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차원의 메가 스포츠 이벤트는 거대한 환상을 만들어낸다. 마치 국가 경제가 살아날 것 같고, 국가의 위신도 상승할 것 같다. 국가가 부자가 되니 나도 부자가 될 것만 같다는 환상. 하지만 몇 번 경험을 해 보면 안다. 천문학적 자본이 투입된 스포츠 이벤트는 재정 위기와, 환경 파괴와, 이주민 문제를 남긴 채 거품처럼 사라져버린다는 사실을. 그래서 국제 사회에서는 지역 주민들을 중심으로 올림픽에 반대하는 운동도 생겨났다.
지난 2013년, 독일은 2022년 동계올림픽 유치 신청을 앞두고 주민투표를 실시했다. 뮌헨, 가르미슈, 파르텐키르헨, 트라운슈타인 등 4개 시 주민들이 투표에 나섰다. 결과는 올림픽 유치 반대. 결국 독일 중앙정부의 올림픽 유치 계획은 좌초됐다. 스위스 그라우뷘덴 주에서도 2026년 동계올림픽 유치를 놓고 국민투표가 열렸다. 60%가 반대해 유치가 물 건너갔다. 프랑스 파리에서도 2024년 하계올림픽 개최를 앞두고 주민들의 반대 목소리가 거세다.
스포츠로 대동단결
한국은 국가적 스포츠 이벤트를 앞두고 주민투표를 실시한 전례가 없다. 올림픽 반대 운동이 크게 일어난 적도 없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메가 스포츠의 역사를 ‘신화 ‘로 주입해 온 탓이 크다고 지적한다. 88년 서울올림픽 신화, 2002년 월드컵 신화까지. 근거도 내용도 없는 신 에 불과했지만 의외로 잘 먹혔다. 정희준 동아대 스포츠과학대 교수는 “한국은 메가 스포츠 이벤트를 국내에 유치하면 부자가 된다는 인식이 강하다”며 “1988년 서울올림픽의 왜곡된 역사가 메가 스포츠 이벤트를 경제 신화로 자리매김토록 했다”고 설명했다.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 선전도 비슷했다. 평창 올림픽만 유치하면 한국은 하계 및 동계 올림픽, 월드컵, 세계육상선수권대회를 모두 유치한 ‘그랜드 슬램’ 국가 반열에 오르는 것이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정희준 교수는 “민족주의가 메가 스포츠를 끌어오는 문제는 특히 한국에서 심각하다”며 “국가는 직접 나서 메가 스포츠 이벤트의 경제 환상을 만들고 선동한다. 결국 경기장 짓고, 호텔 짓고, 지역 부동산 붐이 일어 땅값이 오른다는 논리에 매몰되고 만다”고 지적했다.
올림픽 앞에선 여야 정치권의 정치적 입장 따윈 없다. 말 그대로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식이다. 민주당은 애초 예산과 지역 민심 등을 이유로 평창 올림픽을 비판하던 입장이었다. 인천 아시안게임을 준비하는 과정에서는 적자 올림픽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2010년 지방선거에서 최문순 강원도지사가 당선되면서 민주당의 입장은 극적으로 바뀌었다. 김상철 나라살림연구소 연구원은 “최문순 도지사가 당선된 이후, 더불어민주당은 야당이었음에도 평창 예산과 관련해서는 굉장히 유한 태도로 돌아섰다”고 설명했다.
문재인 대통령도 당선 후 평창 동계올림픽 성공 유치를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니고 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여파로 기업 후원이 끊기자 문 대통령은 공기업을 상대로 후원을 요청하기도 했다. 문 대통령 요청 한 달 만에 한국전력 및 10개 자회사가 800억 원의 올림픽 후원 계약을 체결했다. 한전은 이미 평창 주변 전력설비 사업에 1,500억 원의 돈을 후원한 바 있다.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공기업이 ‘흥행 참패’가 예견된 올림픽에 몸빵하고 있다는 비판도 일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올림픽 붐업을 위해 홍보 CF촬영에 직접 참여하기도 했다.
