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줄거리]
멸망을 앞둔 태양계의 지구 문명을 다른 행성계로 복원하는 오메가 플랜이 진행 중인 가까운 미래. 오메가 플랜의 데이터 분석학자 지민은 복원을 위해 백업 중인 역사 데이터에서 주요 전환점의 사건에 개입해 역사를 바꾸는 실험을 한다.
[인물 소개]
에이도스 새로운 행성에 복원할 인류의 문명과 역사를 백업하는 인공 지능체
지민 인공 지능체 에이도스에 저장된 역사의 분기점에 개입하는 시간 여행자
하미강 오메가 섹터의 격리 구역 보안 담당자로 부임한 해병 장교
새로 복원될 지구에서 북한이 사라진다는 얘기에 미강은 반은 이해하면서도 나머지 반은 이해할 수 없었다. 지민은 에이도스를 대신해 설명했다.
“오메가 플랜에 가입된 국가는 전 국민의 유전자 샘플과 빅 프로즌에 저장할 데이터를 모두 오메가 섹터로 보내야 해요. 북한은 당연히 거부했죠. ‘우리 인민의 머리카락 한 올도 협잡꾼들에게 넘겨 줄 수 없다’면서요. 물론 그동안 외부에 공개되거나 여행객이 모은 자료가 있어 평양 시내 정도는 복원하겠지만 다른 나라에 비하면 실제와 거리가 멀어요.”
에이도스가 말했다.
“하지만 평양시 중구역2) 부근은 하미강 대위님 덕분에 꽤 상세히 업데이트돼 있어요.”
지민은 이채로운 눈빛으로 미강을 돌아보았다.
“뭐, 탱고 클래스 비밀 취급자시니까…”
미강은 잠시 망설이다 말을 이었다.
“지금은 해체되었지만… 네메시스라는 특수 작전팀에 있었어요. 북한 내 쿠데타에 대비해 유사시 평양 시내로 고공 침투해서 김정은을 납치하거나 사살하는 합동 작전팀이었죠. 약 6년 동안 모의 훈련만 했어요. 간간이 다른 침투 작전에 나갔지만 실제로 평양에 가 본 적은 없어요. 호위 사령부의 림화수 대좌가 망명하면서 들고 온 관저 구조도를 바탕으로 훈련 중이었는데, 당시까진 림화수가 사망한 것으로 위장했거든요. CIA랑 합작해 빼돌린 놈이었어요. 뒤에 망명 사실이 드러났어요. 발각이라기보다는 총선에서 여론 몰이용으로 그 카드를 쓴 거죠. 그래서 김정은은 관저를 옮겼고… 그간 훈련은 무용지물이 됐어요.”
미강은 네메시스 해체 뒤 생존한 유일한 현역 군인이었다. 그의 기억은 평양 시내 복원에 많은 도움이 됐고, 대다수는 김정은 집무실 복원에 바탕이 됐다. 지민은 조심스레 에이도스에 접속해 평양에 가 보고 싶은지 물었다. 미강은 망설임 없이 승낙했다.
환한 대낮인데도 김일성 광장 남쪽 거리를 따라 내려가는 두 사람의 눈엔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로동신문사 건물은 불빛이 환했지만 안에 사람은 없었다. 지민은 생경한 풍경에 감탄했다.
“저쪽이 강하 예정 지역이었어요.”
미강은 서쪽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모의 훈련은 주로 이런 가상 현실 장비를 사용하기도 하고, 무인도에 지어 놓은 훈련장도 사용했어요. 여긴 진짜 같네요.”
도로를 따라 줄지어 늘어선 가로수 사이로 봄바람이 불었다. 하늘은 더없이 쾌청하고 햇볕은 부드러웠다. 모든 게 완벽했다. 미강은 소풍 나온 듯 걸음을 늦췄다.
“네메시스 작전 말인데요.”
정말로 소풍이라도 나온 것처럼 콧노래를 흥얼거리던 지민이 입을 열었다.
“작전이 성공해 김정은을 사살한 뒤 탈출 계획은 있었나요?”
“처음엔 없었어요. 파이널 초커라는 장비가 지급됐는데 넥이어 마이크(성대 진동형 마이크)랑 결합돼 목을 감싸는 장비예요. 안에는 시안화칼륨3)이 30g쯤 들어 있어요. 특정 문장을 말하면 바늘이 튀어나와 목을 찌르고 독을 주입하죠.”
“특정 문장이요?”
