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워커스

facebook
 
월간 워커스월간 워커스
월간 워커스
  • 정기구독 신청
Menu back  

“내 음악 알아준다면 목숨 바쳐 하고 싶다”

홍재희, 양정원을 듣다
2016년 7월 11일Leave a comment16호, 고급ZineBy 성지훈

“내 음악 알아준다면 목숨 바쳐 하고 싶다”

홍재희, 양정원을 듣다

사진 | 정운 사진기자

 


영화가 끝나면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지만 대개 사람들은 크레딧을 수놓는 이름을 눈여겨보지 않는다. 영화 한 편에는 많은 예술가들의 노고가 한데 어우러져 있다. 그중에는 우리의 귀를 사로잡고 마음을 울리는 음악을 만드는 작곡가도 있다. 양정원 영화 음악 감독을 그의 스튜디오에서 만났다.

 

홍재희(홍) 요즘 무슨 작업 하나?

양정원(양) 웹 드라마. 요즘 웹 드라마가 대세다. 한국 사람이면 다 한다는 카톡이나 네이버로 시청한다더라. 그런데 난 카톡을 안 해서. (웃음)

홍 난 둘 다 안 하는데. (웃음) 무슨 줄거리인가?

양 그게 남녀상열지사 얘긴데.

홍 오호! 야해서?

양 그런 것도 있나 보더라. 그런데 그런 게 나한테 온 건 아니고. (웃음)

홍 드라마 음악은 어떻게 만드나?

양 잘 만들면 된다.

순간 난 그를 째려봤다. 이런 뻔한 멘트를 날리다니. 좋다. 질문을 바꿔 보겠다.

홍 영화 음악 작곡가로서 일하기 좋은 감독은?

양 솔직히 ‘어느 영화에 썼던 어떤 음악처럼 해 줘’라는 감독이 편하다.

홍 헐! 명색이 작곡가가 이런 영혼 없는 말을 해도 되나?

양 광고 음악은 그렇다. (웃음) 그런데 영화에서도 그러더라. 이유는 딱 하나. 삽질하기 싫어서다. 정성껏 작곡했는데 “이거 아닌 거 같다”며 곡이 전부 버려진 적이 있다. 그때 들은 말이 잊히지 않는다. “어떻게 한 곡도 쓸 게 없냐.” 그 말에 크게 상처받았다. 뭐 내가 못해서 그럴 수도 있겠지. 그렇다면 당신들이 원하는 게 뭔지 보여 달라고 하게 된 거지. 난 영화 음악은 엔딩곡부터 만든다.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니까. 영상 도움 없이 작곡가가 혼자 떠들 수 있는 유일한 장면이거든. 영화는 끝났지만 아직 불이 켜지지 않았을 때, 심지어 불 켜지고 나서도 계속 흘러나오는 음악. 엔딩곡을 만들 때 감독한테 묻는다. 관객이 어떤 마음으로 극장 문을 나서길 바라는가. 그때 버려진 음악 중 엔딩곡이 정말 좋았는데.

홍 그런데 결국 못 썼잖아.

양 다른 영화에 썼지. 재워 뒀다가 국 끓여 먹을 것도 아니고. 의미 있게 재활용했다.

홍 영화 음악가는 작곡만 잘해야 하는 게 아니라 영업도 해야 하고 감독 의도도 파악해야 하고 의사소통도 잘해야 해서 피곤하겠다.

양 맞다. 그래서 영화 음악을 하면 실력이 느는 게 아니라 처세술이 느는 거 같다. (웃음) 그런데 난 그걸 잘 못해서 큰 영화, 돈 버는 영화를 못 하나 보다. 난 인격 수양이 덜 돼서 상대가 찌르고 들어오면 그만둔다.  영화 한 편에서 쏙 떼어 내도 상업화가 가능하고 예술 장르로 인정받는 건 오로지 음악밖에 없다. 나머지는 다 뭉쳐 있어야 빛이 나는데 음악은 같이 있어도 되고 따로 있어도 된다. 그래서 영화 음악이 참 매력적인데 힘든 건 자유롭진 않다는 거. 음악 외적인 것 때문에. 한번은 중간에 내가 때려치웠다. 감독이 처음에는 내가 만든 곡을 좋아했다. 그런데 갑자기 곡을 이리저리 자르고 빼고, 순서를 바꾸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작곡을 하고 있더라. 그 순간 깨달았지. 난 감독 대신 악보만 그려 준 거였구나. 앞으로 계속 그럴 거라고 생각하니 끔찍했다. 어렸을 때는 이런 일이 생겨도 참았다. 나이 먹으니까 몸이 힘든 건 참겠는데 정신적 고통은 더 이상 못 참겠더라. 생각해 봐라. 택시 기사한테 여기서 좌회전 해야지, 여기서 우회전 해야지 하면서 시시콜콜 길을 알려 준다면 기사 기분이 어떻겠나. 난 음악 만들 때 이건 100만 원짜리니까 100만 원만큼만, 이건 500만 원이니까 그만큼만,  그렇게 안 된다. 똑같이 공들여 만든다. 작곡가라면 다 그렇다. 그래도 그만두지 말고 끝까지 책임져야 했겠지. 만일 내가 돈을 많이 받았으면 그만둘 수 있었을까. 나 역시 자유롭지 않은 거다.