올림픽 개발주의는 필패다
그렇다면 올림픽은 정말 국가 경제의 발전에 기여할까. 1988년 서울올림픽 붐은 부동산 거품을 동반했다. 정부는 올림픽 운영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신도시와 대단지 아파트 개발에 뛰어들었다. 당시 70% 미만이던 주택보급률 상승효과까지 노리는 일석이조 정책이었다. 정부의 아파트 난개발로 판잣집, 홈리스, 노점상 등 72만 명이 강제 이주를 당했다. 부동산 경기는 날이 갈수록 팽창했다. 1987년 7.1%였던 주택가격 상승률은 1990년 21%로 정점을 찍었다. 부동산 시장이 과열되자 정부가 나서 부동산 투기 억제 정책을 펼칠 정도였다.
정부는 서울올림픽을 3천억 원의 ‘흑자 올림픽’으로 기록했다. 하지만 정희준 교수의 분석에 따르면, 여기에는 정부출연금, 아파트 기부금, 국민성금, 조직위 파견 공무원 및 민간인 인건비 등 최소 20억 달러(당시 환율로 한화 약 1.3조 원)의 직간접 투자비는 모두 계산에서 빠졌다. 사실상 적자 올림픽이었던 셈이다. 대신 정부는 아파트 개발로 돈벌이에 나섰다. 정 교수는 “당시 평당 2000원 하는 땅에 고층아파트를 지어 200만 원에 팔았으니 1000배가 넘는 장사였다”며 “사실상의 계급청소였고, 철거깡패를 앞세운 건설사들은 다시 한 번 막강한 부를 축적했다”고 설명했다. 올림픽 이후, 경제효과는커녕 GDP는 곤두박질쳤다. 1986~1988년 당시 10%가 넘던 GDP는 1989년 6.7%로 내려앉았다.
2002년 한일월드컵 당시에는 오히려 외국인 관광객 방문 수가 전년보다 20~30%가량 감소했다. 월드컵 당시, 무려 1조9503억 원의 사업비로 건설된 10개의 경기장은 각 지자체에 연 20~40억 원의 재정 부담을 안기는 애물단지로 전락했다. 경기장들은 운영 적자를 메우기 위해 시설 내에 영화관, 웨딩홀, 대형마트, 골프장, 사우나 등을 운영하며 허덕이고 있다.
2011년 전남 영암에서 개최된 세계 모터스포츠 대회인 포뮬러원(F1)도 시작부터 적자 문제로 홍역을 치렀다. 현재 전남은 올해부터 13년간 지방채 117억 원을 갚아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이 모든 빚들은 도민들의 몫이다.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은 한국 메가스포츠 역사의 수치로 기록됐다. 이 역사적인 이벤트는 1조 원에 달하는 빚을 남겼고, 인천이 ‘재정위기 지자체’로 지정되는 수모도 남겼다. 인천은 주민세를 122% 올리며 재정긴축을 시행했다. 이 모든 피해 역시 곧장 지역주민들에게 돌아갔다.
평창 동계올림픽의 상황도 다르지 않다. 지난해 7월 감사원이 실시한 ‘2018평창동계올림픽 준비실태’ 감사 결과에 따르면, 조직위원회가 실제보다 사업비를 적게 반영하고 수입은 부풀려 수천억 원대의 적자가 발생할 것으로 드러났다. 평창동계올림픽 경기장 일부의 사후 활용 방안 또한 불투명해, 자칫하다가는 ‘폐허’로 전락할 가능성도 있다. 평창 올림픽을 둘러싼 예산 논란이 끊이질 않지만 평창동계올림픽조직위는 운영 내용과 관련한 정보를 공개하지 않고 있다.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는 조직위가 정보공개법 시행령 적용 대상 기관이기 때문에 예결산 집행내역을 정기적으로 공개해야 함에도, 스스로 ‘정보공개청구 대상 기관이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6년 동안 정보공개법을 위반하고 헌법적 권리인 국민의 알권리를 침해해 왔다는 것이다. 정보공개법 제7조에는 ‘국가의 시책으로 시행하는 공사 등 대규모 예산이 투입되는 사업에 관한 정보는 정기적으로 공개해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진짜 돈이 모이는 곳
진짜 올림픽 특수가 모이는 곳은 따로 있다. 정치인과 재벌, 토건회사, 투기꾼들에게 올림픽은 알짜배기 축제다. 정 교수는 “월드컵 4강에 올랐다는 이유로 정몽준 무소속 국회의원이 대권지지 1위에 오른 것은 난센스 아니냐”며 “삼성은 IOC의 최고 등급 스폰서고, 현대기아차는 FIFA 스폰서다. 이들은 올림픽, 월드컵과 관련한 독점적 마케팅을 할 수 있는 지위를 부여 받았고, 엄청난 이익을 벌어들인다”고 설명했다.
