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서부터 화를 내야 하지? 항상 표출 방식이나 시기는 언제가 좋은지, 어느 정도까지 화를 내야 하는지…. 혐오 세력들과 부딪칠 때마다 고민됐어요.”
한국 게이 인권운동 단체 ‘친구사이’의 이종걸 활동가에게 성소수자 혐오 세력에 맞선 운동에 관해 묻자 이렇게 입을 뗐다. 그가 성소수자 혐오 세력의 조직적 등장을 체감한 것은 2010년이었다. 2007년 법무부가 성적 지향을 포함한 7개 사유(출신 국가, 언어, 가족 형태 또는 가족 상황, 범죄 및 보호 처분 경력, 성적 지향, 학력, 병력 등)를 삭제한 차별금지법을 발의해 국내외적 반차별 행동을 벌인 지 몇 년 지난 때였다. 법무부가 2010년 차별금지법을 제정하려 하자 보수 세력은 국회에서 ‘동성애차별금지법 입법 반대 포럼’을 열었다. 당시는 ‘바른성문화를위한국민연합’이나 ‘동성애차별금지법반대국민연합’이 〈SBS〉 드라마 ‘인생은 아름다워’에 등장한 게이 커플을 문제 삼으며 ‘조선일보’에 하단 광고를 낼 정도였다.
성소수자운동과 인권운동의 만남
그 후 성소수자 혐오 세력은 대부분 제도 영역에서 성소수자들의 인권을 보장하거나 차별을 금지하려고 할 때마다 나타나 가로막았다. 그들은 서울학생인권조례의 차별 금지 조항(제5조 차별받지 않을 권리)에서 ‘성적 지향’, ‘성별 정체성’, ‘임신 또는 출산’을 삭제하려 했다. 이에 2011년 12월 14일 ‘학생인권조례성소수자공동행동 (성소수자공동행동)’이 중심이 돼, 성소수자도 차별받지 않는 학생인권조례 주민 발의안 원안 통과를 촉구하며 서울시의회 농성에 돌입했다. 당시 농성을 준비했던 타리 활동가는 “인권 활동가, 장애운동가들의 지지와 도움이 있었기에 농성을 할 수 있었다. 또한 성소수자운동과 다른 인권운동이 구체적으로 만났다”며 그때를 회상했다. 기륭전자 노동자, 김진숙 지도위원, 향린교회 등 노동자들을 비롯해 수많은 단체들이 농성장을 방문하거나 지지를 표현했다.
서울시의회 농성장 근처에서도 혐오 세력은 ‘동성애 우대 조례 반대’라는 피케팅을 했다. 그러나 이에 굴복하지 않고 성소수자공동행동은 조례를 심의하는 서울시의원들과 국회의원들을 만나 설득했다. 조례 제정을 주도했던 학생인권조례제정운동서울본부 활동가들을 만나 성적 지향이 삭제된다면 성소수자들을 차별해도 된다는 메시지를 주는 심각한 일임을 전달했다. 그 결과 12월 19일 열린 본회의에서 성적 지향과 임신 출산이 삭제되지 않은 조례안이 통과됐다.
당신의 인권이 여기 있다
2014년 1월 서울학생인권조례 개정안 토론회 때도 청소년과 성소수자를 향한 언어적 비언어적 폭력이 난무했다. 그해 6월 서울시가 서울시민인권헌장제정시민위원회를 구성하고 전체 회의를 하자 성소수자 혐오 세력은 적극적으로 움직였다. 그들은 〈동아일보〉, 〈경향신문〉 등 주요 일간지에 인권헌장 반대 전면 광고를 게재하고 급기야 11월 20일에는 서울시민인권헌장 공청회를 무산시켰다. 그럼에도 서울시민위원회 6차 전체 회의에서 11월 28일 서울시민인권헌장을 의결했다. 하지만 서울시는 11월 30일 서울시민인권헌장은 사회적 합의가 안 돼 헌장 제정이 무산됐다는 보도 자료를 배포했다. 배신이었다. 3일 후 성소수자차별반대무지개행동은 긴급 회의를 열어 농성을 결정하고 12월 6일 서울시청 로비로 들어갔다. 당시로서는 최초의 서울시청 로비 점거 농성이었다. 6일간 서울시청 로비는 여러 성소수자들이 서로의 삶을 나누는 공간이자 축제의 공간이었다. 때로는 청원 경찰과 부딪치기도 했지만 즐겁게 그리고 당당하게 로비 곳곳에 퀴어의 기운을 담았다. 자신의 이야기를 담은 손 피켓과 노래, 간증 같은 사연들이 공간을 메웠다. 당사자들만이 아니라 참여연대, 여성단체연합, 쌍용자동차, 씨엔엠 노동자 등 여러 연대자들이 와 박원순 서울시장의 행태를 비판했다. 4일간의 농성은 서울시민인권헌장 제정이라는 결과를 이끌어내지는 못했지만, ‘당신의 인권이 여기 있다’는 구호처럼 국내외 성소수자들의 힘을 보여 주는 감동의 날들이었다.
