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성인
그리스에서 태어나 법학을 전공하고 프랑스로 건너가 알튀세(L. Althusser) 밑에서 철학과 사회학을 전공한 풀란차스(Nicos Poulantzas)는 1968년 《정치권력과 사회 계급》을 출판하여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그는 자본주의 국가 논쟁에 있어서 밀리반a(R. Miliband)와 쌍벽을 이루는 네오 맑시스트이다.
이 둘은 우리에게 그 악명 높은 밀리반드-풀란차스 논쟁으로 알려졌지만, 사실 이 논쟁은 68혁명 이후 자본주의 위기와 스탈린주의에 대한 재평가 등이 진행되면서 마르크스주의 정치학이 암흑에서 벗어나 새롭게 부활하는 중요한 기폭제가 되었다. 특히 풀란차스는 마르크스주의가 주로 사회 과학에 대해 우월한 지위를 갖게 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 ‘전후 시기 가장 중요한 마르크스주의 정치 이론가’였다.
그의 국가론의 핵심은 알튀세에 의해서 재발견된 ‘상대적 자율성’이다. 밀리반드는 정통 마르크스주의에 입각해 지배 계급의 다원성을 강조하는 다원주의를 비판하는 도구주의적 국가론을 전개했다. 국가란 지배 계급의 도구이며, 국가 개입에 의한 사회 개혁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밀리반드의 도구주의적 국가론에 대해 풀란차스는 ‘상대적 자율성’이란 논의를 가져오는데, 그는 전통적 마르크스 국가론이 갖고 있는 경제적인 환원성, 계급 도구관을 비판하고 단순한 경제 결정론에서 벗어난 방식에 의해 상부 구조로서의 국가의 고유한 의미를 파악하려고 했다.
국가의 자율성에 관한 그의 논의는 첫째, 구조의 차원에서 정치 영역이 경제 영역에 분리되어 자율성을 갖는다. 둘째, 국가가 지배 계급에 대해서 ‘상대적 자율성’을 갖는 것이다.
그는 알튀세가 “구조화된 총체성”이라는 사회관을 주장함으로써 상부 구조의 ‘상대적 자율성’, 즉 정치나 이데올로기는 나름대로의 ‘상대적 자율성’을 가지며, 특정 국면의 결정에 있어서 토대에 영향을 미치기도 하는 능동적 요소로 부각된다는 것을 강조할 수 있었는데, 이와 같은 문제 영역에 기반을 두고 자신의 정치 및 국가 이론을 발전시켰다.
그래서 풀란차스는 생산 양식에 대해 경제가 최종 심급에서 규정하는 복합적 전체이며, 각 층위 간의 관계는 중층 결정(Overdetermination)의 관계를 맺고 있다고 주장한다. 또 자본주의 생산 양식에서는 생산 과정 그 자체 속에서 잉여 수취가 자연스럽게 이뤄지기 때문에 경제 층위와 정치 층위 사이의 관계는 ‘상대적 자율성’으로 특징지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다시 말하면 국가독점자본주의론이 갖고 있는 경제 환원론, 계급 도구관 등을 비판하고 상부 구조 현상으로서의 국가의 고유한 의미를 파악해야 한다고 하면서 국가의 ‘상대적 자율성’으로 유도했던 것이다. 이것은 지배 계급 내부에 존재하는 특정한 권력 소유 집단의 이익이 반드시 일치하지 않음을 강조하는 것이다.
알튀세의 구조주의론을 자신의 정치 및 국가론에 도입하여 구조주의적 국가론을 창출해 낸 풀란차스는 정치와 경제의 자율성에 관한 논의에서 국가의 기능을 ‘정치적 실천’의 관점에서 파악함으로써, 경제 ‘부문’ 구조에 대한 국가의 독립적인 권력을 개념적으로 도출하고 있다.
그에게 있어서 국가란 자본주의적 생산 양식의 고유한 국가이면서 지배 계급의 정치적 이익 안에서 응집의 기능을 수행하는 것을 뜻한다.
