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시장의 양극화
최근 심심치 않게 나오는 뉴스 중 하나가 서울의 집값 상승이다. 전셋값 상승은 전세에서 월세로 바뀌는 시대 변화 속에서 발생한 현상이지만, 최근 집값 상승은 특별한 이유 없이 벌어지고 있다. 갑자기 인구가 늘어난 것도 아니고, 멸실된 집이 급증한 것도 아닌데 말이다.
그런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몇 가지 원인이 발견된다. 먼저 기업형 임대주택의 확대이다. 최근 수년간 부동산 임대시장이 전세에서 월세로 급격히 바뀌고 있는데, 그동안 개인 대 개인으로 이뤄졌던 부동산 임대시장이 기업 대 개인으로 바뀌고 있다. 대표적으로 기업형 임대주택 사업인 뉴스테이 정책을 들 수 있는데, 뉴스테이와 연계한 재개발 정비사업도 곳곳에서 재개되고 있다. 기존 재개발 사업방식은 모든 부담을 재개발 사업을 주관하는 조합이 책임져야 했기에 조합 내부 및 시공사와의 갈등 때문에 사업이 지지부진하거나 폐기되는 일이 빈번했다. 그런데 조합이 일반 분양분을 일괄적으로 민간 임대 기업에 팔고, 이 임대 기업이 임차인을 모집하는 방식으로 바뀌면서, 조합이 부담해야 할 리스크가 훨씬 줄게 되었다. 조합은 일괄적으로 분양을 완료할 수 있어 공사 대금을 제때 지급할 수 있고, 임대 기업도 임대 수익을 충족할 만한 대단지 새 아파트들을 여러 제도적 혜택을 통해 쉽게 매입할 수 있어서 서로 윈윈할 수 있는 전략이 된 셈이다.
다음으로 짚어볼 수 있는 건, 서울 강남을 비롯해 재개발 단지에 몰리고 있는 투기적 수요다. 저금리 기조 속에 분양가상한제 폐지, 분양권 전매제한 완화, 초과이익 환수 잠정 유예 등 재건축 관련 규제가 대거 풀린 데다, 고분양가 논란에도 분양에 성공한 개포 주공 3단지 등으로 인해 재건축에 대한 투기적 수요가 그 어느 때보다 몰리고 있다. 실례로 대치동 은마아파트 전용면적 84㎡(32평)는 올 초 (11억 원 초반 대)보다 1억 5000만~2억 원가량 뛰더니 2006년 전 고점 가격인 13억 5000만 원에 팔렸다. 10년 전 부동산값 폭등 시절을 연상시키는 대목이다.
그런데 자못 궁금해지는 건, 이런 부동산 경기의 과열을 주도하는 수요층이 어디서 발생하는가다. 대부분의 경제전문가가 세계적인 장기불황 사태를 수년째 염려하고 있는데도 말이다. 우리는 흔히 이런 고가의 부동산을 매입하는 사람들이 ‘큰 손’이라 불리는 부동산 부자들이라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 여기엔 이들만 있는 게 아니다. 리츠(부동산투자회사) 및 부동산펀드, 그리고 각종 보험 및 연기금을 비롯한 기관투자자까지, 대규모 자금을 동원하는 여러 금융기관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특히 요즘 유행하고 있는 부동산펀드가 대중적으로 확산하면서 그 규모가 40조 원을 돌파했는데, 이 자금이 바로 기업형 민간 임대사업자들의 자금원이 되고 있다. 특히 올해 5월 금융위원회가 개인들도 최소 500만 원으로 부동산 펀드에 투자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투자운용사들도 일반인 소액 투자자를 대상으로 공모 펀드를 속속 출시하면서 부동산 펀드 열풍에 불을 지피고 있다. 부동산 펀드 수익은 마치 주식 배당과도 같은데, 그 원천이 바로 임대인들이 벌어들이는 월세가 되는 셈이다. 여기에 부동산 리츠도 20조 원대 정도로 급성장했고, 매입대상도 오피스 등 상업용 건물에서 최근엔 주택, 물류 임대 등으로 크게 확대하고 있다. 또한, 부동산을 담보로 인터넷을 통해 개인 간 자금을 주고받는 부동산 P2P 업체들도 급성장하는 추세다.
한편 주로 채권에 투자하는 보험 및 연기금의 경우는 보유한 채권의 이자 수익으로 가입자에 보장한 돈을 되돌려 준다. 그런데 현재 장기 국채 금리가 1.5%대 수준으로 내려올 정도라 이자수익이 매우 낮아졌다. 이런 상황에선 수익률을 맞추기 위해서라도 다른 금융상품으로 갈아타야 하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부동산 매입이다. 그것이 시세차익이든 임대수익이든 자신들이 약속한 보장수익률을 맞추기 위해 리스크가 높은 금융상품이라도 매입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인 것이다.
이렇게 대규모 기금을 통한 부동산 투자 붐은 소위 ‘될 만한 곳’이라 부를 수 있는 지역에 몰리는 경향이 짙다. 왜냐하면 필요시 제때 현금으로 환금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돈이 몰리는 지역에 더욱 몰리게 되고, 소위 대도시 상업시설과 교통 편의시설이 밀집된 지역을 중심으로 부동산 가격이 폭등하는 것이다. 이와 달리 지방 소도시나 상업 및 교통시설이 낙후된 지역은 초기 분양가보다도 떨어지는 현상이 발생하기도 한다. 그래서 10년 전 부동산 폭등기와는 다른 양상이다. 부동산 시장이 양극화되고 있다.
