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그룹의 비자금과 지배 구조
‘형제의 난’으로 시작된 롯데그룹 사태가 이제는 해외 비자금 조성 문제로까지 번지면서 전 국민적인 지탄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이 사건이 특히 세간의 주목을 받는 이유는 롯데케미칼이 해외에서 원료를 수입하면서 일본 롯데물산을 중간에 끼워 넣는 수법으로 비자금을 조성했다는 의혹 때문이다. 일종의 ‘통행세’를 받아 200억 원대 비자금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이 의혹의 중심에 서 있는 롯데케미칼은 국내에 상장된 롯데 계열사 중 가장 큰 알짜 회사이다. 시가 총액 9조 8000억 원이며, 지난해 당기 순이익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여섯 배 가까이 늘어 1조 원 정도에 이를 정도이다.)
이외에도 2013년 호텔롯데가 롯데제주리조트와 롯데부여리조트를 인수 합병하는 과정에서 다른 계열사들이 보유한 리조트 지분을 장부가보다 낮은 가격에 인수했는데, 그만큼 호텔롯데가 부당 이득을 챙긴 의혹도 받고 있다. 리조트들의 지분 장부 가액은 216억 원이지만, 호텔롯데 주식의 취득 금액은 119억 원으로 차액 97억 원을 호텔롯데가 챙겼다. 또한 롯데쇼핑은 지난해 말 보유 중이던 롯데알미늄 주식 12만 5,000여 주를 445억 원가량이나 싸게 호텔롯데에 매각했다. 한편 2007년엔 신격호 총괄 회장이 가지고 있던 경기 오산 땅을 당초 매입 예상 가격보다 300억 원 비싸게 사기도 했다.
검찰은 이런 모든 과정에서 비자금이 조성됐을 것으로 보고, 순환 출자 형태로 복잡하게 얽혀 있는 롯데 계열사를 대거 압수 수색했다. 최근 10년간 14조 원에 이르는 35건의 인수 합병을 성사시킨 롯데의 자금 거래 전반이 수사 대상에 올랐다. 그만큼 정상가보다 저렴한 가격에 지분을 양도하거나 적정가보다 비싼 값을 주고 사는 일이 빈번했다는 것이다.
이런 비상식적인 계열사 간 거래를 일삼던 롯데그룹엔 좀 특별한 별명이 있다. 재계 서열 5위인 롯데는 경영권 분쟁이 터지기 전까지 ‘은밀한 기업’이라고 불렸다. 일본에서 태동했다는 사실 말고는 총수 일가의 지분율이나 보수, 배당률 등에 대해 알려진 게 거의 없기 때문이다. 80여 개 계열사가 순환 출자로 얽혀 있지만, 대부분이 비상장사이고 지배 구조는 철저히 베일에 가려져 있다. 한국 롯데 86개 계열사 중 직접 상장한 계열사는 1970년대 롯데제과와 롯데칠성음료, 2006년 롯데쇼핑이 전부다. 현재 비자금 조성 통로로 지목되는 곳도 대개 비상장 계열사들이다. 이번에 압수 수색당한 계열사 여섯 곳 중 기업을 공개한 상장 회사는 롯데쇼핑뿐이며, 지주 회사 역할을 하는 계열사가 비상장인 경우는 롯데가 사실상 유일하다.
또한, 롯데그룹의 지배 구조도 흔히 ‘옥상옥’이라 불릴 만큼 복잡하고 이상하다. 한국의 호텔롯데는 일본의 L 투자 회사와 롯데홀딩스가 지배하고 있다. 그리고 이 롯데홀딩스의 최대 주주는 일본 광윤사다. 그리고 광윤사 지분의 99%는 신격호 총괄 회장 등을 비롯한 총수 일가가 보유하고 있다. 결국, 총수 일가가 다수 일본 계열사를 통해 국내 계열사를 지배하고 있는 것이다.
국내 계열사들은 롯데쇼핑과 대홍기획, 롯데제과를 중심으로 67개 계열사 간 순환 출자로 연결돼 있는데, 이는 전체 대기업 순환 출자의 70%를 넘는다. 특히 전체 순환 출자 고리 중 롯데쇼핑, 대홍기획, 롯데제과가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롯데쇼핑은 대홍기획 지분 34%를 가지고 있고, 대홍기획은 롯데정보통신 지분 28.5%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롯데정보통신은 롯데쇼핑 지분을 4.8% 가지고 있다. 롯데쇼핑 → 대홍기획 → 롯데정보통신 → 롯데쇼핑이라는 순환 출자 구조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이런 순환 출자 구조로 엮인 롯데그룹의 내부 지분율은 85.6%에 이른다. 하지만 총수 일가가 가진 지분은 모두 합쳐 2.4%에 불과하다. 이런 지배 구조 속에서 총수 일가는 일감 몰아주기로 쉽게 부를 쌓았다. 가령 신격호 총괄 회장 셋째 부인인 서미경 씨는 롯데백화점 매장에서 음식점을 운영하거나 롯데시네마 매점을 독점 운영하여 수익을 가져갔다.
