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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어 퍼레이드의 역사

‘예외의 시간’이 일상이 되도록 행진
2016년 6월 8일Leave a comment13호, 소소少笑한 연대기By workers

1년 365일 중 하루가 개인의 삶에 얼마나 변화를 줄 수 있을까? 아니 한두 시간의 경험이 우리의 삶을 바꾸어 놓을 수 있을까? 인간의 삶이 시간의 양으로만 정해지지 않듯이 수많은 일상의 시간들을 뒤집어 놓는 ‘예외적 시간’이 우리의 삶을 바꿔 놓기도 한다. 아니 ‘예외적 시간’들이 억압된 우리의 삶을 해방할 자기 안의 힘과 감정을 찾아내게 한다. 그런 점에서 퀴어 퍼레이드는 ‘퀴어’들의 잠재력을 확인하는 시간이자, 모든 인간의 존엄을 확인하는 연결의 장이다. 퀴어 퍼레이드를 한번 경험한 이는 다시 찾게 된다.

퀴어 퍼레이드는 1년에 한 번 성소수자들, 퀴어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마음껏 드러내고 즐겁게 거리를 누비는 행진이다. 퀴어 퍼레이드의 연원은 1969년 6월 미국 뉴욕에 있었던 ‘스톤월 항쟁’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가난한 성소수자들이 술집 스톤월에서 경찰들의 무시와 탄압에 맞서 싸웠다. 시인 앨런 긴스버그(Allen Ginsberg)는 “그들은 더 이상 상처받은 모습이 아니었다”고 성소수자들을 변화시킨 싸움을 회고했다. 스톤월 항쟁 1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1970년 6월 센트럴파크에서 성소수자들의 자긍심 행진(Pride parade)이 시작됐다. 행진은 미국 전역으로 퍼져 나갔고 런던과 파리, 전 세계로 확대됐다. 운동의 결과 1973년 미국 정신의학회는 동성애를 정신 질환 규정에서 삭제했다. 이렇게 축제의 저항성이 퀴어 퍼레이드에 새겨 있다.

 

우연히 하게 된 ‘단독’ 퍼레이드

한국에서 퀴어 퍼레이드가 처음 시작된 해는 2000년이다. 그때는 퀴어 문화 축제가 9월 연세대학교 실내 행사로 계획됐고, 퍼레이드는 사전 행사로 8월에 대학로에서 열렸다. 2회 퀴어 퍼레이드부터 지금까지 준비 단위(조직위)에 함께한 한채윤 씨는 그해 단독 퀴어 퍼레이드를 하기까지 우연이 겹쳤다고 했다.

“서울국제퀴어영화제에 있던 박기호 씨나 서동진 씨가 영화제 기간에 다양한 행사를 하자고 제안해서 여러 동성애자 단체나 대학생 모임이 퀴어문화축제공동조직위원회를 꾸렸어요. 그런데 독립 예술제(현 프린지페스티벌)가 8월 26일에 대학로에서 도로 행진을 하는데 참여하겠냐고 제안했어요. 그래서 퍼레이드가 사전 행사가 된 거예요. 그런데 그날 비가 내렸어요. 폭우도 아니었는데 사람들이 안 나온 거예요. 트럭도 하나 빌렸는데 행진할 팀이 없었어요. 사람이 별로 없어서 ‘어떻게 하지’ 하다가 우리가 행진을 하기로 했어요. 그래서 (트럭에) 올라갔고 단독 행진을 했어요. 대형 플래카드랑 레인보우(무지개) 깃발을 들고 행진했어요. 한 50여 명 정도가 돌았어요. 한 바퀴 돌기로 했는데 재밌어서 한 바퀴 더 돌았어요. 티 나게 걷지는 않았지만 나름 드랙(drag)도 하고. 하하. 사람들은 그게 드랙인지 몰랐을 거 같은데 어쨌든 대학로에 나왔던 시민들은 ‘재밌네’ 하는 눈으로 봤고, 우리도 동성애자라고 드러내고 걷는 거라서 정말 감동적이었어요. 그게 단독 퍼레이드가 아니었으면 다음 해에도 할 엄두를 냈을지 모르겠어요.”

