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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수저 활동가의 이사 분투기

‘사회 운동’이 사회로부터 밀려나지 않게
2016년 6월 28일Leave a comment4호, 진보생활백서By workers

사진 이승훈

오진호

비정규직없는세상만들기네트워크 집행 위원. 노동과 사회 운동의 접점이 늘어나기를 바라며 활동 중이다.


 

결정의 시간

이사를 결정했다. 한파를 겪고 난 후 더는 이 집에서 살 수 없을 것 같았다. 하루에 두 번씩 수도가 어는 집, 세탁기를 돌리며 양변기 물을 내리면 양변기 물탱크가 찰 때까지 물이 나오지 않는 집. 이 집에서 지낸 2년을 곱씹어 보니, 나 자신이 짠해지면서도 용했다. 이곳을 떠나야만 그나마 인간다운 삶이 열리리라는 믿음으로 이사 갈 집을 구하기 시작했다.

몇 주간 부동산 어플과 인터넷 카페를 뒤졌다. 점점 자신감이 떨어져 갔다. 무슨 집이 이렇게 비싼가. 서울 집값이 비싼 줄은 알았지만 이건 해도 너무했다. 박근혜 정부가 활동가를 탄압하려고 일부러 서울 방값을 올려놓은 것은 아닐까. 방을 구하다가 오히려 정권에 대한 적개심만 늘었다.

가족과 지인의 도움으로 보증금을 더 마련하고 월세 지출을 늘리기로 결정하면서 집을 구할 수 있었다. 콸콸 나오는 수도를 보는 것만으로도 뿌듯했지만 지출이 늘어났다. 월세가 6만 원 늘었고, 이전 집에서는 내지 않던 전기세, 수도세, 인터넷 요금도 이제는 내가 내야 한다. 선택은 둘 중 하나다. 수입을 늘리거나, 지출을 줄이거나. 내 한 달 지출을 곱씹어도 뾰족한 수가 보이지 않았다. 결국 CMS 후원을 정리해야 한다는 생각이 드는 찰나, 고개를 저었다. 내가 끊은 CMS에 고통받을 다른 활동가 ‘동지’들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활동과 생존, 아슬아슬한 줄타기

2015년 4월 ‘인권재단 사람’에서 진행한 실태 조사에 따르면 인권 활동가들의 월 평균 기본급은 107만 원이다. 많은 사람이 활동비가 최소 법정 최저임금은 되어야 한다고 말하지만 현실은 암울하다. 얼마 되지 않는 수입에서 사무실 월세, 유지비를 제하면 ‘임금 인상’을 외치기도 민망한 잔고가 보인다. 이걸 가지고 캠페인도 해야 하고, 포스터도 제작해야 하고, 자료집도 만들어야 한다. 다 ‘돈’이다.

더 나은 삶을 위해 후원인을 늘려 보려 해도 쉽지 않다. 노동 단체 몇 곳의 후원인 명단을 비교해 보면 익숙한 이름들이 계속 나온다. 100만 원도 못 받으면서 매달 다른 단체 후원에 10만 원 안팎을 지출한다는 활동가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존경스러우면서 한편으로는 안쓰럽다. “어디도 후원하지 않는 사람들을 조직해 봐야겠어!”라고 결심해도 그들의 주머니를 여는 일은 쉽지 않다. 결국 후원 주점과 재정 사업을 ‘결의’한다.

지자체나 정부 기관 프로젝트를 신청하고, 재단들의 지원 사업을 찾는다. 수익 사업을 준비하기도 하고, 회원 확대를 위한 이벤트를 고민한다. 1년간 위탁받아 진행한 프로젝트가 열 건이 넘어 1년 내내 프로젝트만 했다는 활동가의 이야기는 그리 특이한 일도 아니다. 이렇게 활동과 단체 생존을 사이에 둔 아슬아슬한 줄타기가 벌어진다.

활동가를 바라보는 시선

‘사회 운동’이 저임금, 고강도 노동이 되다 보니 지원하는 사람들은 점점 줄어든다. 열악한 재정 사정에 새로운 활동가를 뽑는 것 자체가 쉽지 않기에 새로운 활동가를 만나는 일은 하늘의 별 따기다. A 대책 기구 회의가 끝나고, 똑같은 사람들이 B 대책 기구 회의를 시작하는 것은 익숙한 풍경이다. 현수막 하나를 만들어도 치열하게 고민하고 싶지만 매일 보는, 그것도 세상에서 제일 바빠 보이는 사람들이 머리를 맞대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만들어 내는 것이 만만한 일은 아니다.

활동가가 늘지 않으니 개별 활동가들의 부담은 점점 늘어난다. 운동의 대의를 위해 야근을 감내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없어서 야근한다. 현안은 정신없이 터지는데 할 사람은 없으니 몇몇 사람에게 일은 집중된다. 전망과 방향을 고민해야 할 시간에 실무와 집행에 쫓기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이 속에서 활동가들은 지쳐 간다.

악순환보다 무서운 것은 활동가를 보는 타인의 시선이다. 수천만 원 연봉을 받는 직장인보다 바쁜 직업, “쟤는 왜 저렇게 힘들고, 돈도 못 버는 일을 하지”라는 눈초리와 “너는 언제 정신 차릴래?”라는 핀잔을 듣는 직업이 되어 버린 활동가. 세무사, 간호사, 편의점 아르바이트, 활동가. 유난히 활동가라는 직업은 눈에 띈다. 평범한 사람들이 대수롭지 않게 접근하고, 함께할 수 있어야 하는 사회 운동은 ‘결의’와 ‘신념’이 있어야만 할 수 있는 특별한 것이 되고, 사회 운동은 사회로부터 타자화된다.

 

이사를 마치고

그럼에도 활동가는 매력적인 직업임이 틀림없다. 이 직업은 내 삶과 내 행위를 결정하는 데 있어 나의 의지가 가장 크게 작용하는 직업이다. 경쟁보다 협업과 토론이 앞서는 공간이라는 점, 내가 하는 활동들로 우리가 모두 행복해질 수 있다는 점 역시 이 직업의 매력이다.

나의 이사는 결국 휴대 전화 요금제를 바꾸고, 술을 줄이는 선에서 타협하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일단 저질러 놓고 보면 알아서 생활 규모도 줄어들 것이라는 대책 없는 대책이다. 그리고 앞으로는 활동가들의 활동비를 늘려야 한다는 이야기를, 활동가들이 일을 줄이고, 좀 더 쉬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자주 하기로 했다. 지금 당장 뾰족한 수가 떠오르지는 않지만 일단 이야기를 꺼내 놓는 것에서부터 시작해 보자. ‘사회 운동’이 더는 사회로부터 밀려나지 않도록, 활동가라는 직업이 조금 더 매력적으로 보일 수 있도록.

(워커스4호 2016.0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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