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은 회색 지대가 될 수 있다”
단편선, 리슨투더시티 박은선을 듣다
단편선
사이키델릭 포크록 밴드 ‘단편선과 선원들’의 보컬이자 프로듀서다.
포크 음악의 전형을 파괴하며 늘 더 새로운 사운드를 추구한다.
사진 | 정운 기자
독립문 맞은편으로, 회색 벽이 길게 이어진다. 무악2구역 재개발 지구, 일명 옥바라지 골목으로 불리는 곳이다. 철거 용역들과 부딪혀 폭력적인 상황이 발생했을 때, 박원순 서울시장이 기습적으로 방문해 “이 공사 내가 못 하게 하겠습니다”라 약속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리슨투더시티는 이곳에서 다양한 예술 활동을 펼치고 있으며, 박은선은 리슨투더시티의 디렉터다. 은선 씨를 만나 옥바라지 골목에 대해 듣고, 미술과 사회에 관해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단편선(단) 리슨투더시티는 미술가들이 모인 집단이지만, 활동을 미술계로 한정 짓고 있진 않죠?
박은선(박) 우리도 우리가 뭘 하는지 잘 모르겠는데. (웃음) 우선은 내성천과 관련된 활동을 2009년부터 했고 홍대 앞 철거 농성장 두리반, 명동 카페 마리 등과도 연대했어요. 요새는 독립문 뒤의 옥바라지 골목에서 주로 활동하고 있어요. 우리는 기본적으로 ‘영토’에 대한 관심이 많고 도시 안의 ‘공공성’과 ‘공통성’에 대해 고민을 하는 사람들이에요.
단 공통성이란 단어가 생소하게 들릴 수도 있는데.
박 공공성과 공통성을 구분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일본의 도시학자인 사부 코소(Sabu Koso)의 논의를 참조하는 건데, 이를테면 우리가 지금 다니고 있는 이 도로는 공공 공간이지만 우리가 우리의 권리를 이야기하기 위해 점거를 하거나 하면 공통의 공간이 되는 거죠. 공공성은 국가나 시 같은 행정 단위에서 지정하는 범주라면 공통성은 도시 민중이 적극적으로 쟁취하는 것으로 볼 수 있겠죠.
단 최근에는 옥바라지 골목에서 주로 활동하고 있어요.
박 옥바라지 골목은 일단 일제 강점기 때부터 서대문 형무소에서 옥살이하던 사람을 말 그대로 ‘바라지’하기 위한 사람들이 모인 공간이었고요, 서대문 형무소 자체가 가지는 의미도 크지만 그 안의 수감 행태가 엄청나요. 리영희 선생님이 1970년대 형무소에 수감되었을 때 쓴 수기가 있는데, 양말도 버선도 없어서 겨울엔 동상 걸린 발의 피고름을 짜는 게 일상이었고 딱딱한 밥을 40년은 쓴 것같이 새까만 나무젓가락으로 먹으라고 주는데 처음에는 병에 걸릴까 두려워하다가도 나중에는 아무 신경도 안 쓰고 그냥 먹게 되고…. 1970년대에도 그랬으니까 일제 강점기에는 옥에서 1년 산다는 자체가 굉장히 큰일이었어요. 밖에서 솜옷을 차입하지 못하면 얼어 죽고 밖에서 찰밥이라도 못 받아오면 굶어 죽거나 병에 걸렸던 거죠. 그래서 옥바라지 골목이 형성되었고.
단 서울시에선 이곳이 옥바라지 골목이 아니라는 식으로 이야기하기도 했다는데요.
박 옥바라지 골목이 몇 통 몇 반부터 몇 반까지라는 식으로 기록이 없죠. 그래서 서울시에선 기록이 없으니 옥바라지 골목이 아니라 우겼고, 우리는 오래된 신문을 아카이빙하는 등 증거를 찾아냈죠. 문헌이 없다는 주장만 되풀이하는데, 찾아보니까 또 있어요. (웃음)
단 해외에서도 도시가 낡으면 재개발을 해요.
박 하죠. 그런데 이렇게는 안 하죠. 이를테면 일본의 롯뽄기 구역은 굉장히 비싼 곳인데, 그곳은 재개발하는 데 20년가량 걸렸어요. 주민들을 설득하는 14년 동안 1,000번이 넘는 회의를 거쳤거든요. 이곳은 관리 처분 인가가 작년 7월에 나고, 사람들을 내쫓는 데 4개월밖에 안 걸린 거죠.
