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바지를 입고 와서 다행이에요. 혹시라도 드레스 입고 오면 어쩌지 하고 혼자 고민했는데.” “드레스는 ‘김사월 X 김해원’ 할 때 입는 거고, 김사월은 청바지죠.” 김사월이 웃으며 대답했다. 김사월은 포크 뮤지션이다. 홀로 연주하기도 하고, 동료인 김해원과 ‘김사월 X 김해원’이라는 포크 듀오로 활동하기도 한다. 각각 2015년에는 듀오로, 2016년에는 솔로로 한국대중음악상 포크 부문에서 수상하기도 했다. 주로 김사월을 수식하는 키워드는 ‘관능미’와 ‘소녀’다. 그리고 지금, 한국 사회의 주된 이슈는 ‘여성 혐오’다. 왠지 김사월이 이에 대해 말하고 싶은 게 있을 것 같았다.
단 _ ‘김사월 X 김해원’에서의 김사월과, 김사월로 연주할 때의 김사월은 같은 사람이에요?
김 _ 달라요. 교집합은 있겠지만 목적이 달라요. 한 사람이 할 때는 개인의 기억이나 기록에 관해 얘기하는 편에 가까운데 둘이 연주할 때는 조금 더 이성애적인 포인트가 있다 말할 수 있을까?
단 _ 최근에는 어떻게 지냈죠?
김 _ 솔직히 말하면, 2015년에 한국대중음악상을 받은 다음부터 멘탈이 너무 안 좋아졌어요. ‘어떻게 해야 하지? 나는 잘 못하는 사람인데 다들 나를 좋게 본 거야? 나는 상 받은 사람이니까 잘해야 해?’ 몇 달 동안은 즐겁지 않았어요. 그러다 최근에 “젊은 여자” 단독 공연을 한 다음에야 조금 좋아졌어요. ‘어찌하겠어. 편하지 않게 하면 나만 힘든데.’ 그렇게 생각했어요.
단 _ 김사월이란 이름으로 무대에 오를 때는 어떤 감정이에요?
김 _ 기쁘고 감사한 마음 반, 외롭고 쓸쓸한 마음 반이에요. 너무 외롭고 세상에 나 혼자밖에 없는 느낌…. 어떤 날은 정말 다 어둠인 것처럼 느껴지기도 해요. 관객들 지나가는 통로 끝이 어둠 속의 빛처럼 느껴지는데, 그 사이로 안 가면 내가 죽을지도 몰라… 이런 감정을 느껴요. 가끔 우는 분들이 계셔요. 이 시간은 제가 홀로 노를 저어야 하기 때문에 굉장히 외로운데, 듣고 함께 울어 주시는 분이 있어서 굉장히 감사하죠.
단 _ 아티스트로서의 김사월과 생활인으로서의 김사월 간에 거리감을 느끼나요?
김 _ 화보를 찍고 예쁘게 나오면 매력적인 사람처럼 보이겠죠. 하지만 개인적으론 그렇지 않다고 생각해요. 저는 매력 있거나, 매력을 다른 사람에게 어필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에요.
단 _ 공연 제목이기도 했지만 <젊은 여자>라는 노래, 그런 마음이 드러나는 것 같기도 해요.
김 _ 무엇이 되려고 하는데 무엇이 되지 못하는 상태. 제 첫 앨범 <수잔>의 대부분이 그런 내용이에요. ‘이 음반의 자아는 너무 병들어 있고 좋은 사람으로 보이질 않아. 그래서 나는 김사월이라는 아이인데, 내가 아는 수잔이라는 어떤 아이의 이야기를 들려줄 거야’라는 식으로 설계했어요. 앨범이 진행될수록 수잔이 좋지 않은 상황에 빠지는데, <향기>에서 현실로 내려오게 돼요. <새>에서는 “내가 이렇게 쓰레기지”라며. 상대에 대해 말하는 것 같지만 실은 자신에게 말하는 거잖아요. 물론 그게 다 전데요. (웃음)
단 _ 수잔은 무엇을 원하나요?
김 _ 수잔은 외롭지 않기를 원하죠. 항상 혼자 남게 되는 사람이니까. 그래서 자신이 예쁘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따라다니는데, 결국은 충족하지 못하고 계속 외로운 사람인 것을 느끼다가 “헐” 하고 끝나는 거죠. (웃음)
단 _ 외롭지 않다는 건 어떤 상태일까요?
