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등학생운동이 1986년, 87년부터 시작해서 94년까지 이어진 민주화운동의 맥락에 있던 운동이라면, 청소년운동은 2000년대 초반 청소년 인권문제에 초점을 맞춘 운동이죠. 물론 당시 중·고등학생운동을 하는 단체들이 청소년운동으로 오기도 했지만요. 청소년운동은 90년대 후반부터 두발자유 운동인 ‘노컷운동’을 온라인 서명 운동으로 하면서 드러났다고 볼 수 있어요.”
2006년부터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아수나로)’ 활동을 시작한 공현 활동가가 말한 이전 운동과의 차이점이다. 2004년 하반기에 ‘전국중고등학생연합’에서 활동했던 사람들, 그리고 경남 진주의 ‘행동하는 청소년’이나, ‘청소년의 힘으로’에서 활동했던 사람들 등이 청소년운동을 발전시키기 위해 ‘청소년인권연구포럼 아수나로’를 만들었다. ‘연구포럼 아수나로’가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로 바뀐 것은 2006년이다.
“청소년운동을 하다가 스무 살이 넘게 되고 그러면 청소년이 아니니까 직접 청소년운동을 못 하니 지원하자고 해서 만든 게 연구포럼이죠. 청소년운동의 발전이 어려운 게, 운동하던 청소년이 나이 먹으면 청소년운동을 안 하니까. 3~4년 주기로 단체가 망한다는 말까지 나올 정도였으니까요. 청소년운동을 쭉 가게 하는 게 뭘까 고민한 거죠. 청소년과 비청소년을 구분하지 않는 전국조직을 만들자는 의미로 전환한 거죠. 저도 아수나로는 10년은 가야 한다는 고민으로 지금까지 하는 거고요.”
청소년운동의 특성상 시간이 흐르면 생물학적 나이가 청소년이 아니게 될 때 주저하게 되는 현실적 어려움이 있다. 아수나로의 출발은 그곳에 있었다. 그리고 청소년 대부분이 학생이고 학교에서 인권 침해가 많다 보니 아수나로는 두발자유, 체벌 등 학생인권 문제를 많이 다뤄왔다. 학생인권조례가 여러 지역에서 만들어지고 체벌이 법적으로 금지됐지만, 아직도 사라진 것은 아니다. “낡은 새로움. 변화한다기보다 낡은 의제가 누적되고 확대되는 것이랄까. 처음에는 두발자유, 체벌 의제에서 시간이 지나면서 강제야자나 0교시 같은 것으로….” 공현활동가는 두발자유, 체벌, 강제야자 폐지 등 청소년 의제는 계속 쌓이지만 해결됐다고 말하기 어렵다며 말을 이었다.
“어제도 대전에 있는 학교에서 학생을 엎드려뻗쳐 시키고 때려서 문제가 됐어요. 두발이나 체벌은 지역 편차가 심해요. 예를 들면 〈학생인권조례가 있는 곳하고 없는 곳하고 다르죠. 사실 체벌은 교육청의 의지가 있으면 멈출 수 있는 문제지만 손 놓고 있어요. 선생이 가르치다 보면 때릴 수 있지 하는 태도니까.”
보수 세력의 공격대상이 된 아수나로
〈학생인권조례는 그동안 산재해 있는 학생 인권 의제들을 모아 제도적으로 풀려고 했던 시도다. 조례가 있다고 학생 인권이 보장되는 건 아니다. 게다가 2008년 광우병 의심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 촛불 집회에 참여했을 때, 2013년 ‘안녕들하십니까’ 대자보를 썼을 때, 2014년 세월호 리본을 나눠줄 때, 학교가 청소년들을 징계했듯이 학교는 청소년의 실천을 가로막고 있다. 2015년에도 대전에 있는 아수나로 중3 활동 회원이 학교의 두발규제와 체벌을 비판하는 전단지를 배포하다 교사명령 불이행과 ‘학생을 선동하여 질서를 문란하게 한 행위’라며 교내 봉사 징계가 내려졌다. 아수나로가 발행하는 <요즘것들>에 학교에서 일어난 인권침해를 실으면 학교의 명예를 실추시켰다며 교무실로 불려가기 일쑤다. 특히 아수나로가 2010년에 <동아일보>, <조선일보>에 ‘전교조를 독려하는 아수나로’라고 대문짝만하게 실리면서 아수나로 활동은 보수 세력의 공격대상이 됐다. 2010년 일제고사 반대운동을 전교조가 적극적으로 하도록 독려하자는 회의록을 카페에 공개로 올린 걸 보수언론이 알고 비판했다. 이때 청소년의 정치활동이 문제라는 사설이 나오기도 했으니 아수나로는 ‘진보적이고 좌파적이다’라는 연상이 자연스럽게 된다.
