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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림, 성동훈을 듣다

“사진은 물음표를 던지는 것”
2016년 6월 22일Leave a comment15호, 고급ZineBy 신나리 기자

인터뷰 하림 / 정리 신나리 기자 / 사진 정운

지금, 이곳의 맨얼굴을 바라보는 사진가가 있다. 어렸을 때부터 자신의 성을 팔아 가족을 먹여 살리는 사람을 찍고, 자본주의의 또 다른 얼굴인 쓰레기로 뒤덮인 공간을 찍는다. 사진을 통해 우리가 타인에게 행하는 인식의 폭력을 담아내고 여기에 질문을 더하는 사람, 하림이 성동훈 사진작가를 만났다.

 

하림(하) 오랜만에 만났다. 최근 취직했는데 직장 생활은 어떤가.

성동훈(성) <포커스뉴스>라는 신문사에 사진 기자로 취업한 지 1년 조금 안 됐다. 언론사에서는 다른 속도감으로 사진을 찍는 재미가 있다. 그동안에 항상 호흡을 길게 하는 작업을 했는데 언론사라는 환경에서 다른 속도감을 느낄 수 있다.

 

하 그 속도감이 재미있나.

성 일단 사진 기자로서 체감하는 속도감은 엄청 빠르다. 현장에서 빨리 대응하고 결과물도 빨리 내야 한다. 대신에 혼자 작업할 때보다 더 다양한 현장을 다녀 볼 수 있다. 사회적인 문제들을 바라보는 것도 재밌다. 회사도 일반 보도 사진과는 다르게 하려는 기조가 있고, 나름의 노력을 한다. 나쁘지 않은 환경에서 일한다고 생각한다.

 

하 언론사에서 일하는 게 다큐멘터리 사진가로서 중립적인 가치를 익히는 과정도 되나.

성 사회는 균형이 중요하다. 진보만 있는 세상도 건강한 세상이 아니고 너무 보수적인 사회도 건강한 사회는 아니다. 두 개의 가치관이 양립해야 한다면 균형을 맞춰 가는 게 중요한데, 그런 면에서는 괜찮다. 기자로서 현장에 나가서 사안을 볼 때 내가 보수든 진보든 개인 색깔은 개인적인 색깔인 거고, 내가 기존에 옳다고 생각하는 것도 한번 의심하게 된다. 그런 점에서 사안을 다르게 볼 기회가 된다. 사진이라는 큰 테두리 안에서 다양한 걸 접해 보는 게 좋다고 생각했다. 기자를 ‘기레기’라고 하는 사람도 있지만, 나름의 시선과 색깔을 지닌 기자를 해 보자는 생각도 했다. 사람이 사진을 찍는 순간 중립은 없다. 모든 사진은 관점을 갖고 있다. 기계적으로 습관화돼서 찍는 누군가의 결과물이라고 해도 생각이 들어 있다. 내가 생각한 걸 보게 된다. 하지만 사진이라면 다큐멘터리나 저널리즘이나 지켜야 할 무조건적인 부분이 있다. 물음표를 던지는 것이다. 우리가 점을 찍으면 안 된다.

 

하 그동안의 작업을 보면 위험한 순간이 많았을 것 같다. 필리핀에서 만난 게이를 찍은 것도 그렇고.

성 필리핀에서 만난 게이는 성을 팔면서 마약까지 거래하는 정의 내릴 수 없는 삶을 사는 사람이었다. 필리핀에 갔을 때 관광지가 아닌 로컬 지역에서 지냈다. 로컬 중에서도 빈곤층이 많이 모여드는 곳이다. 그곳에서 지내면서 거의 매일 같은 사람을 같은 장소에서 봤다. 매일 왜 거기에 서 있나 궁금해서 물어봤더니 약을 판다고 하더라. 더 얘기하다 보니 자기 몸을 파는 동시에 포주였다. 약도 팔고 자기도 파는 사람. 필리핀 빈곤층 모두가 그렇다고 하면 일반화의 오류겠지만, 딸이 있으면 성매매를 시켜서 온 가족이 그날 먹고사는 사람들이 많았다. 아들을 가진 집안이라고 다르지 않다. 필리핀의 실업률은 엄청나다. 제대로 된 직장에 취업하기 어려우니 성매매로 사는 경우가 많았다. 어렸을 때부터 아이들이 유럽에서 오는 게이 관광객을 상대로 성을 파는 일에 노출되는 것이다. 그렇게 거리의 삶을 시작하더라. 그걸 알고 충격을 많이 받았다. 유독 동남아에 왜 이런 이들이 많은지 궁금해졌다. 그 후 내가 사진 찍는 사람이라는 것을 밝히고 밤에 그 친구와 같이 다니며 사진을 찍었다. 그 친구가 마약 거래를 하며 쫓기는 상황이라 매일 찍을 수는 없었다. 없어지면 찾지도 못했다. 취재가 꾸준히 이어질 수 없는 상황이었고 만났다 하더라도 약에 취해 있었다. 나도 다른 작업과 병행하던 중이어서 그 친구를 찍는 작업을 몇 년 못 했다. 작년에 다시 갔더니 그 거리에 서 있어야 할 사람이 며칠이 지나도 안 보이더라. 주변에 물었더니 죽었다고 했다. 더 충격적인 건 시체가 어디 있는지도 모르는 거였다. 공동묘지를 가서 뒤졌지만 찾을 수 없었다. 내가 아는 그 친구의 이름이 진짜가 아닐 수도 있고. 그렇게 작업이 중단됐다.