다시 떠오른 재벌 개혁
작년에 있었던 롯데그룹 경영 승계 다툼, 일명 ‘형제의 난’을 계기로 한차례 홍역을 치렀던 롯데그룹은 폐쇄적이고 복잡한 그룹 지배 구조를 개혁하겠다는 공언을 했던 바 있다. 그런데 이번 비자금 사태에서 드러났듯, 그 이면엔 더 추악한 진실이 숨겨져 있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지배 구조의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핵심 지주 회사를 상장시켜 시장의 감시를 받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이와 함께 잠잠했던 재벌 개혁 문제가 다시 떠올랐다. 야당뿐만 아니라 여당도 이에 동참하고 있다. 지난 20일 국회 정당 대표 연설에서 여당 원내 대표가 재벌의 불법적, 편법적 경영권 세습 방지를 강조해 재계를 긴장시켰다.
구체적인 재벌 개혁의 내용은 상법 개정 논의로 모인다. 총수 일가 및 경영진의 전횡과 불법 행위를 감시하고 견제하기 위해, 독립적인 이사와 감사 위원을 선출하고 소수 주주권을 강화하는 것이 핵심이다. 그런데 이런 내용은 이미 지난 대선 때 제기되었던 것으로, 여당의 공약에 포함되어 있었다. 당시 박근혜 후보는 다중대표소송제, 감사 위원 분리 선출, 집중투표제와 전자투표제 단계적 도입을 공약으로 제시했었다. 당선 이후 법무부가 상법 개정안을 입법 예고했으나, 재벌의 집단 반발로 흐지부지됐다. 다중 대표 소송은 자회사 경영진의 불법 행위로 회사가 손해를 봤을 때 모회사 주주들이 직접 자회사 경영진을 상대로 손해 배상 소송을 제기하는 제도다. 감사 위원 분리 선출은 대주주의 입김에서 자유로운 감사 위원을 선임하기 위해 지배 주주 의결권을 3%로 제한하는 내용이다. 집중투표제와 전자투표제는 소수 주주권 강화와 주주 총회 활성화가 목적이다. 야당은 이미 이런 상법 개정을 20대 총선 공약으로 약속한 상태다.
자본의 은밀한 거래
그런데 이런 재벌 개혁의 전략적 방향이 주주권에 기초한 시장 감시 기능 활성화로만 설정되는 것에 대해서 이견이 있을 수밖에 없다. 비상장사의 내부 거래 문제가 된 롯데의 경우, 비상장 계열사를 상장시켜 시장의 감시 영역에 두게 하자는 목소리는 일견 타당하다. 하지만 비상장사를 상장한다고 이런 부정 행위들이 해소되는 건 아니다. 실제 이번 비자금 사태에서 문제가 된 호텔롯데는 상장을 앞둔 기업이었다. 앞서 지적했던 것처럼 롯데그룹은 수년 전부터 은밀한 내부 거래를 통해 알짜 자산들을 호텔롯데에 계속 편입시켜 왔다. 그 이유는 알짜배기 자산을 배경으로 기업 가치를 끌어올려 상장 이익을 극대화하려 했기 때문이다. 재벌 총수들에게 지배 구조 투명성은 명분일 뿐, 이들이 실제 노리는 건 오로지 대주주인 자신의 이익과 경영권 확보인 셈이다.
주주의 감시를 받는 상장사라고 해도, 삼성 경영권 승계의 도구가 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기이한 합병 사태와 같은 일이 여전히 우리 눈앞에 벌어지고 있다. 심지어 얼마 전 여기에 국민연금까지도 거수기처럼 동원됐다는 의혹이 법원 재판을 통해 제기되었다. 당시 이 싸움에 엘리엇이라는 외국계 자본이 개입하면서 ‘편법 경영권 승계 vs 국부 유출’이라는 논쟁까지 불거졌다. 그런데 삼성그룹이든 엘리엇이든 이들 모두가 내세우는 명분은 주주 이익의 극대화였다. 그리고 사태는 주총 표 싸움으로 정리됐다. 사회적으로 심각한 논쟁이 벌어졌지만, 막상 그 해결은 주주들의 표심을 누가 더 많이 가져갔는가로 결정 났다.
롯데그룹의 형제 간 경영권 분쟁 사태도 지난 25일 또 한 번의 주주 총회 표 대결로 나타났다. 현재 벌어지고 있는 롯데 일가의 비자금 수사가 전격적으로 이루어진 것은 현 신동빈 체제를 끌어내리려고 하는 신동주 회장 측의 결정적 제보 때문이라고 한다. 신동주 회장은 그동안 그룹 지배력의 중심에 있는 롯데홀딩스의 최대 주주인 광윤사를 지배하고 있지만, 롯데홀딩스의 다른 주주들 표를 얻지 못해 과반을 신동빈 회장에게 내줘야 했다. 그래서 신동주 회장은 이번 비자금 사태를 계기로 신동빈 회장 측 우호 지분을 자기편으로 만들어 반전을 꾀하고자 한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그동안 롯데 비자금 사태가 세간에 드러나지 않았던 이유가 주주들 간에 공공연하게 벌어졌던 은밀한 거래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과연 재벌 개혁을 위한 문제 해결의 갈등 구조가 주주들 간의 표 대결로 좁혀지는 게 올바른 일인지 다시금 생각하게 하는 대목이다. 이건 우리 사회가 바라는 재벌 개혁의 뜻을 축소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재벌 기업 내부의 짬짜미를 더 강화하는 것이다. 주주권 강화를 기초로 하는 재벌 개혁은 주주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은밀한 거래와의 담합에 무력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워커스16호 2016.06.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