홍 참, 하고 있다는 인디 밴드 어찌 되고 있나.

양 우림 프로젝트? 다 나가고 나 혼자 남았다. 원래 혼자 시작한 거였으니까 처음으로 돌아온 거지. 내가 어렸을 때 꿈이 록스타였다. 고등학교 때부터 지금 하는 밴드까지 치면 밴드 정말 오래 했지. 이거 말고 드럼 치는 친구랑 둘이 새로 2인조 록 밴드도 만들었다. 이번엔 진짜 남자 록이다.

홍 남자들이 밴드 하는 이유가 여자한테 잘 보이려고 하는 거잖아. (웃음)

양 아니야. 난 진짜 아니야! 난 정말 음악이 좋아서 했어요. (웃음)

홍 믿기진 않지만 뭐 믿어 주겠다. 공연은 어디서 하나.

양  (공연은) 더 이상 못 하겠다. 창피해서. 이제 막 스물한두 살인 사람이랑 무대 뒤에서 대기하는데. 내가 무슨 원로인가? 나도 어렸을 때 밴드 형들 오면 그랬다. ‘저 형들 왜 왔어, 꼰대들’. 그 생각이 나더라. 그래서 조용히 입 다물고 있다.

홍 그럼 도대체 어디서 연주를 한단 말인가.

양 그러니까 방구석 밴드지. 방구석 뮤지션. 사실 이번 주 일요일에 지인 결혼식에서 연주한다.

홍 웨딩 싱어네!

양 그런 셈이네.

홍 잠깐. 듣자 하니 드라마에, 영화에, 밴드에, 이것저것 하는 일이 정말 많다. 나머지 시간엔 뭐하나.

양 없다. 그냥 종일 음악 생각만 하는 거 같다.

홍 진담인가?

양 강의하고 음악 만들고 믹싱하고 또 작곡하고 밴드 연주하고.

홍 세상에! 일 중독자 아닌가.

양 다 음악. 같은 맥락이니까.

홍 쉴 새 없이 바쁜데 끊임없이 악상이 떠오른다는 게 너무 신기하다. 그게 가능한가?

양 가능하고 말고. 광고는 입금되는 순간 악상이 떠오르니까. (웃음) 그전까지는 화면을 수십 번 돌려 봐도 ‘어쩌지’ 하다가 ‘송금했습니다’라는 문자가 ‘띵!’ 들어오는 순간 1안, 2안까지도 나온다는 거. (웃음)

홍 돈 많이 주는 광고는 그렇다 치고. 하지만 예술 영화, 독립 영화, 저예산 영화는?

양 인간적 신뢰가 생긴 감독이랑 일하면 잘되는 거 같다. 보이지 않는 신뢰가 쌓여 부담이 사라지면 그때부터 곡이 잘 만들어진다.

홍 도대체 음악 말고 일 말고, 스트레스는 어떻게 푸나? 설마 그것도 음악으로 푼다는 건 아니겠지?

양 스쿠터 탄다. 작년에 1만 킬로 달렸다. 황학동에 중고 오디오 기기 보러 간다. LP판 가게 가면 정말 행복하다. 스쿠터 타고 다니면서 사람 구경, 시장 구경, 그게 낙인 거 같다. 예전엔 일하면서 위기의식이 컸다. 인생을 스모 경기장에 비유하면 경기장 밖으로 발이 떨어지면 지는 거다. 내가 뒤로 한 발짝이라도 물러나면 끝난다고 생각했다. 나도 음악인인데 음악으로 밥 못 먹고 산다는 게 너무 힘들었다. 좋아하고 하고 싶은 일로 돈을 못 벌고 다른 일로 먹고산다는 게 용납이 안 됐다.

