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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다큐는 궁금증을 푸는 과정”

홍재희, 경순을 듣다
2016년 6월 28일Leave a comment4호, 고급ZineBy workers

사진 정운

홍재희

독립 영화 감독. 경순 감독과 오다가다 만난 사이. 그가 자신과 비슷한 영혼임을 확인하고 제 혼자 신났다. 독립 단편 <암사자(들)>, 독립 다큐멘터리 <아버지의 이메일>을 만들고 동명의 책을 냈다.

 

경순

독립 영화 감독. ‘한국을 대표하는 여성 다큐멘터리스트’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닌다. 첫 작품 <민들레>에서부터 <애국자 게임>, <쇼킹 패밀리>, <레드 마리아 1> 그리고 <레드 마리아 2>로 이어진 행보. ‘빨간 눈사람’이라는 프로덕션을 만들어 십수 년을 독립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데 매진해 왔다. 여성사와 노동에 대해 그처럼 많은 이야기를 쏟아 낸 사람이 또 있을까. 전에 만났던 감독은 빨강 머리였다. 이번에는 갈색 머리다. 그는 바쁘다. 그러나 여유롭다. 그리고 재미있다.


홍재희(홍) 요즘 어떻게 지내나.

 

경순(경) 예전에는 하루라도 뭔가를 안 한 적이 없는데 요즘은 그냥 아무 것도 안 하고 빈둥거리는 게 좋더라. 3일 열심히 뛰면 4일은 놀아 줘야지 그런다.

 

홍 돈 없이도 잘 논다는 말로 들린다.

 

경 그렇지. 자전거로 한강 가고 전철 타고 산에 가고, 다운받은 영화 보면 되고. 돈 안 든다. 그리고 뭐 먹고 싶음 돈 있는 친구에게 전화해서 저녁 먹자 하면 되고. 현실적으로 이렇게 놀 수 있는 여유가 얼마나 남아 있을지는 빚을 갚는 거에 달려 있겠지. (웃음)

 

홍 빚이 있나.

 

경 그럼. <레드 마리아 2> 만들면서 빚졌다. (웃음)

 

홍 빚 없는 독립 영화 감독 못 봤다. 그런데 빚 있으면 불안하지 않나.

 

경 옛날에는 그랬지. 빚을 지면 절대 안 된다는 생각이 있었으니까. 그런데 변했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빚을 안 지고 살아?’ 라고. 오히려 나 이 정도까지는 빚을 질 수 있는 사람이구나. 생각이 바뀐 거지. 그러니까 마음이 편해지더라고.

 

홍 그럼 뭐해서 어떻게 먹고사나?

 

경 그게 참 희한한데 꼭 먹고살만큼은 일이 생기던데. 그러니까 마음을 비우면 된다. 난 그냥 써야 할 만큼만 벌자 주의다. 그렇게 생각하면 세상에 돈 벌 일 많다. 난 이 노동이 더 신성하고 중요하고 도덕적이고 이건 수준에 안 맞고 그런 거 따지지 않는다. 설거지를 하든 신문 배달을 하든 그 일을 내가 할 일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홍 다들 미래나 노후 생각하면서 불안해하잖나. 직장이 있어도 잘릴까 봐 걱정하는 판에 그렇게 알바로 살다 보면 스트레스 안 생기나.

 

경 내가 머리가 나쁜 건지 기억력이 안 좋은 건지 모르겠는데. 난 미래에 대한 고민을 별로 안 한다. 지금 당장 할 고민도 너무 많아서 미래까지 고민할 여력이 없다. 그건 그때 가서 고민해야지. (웃음)

 

홍 그런 식으로 살면 주변에서 걱정 안 하나?

 

경 자기들도 걱정이 많은데 설마 내 걱정까지 하겠어? (웃음) 그러니까 날 상대하지 않으려 하거나 불편해한다. 단지 내가 불만인 건 난 한 번도 나처럼 살라고 주변에 강요하거나 말한 적 없거든. 그런데도 왜 나 같은 사람을 자꾸 불편하게 생각하는 거냐는 건데.

 

홍 그건 감독이 남들과 다르게 살면서도 잘살고 있어서 아닐까. 그래서 분열이 오는 거지. (웃음)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사람들이 왜 경순 감독의 영화를 문제적이다 불편하다고 할까. 고정 관념을 깨는 영화, 오히려 거기에 문제 제기를 하는 영화를 만들어서일까.

 

경 나도 잘 모르겠다. 난 전혀 문제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데. 오히려 난 너무 평범하다고 생각하는데. 아마 자기 생각과 달라서 지금까지 자기가 믿어 온 거랑 달라서 그런 건 아닐까 싶다.

 

그는 세상을 고정된 틀로 보지 않는다. 개념으로 재단하지 않는다. 그는 세상을 인간과 인간의 문제로 사유하며 무엇이든 ‘왜?’라는 질문을 던진다. 그 이유에 대해 감독은 말한다. 자신이 잘 몰라서 알고 싶어서, 그래서 카메라를 드는 거라고. 그러나 나는 안다. 그의 시선은 사람에 대해 세계에 대해 항상 열려 있다는 것을. 그 자신은 질문하기를 결코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을. 그리하여 한 번 붙잡은 문제의식을 끝까지 오롯이 벼리고 담금질해서 함께 생각해 보자고, 이야기해 보자고, 영화를 만든다는 사실을.