 

하 미완으로 끝난 작업인데, 지금까지 느낀 점이나 결론이 있다면?

성 내 작업을 돌아보니까 대부분 자본과 관련된 것들이었다. 사람들이 자본주의에 익숙해지며 인식의 폭력을 쓰기 시작했다. 다른 사람에게 직접 위해를 가하는 것만이 폭력이 아니다. 내가 너보다 물질적으로 우위에 있기 때문에 돈으로 너를 살 수 있고 돈으로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생각도 폭력이다. 처음에는 한 사람의 삶을 바라본 거였는데, 그 사람이 왜 이런 상황에 빠져 있는지를 생각해 보면 자본의 문제로 귀결됐다. 내가 한 작업을 돌이켜 보면 그 기저에는 자본주의가 있었다.

 

하 그 전에도 ‘자본’과 관련된 작업이 있지 않았나.

성 쓰레기 산을 찍었었다. 필리핀에서 시작해서 인도네시아에서 마무리한 작업이다. 동남아시아를 가 보니 쓰레기로 이루어진 산이 있더라. 캄보디아부터 인도네시아, 세부까지 모두 쓰레기 산이 있었다. 쓰레기 산 안에 학교도 있고 커뮤니티도 있다. 쓰레기는 얼마나 세련되게 처리하느냐 못 하느냐의 문제인데, 그 나라들은 쓰레기를 그냥 쌓아 둬서 결국 산을 만들었다. 인도네시아의 쓰레기 산은 여의도 면적만 하다. 쓰레기 산도 자본과 관련돼 있다. 우리가 사는 자본주의 세상에서 중요한 것은 소비 아닌가. 자본주의는 끊임없이 물건을 새로 만들고 사람들이 그걸 사게 한다. 소비가 늘어나면 자본이 더 빨리 돌게 되니까. 이렇게 자본주의 시스템이 가동되면 한쪽에서는 쓰레기가 쌓인다. 그 쓰레기가 모여 산을 이루는 거고.

 

하 그 사람들은 자본의 보물이자 결과물을 쓰레기같이 쌓아 놓고 꼭대기에서 사는 사람들이다. 역설적이고 블랙 코미디 같다.

성 우리는 휴대 전화라는 실체, 상품을 보지 않나. 그런데 쓰레기장에서 태어나 먹고 자는 사람들은 우리가 만지고 쓰고 버린 것의 껍데기, 쓰레기를 본다. 껍데기만 남은 휴대 전화를 보고 이게 뭐였는지 생각한다. 부시맨이 콜라병 보고 콜라의 맛을 상상하는 것과 비슷하다. 우리가 치킨을 먹고 버렸는데, 치킨을 먹어 본 적이 없어서 먹다 버린 치킨, 상한 치킨을 먹고 이게 치킨이구나 아는 거다. 필리핀에서 종일 일하면 생수 한 병 살 수 있다. 나머지는 쓰레기장에서 나오는 것들을 먹어야 한다. 거기에서 태어난 아이들은 이름도 없고 나이가 몇 살인지도 모른다. 쓰레기를 먹고 죽는 사람도 많고 아픈 사람도 많다. 다 상한 쓰레기를 집에서 국 끓여 먹고. 그 자체가 우리가 알고 있었던 자본의 모습과 너무 다른 모습이었다.

 

하 상을 받은 작업도 있다. ‘코피노(필리핀에 남겨진 한국인 2세)’를 찍어 2013년 12월에 온빛 사진상을 받았다. (온빛 사진상은 국내 최초로 다큐멘터리 사진가들이 제정해 다큐멘터리 사진가에게 주는 상이다.)

성 코피노는 인식이 행하는 폭력의 전형을 보여 준다. 단순히 성매매를 통해 코피노가 태어난 것이 아니다. 유학생, 사업가, 관광객 등 직업도 다양하고 20대부터 70대 할아버지까지 나이도 다양하다. 아직도 추산만 할 뿐 정확한 통계가 없다.

