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코 교사 평가제 갈등 최고조… 12명 사망
군대 동원한 신자유주의 교육 개혁… 교사 노조 강력 저항
정은희 기자
2012년 12월 1일 멕시코 국회의사당에선 엔리케 페냐 니에토 새 대통령의 취임식이 화려하게 진행됐지만 거리는 부정 선거 반대 시위와 탄압으로 얼룩졌다. 시위대는 화염병을 던지며 저항했고 경찰은 최루탄으로 시위대를 해산하려 안간힘을 썼다. 페냐 니에토 대통령은 이날 정부의 5대 목표와 대통령 결정 사항 열 가지를 발표했다. 정부의 세 번째 목표는 ‘모두를 위한 양질의 교육’이었고 이를 위해 헌법 개정과 교사 평가 제도를 도입하겠다고 말했다. 모두를 위한 교육이라는 새 대통령의 약속은 민주적인 언사였을 뿐이다. 그의 실제 목표는 교육 사유화를 위한 신자유주의 개혁과 멕시코 기득권층에 눈엣가시였던 전국교사노동조합(교사노조, SNTE)을 약화하는 데 있었다.
멕시코 정부는 빠른 속도로 이 개혁안을 추진했다. 더불어 국영 석유 기업 페멕스(PEMEX) 민영화, 복지 예산 삭감, 식료품 부가 가치세 인상 등 대대적인 구조조정을 감행했다. 대통령 취임 3년 반이 지난 현재까지 정부는 군대까지 동원해 교사들의 반발을 탄압했지만 여전히 투쟁은 진행형이다.
멕시코 정부의 교육 개혁안은 제도혁명당(PRI)과 권력을 주고받았던 우익 국민행동당(PAN)이나 중도 좌파 민주혁명당(PRD)의 지지를 받으며 빠르게 추진됐다. 대통령 취임식이 열린 다음날 세 당은 정부의 5대 목표에 관한 ‘멕시코를 위한 약속’이라는 문서에 서명했다. 이러한 의회 뒷받침 속에서 교육 개혁안 추진을 위해 필요한 헌법 개정안과 관련법 3개는 쉽게 통과됐다. 멕시코 정부와 교사들 갈등은 계속됐고 이제 최고조에 이르렀다.
교사노조 부패 빌미로 구조조정
남미 공영 TV 〈텔레수르〉 등에 따르면, 멕시코 정부 교육 개혁안의 주요 목적은 일제 고사 도입과 교육 예산 삭감을 비롯해 교사 임용 공개 시험과 교사 평가제를 도입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교사노조가 보장받은 교사 임용과 배치, 승진에 대한 자율권을 국가가 회수하고 교사 수급과 질 또한 국가가 관리하겠다는 것이다. 교사노조가 주관하던 교직 자율 관리제는 멕시코 혁명 이래 주로 빈민 가구 자녀가 교사가 될 수 있도록 해 빈민을 지원하는 역할을 했다. 빈민 출신의 교대생들은 노동자 계급 지역으로 돌아가 사회적 정의를 위한 운동을 발전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또 이 과정에서 교사노조는 멕시코 사회 운동의 주요한 뼈대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교사 임용과 승진을 둘러싼 부패 문제도 불거지면서 사회적 논란이 됐다.
이 같은 상황에서 정부는 부패를 방지한다는 명목으로 교육 개혁안을 추진했다. 하지만 교사노조는 부패 방지의 필요성은 인정하지만, 개혁안이 노조와 교사의 지역적 차이를 무시하고 자율성까지 침해한다며 반대하고 있다. 또 교사 평가제가 강제 퇴직을 명시해 궁극적으로 대량 해고로 이어진다고 반발했다. 이외에도 정부는 현저하게 낮은 교육 예산과 열악한 교육 인프라 문제는 도외시하고 모든 교육 문제를 노조 탓으로 돌린다고 비판받고 있다. 멕시코 국립자율대(UNAM) 존 애커 교수는 24일 〈텔레수르〉와 인터뷰에서 “개혁안은 멕시코 교육 제도가 1920년 초부터 보장해 왔던 혁명적인 전통을 제거하기 위한 시도”라고 지적했다.
멕시코 정부는 애초 페냐 니에토 대통령 취임 전부터 이 개혁안을 준비해 왔다. 정부는 2010년 OECD와 교육 개혁에 관한 협약을 맺고 개혁안의 기초를 만들었다. OECD는 교직 자율 관리제 폐지와 강제 퇴직제를 포함한 교사 평가제 도입을 요구했었다. 당시 이 조치는 미국의 대표적인 원조 실행 기관이자 해외 개입 정책을 주도해 온 미국 국제개발처(USAID)가 후원한 멕시코 국내외 단체들의 지지 속에서 이뤄졌다. 멕시코 경영계도 정부 교육 개혁안 시행의 주요 지지층이다.
