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철학의 효시이자 비판 철학의 창시자인 칸트(Immanuel Kant, 1724~1804)의 모든 이론은 이성에 입각한 이론이다. 당시는 중세 철학이 막을 내리고 이성을 최고의 가치로 간주하던 계몽주의 시기였다. 그의 철학은 인간 지성의 능동적이고 자발적 능력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감히 스스로 생각하는(Sapere Aude)’ 계몽주의적 주체의 철학적 완성이다.
그가 노년에 접어들었을 때, 프리드리히 빌헬름 2세의 종교적 불관용, 프랑스 혁명과 유럽 각국의 영토 획득과 왕위 계승 분쟁 등은 정치 문제에 관심을 갖는 계기가 되었다. 특히 1795년 4월 프러시아와 프랑스 사이에 체결된 바젤 조약(Basel Treaty)은 평화를 위한 확실한 보장에서 거리가 먼 휴전 조약이라고 비판하면서 진정한 영구 평화를 달성하기 위한 가상적인 평화 조약안을 제시했다. 전쟁이 없는 평화로운 세계에 대한 질문이 《영구 평화론》(박환덕·박열 옮김, 범우사, 2012)으로 탄생하게 된 것이다.
물론 국제 평화에 대한 칸트의 정치적 사유는 그만의 독자적인 것이 아니다. 생 피에르(Abbe de Saint-Pierre)와 루소(Jean Jacques Rousseau) 등에 의해서 진행된 18세기 유럽의 국제 질서에 대한 논의의 연장선상에 있다. 칸트는 생 피에르와 루소의 영향을 받아 《영구 평화론》을 저술한 것이다.
이 작품은 영원한 평화만이 정치상의 최고선이며, 인류가 이성을 지니고 있는 한 계속 노력해야 할 ‘도덕적 실천’ 과제라고 논한 칸트의 정치 철학을 가장 체계적으로 보여 주는 저술이다. 따라서 그의 ‘영구 평화론’은 단순한 법제도의 문제가 아니라 그의 정치 철학적 토대에 근거하고 있다.
《영구 평화론》은 평화 조약안이기 때문에 일반 저술과 다른 구성을 갖고 있다. 본문은 평화 조약의 체제를 따라서 예비 조항(6항), 확정 조항(3항), 추가 조항(2항), 부록(2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제1장은 ‘국가 간의 영구적인 평화를 위한 예비 조항’을 통해, 국가 간 적대 행위의 휴전이 아닌 종식을 뜻하는 평화가 ‘어떻게’ 이루어져야 하는지 설명한다. 영구 평화의 실현에 장애가 되는 6개의 금지 조항을 제시하고 있다. 전쟁을 야기할 비밀 조항 금지, 다른 국가로의 강제적 통합의 문제, 상비군의 점진적 폐지, 국채 발행 금지, 내정 간섭 금지, 비열한 적대 행위의 금지 등이다.
제2장은 ‘국가 간의 영구 평화를 위해 확정된 조항’ 3개를 바탕으로 영구 평화를 실현하기 위한 적극적인 조건을 논하고 있다. 영구 평화를 위한 제1확정 조항은 각 국가의 시민적 체제는 공화 체제여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그는 세 단계의 논리적 추론 과정을 거친다. 첫째로 한 사회의 구성원이 (인간으로서) 자유로워야 한다는 원리이고, 둘째는 모든 구성원이 유일 공통적인 입법에 (시민으로서) 종속된다고 하는 제 원칙이며, 셋째는 모든 구성원이 (국민으로서) 평등하다는 법칙, 이 세 원칙에 기초하여 설립된 체제 – 이것은 근원적인 계약의 이념에서 비롯된 유일한 체제로서, 한 민족의 모든 합법적인 입법은 이러한 이념에 토대를 두지 않으면 안 되며, 바로 이러한 체제가 공화적 체제인 것이다(37쪽).
여기서 칸트는 루소의 ‘일반 의지(volonté générale)’의 자기 입법으로서 인민의 직접적인 통치를 사실상 거부한다. 대의적 공화정체가 정치 권력과 일반 의지의 일체성이 자의적 지배로 귀결될 수 있는 민주정체보다 우월하다는 주장이다. 전쟁을 할 것인지 아닌지를 결정할 권리는 공화제에서만 국민에게 보장되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모든 전쟁을 영구히 종식시키기 위해서는 ‘제 민족 간의 평화 동맹’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각 국가는 공화적 체제에서 각자의 권리를 보장받고 평화를 유지해야 한다는 주장을 전개하는데, 이는 오늘날의 국제 연합을 만드는 토대가 되었다.