2010년 벤쿠버 동계올림픽 이후 삼성경제연구소는 ‘동계올림픽의 경제적 가치와 효과’라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이들은 당시 벤쿠버 올림픽으로 8,400억 원 수준의 기업이미지 제고 효과가 발생할 것이라 내다봤다. 삼성경제연구소는 “글로벌 기업의 인지도를 1%p 상승시키는 데 약 5,000만달러의 비용이 소요되는 점을 감안하면, 이번 올림픽을 통해 국내 글로벌 500대 기업(2009년 현재 14개)은 1개사당 약 600억 원의 홍보효과가 발생”한다고 분석했다.
이는 기업 매출 증대와도 연결된다. 기업 이미지 제고가 8,400억 원 규모의 광고를 투입하는 효과를 발생시키기 때문에. 삼성과 현대, 롯데 등 대기업의 매출이 14조8000억 원 가량 증가한다는 것이다. 올림픽이 국내에서 개최될 경우 그 효과는 더욱 상승할 수밖에 없다. 삼성, 한화 등 평창올림픽 공식 후원사들은 올림픽 관련 지식재산권과 독점적 서비스 제공, 후원사 로고 노출 권리를 갖는다. 후원사로 참여할 경우 기업 이미지 개선을 비롯한 엄청난 마케팅 효과가 뒤따른다. IOC는 “올림픽 후원은 전 세계를 대상으로 하는 가장 효과적인 글로벌 마케팅 플랫폼 가운데 하나”라고 밝히고 있다.
물밑에서는 올림픽 특수를 탄 부동산 투기 전쟁이 과열된다. 재벌과 고위 공직자들은 2000년대 초중반부터 평창 일대 부지를 매입해 투기에 나섰다. 재벌닷컴에 따르면, 신영자 롯데쇼핑 사장과 그의 자녀들, 허세홍 GS칼텍스 전무, 김석원 전 쌍용회장의 장남, 전장열 금강공업 회장의 장차남, 권상문 전 삼성중공업 사장 부인 등이 평창군 용산리와 횡계리 일대 부지를 사들였다. 신건 전 국가정보원장 부인과 신승남 전 검찰총장 자녀도 이 일대의 부동산을 매입했다.
평창올림픽 개최가 확정된 2011년 이후 지난해까지 강원도 전체 지가변동률은 1~2%수준이었다. 반면 재벌과 고위 공직자들이 사들이 토지의 공시지가는 수십 배씩 뛰었다. 신영자 롯데쇼핑 사장이 소유한 대관령면 용산리 토지의 공시지가는 2006년 매입 당시 평당 3,590원에서 2017년 37,100원으로 10배가 넘게 뛰었다. 신 사장의 장녀 장선윤이 소유한 토지는 3.4배가 올랐고, 장남 장재영의 토지는 24배나 올랐다. 허세홍 GS칼텍스 전무는 6.3배, 김석원 전 쌍용회장의 장남 김지용은 5배, 권상문 전 삼성중공업 사장 부인 조금련은 5.8배, 조방래 전 강원도개발공사 사장의 아들 조현준은 1.5배의 투기 이익을 누렸다. 모두 평창 알펜시아리조트, 용평리조트 인근의 알짜배기 땅이다.
강원도에 따르면, 평창동계올림픽 유치 확정 전인 2010년 강원도 토지거래량은 207만 건에 불과했다. 하지만 6년이 지난 2016년 토지거래량은 299.5만 건으로, 약 100만 건이 늘었다. 또한 2016년 강원도의 전체 토지(건축물 부속토지·순수토지) 거래 증감률은 전년 대비 17.8%로 전체 시도에서 압도적 1위를 기록했다.
박선영 문화연대 활동가는 “메가 스포츠 이벤트가 하드웨어 중심으로 진행되면서 이를 정치적인 성과로 활용하려는 정계와 엄청난 개발이득을 노리는 재계의 결탁이 있어왔다”며 “정계와 재계가 결탁을 통해 메가 스포츠 이벤트를 무분별하게 유치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국제경기대회 지원법 개정을 통해 유치 과정에서 실효성 있는 타당성 조사와 진행 계획을 검토하고, 결과가 부실할 경우 유치를 막도록 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