조직적인 혐오 운동이 자리한 정치
시민들은 혐오에 맞서는 운동을 보며 성소수자 차별이 무엇인지 알게 됐다. 성소수자들은 면전에서 존재 자체를 부인하는 무례한 행동들이 어떻게 가능한가 돌아봤다. 혐오가 어떻게 조장되며 누가 조장하는가를 좇아가다 보면 기득권 세력, 사회적 보수 세력을 만나게 된다. 개신교의 역사가 정치와 연결됐듯이 성소수자 혐오는 종교적 신념의 차이가 아니며, 조직적인 혐오 운동은 정치와 무관하지 않다.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나라 활동가는 성소수자 인권운동의 역사는 성소수자의 존재와 권리를 부정하는 혐오 세력에 맞선 운동의 역사라며 말을 이었다.
“혐오가 조직적으로 가시화되면서 한국 사회가 어떤 논리에 취약한지 알게 됐지요. 혐오세력의 논리나 수사에 자리한 ‘성적 보수주의, 가족주의, 반공주의’가 보여서 흥미로웠어요. 2010년에 제 블로그에 ‘한국에서 대중적인 반성소수자 운동이 가능할까, 우익 정치가 이용하는 날이 올까’라는 글을 쓴 적이 있어요. 그때만 해도 한국 사회에서 미국이나 영국처럼 우익 정치와 반성소수자 운동이 연결되리라고는 생각을 못 했거든요. 반공주의가 워낙 강하니까. 그런데 종북 게이라는 말처럼 그게 서로 연결이 되더라구요. 하하.”
최근 강남역 여성 혐오 살인 이후, ‘혐오’에 대한 관심이 높다. 아니 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기독교민주당과 기독교자유당이 공공연하게 ‘성소수자 혐오와 이슬람 혐오’를 내걸며 득표 전략으로 삼았듯이 ‘혐오’는 범죄 동기가 되는 데 그치지 않고 정치 조직화의 수단이 되기도 한다. 이렇게 혐오는 우리 사회를 읽는 주요 프레임이 됐다. 마사 누스바움은 《혐오에서 인류애로》에서 이성적 검토를 거치지 않고 확장된 ‘투사적 혐오’는 사회적으로 만들어지는 것이라며 망상을 먹고 자라 사회의 공정성을 훼손한다고 했다. 지배적 집단은 혐오를 근거로 특정 집단을 예속화시킨다. 그럼에도 아직 우리 사회에서 혐오가 무엇인지, 혐오 표현과 증오 범죄는 어떻게 다른지, 어떻게 제재할 것인지에 대한 합의가 분명하지 않다. 나라 활동가는 “용어에 대한 합의가 덜 됐다고 사용하지 않는 게 아니라 둔탁하더라도 혐오라는 말을 쓰고 그 의미를 나누면 풍부해지지 않겠냐”며 “차별과 혐오는 어떻게 얽혀 있는지 배우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종걸 활동가는 “이제는 혐오 세력에 대한 즉각 대응만이 아니라 혐오와 연관지어 차별금지법 제정 운동의 담론을 만들고, 평등 담론을 어떻게 선점하면서 갈지가 과제”라며 성소수자 혐오에 맞선 운동의 지향을 짚었다. 성소수자 혐오에 맞서 운동은 평등의 가치를 붙들고 있기에 다른 소수자운동과 만날 수밖에 없다. 혐오는 존엄과 평등의 반대말이므로 우리를 존엄의 연대로 이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