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방위 산업체가 이라크 현지에서 전투기 판매에 이어 공군 기지까지 짓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이번 호 《워커스》 취재 결과, 이라크에 경공격기를 팔았던 한국항공우주산업주식회사(KAI)가 바그다드 근처 공군 기지 건설 사업까지 수주받아 국내 기업에 하청을 주고 현재도 공군 기지 건설 공사를 하고 있었다(<정부, 국민 몰래 이라크에 공군 기지 건설 승인>).
이라크와 시리아 등은 아직도 여행이 금지된 위험 국가다. 이슬람국가 IS와 지속해서 교전이 벌어지는 전쟁 지역이기도 하다. 이런 곳에서 교전 상대국에 전투기를 팔고, 군사 기지까지 짓고 있다면 테러를 방지하겠다는 정부 스스로가 화를 자초하는 꼴이 아닐 수 없다.
이런 위험한 사업을 하고 있는데도 정부는 이에 대한 보도를 엄격하게 통제하고 나섰다. IS가 공격 대상으로 지목한 60개국 중 한국이 포함되어 테러 위험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테러를 자극할 수 있다는 이유다. 그런데 가관인 것은 이 공사 사실을 모르는 것은 우리 국민뿐이라는 점이다. 이라크 현지 아랍어로 된 온라인 사이트 ‘국방 포럼’에서는 한국이 공군 기지 건설을 수주했다는 내용이 나오고 있고, 공사 수주를 전후로 아랍어와 영어로 된 보도가 잇따랐다. 도대체 IS의 테러 위험이 높다고 하는데, 이들이 아랍어나 영어보다 한국어로 된 기사를 더 잘 읽고 확인한단 말인가? 이라크 현지에서 수많은 사람이 비행장을 짓고 있는데, 어느 나라에서 와서 일하고 있는지 누가 모를 수 있단 말인가? 결국, 정부의 보도 통제로 이라크에서 우리 방위 산업체와 기업이 군사 기지를 짓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 국민만 모르는 상황이 됐다.
정부의 이런 발상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10년 동안 가습기 살균제의 독극물 사용을 용인했음에도 모르쇠로 일관하다 수백 명이 목숨을 잃고 나서야 뒤늦게 조사에 나섰다. 정부 당국은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도 해당 기업에 소액의 과태료만 부과하고 국민에게 이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메르스가 창궐했던 2015년 정부는 메르스가 어떤 병원에서 어떻게 전파되는지 알려 주지 않아 메르스 전염을 더욱 확산시키기도 했다. 2014년 세월호 참사 당시에도 정부는 ‘전원 구조’라는 오보만 날린 채 300여 명의 학생이 수장되는 현장을 지켜보기만 했다. 이후에도 세월호가 왜 침몰했는지, 왜 학생들이 구조되지 못했는지 어느 것 하나 밝혀진 것 없이 800일을 넘기고 있다.
정부의 태도는 변한 것이 없다. ‘모르는 게 약’이라는 듯 ‘모르면 안전하다’는 심사다. 그러나 국민이 모를수록 가습기 살균제 같은 독성 물질로 더 많은 국민이 숨져 가고, 세월호 침몰 같은 참사는 반복되고, 메르스 같은 전염병은 더 확산할 뿐이다.
정부가 구태여 이 사실을 숨기려 하는 것은 정부 주장의 모순 때문이다. 국내에서는 테러를 방지한다며 <테러방지법>을 억지로 통과시켰는데, 이라크 현지에서는 테러를 조장하는 일을 버젓이 벌여 왔다. IS가 한창 기승을 부리던 시점에서 공사를 수주했고, IS가 세계 곳곳에서 테러를 벌이는 동안에도 계속 공사를 진행했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대응이다. IS의 테러 위협이 정말로 걱정된다면, 이라크 공군 기지 건설을 중단했어야 한다. 하지만 정부의 대응은 ‘국가 안보’라는 미명으로 언론 보도를 통제하고 국민의 눈과 입을 막는 것이었다. 정부의 행동에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이 아닌지 의심되는 대목이다.
미국이 벌인 이라크 전쟁의 소용돌이로 이라크는 전쟁의 참화를 겪었고 이제는 재건 중이다. 이 재건 사업 역시 전쟁 당사국인 미국과 유럽의 기업이 이라크 현지의 관급 공사를 쓸어 담고 있고, 이 대열에 한국 기업도 참여하고 있다. 하지만 전투기를 팔고, 이 전투기가 운용되는 공군 기지를 건설하면서도 이라크의 평화 재건에 동참하고 있다는 정부의 주장은 모순 그 자체다. 게다가 IS의 위협 속에도 군사 기지 건설을 계속해 왔다는 것은 정부 주장대로 국민을 테러의 위험에 빠뜨리는 일이다. 이런 엄중한 일이 국회도 모른 채 진행됐다니 더욱 참담하다. 진정으로 테러를 방지하려면, 언론에 재갈을 물릴 게 아니라 이라크 군사 기지 건설을 중단하는 게 옳다. 그것이 테러 방지의 첫걸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