 

하 코피노를 자본의 관점으로 보면 어떤가.

성 한국 사람들이 필리핀만 쉽게 자주 가는 게 아니다. 호주, 캐나다, 미국, 다 많이 간다. 그런데 왜 거기는 코피노와 같은 사람들이 많이 없을까. 필리핀이 한국보다 못사는 나라이기 때문에 그 나라 사람들 역시 쉽게 생각한 것 아닐까. 내가 너보다 조금 더 가졌기 때문에 나는 너보다 위에 있다는 생각으로 쉽게 대한 것 아닐까. 우리가 저개발국에 가서 욕망을 풀기 때문에 코피노가 생긴 것이라고 봤다. 그게 핵심이었다. 피부색에 대한 무시를 유추해 보면, 우리는 커 오면서 미국은 대단하고 동남아는 못사는 나라라고 무의식적으로 받아들여 왔다. 그런데 이제 우리는 이만큼 산다는 거다. 그리고 내가 너희 나라에 돈을 쓰러 간다, 나는 너보다 돈이 더 있다, 이런 생각들이 코피노라는 결과를 낳지 않았을까. 우리가 아시아 문화의 일번지, 아시아를 선도하는 문화 강국, 이런 얘기하는데 인식까지 과연 그럴까. 이런 문제가 있다는 걸 간과하지 말자. 생각을 좀 해 보자는 문제의식에서 나온 작업이다. 누구나 이게 잘못됐다는 걸 알고 있다. 올바르지 않은 방향이라는 것을 알지만, 여전히 일어나고 있다.

 

하 앞으로 계획하거나 진행하고 있는 작업이 있나.

성 전쟁터를 가 보고 싶다. 남자로서 혹은 사진을 찍는 사람으로서 갖는 영웅 심리가 아니라 전쟁은 인간이 할 수 있는 짓거리의 끝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전쟁조차 자본을 이유로 일어나지 않나. 사람이 할 수 있는 원초적인 마지막 집단행동, 국가라는 이름을 띈 집단행동이 아닐까 싶다. 그래서 기회가 된다면 가 보고 싶다. 결국 우리가 같은 시대를 사는데, 사회적으로 일어나는 모든 일은 크거나 작거나 사안이 깊거나 얕거나 결국에는 하나의 틀 안에 있다고 본다. 전쟁도 마찬가지고.

 

하 전쟁터 가서 뭐 찍고 싶나.

성 그건 가 봐야 알 거 같다. 카메라를 든 사람의 가장 큰 힘은 그 현장에 있을 수 있다. 내가 거기에 있기 때문에 그 사진이 나온다. 그건 카메라를 가진 사람의 특권이다. 나라는 사람이 죽기 전에 한번 카메라를 들고 목격하고 싶은 곳, 내가 서 있고 내 두 발로 서서 목격하고 싶은 것 중의 하나가 전쟁터다. 물론 가서 오줌을 지리고 사진 한 장도 못 찍을 수 있지만 일단 현장을 가 봐야 내가 어떤 사진을 찍어야 하는지 알 수 있다. 무언가를 본다는 거 자체가 중요하다. 그것을 봐야 인식의 변화가 생기고.

 

하 한국 사회에서 가장 찍어 보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

성 아직 무엇으로 이미지화할지는 모르겠지만 사람들에게 내재한 분노를 찍어 보고 싶다. 많은 사회 현상은 결국 잠재된 분노가 발휘되며 나타난 것이라고 본다. 한때 이종 격투기 붐이 일어났는데, 권투는 쌓여 있던 분노와 폭력을 타자를 통해 해소하는 운동이기도 하다. 예전에 경기를 보는 관객을 슬로 모션으로 본 적이 있다. 그게 엄청 묘했다. 주먹으로 치고받는 것을 보면서 ‘우와’ 소리를 지르고 환호하는 모습이 오래 남았다. 지금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느끼는 내재적 분노가 있을 거다. 그걸 각자 드러내기도 하고 참기도 하며 살 텐데, 우리 각자가 품은 분노를 찍어 보고 싶다.


 

하림 – 음악가이자 화가 그리고 기획자. 자기만의 음악 색이 또렷한 보헤미안 뮤지션. 한국의 히피라는 호칭이 붙는다.

성동훈- 사진작가이자 기자. 자본이라는 자신만의 주제로 세상의 이곳저곳을 담아낸다. 언젠가 전쟁터의 민낯을 찍어 보고 싶은 꿈을 갖고 있다.

 

(워커스15호 2016.0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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