김 _ 저도 그걸 알고 싶어요. 방법이 있기는 할까요? 잘 모르겠어요.
단 _ 수잔은 매력이 있는데 자기 자신이 가진 게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인가요? 아니면 (사회에서 통상적으로 말하는) 매력 없는 사람인가요?
김 _ 매력이 없는 거죠.
단 _ 사월 씨는 “예쁘다”는 말을 많이 들으시는 편이에요.
김 _ 무조건 예뻐지려고 노력하는 거죠. 그 노력을 보고 예쁘다고 해 주시는 건데, 기쁘죠. 예쁜 모습이 되려고 노력하면서 한편으론 계속 자기 비하를 하는 게 이상한가요? 제 입장에선 그게 더 자연스러운 것 같아요.
단 _ 얼마 전엔 강남역에서 살인 사건이 있었죠. 아직 논쟁 중이긴 하지만 사회의 만연한 여성 혐오 때문이라는 의견이 힘을 얻고 있고, 또 많은 사람이 여성 혐오가 만연한 사회를 바꾸어 나가자며 행동에 나서고 있기도 해요.
김 _ 내가 살아가는 공간에서 다른 성별과 다름없이 동등하게 살아가고 싶은데, 오히려 “죽이지 말아 달라” 해야 한다는 게… 한동안 밖에 다니기가 너무 무서웠어요.
단 _ 원래 강남역 앞에서 마음 맞는 뮤지션들과 공연을 하려고 했다가 사정상 취소되었다 들었어요.
김 _ 가려던 날이 서울시에서 (강남역에 붙어 있던) 추모 포스트잇을 수거해 간 날이었거든요. 그래서 다시 회의를 해서 일단 연기하기로 했어요. (여성이란 존재가) 같은 일을 겪는 동지인 거잖아요. 그렇게 서로에 대해 유대하고 싶고, 그게 중요한 것 같아요. 생존을 위한 일이니까.
단 _ 사월 씨는 자신을 ‘여성 뮤지션’으로 강하게 정체화하는 편인가요?
김 _ 인간의 보편적인 감정에 관한 노래를 하고 있죠. 하지만 여성이니 일단 (업계에서) 수적으로 밀리고, 종종 대상화되기도 하고…. 트위터에서 “못생겼다”는 멘션을 맥락 없이 받은 적도 있고, 또 여성 뮤지션들은 결혼한 다음에 유독 더 활동하기 어려워하잖아요. 남성 뮤지션들은 결혼해도 영향을 크게 받진 않는 것 같은데, 여성 뮤지션에겐 유독 연애 감정과 유사한 것을 더욱 기대하는 것 같기도 해요.
단 _ 예전에 슬럿 워크(Slut Walk)에서도 그랬지만, 남성들은 ‘여성들이 옷을 야하게 입어서 그래’라는 식의 저열한 논리로 자신들의 여성 혐오를 합리화시키기도 하는데요.
김 _ 남성도 남성으로서의 매력을 뽐내는 것이고, 여성도 여성으로서 자신의 매력을 뽐내는 것이죠. 그런데 그걸 책임 전가 하듯 표현하는 것은 권력의 문제 때문인 것 같아요. 세상을 오랫동안 헤테로(heterosexuality, 이성애) 남성들이 지배해 왔기 때문에 여성을 대상으로 인식하는 태도가 현대에도 남아 있다고 생각해요. 저도 자라는 과정에서 어머니가 여성으로서 제가 매력 없는 지점에 대해 많이 지적했어요. 그런 것이 어떻게 보면 저 자신의 자기 혐오와 맞닿아 있기도 하고. 제가 남성이라면 그렇지 않았겠죠.
단 _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김 _ 트위터에서 본 글인데 여기 리트윗해도 될까요? (웃음) “여자는 항상 남자의 시시덕거림의 대상이지만, 남성의 시선에 따라 그럴 ‘급’이 나누어지고 그 급을 거부하는 여성은 주제도 모른다고 또 공연한 놀림이 된다. 남자 우리의 욕망이 될 만큼 예쁘지 않은데 남자를 무시하는 것이 가장 큰 죄악으로 낙인찍는다(@sadlyamora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