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동은 단 2분간 진행됐지만 모든 것을 무너뜨리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규모 6.5의 강진이 한차례 지나간 다음 그보다 약한 여진이 올 것이란 예상과 달리 여섯 시간 뒤 다시 찾아온 규모 8.5의 본진은 전진2)으로 인해 기울어진 건물들을 확실하게 주저앉혔다. 그리고 희망도 주저앉혔다. 잔해 속에서 신음하던 이들은 생존의 증거를 내보이려 했지만 불과 두 시간 뒤, 해안가로부터 밀려들어 온 파도가 그들을 다시 덮쳤다. 파고는 3m에서 40m까지 이르렀지만 비극은 불평등하게 도달했다.
지민과 미강은 해운대 상공에서 내려다보는 해안가 모습에 말을 잊었다. 사전에서 대체 어떤 단어를 가져다 붙여야 이 모습을 묘사할 수 있을지 엄두가 나지 않았다. 두 번의 강진과 해일에 밀려버린 해안선은 신이 실수로 잉크를 쏟아 놓은 그림처럼 보였다. 지민을 태운 카모프 헬기는 해운대 주변의 고층 건물 옥상을 찾아 선회하였지만 쉽사리 착륙지점을 찾기 힘들었다. 구조대를 태우고 평택항에서 출발한 독도함은 경남 일대의 모든 항만 시설이 붕괴하자 헬기로 재난지역에 강하하는 방법을 택했다. 긴급 구호물자는 침수가 비교적 적은 지역에 그대로 낙하시키고, 구조 인원은 헬기가 가깝게 접근할 만한 고층 빌딩 위로 강하한다는 계획이었다.
서울에서 급하게 편성된 특수구조대와 해군 특수전 전단, 해병수색대가 제멋대로 뒤섞여 있었기에 지휘 체계는 물론이거니와 작전 내용을 제대로 아는 이조차도 없었다. 소방본부의 특수 구조대 제복과 특수전용 위장복을 입은 군인들 사이에서 조 소령이 계급장조차 없는 군복을 입은 지민과 미강을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그는 단어를 아껴가며 자신들은 시설을 확인하고 구조선들을 접안시킬 방법을 찾기 위해 부산항으로 간다는 말만 하고는 지민이 우기는 대로 둘을 해운대 인근에 내려놓기 위해 기수를 돌렸다.
“해안가는 지반 침하가 심하고 여진 때문에 착륙이 어렵습니다! 센텀시티는 어떻습니까? 그쪽이라면 아직 안전한 건물들이 몇 남아 있을…”
“도보로 이동하기에는 멀어요! 도로 상태로 봐서는 그대로 고립될 수 있어요!”
인터콤 마이크에 대고 조 소령과 미강은 소리를 질러가며 대화를 하다 결국 착륙 지점을 파라다이스 호텔 근처로 결정했다. 반쯤 무너져 버린 호텔 옆으로 접근하기를 꺼리는 헬기 조종사를 윽박질러가며 조 소령은 헬기의 고도를 15m로 유지하도록 했다. 그로서는 헬기와 대원들의 목숨을 담보로 지민과 미강의 안전을 최대한 보장하기 위해 한 배려였지만, 난생처음 헬기에서 레펠강하3)를 하라는 말에 지민은 ‘뭐라고요?’라고 소리 질렀고 미강은 들은 체 만 체 할 뿐이었다. 지민은 미강이 시키는 대로 얼결에 강하용 로프를 붙잡고 항의하려 했지만 그가 말하는 입 모양을 보고는 투신자살이라는 단어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거봐요. 죽지는 않을 거라고 그랬죠?”
바닥에 나뒹군 지민을 일으키며 미강이 말했다.
“발목이 부러진 것 같아요.”
지민은 불붙은 듯이 화끈거리는 장갑을 벗어 던지며 다리를 주물렀다.
“그럴 리 없어요. 아프긴 하겠지만 죽거나 실제 몸이 다치는 건 아니잖아요? 적어도 그것만은 에이도스가 보장하는 거니까.”
미강은 부산항 방향으로 멀어지는 카모프 헬기를 올려다보고는 시선을 해안가로 돌렸다. 하늘에서 보던 것과 달라진 것은 숨을 쉬기 힘든 악취였다. 개장을 앞두고 있던 여름의 해수욕장은 검은 퇴적층 아래로 휩쓸려 들어갔고 곳곳에는 부패하기 시작한 사체의 흔적이 보였다. 해안가 가로수는 뿌리째 뽑혀 있었고 휘어진 가로등에는 남성으로 보이는 시신이 반쯤 걸쳐있었는데 하반신이 떨어져 나갔다. 미강은 지민이 구토를 할까 봐 걱정했지만 막상 표정을 보니 구토가 문제가 아니었다. 뙤약볕 아래에서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해안을 돌아보던 지민은 몸의 모든 감각을 닫아버리고 싶다는 충동을 느끼며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박사님? 정 박사님? 우리가 가야 할 곳에 집중해요. 에이도스가 말한 특이점이 집중되었다는 곳이 이 부근이죠? 그곳으로 이동하는 것만 생각해요.”
