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제17회 퀴어 문화 축제의 메인 행사나 다름없는 퀴어 퍼레이드가 2주도 남지 않았다. 퀴어 퍼레이드는 성소수자들에게는 1년에 한 번 있는 명절이나 다름없는 날로 올해는 6월 11일 토요일 오전 11시부터 서울 시청 광장에서 열린다. 학업 중인 성소수자들은 퀴어 퍼레이드가 시험 일정과 겹치지 않기를 바라며, 퀴어 퍼레이드의 꽃말은 기말고사라는 우스갯소리를 하기도 한다. 어디 학업 중인 성소수자들뿐일까? 노동자인 성소수자들은 주말 근무나 다른 일들이 퀴어 퍼레이드와 겹치지 않기를 바라기도 하고, 지방에 거주하는 성소수자들은 어떻게든 퀴어 퍼레이드에 참가할 방법을 찾느라 이런저런 궁리를 하기도 한다. 비성소수자들 중에는 퀴어 퍼레이드가 뭐길래 이렇게 유난을 떠느냐고 묻기도 하지만, 나를 온전하게 내보일 수 있는, 나와 같은 사람들이 모여 한자리에서 몇 시간이라도 함께할 수 있다는 의미에서 퀴어 문화 축제는 1년에 한 번뿐인 성소수자들의 축제이다.
하지만, 퀴어 퍼레이드는 매년 방해를 받고 있다. 해가 갈수록 그 방해의 방식이나 세력이 커지고 있다. “서울시청 광장이 오는 6월 11일 동성애 음란 광란 알몸 놀이터가 되어 버리면 다음 순서는 차별금지법 제정으로 이어집니다.” 이런 말도 안 되는 문자가 5월부터 교회를 주축으로 공유되고 있고, 어떤 목사는 퀴어 퍼레이드에 대해 서울중앙지방법원에 공연 음란 행위 금지 가처분 신청을 냈다. 그래도 11일에 퀴어 퍼레이드는 열린다. 퀴어 퍼레이드 때만 되면 성소수자의 존재를 지우려 하는 보수 기독교 반성소수자 세력은 노골적으로 성소수자 혐오를 표출하고 드러낸다. 몇 년 동안 이런 모습을 보고 있자면 힘이 빠지고 분노가 치민다.
사람의 권리를 획득하는 과정에 있는 성소수자
누군가는 성소수자인 나를 사람이 아니라는 듯 함부로 모욕하고 차별하고 혐오한다. 성소수자 중에서도 남성 동성애자는 HIV/에이즈(AIDS, 후천성면역결핍증후군)에 감염되어 죽을 것이고, HIV/에이즈에 감염되는 것이 인생의 종말인 듯 저주를 퍼붓는다. 하지만 정말 그런가? HIV/에이즈는 관리 가능한 감염성 질병이다. 그러나 이 질병에 대해 바르게 알려 주지 않기에 개인의 공포감과 사회적인 편견은 높아진다. 우리 사회가 HIV/에이즈를 예방하고 감염인들을 제대로 지원하지 않기에 이 질병에 대한 저주가 가능한 것이다.
성소수자가 어디에나 존재하지만 어디에서든 삭제되기 쉬운 존재일 때, 성소수자 혐오도 강해진다. 편견과 잘못된 지식에 근거해 성소수자를 공격하는 행위에 대해 사회가 그것을 바로 잡으려는 노력을 다하지 않으면 성소수자 혐오나 차별은 갈수록 강해질 것이다. 사회가 혐오와 차별을 방치하는 것이다.
나는 평생 성소수자로 살아왔지만, 제도 교육에서는 단 한 번도 성소수자와 관련한 교육을 받지 못했다. 이성애자들의 사랑만 인정하는 현실에서 동성을 사랑하는 나 자신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20대 초반이 지나갈 때까지 누구도 알려 주지 않았다. 나와 같은 사람과는 어디에서 만나, 어떻게 관계를 맺고, 교감하고, 연애를 하는지에 대해서 누구도 알려 주지 않았다. 그런 의미에서 퀴어 퍼레이드는 성소수자 당사자들의 사회성 향상에 기여한다. 단 하루지만 퀴어 퍼레이드는 나와 비슷한 사람을 광장에서 자연스럽게 만나고, 나를 편견 없이 존중해 주는 사람들과 관계를 이어갈 수 있게 하는 성소수자들의 이벤트이기도 하다.
나는 이런 이벤트가 더 많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퀴어 퍼레이드뿐만 아니라 다른 성소수자 관련 행사에도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할 수 있다면 좋겠다. 그러려면 사회적 인식도 변화해야 하고, 성소수자들에게 더 많은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 연인과 제주도에 사는 나의 오래된 레즈비언 친구는 아직 퀴어 퍼레이드에 참여해 본 적이 없다. 거리가 먼 이유도 있지만 혹시나 있을지 모를 아웃팅의 위험이 두렵기 때문이다. 좀 이상한 말이지만, ‘내가 나인 것이 발각’(?)되면 위험한 사회에서 성소수자들은 살고 있다. 하루도 마음 편하게 축제를 즐길 권리를 허락하지 않는 우리 사회의 성소수자 혐오를 멈추러 서울시청 광장에 모여 함께 행진하자. 함께 거리를 걸으며 성소수자와 비성소수자가 모두 사람임을 확인하자. 우리가 연결되어 있음을 확인하면서 깨닫게 될 사랑은 분명 혐오보다 강하다. 사랑은 혐오를 이긴다. 함께 이겼으면 좋겠다. 함께하자.
재윤 / 사진 김용욱
(워커스13호 2016.06.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