단 사실 찾아보면 재개발을 하고자 하는 쪽에서도 삐걱대는 부분이 있는 것 같은데, 이렇게 막무가내로 추진할 수 있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박 모든 재개발에 비슷한 문제가 있을 거고, 더 심각한 경우도 있을 테지만 다 드러나지 않았을 뿐이라 생각해요. 2011년 응암4구역에서 롯데건설이 110억을 현금으로 뿌렸어요. 그런데 관련 상무가 1년 구형받고 건설사는 5000만 원 벌금 내는 것으로 끝나는 거예요. 중대한 범죄인데, 관리 감독을 제대로 하는 주체가 없어요. 조합과 건설사 마음대로 하는 거죠.
단 은선 씨는 원래 미술 작가로 커리어를 시작했죠?
박 그림도 그리고 조각도 만들고 그랬죠. 그런데 하다 보니 미술 시장이 너무 별로인 거예요. 작품을 살 수 있는 사람이 너무 소수고, 또 투자 목적으로 구매하죠. 그런데 내가 정말 놀란 것은 내 작업을 누가 사가는지 기밀로 되어 있는 거예요. 그럼 나는 돈만 받고 내 작업을 잃는 거죠. 또 삼성에선 우리나라 미술 시장에 대규모의 돈을 풀었는데, 대형 갤러리들과 재벌이 긴밀한 연관을 맺고 있을 수밖에 없어요. 그런데 미술가가 꼭 재벌을 옹호할 필요는 없잖아요. 물론 그런 조건에서 생계를 유지하려 노력하는 미술가들을 비난하는 건 아니지만, 저와는 안 맞았던 거죠.
단 그래서 어떤 활동들을 했나요?
박 처음에는 삼성 같은 소재를 활용해 그림을 그리기도 했는데, 내가 봐도 너무 후진 거예요. 그래서 때려치웠어요. (웃음) 삼성이나 4대강에 관한 이슈를 다루는데 굳이 그림을 그릴 필요는 없잖아요. 그런데 4대강에 대한 전시 같은 것을 여니 또 정보를 공유하고 모일 수 있더라고요. 그래서 그런 방식으로 작업하게 되었죠.
단 4대강에 대한 관심을 가진 계기가?
박 일단 상황 자체가 너무 쇼킹했고, 2009년 11월에 낙동강에서 지율스님을 뵈었는데 강이 너무 맑은 거예요. 너무 깨끗하고 아름다웠어요. 그런데 너무 폭력적으로 상황이 돌아가는데 보도도 잘 안 나오고 사회에서 이를 용납하는 자체가 용납이 안 되니까 뭐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죠. 스님이 활동하는 걸 도와 드리면서 저도 많이 배웠어요. 무엇보다 강을 이해하는 데 오래 걸린 것 같아요. 강이 범람하면 이렇구나, 갈수기에는 이렇구나. 그러면서 도시에서의 삶에 대해서도 의문이 많이 생긴 거죠.
단 본인은 본인을 예술가로 정체화해요?
박 예술가가 아니라고 하긴 좀 힘들죠. 미대를 나와서. (웃음) 제가 학교에서 계속 미술사를 강의하고 있는데, 미술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가 고정적인 정체성이 없다는 거예요. 예술의 정체성이 계속 바뀌기 때문에 우리도 이것이 예술가의 역할 중 하나라 말할 수 있어요. 최근에 현장에 많이 결합하는 예술가들을 개인적인 일 때문에 인터뷰를 좀 했는데, 결론 중 하나가 ‘예술은 회색 지대가 될 수 있다’는 것이었어요. 이를테면 예술가들은 현장에 결합하지만 그곳에서 얻는 직접적인 이득은 없잖아요. 굉장히 진보적이면서도 이해 갈등에서 벗어난 존재들이 될 수 있다 생각해요.
단 리슨투더시티는 옥바라지 골목에서 어떤 프로젝트를 진행할 건가요?
박 우리가 옥바라지 골목에서 찾은 자료들이 너무 많아요. 리슨투더시티는 기본적으로 시각을 다루니 실용적인 자료들을 찾고, 시각화를 하고, 오픈 소스로 공개할 준비를 하고 있어요.
단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는?
박 《워커스》가 사진 비율을 조금 줄이고 노동자들이 다양하게 읽을 수 있는 읽을거리를 늘리면 좋겠다 생각해요. 노동계 안의 여러 이야기가 다양하게 나왔으면 해요. 그러기 위해선 많이 읽어야 하고, 아직 대형 서점에 유통되고 있진 않지만 장기적으론 교보문고 등에서도 사 볼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노동자들도 바쁜 시간을 쪼개 여러 가지 전시도 보고 공연도 볼 수 있는, 그런 세상이 오면 좋겠네요. (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