영구 평화를 위한 제2 확정 조항으로 국제법은 자유로운 제 국가의 연방제에 기초를 두어야 한다. 인간의 사악함을 규제하기 위해 정부의 공법이 필요하듯, 국가 간의 전쟁 도발을 억제하기 위해서는 법적 구속력으로서의 국제법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자유로운 국가들의 상위에 특별한 종류의 연맹을 구성하는데, 바로 평화 연맹(foedus pacificum)이다. 세계 공화국이라는 적극적인 이념 대신에 소극적 대안으로서 연맹을 제안한 것이다. “왜냐하면 각각의 국가는 각기 상위자(입법자)와 하위자(복종자, 곧 국민)의 관계를 함유하되, 다수의 민족이 한 국가 안에서 단지 하나의 국민을 이룬다는 것, 이것은 전제와 모순되는 일이기 때문이다(《영원한 평화》, 백종현 옮김, 아카넷, 2013, 125쪽).”
영구 평화를 위한 제3 확정 조항으로 세계 시민법은 보편적인 우호를 위한 제반 조건에 국한되지 않으면 안 된다. 세계 공민법의 입장에서 모든 국민 상호의 ‘방문권’의 확립을 요청하고 있다. 하지만 열강의 식민지 경영을 엄격하게 금지했다.
우호의 조건이란 이방인이 낯선 땅에 도착했을 때 적으로 간주되지 않을 권리를 뜻한다. 이런 우호의 조건을 수용할 때 세계의 각 지역이 서로 평화적으로 관계를 맺게 되고, 이런 평화로운 관계가 공법으로 뒷받침되면 인류는 세계 시민적 체제에 점차 다가갈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권리는 모든 인간에게 속해 있는 권리인데, 과거 유럽의 문명국가들이 아메리카와 아프리카 등지의 정복 과정에서 보여 준 야만에 대한 자성에서 나온 것이다.
하지만 칸트가 구상한 영구 평화를 어떻게 보장할 것인가는 미완의 숙제다. 그래서 칸트는 제1 보충 조항을 통해 “영구 평화를 보장해 주는 것은 다름 아닌 바로 위대한 기교가인 자연이다”라고 말한다. 이때의 ‘자연’은 인간의 이성적 의지와 도덕적 본능과 같은 ‘섭리’를 뜻하기도 하고, 실존적 자연을 의미하기도 한다. 칸트는 인류 역사가 전체적으로 자연의 은밀한 계획에 따라 도덕적 완성과 그 목적을 성취하기 위해 완전한 국가 조직을 이룬다고 생각했다. 물론 현실은 이와는 반대로 전개됐지만 말이다.
칸트는 1796년에 ‘영구 평화를 위한 비밀 조항’을 추가하여, 각 국가들은 행동 원칙에 관해 철학자들의 충고를 받아들이라는 주장을 펼쳤다.
칸트의 영구 평화는 도덕 철학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영구 평화론》 부록은 정치와 도덕의 관계를 논하고 있다. 그의 실천 이성은 인간을 합목적적인 도덕적 존재로 다루고 있는데, 도덕적 존재란 이성적 존재의 행위가 선의지와 의무에 결부된다는 것이다. 칸트의 기본 태도는 도덕을 근거로 하지 않으면 참다운 정치는 행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모든 정치는 인간의 권리 앞에 무릎을 꿇을 수 있어야 하며, 비록 더디긴 해도, 정치가 계속 끈기 있게 광채를 발휘할 단계에 이르기를 희망하면서 그렇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치와 도덕의 갈등은 단지 주관적으로 존재할 뿐 객관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정언 명령에서 정치적 행위를 ‘도덕적 의무’가 아니라 ‘법적 의무’와 결부시킨 것도, 그가 정치와 도덕의 긴장을 해소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음을 보여 준다. “영구 평화는 절대 공허한 이념이 아니라, 점진적으로 해결되면서 지속적으로 목표에 접근해 갈 하나의 과제”라고 끝맺고 있다.
칸트의 ‘영구 평화론’은 관념적이고 유토피아적인 전통에 근거하고 있지만, 현실적으로 가능한 것을 입증하고자 했던 점이 높게 평가된다. 하지만 불확실과 부작용이라는 한계는 여느 이론이나 대안처럼 태생적이면서 애교스럽다. 현대 국제 정치에서 사상적 왜곡과 오용이 매우 심각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미국 외교 정책의 기조를 이루고 있는 민주 평화론이다. 칸트의 ‘영구 평화론’을 왜곡한 이 이론은 민주주의 국가의 성격상 이들끼리는 전쟁하는 경우가 거의 없어 오랜 기간 동안 평화를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이 기본적 논리이다. 따라서 국제 관계에서 인간 안보가 굳건해질수록 평화에 더 다가갈 수 있다는 논리와 관련이 있다. 미국은 자신의 패권 논리를 정당화하기 위해 민주 평화론을 조작하고 통계 자료를 통해 실증적으로 증명하는 작업을 했다. 하지만 민주적 평화는 통계학적으로 의미가 없고, 민주주의 국가 간에 전쟁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점은 다른 요소로 설명이 가능하다. 민주주의 국가라는 기준은 상대적이며 주관적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민주 평화론의 패러독스는 칸트의 ‘영구 평화론’에 대한 근본적인 재검토를 요구한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