홍 모른다고 말하는 거. 질문하는 걸 두려워하지 않는 거. 사실 나이 먹고 어느 정도 지위가 생기고 나면 쉽지 않은데.

 

경 내가 가진 게 없어서 그런가 보다.(웃음)

 

홍 가진 게 없다고? 못 믿겠다. (웃음) 그런데 그렇게 일관되게 혼자 작업하면 외롭거나 힘들지 않나?

 

경 주류로 살고 싶었다면 못 했겠지. 하지만 난 그런 방식으로 사는 거에 관심 없다. 그래서 이렇게 밖에 있는 거다. 이런 식으로 혼자 하는 게 더 편한 거지. 그래서 외로울 시간이 별로 없다. 바쁘지 않아도 가만히 있어도 외롭지 않다. 아마 내 유전자가 뭔가 결핍인지도 모르지. (웃음)

 

홍 신작 <레드 마리아 2>는 어떤 다큐멘터리인가.

 

경 <레드 마리아 1>이 여성의 몸을 통해서 여성의 노동에 새롭게 접근했다면 <레드 마리아 2>는 여성의 몸에 대한 낙인 그리고 윤리에 문제 제기를 한다고 보면 된다. 이번엔 더 종적이고 역사적으로 사람들의 기억이 만들어 내는 여성에 대한 낙인을 살펴보려 했다. 여성들에게는 혐오의 대상이자 금기시되는 일명 매춘이라 일컬어지는 성노동과 더불어 위안부 문제를 다룬다. 이 문제가 바로 양극단에서 여성에 대한 낙인 찍기를 지탱하고 있는 게 아닐까라는 의문에서 시작해 매춘에 대한, 여성의 몸에 대한, 성에 대한 낙인과 혐오가 과연 어디에서 출발하는가를 파헤쳐 보고 싶었다. 예를 들어 한국 사회에서는 이미 수많은 사람이 성노동을 하고 있다. 그런데 이 문제를 마치 존재하지 않는 듯, 아니면 협소하게 바라보는 데 정말 화가 난다. 성폭력 문제나 여성의 욕망과 성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지금도 얼마나 많은가. 그런데도 우리의 고민과 사유가 현실에서 한 발짝도 더 못 나가는 게 난 답답한 거다. 과거에서 현재에 이르기까지 여성 문제는 지금까지 해결된 게 하나도 없다. 여성의 지위는 가마솥에서 전기밥솥으로 변한 거밖에 없다. 이젠 인공 지능 밥솥으로 바뀌었다고 해야 하나. 그게 다다.

 

이쯤에서 궁금해진다. 문득 머릿속에 떠오른 질문을 던졌다.

 

홍 경순에게 영화란 무엇인가.

 

경 그저 내 삶이고 내가 쓰는 일기 같은 것. 내가 세상에 대해 궁금해하는 것, 생각하는 모든 걸 영화를 통해 보는 것.

 

홍 왜 다큐멘터리인가.

 

경 내게 다큐멘터리는 무엇보다 직접 발로 뛰면서 찾아가서 궁금증을 풀고 확인하며 알아 가는 과정이다. 나는 다른 곳에는 답이 없는 걸 내가 직접 답을 찾아가는 걸 좋아한다.

 

홍 다큐 감독이 안 되었으면 지금 뭐하고 살았을 거 같나.

 

경 웃긴 얘긴데 예전에 시를 쓰려고 했다. 내가 긴 글을 싫어하는데 시는 짧으니까 시를 써야지 한 거지. 그러다 노동 문화 운동하면서 관뒀는데 다시 이야기를 하고 싶다는 갈증에 영화를 만났다. 그런데 희한하게 영화는 궁합이 잘 맞더라. 시나 글로써 표현할 수 없었던 걸 하게 해 줬다. 잘한 선택이었다. 그래도 과거로 돌아가 뭔가 다시 시작한다면 아마 암벽 등반가가 되지 않았을까?

 

홍 왠지 어울린다.

 

경 그런데 암벽 등반가가 되었어도 그러다가 결국 영화감독을 하지 않았을까. 하하.

 

말을 마친 감독은 호탕하게 웃었다. 우리의 대화는 영화로 시작해서 영화로 끝났다. 경순은 우리가 말하고 싶지 않지만 말해야 하는 이야기, 외면했으나 들어야 하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다. 그것이 시든 영화든 결국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그의 운명이라는 것, 그가 앞으로도 여전히 카메라로 일기를 쓰는 사람일 거라는 건 틀림이 없다. 그의 영화는 익숙한 것을 다르게 보기에 언제나 새롭다. 그래서 나는 그의 다음 영화가 또 기다려진다.

(워커스4호 2016.0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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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순다큐멘터리스트독립영화홍재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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