미강은 그대로 다시 주저앉으려는 지민의 몸을 붙잡아 일으켜 세웠다.
“지… 지옥이… 지옥이 있다면… 이런 모습이겠죠?”
턱을 덜덜 떨면서 힘겹게 내뱉는 지민의 목소리에 미강은 마음을 바꿨다.
“풍경이 좋은 편은 아니지만 잠깐 앉았다 가죠.”
무너진 호텔들과 시체들이 작은 언덕을 이루고 있는 시내 방향에서 등을 돌리고 언제 그랬냐는 듯이 (불과 이틀 전이었다) 파도를 찰랑거리는 바다 쪽을 바라보는 게 잠시라도 지민을 안정시키는 데 도움이 될 것 같다고 여긴 미강은 그대로 해변에 앉아 떠밀려온 물고기들 사체가 풍기는 악취를 맡는 쪽을 택했다. 지민은 무릎 사이에 고개를 묻고 중얼거렸다.
“이 지진은 역사에 없던 일이었어요.”
“네, 그것 때문에 우리가 왔죠.”
“도난카이 지진4)은 3년 뒤에 일어나요. 그 여파로 부산항이 마비되고, 해안으로 쓰나미가 몰려오긴 했지만 이 정도는 아니었어요.”
지민은 비틀거리기는 했지만 미강의 도움 없이 몸을 일으킬 수 있었다.
“바로 잡아야 해요.”
지민은 배낭을 멘 다음 무너진 호텔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삼십 분 동안 지민과 미강은 흘러넘치는 악취 때문에 두 번을 구토하고 세 번을 자리에 멈춰서 지도와 현재 위치를 대조해봐야 했다. 전진 단계에서 하부 구조가 붕괴한 건물들이 이윽고 닥친 해일에 밀려 수 미터에서 수십 미터씩 이동한 상태였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건물이 있어야 할 자리에 밀려온 컨테이너와 선박이 산을 이루고 있어 방향을 전혀 가늠하지 못했다. 바닷물이 빠지고 난 자리에는 온갖 쓰레기와 시신들, 동물의 사체가 도랑을 이루었다. 처음에는 눈에 띄는 시신을 볼 때마다 짧게나마 고개를 숙이고 명복을 빌어주며 이동하던 두 사람은 십여 분이 지나고 난 다음에는 도저히 이동속도를 못 낼 것으로 판단하고 그대로 지나치게 되었다. 한 시간이 지나자 두 사람은 죽음을 풍경의 일부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생존자들은 아직 고지대 쪽에 그대로 머물러 있겠죠?”
지민의 질문 아닌 질문에 미강은 잘은 모르겠지만 그렇지 않겠냐는 의미로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은 시장이 있었던 자리로 추정되는 길을 지나 지하철역이 있는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역으로 가까이 다가가는 동안에도 붕괴한 건물의 잔해 사이에는 어김없이 부패의 냄새가 피어올랐다. 이 건물들이 과연 제대로 하늘을 향해 서 있었던 적이 있었나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지민은 인스턴스로 들어가기 전, 에이도스가 준 가상현실 속에서 사용할 특이점 측정기를 이리저리 휘두르며 신호가 오는 방향을 찾아 헤맸다. 의미를 찾을 수 없는 잡음들만 스피커를 울리다가 어느 순간 딸꾹질 같은 잡음이 튀어 오르자 지민은 탐지기의 끝에 집중하며 그것을 천천히 움직였다. 그 탐지기가 가리키는 방향에는 한 남자가 서 있었다.
-계속
1)サザンオールスターズ/ Southern All Stars. 2000.
2)前震. 큰 지진이 오기 전의 작은 지진.
3)외줄 로프를 타고 지상에 착륙하는 강하 형태
4)東南海地震. 일본 도쿄 인근을 진원지로 150년 주기로 일어나는 초대형 지진인 도카이 지진東海地震과 함께 발생 가능성이 높다고 예측되는 지진. 일본의 나라현, 미에현, 하마마쓰현에 걸친 태평양 연안 지역에서 일어나리라 예상된다.
지난 줄거리
멸망을 앞둔 태양계의 지구 문명을 다른 행성계로 복원하는 오메가 플랜이 진행 중인 가까운 미래. 오메가 플랜의 데이터 분석학자 지민은 복원을 위해 백업하는 역사 데이터에서 주요 전환점의 사건들에 개입하여 역사를 바꾸는 실험 중이다.
인물소개
지민 인공지능체 에이도스에 저장된 역사의 분기점에 개입하는 시간 여행자.
에이도스 새로운 행성에 복원할 인류의 문명과 역사를 백업하는 인공지능체
하미강 오메가섹터의 격리구역 보안책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