다. 그런 논의는 여전히 큰 관심을 얻지 못하고 있어요. 언론 책임도 있는 것 같아요. 이 문제는 집요하게 다뤄야 하는데 단발성으로만 다루죠. 정치적인 문제인데 시민의 무관심과 개인적으로 해결하려는 태도 때문에 계속 이 문제가 정치화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국어 교사여서 그런지 여러 매체에 쓴 글이나 《워커스》 창간 직전 추천사를 보면 글 하나 하나에 온 힘을 다해 쓰신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루쉰의 말처럼 목에 걸린 가시를 뱉어내 듯 글을 쓰려고 하는데 많이 힘들어요. 말보다 또 다른 중요성이 있는 부분이라 글을 성실하게 쓰려고 합니다. 이름을 걸고 글을 쓰다 보니 그럴지도 모르지만, 많이 써서 많이 줄이고 버립니다. 퇴고도 오래 하는 편이고요.
언어에 대한 믿음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답답하고 안타까울 때 오히려 주의 집중해서 생각을 계속 글로 써야 흩어져 가는 번민이 자리를 잡고 언어에 의해 규정 당하듯이, 자리 잡은 언어에 의해 자기 생각이 명쾌해지고 삶이 명쾌해진달까요. 글쓰기는 막막한 사람에게 삶을 분명하게 하고, 자기 자신을 예민하게 알게 하고, 자기 고민과 분명한 성찰적 거리를 확보하게 하는 매체라 생각해요. 글쓰기에 관심을 두고 주의 집중해서 몰두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