“네, 작전 중에 사용 안 할 문장을 골랐죠. 처음엔 ‘위대한 김일성 수령 만세!’로 세팅했어요. 하지만 대원들이 유언으로 그런 말은 외칠 수 없다고 반발했죠. 김정은을 죽이러 간 사람들이 걔 할아버지 이름을 외치면서 죽으라는 건 너무 이상하잖아요? 그 후 각자 자유롭게 설정했어요. 부인 이름이나, 애인, 가족 이름 같은 걸로.”
도로 끝에 다다르자 흡사 공원처럼 작은 숲이 우거진 곳이 나타났다. 미강은 왼쪽을 가리켰다.
“이쪽은 김정일 저택.”
그리고 오른쪽을 가리켰다.
“그리고 이쪽은 김정은.”
지민은 기묘한 느낌에 휩싸였다. 중구역 내 관저가 있는 지역은 통제 구역이라 민간인 출입을 금지해 마치 영화 세트장 같았다. 그럼에도 거리는 반짝거리면서 생명력을 뽐냈다.
“이상해요. 사람이 사라진 도시가 오히려 더 아름답다니.”
멀리 보이는 웅장한 선전탑과 건물은 바로 어제 지은 듯 새롭지만 사람 흔적은 어디에도 없었다. 미강은 김정은 저택 쪽으로 길을 잡았다.
“평양 외곽에 있는 특각(별장)은 주로 외부인을 초대할 때 이용하던 곳이에요. 네메시스팀은 김정은이 머무는 평양 시내 모든 지점에 대비해 훈련했는데 저는 주로 여기, 중구역 관저를 공격하는 훈련에 집중했어요. 저쪽 김정일의 저택에서 지하로 연결된 통로가 있는데, 보위부 비상 매뉴얼엔 그쪽이 김정은의 탈출 경로였지요.”
“훈련 중 김정은을 사살하는 데 성공한 적이 있어요?”
지민의 질문에 미강은 어깨를 으쓱했다.
“열 번에 다섯 번꼴로 성공했으니까 낮은 편은 아니었죠.”
“그럼 실패할 때마다 그….”
지민은 좀 전에 미강이 말한 장치 이름이 생각 안 나서 목 부위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파이널 초커.”
미강의 말에 지민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걸로… 자살을?”
미강은 고개를 끄덕였다.
“훈련용 장비라도 유언을 말할 때 목에 살짝 따끔거리는 충격은 와요. 느낌이 꽤 불쾌하죠.”
지민은 그녀의 유언이 뭐였는지 물어보지는 않았다.
대부분을 지하 기지에서 보내는 터라 지민은 이 산책이 꽤 즐거웠다. 오메가 섹터 내에도 격리 구역 근무자를 위한 옥상 정원이나 일광욕실, 산책 코스가 있지만 외부와 격리된 느낌은 늘 존재했다. 오히려 가상 현실 모드로 만나는 평양에서 지민은 오랜만에 바깥세상을 즐겼다. 집무실로 들어가는 도로는 짧은 간격으로 차량 통행을 제어하는 바리케이드와 초소가 줄지어 있었다. 도로 양옆에 늘어선 가로수 너머로 방공 포대도 보였다. 지민은 눈앞에 보이는 저택을 가리키며 물었다.
“저곳인가요?”
“아니요, 저건 정찰 위성을 교란하려고 만든 건물이에요. 저택은 저 안에 숨어 있어요. 입구는 나무에 가려져 공중 촬영으로는 안 잡히죠. 미강이 가리킨 곳에는 키 큰 느티나무 네 그루가 있었다. 초소와 바리케이드를 또 한 번 지나 정문에 들어선 지민과 미강의 발걸음은 그대로 굳어졌다. 둘은 정문을 이루는 두 개의 기둥 중 한쪽에 새겨진 낙서를 보고는 돌덩어리처럼 그 자리에 박혔다.
“에이도스, 지금 여기에 우리 말고 다른 사람이 있어?”
“아, 모든 북한 사람은 빅 프로즌에서 제외됐지만 남쪽 인물 정보는 남아 있죠.”
에이도스의 대답에 지민은 더 혼란스러웠다.
하늘은 맑고 더없이 푸르렀다. 대동강을 타고 넘어온 바람은 나뭇잎을 부드럽게 간지럽혔고 봄 향기는 공기 중에 넓게 퍼졌다. 질주하듯 다가오는 봄 향기 아래에 솟은 석조 기둥엔 붉은 페인트로 휘갈겨 쓴 ‘학살자’란 글씨가 유난히 눈을 찔렀다.
(계속)
1) Animals. 1964
2) 평양 시내 김정은의 집무실과 관저가 있는 지역
3) 청산가리
(워커스7호 2016.04.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