공현 활동가는 아수나로 활동이 2008년, 2010년, 2012년에 문제의식의 주요 변화가 있었다고 짚었다. 2008년 촛불 집회에 참여하면서 회원이 많이 늘었고 청소년 보호주의에 대한 문제의식이 활발했다. 청소년의 집회 참여를 금지하는 학교나 집회에 참여한 학생들을 보호하겠다는 집회 참여자들을 흔하게 볼 수 있었다. 2010년에는 일제고사 반대나 교육감 선거에 참여하면서 정치와 제도에 대한 고민이 시작됐다. 당시 진보교육감을 지지하는 것만이 아니라 ‘기호 0번 청소년 교육감 후보’로 나서기도 했다. 일제고사 반대운동은 교사나 학부모 단체들과 함께 벌인 운동으로 초등학교 일제고사 폐지라는 성과를 냈지만, 고등학교 모의고사는 폐지하지 못해 입시 위주 교육제도를 흔드는 것으로 나아가지는 못했다. 또한, 일제고사 폐지운동에서 교육운동에 대한 청소년의 접근이 학부모나 교사들과 다르다는 것을 느꼈다.
2010년 10월, 경기도가 전국 최초로 <학생인권조례>를 공포하고 시행한 이후 서울에서도 ‘<학생인권조례> 제정을 위한 서울 운동본부’를 꾸리고 <학생인권조례> 주민발의 운동을 시작했다. 이때 아수나로 회원들은 길거리를 누비며 주민발의 서명을 받았다. <학생인권조례>가 제정된 이후인 2012년과 2013년에는 조례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한 활동이 주였다. 2010년 몇 개 학교들의 공개된 학칙을 조사하고 학생들로부터 사례를 수집하는 방식으로 진행한 ‘연애 탄압 실태조사’가 <학생인권조례> 제정 이후에는 성적 자기결정권에 대한 운동으로 이어졌다. 나아가 청소년 성소수자, 이주민, 장애인 등 소수자와 차별 문제는 아수나로를 비롯한 청소년 인권 운동의 과제가 됐다. ‘십대 섹슈얼리티 인권 모임’ 같은 모임도 생겨났다.
지속 가능한 활동에 대한 고민, 사무실과 상근자
아수나로는 올해 ‘학습 시간 줄이기’에 주력할 생각이다. 교육 문제를 학생 입장에서 푸는 일이다. 실제 학생들이 과도한 학습을 하는 현실이라 학습시간을 줄여야 다른 일이 가능하다. “2차적으로는 시간이 있어야 운동도 하고 학교 밖에서 무슨 일이 있는지 정보도 얻을 수 있잖아요. 그래야 청소년운동도 할 수 있지 않나”하는 문제의식이다. 다른 한 축으로는 청소년 회원을 늘릴 계획이다. 아수나로는 서울, 수원, 광주, 울산, 부산, 대구에 지부가 있는 전국조직이다. 활동 회원에 대한 규정이 까다로운 편이지만 여러 지역에 지부를 만들려고 한다. 그러기 위해선 안정적인 활동을 할 상근자도 둘 계획이다. 사무실을 만든 지 6년이 됐지만, 상근자는 없었다. 후원금을 모아 활동비를 조금이라도 줄 계획이다. 아수나로 활동의 지속가능성을 위한 기반 마련 고민이 상근자를 두자는 데까지 이르렀다. 아수나로는 보호주의와 나이주의와 같은 청소년인권의 근본적 문제나 법제도에 대해 본능적으로 문제제기하는 활동을 계속 이어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