주요 도로와 광장, 공항 점거 투쟁
교사노조는 초기부터 반대 의사를 표명했지만 이를 관철하지 못하면서 개혁안을 수용하는 주는 계속 늘어났다. 이와 대조적으로 교사노조 내 한 활동가 조직인 전국교육공무원협회 (CNTE)는 강경한 파업과 반대 시위를 조직해 왔다. 전국교육공무원협회는 주로 원주민과 빈민이 다수인 게레로와 베라크루즈, 타바스코, 와하카 주 등을 기반으로 하며 30만여 명의 교사들이 소속돼 있다.
전국교육공무원협회가 처음 대대적인 반대 시위에 나선 건, 2013년 4월 19일 멕시코시티 소칼로 광장에서다. 이들은 당시 수만 명이 참가하는 대형 농성장을 설치하고 거리 투쟁에 나섰다. 농성에는 전국에서 모인 교사 4만 명이 참가할 정도로 저항이 뜨거웠다. 그해 9월 7일에는 25개 주(연방 관할지 외 전체 31개)의 37개(전체 59개) 부문 교사들과 55개 시민 사회단체가 단결해 교육 개혁안 반대 투쟁에 가세했다. 관련법은 9월 의회에서 통과됐지만 그 뒤로도 교사들은 1년 이상 대중 시위와 파업을 고수했다.
정부는 이러한 교사들 투쟁을 폭력적으로 탄압했다. 정부는 최근 새 교육 개혁안과 교사 평가제를 이용해 투쟁하는 교사들을 해고하며 저항을 더욱 옥좼다. 전국교육공무원협회 교사들은 더욱 대대적인 투쟁에 나서 정부에 반발했다. 게레로와 베라크루즈, 타바스코, 와하카 지역 교사들은 지난 5월 15일 시위와 파업을 재개하고 학부모, 사회단체들과 함께 고속도로와 공항, 쇼핑몰, 광장을 점거하고 농성을 시작했다. 이들의 투쟁으로 멕시코 전국 8개 주의 주요 도로가 봉쇄됐다. 멕시코시티에서도 교육부 등 정부 기관 앞에서 대규모 농성 투쟁이 벌어졌다. 교사들 투쟁에 정부는 군용기를 동원해 연방 경찰을 파견할 만큼 대대적으로 탄압했다. 와하카에서 정부는 지난해 6월에도 교사들의 투쟁을 통제하기 위해 수천 명의 군과 경찰을 배치했었다. 정부는 올해 5월 21일에는 새 교육개혁법 아래 3일간 무단결근했다는 이유로 파업 중인 교사 4,253명에게 해고를 통지했다. 전국교육공무원협회에 따르면, 현재까지 교육 투쟁을 이유로 최소 25,000명이 해고됐다. 멕시코에서 이같이 대대적인 해고는 전례 없는 일이다. 급기야 6월 19일에는 와하카 노치틀란과 살리나 크루스에서 도로를 봉쇄 중이던 시위대에 경찰이 발포해 최소 12명이 사망하고, 100명 이상이 부상하면서 갈등은 다시 고조되고 있다. 실종자도 25명 발생했다. 신원이 확인된 사망자 6명 중 2명은 전국교육공무원협회 관계자였다. 정부는 애초 연방 경찰이 무기를 소지하지 않았다며 발포 사실을 부인했지만 증거가 제시되자 뒤늦게 인정해 더욱 큰 반발을 샀다. 그러자 정부는 시위 참가자들이 폭력 시위를 주도했다며 이번 사태의 책임을 교사노조에 전가했다. 전국교육공무원협회는 외부 세력이 폭력을 행사했다며 의혹을 제기하고 정부가 대화에 나서야 한다고 촉구하고 있다. 정부는 와하카 지역 교사들을 군용기까지 동원해 자의적으로 구금해 논란을 더욱 키우고 있다.
정부는 협상은 없다는 입장이다. 교사들이 파업을 중단하고 교사 평가제를 실시해야만 대화를 시작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교사들의 투쟁에 대한 멕시코 국내외 지지가 확산하면서 정부는 더욱 고립되는 모양새다. 26일에는 전국에서 수십만 명이 유혈 탄압에 항의하는 시위를 진행했다. 멕시코 주요 대학 학생들도 동맹 휴업에 나서 유혈 탄압과 교육비 인상에 항의했다. 6월 마지막 주 초에는 20만 명 이상의 의사와 간호사들이 정부의 사회 복지와 보건 제도 사유화에 맞서 24시간 파업으로 교사들 투쟁에 가세했다. 게레로 실종자 43명의 학부모, 광산 및 금속 노동자, 원주민 공동체도 교사들의 투쟁을 지지하고 있다. 투쟁에 함께하고 있는 한 교사는 〈텔레수르〉에 “승리를 위한 유일한 길은 노동자와 교사, 학생과 사회가 하나의 이유로 단결하는 것이다. 이것은 범죄적 정부이다”라고 밝혔다. 언론인 헤르난데스 나바로는 “교사들은 평등주의와 상호 부조의 전통을 지니고 있다. 1등, 2등, 3등 교사가 아니라 단지 교사만 있을 뿐이라고 믿는다”라고 〈네이션〉에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