홍 그럼 지금은? 경기장에서 떨어진 건가. 아님 스스로 발을 뺀 건가.

양 둘 다 아니다. 달라진 건 나를 돌아보게 되었다. 날 좀 더 사랑하게 됐다고나 할까. 가끔 이제껏 만든 음악을 돌아본다. 그러면서 ‘내가 언제 이렇게 많이 만들었지’, ‘내가 무척 치열하게 살았구나’ 한다.

홍 그 치열함이 부럽다. 매 순간 쉬지 않고 자신의 족적을 남겼다는 거잖나.

양 세상이 말하는 족적은 유명세지. 그런데 내 경우는 몇몇 소수만 아는 족적이니까. 많아야 만 명 정도나 알까. (웃음) 그런데 나 같은 하찮은 음악 감독에게도 팬이 있더라. 정말 놀랐다. 소소한 족적인데도 내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 그게 힘들어도 이 일을 하게 하는 힘인 거 같다. 예전에는 ‘왜 난 5억 이상 되는 영화를 못 하지?’ 하면서 큰 예산 영화, 잘나가는 영화를 바라보고 그랬는데 이제는 ‘안 하면 어때?’ 그런 마음이다. 요즘에는 그런 게 크게 중요하지 않다. 내가 이 길을 잘 왔다는 거, 이게 평생 내 일이라는 거, 내 일을 사랑하고 이 일을 계속할 수 있다면, ‘지음(知音)’이란 말처럼 나를 인정해 주고 내 음악을 좋아해 주는, 나를 알아주는 그런 사람이 있다면 목숨 바쳐 음악 하고 싶다.

소소한 족적이라도 결코 하찮지 않다. 그는 하찮기는커녕 썩 괜찮은 사람, 아니 정말 괜찮은 음악인이었다. 껑충한 키에 귀여운 헬멧을 쓰고 앙증스러운 스쿠터를 타고 달리는 이 사내. TV만화 <날아라 슈퍼보드>의 미스터 손을 닮은, 영화 음악 감독이자 뮤지션 양정원의 새 앨범이 올여름 나온단다. 그의 음악은 소탈한 그를, 서늘한 여름을 닮았을지도 모른다. 그 음악이 문득 궁금해진다.

추천기사

  • 2016년 7월 11일 “예술은 회색 지대가 될 수 있다”
  • 2016년 5월 26일 하림, 이수진을 듣다
  • 2016년 6월 17일 무언가가 되고 싶은 사람
  • 2016년 6월 22일 하림, 성동훈을 듣다
  • 2016년 9월 9일 [고급zine] “내게 소수자는 남이 아니다.”
  • 2016년 6월 28일 “내게 다큐는 궁금증을 푸는 과정”
  • 2016년 12월 22일 “스스로 즐거워야 하고 우리 안에서 즐거워야 해요”
  • 2016년 10월 22일 “예술은 내가 삶을 사는 방식”
About the author

성지훈
acesjh@jinbo.net


성지훈의 다른 기사 →

update: 2016년 7월 11일 07:53
연관된 다른 기사
“시는 나도 모르는 어떤 진실을 가르치는 것”
2016년 12월 22일
“스스로 즐거워야 하고 우리 안에서 즐거워야 해요”
2016년 12월 22일
“보듬어 주고 이해해주는 그림 그리고 글”
2016년 12월 5일
“내 절망이 이렇게 설명될 수 있구나”
2016년 11월 19일
“우리의 할 일을 한 거다”
2016년 10월 26일
“예술은 내가 삶을 사는 방식”
2016년 10월 22일

댓글 남기기 응답 취소

많이 본 기사

Sorry. No data so far.

60호 / 조국을 떠난다

RSS 참세상 기사
워커스

워커스 등록번호: 서대문-라-00126
등록일자: 2017년 3월 13일
발행인 : 강내희, 편집인: 윤지연
서울시 서대문구 독립문로 8길 23, 2층
FAX : (02)701-7112
E-mail : workers@jinbo.net

«워커스»에 실린 글, 사진 등 저작권자가 명시되어 있지 않은 모든 자료의 저작권은 «워커스»에 있으며, «워커스»의 동의하에 사용할 수 있습니다.login

60호 / 조국을 떠난다

월간 워커스
  • 정기구독자 가입
  • 제보
  • 워커스 소개
  • 광고안내
  • RSS
  • 이번호/지난호 보기
  • 기사 검색
  • facebook
footer-men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