한채윤 씨는 1회 때 잡지 〈버디〉의 기자로 참가했지만 그 경험이 강렬해서 2회 때부터 조직위에 참여하게 된다. 2회 때도 독립 예술제와 함께 퍼레이드 일정을 잡다 보니 독립 예술제가 열리는 홍대로 장소를 옮겼다. 독립 예술제는 행진 계획이 없었지만 행진 신고 등을 대신해 줘 홍대 운동장을 빌려 퀴어 축제를 하고 홍대 앞 200미터 구간을 행진했다. 하지만 독립 예술제에 일정을 맞춰야 하는 불편함 때문에 3회 때부터는 독립적으로 개최한다. 이때부터 퀴어 퍼레이드는 6월에 열리게 된다. 마침 2002년 월드컵이 열려 한국을 찾은 외국인이 많은 이태원에서 했다. 이전보다 퀴어 문화를 더 드러내기 위해 행진도 춤을 추며 했다. 3회 퀴어 퍼레이드에 처음 참가한 한국 게이 인권운동 단체 ‘친구사이’ 회원인 전재우 씨도 “내 정체성으로 노는 모습을 보여 줘 해방감을 느꼈다”고 말했다.

“그전까지는 운동권 집회 행진밖에 경험이 없잖아요. 그래서 외국 퍼레이드 보면서 좀 더 자유롭게 하려고 준비했어요. 행진하면서 춤도 추고. 다음 해에는 라인 댄스도 준비하고 핫팬츠를 입고 눈에 띄려고 했지요.”

행사 전에 이태원 상인회에 양해를 구했지만 길이 막힌다고 항의를 많이 받아 4회는 게이바가 많은 종로3가 파고다공원(탑골공원)에서 했다. 5회는 종로4가 종묘공원에서 하는데 이때 처음으로 민주노동당이 연대 발언을 했다. 성소수자 운동의 성장으로 민주노동당에 성소수자위원회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퀴어 퍼레이드는 2006년 7회까지 종로에서 열리다 2007년 8회부터 청계천으로 자리를 옮긴다. 2007년은 성적 지향 등 7개 금지 사유를 삭제한 차별금지법안을 정부가 발의하면서 연초부터 성소수자들의 행동이 많아졌던 해다. 그 후 퀴어 퍼레이드는 연대를 확인하는 장이 됐다. 장애여성 공감, 향린교회만이 아니라 2011년 희망버스 등 노동운동에 연대하면서 더 많고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했다.

 

혐오 세력의 성장으로 더해진 고민

보수 정권이 들어서면서 극우 개신교를 중심으로 성소수자 혐오 세력이 성장했다. 차별금지법 제정 반대, 〈군형법〉 92조 폐지 반대, 서울학생인권조례 반대 등 사사건건 성소수자 인권 보장을 막던 세력이 2013년 홍대에서 열린 14회 퀴어 퍼레이드 이후 마포구청에 퀴어 퍼레이드에 대한 민원을 보낸다. 14회는 사람들이 많이 참여했을 뿐 아니라 홍대 상가 곳곳에 무지개 깃발을 꽂는 등 시민 호응이 좋았기 때문이다. 신촌에서 열린 15회 때는 행진하는 사람들 주변에서 집회를 하고, 동성애 혐오 피켓을 들거나 도로에 누워서 퍼레이드를 노골적으로 방해했다.

16회 때는 더 심각했다. 퀴어 퍼레이드를 막으려고 집회 신고가 가능한 한 달 전부터 행사가 열릴 만한 곳곳의 담당 경찰서에서 줄 서기를 했다. 대학로에서 열린다는 정보를 입수했는지, 혜화 경찰서 앞엔 아예 텐트까지 쳤다. 그래서 퀴어문화축제조직위원회도 서울 광장 사용 신고를 어렵사리 하고 집회 신고를 거부하는 정부에 항의하며 남대문 경찰서 줄 서기까지 했다. 퀴어 퍼레이드가 열리는 서울 광장 주변에서 보수 기독교 세력들이 반(反)동성애 행사를 했지만 3만 명이 참여하는 위세로 맞받아쳤다. 올해도 6월 11일 서울 광장에서 열리는 퀴어 퍼레이드 전날, 성소수자 혐오 세력들은 ‘대한민국 살리기 예수 축제’를 한다. 아마 11일 행사를 막기 위한 시도가 예상돼 새벽부터 한바탕 싸워야 할 것 같다.

그래도 여전히 퀴어 퍼레이드는 레즈비언, 게이, 바이섹슈얼, 트랜스젠더, 인터섹스, 무성애자 등 퀴어들에게 명절이다. 퀴어 명절을 즐기기 위해 의상과 컨셉을 준비하는 퀴어들에게 한채윤 씨가 건네는 한마디. “사회와 싸우는 여러 방식이 있죠. 다른 날은 다르게 싸울 수 있는데 이날은 행진과 축제로 싸우는 게 마음에 들어요. 웃으면서 싸우는 대표적인 싸움이잖아요. 그러니 골치 아프게 생각하지 말고 즐기러 나오세요.”


명숙

인권운동사랑방 상임 활동가. 인권운동을 하면서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다.

사진 김용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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