그렇지만 이와 같은 국가의 기능은 지배 계급과의 관계에서 국가가 얻을 수 있는 ‘상대적 자율성’을 설명해 줄 뿐 국가와 경제의 관계 즉, 구조적 차원에서 국가가 어떻게 자율성을 획득하는가에 대한 명확한 답변을 제시해 주고 있지는 못하다.
결국 풀란차스는 구조적 차원에서 국가 자율성을 다룰 때 국가의 자율적인 측면보다는 경제라는 구조로부터의 구속이라는 측면을 부각시키려는 숨겨진 의도를 가지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
국가를 ‘사회 구성체의 응집인자’로 개념화하고 있는 풀란차스는 자본주의 국가의 일반적 기능을 논의하기 위해서 그람시의 ‘헤게모니’ 개념을 도입한다. 그람시가 사용하는 헤게모니란 피지배 계급에 대한 부르주아적 가치와 규범의 이데올로기적 지배를 가리킨다.
헤게모니는 국가가 아니라 지배 계급의 정치적 실천에 관련되는 관념이지만 풀란차스에게 있어서 국가와 헤게모니 개념은 밀접한 관련을 맺는다.
그는 헤게모니 개념을 한 지배 계급의 다른 지배 계급들에 대한 특별한 지배의 의미로 사용한다. 그에 의하면 자본주의 사회 구성체에는 독점자본주의론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단일 지배 계급의 단결되고 동질적인 통일체가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복수의 지배 계급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 점이 국가 자율성에 대한 맑스와 풀란차스의 근본적인 차이점을 나타내는 중요한 요소이다. 즉, 마르크스는 지배 계급이 단일하게 구성되어 있으며 분열되는 것은 예외적 상황으로 파악했으나, 풀란차스는 그것을 일반적인 상황으로 이해한다.
복수의 지배 계급이 존재하는 까닭에 각기 서로의 이익을 최대화하기 위한 계급 투쟁이 발생하게 되며 바로 여기서 국가가 지배 계급들에 관여할 소지를 찾게 된다. 그런데 국가는 지배 계급들 간의 계급 투쟁을 ‘파워 블럭(power bloc)’의 형성을 통해 헤게모니 계급을 창출함으로써 해결하고자 한다.
요컨대 국가는 헤게모니를 장악한 계급과 더불어 다양한 지배 계급 분파를 ‘파워 블럭’이라는 정치적 현상으로 통일시키는 응집 인자의 기능을 수행한다는 점에서 지배 계급의 분파들로부터 자율성을 지닌다.
그러나 국가와 연계된 지배 계급들 간의 이러한 관계는 특유한 정치적 통일성 내에서 기능하고 있다는 점에서 상대적이다. 즉, 자본주의 국가는 지배 계급의 정치적 이해를 대표할 뿐만 아니라 지배 계급의 이해를 기반으로 하여 자본주의적 생산 양식을 재생산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왜 자본주의 국가가 지배 계급의 정치적 이해에 봉사하는 계급성을 지니는지에 대해서는 명확한 해답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또 국가의 ‘상대적 자율성’이 어떠한 국가의 내적 메카니즘에 의해서 나타나는지를 밝혀내지 못했다. 이는 밀리반드의 지적처럼 계급 권력과 국가 권력을 구분하지 못하고 국가를 하나의 제도적 장치라기보다는 사회 계급과 갖는 관계 혹은 사회 구성체에서의 기능으로 규정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풀란차스가 마르크스주의 정치학을 재구성하려고 했던 노력들은 결국 우리에게 마르크스주의 정치 이론을 새로 시작해야 하는 계기가 되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할 수 있다.
박상섭, 《자본주의 국가론》. 한울, 1985.
봅 제솝, 《풀란차스를 읽자》, 백의, 1996.
풀란차스, 《국가, 권력, 사회주의》, 백의, 1994.
풀란차스, 《정치권력과 사회계급》, 풀빛, 1986.
배성인 한국 정치와 사회 운동을 연구하면서 학술단체협의회 운영위원장으로 활동 중이며, 한신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워커스12호 2016.06.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