세계는 지금 부동산 열풍
이런 양극화 현상은 우리나라만의 일은 아니다. 10년 전처럼 세계도 지금 부동산 열풍에 휩싸여 있다. 특히 완화적 통화정책을 추진했던 미국, 영국, 캐나다, 유럽 등지에서도 대도시 중심으로 부동산 가격이 급등하여 사회문제로 비화하고 있다. 캐나다 밴쿠버를 비롯하여 영국 런던, 스웨덴 스톡홀름, 독일 뮌헨 등이 부동산 버블이 심한 곳으로 꼽혔다. 실제 밴쿠버의 부동산 가격은 지난 2014년 말 이후 25% 올랐고 지난 10년 기준으로는 두 배 뛰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캐나다 정부는 지난 8월 외국인의 부동산 매수에 15%의 특별 세금을 부과하는 조치를 단행했다. 런던과 스톡홀름도 부동산 거품 최대 위험 도시로 꼽히는데, 현재 런던 부동산 가격은 전 고점이던 2007년보다 15% 올랐다. 런던 주민의 소득은 2007년 당시보다 줄었는데 부동산 가격만 오른 것이다. 상대적으로 거품이 없었던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부동산 가격도 지난해 4/4분기에만 15% 올랐고, 독일 프랑크푸르트의 경우도 현재 2011년에 비해 30% 이상 오르면서 특히 유럽 지역의 부동산 버블이 심각해지고 있다. 심지어 대출자에게 마이너스 금리로 이자까지 얹어 주는 대출 상품을 도입한 덴마크에선, 이례적인 주택 부족 현상까지 벌어져 금융 위기 이전의 부동산 버블을 뛰어넘는 수준으로 올랐다.
이런 현상에 대해 자산 전문가들은 세계 주요 중앙은행들의 ‘돈 풀기’ 정책을 가장 직접적인 이유로 지적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가장 보수적인 일본의 기관투자자들마저도 해외 투자규모를 전년 대비 73%나 늘렸는데, 지난 1년간 이들이 투자한 증권 및 국채 등 해외 자산은 45조 엔(약 487조 원)이나 된다. 이들 일부는 덴마크 부동산 관련 기업 채권을 매입하는 데 들어가기도 했다. 세계 금융시장 큰 손으로 통하는 일본 기관투자자들이 운용하는 자금은 엄청난 규모다. 일본 생명보험 회사들이 운용하는 자금은 350조 엔(약 3780조 원)에 달한다. 일본 후생연금투자펀드 운용자금도 130조 엔(약 1400조 원)이 넘는다. 이들은 주로 자국 일본 국채 등에 투자했는데, 중앙은행의 지속적인 양적 완화 정책과 마이너스 금리 정책으로 인해 10년 만기 국채 금리마저 마이너스대로 떨어지자, 기존의 보수적인 투자 전략을 바꾸게 된 것이다.
이렇듯 전 세계 금융시장을 떠도는 엄청난 자금들이 세계 증시와 채권시장을 비롯하여 주요 도시의 부동산 가격을 일으키는 불쏘시개 역할을 하고 있다. 그리고 여기에 편승한 자산가 계층의 일부가 저금리 환경 속에서 다양한 경로를 통해 부동산 투자에 뛰어들고 있다. 그 대상은 주로 대도시 중심의 상업 지구를 비롯해 부유한 지역으로만 몰리고 있다.
불안한 균형?
주지하다시피 이런 부동산값 폭등의 원인은 10년 가까이 진행되고 있는 초저금리에 기댄 완화적 통화정책에 기댄 바가 크다. 어쩌면 이것이 실물경제의 성장을 떠받치는 유일한 낙수효과의 통로일 수 있다. 그래서 각국 중앙은행은 완화적 통화정책에 대해 경기부양 효과가 미비하다고 비판받으면서도 이를 거둬들일 수가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렇게 자산시장을 중심으로 돌고 있는 돈이 유일한 경기부양의 매개가 된 이상, 정책 당국자 누구도 이 흐름을 깨고 싶진 않을 것이다. 그러다 보니 우린 가계부채 및 전·월세 대책이 곧장 부동산 부양책으로 둔갑하는 현상을 자주 목격한다.
가계가 저축하고 기업이 투자하는 시대는 끝난 지 오래다. 지금은 가계가 저축한 보험과 연금을 쌈짓돈으로 금융기관이 투자하고, 그것도 부족하면 가계가 직접 빚을 내서 투자하는 시대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그 투자는 주식과 부동산에만 몰려있고 그 결과 자산 양극화로 인해 가계 삶의 평균적인 질은 더 나아지지 않고 있다. 자산 가격이 오를수록 한쪽은 득을 보지만, 다른 한쪽은 이를 구매하는데 더 큰 비용을 치러야 하기 때문이다. 특히 다달이 월세 걱정을 해야 할 가난한 청년세대들에게 있어 이런 현실은 암울한 잿빛일 뿐이다. 과연 이 불안한 균형은 언제까지 지속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