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건설목공노련(Building and Wood Workers’ International, BWI)은 평창 동계올림픽을 의심스럽게 지켜보고 있다. 올림픽 준비 과정에서 건설노동자들이 사망하고, 상당한 임금체불까지 발생했기 때문이다. BWI는 130개국 노동조합 326곳의 건설·자재·목공·임업 노동자 1200만 명이 가입된 노조연맹이다. 이들은 대형 스포츠 이벤트가 열릴 때마다 건설노동자의 노동권이 침해받는지 감시하는 일을 한다.
BWI에 따르면 평창 동계올림픽 건설에서 과정에서 4명이 사망했고, 다수의 부상자가 발생했다. 이들은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권한을 갖고 건설노동자 권리 회복에 나서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BIW는 지난 2014년 소치올림픽 개막식 전날, ‘노동자의 피로 물든 소치의 눈’이라는 보도자료를 배포해 건설노동자들에 대한 광범위하고 체계적인 착취를 규탄했다. 3년 전 소치올림픽을 향했던 노동자들의 분노가 이제 평창으로 향하고 있다. 평창 동계올림픽을 90여일 앞둔 현재. 국제사회가 주목할 평창 건설노동자들의 현실을 어떤 모습일까.
건설노동자의 체불 임금은 언제나 후순위
굴삭기를 운전하는 홍준걸 씨는 1300만 원에 달하는 체불임금을 한 푼도 받지 못했다. 그는 지난해 열린 ‘평창 알펜시아 하얼빈 빙설대세계 축제’ 건설현장에 투입돼 15일간 일을 했다. 평창 동계올림픽 개최 전 분위기를 띄우자는 취지로 기획된 행사였다. 워낙 졸속적이고 급박하게 준비된 터라 매일 시간에 쫓겼다. 공사기간이 촉박해 홍 씨는 야간작업까지 뛰어야 했다. 하지만 축제는 비참할 정도로 쫄딱 망해버렸다. 후폭풍이 불어 닥쳤다. 건설 노동자들에게 가야할 임금이 묶이기 시작했다. 이미 홍 씨는 자비로 하루 15만 원 씩 기름값을 써가며 공사를 마친 상황이었다. 쓴 돈은 많은데 들어오는 돈은 없었다. 이 축제에서 발생한 건설노동자 체불액은 11억 원에 달했다.
홍 씨는 매달 200만원에 달하는 굴삭금 할부금을 내고 있었다. 임금 체불로 인한 타격은 상당했다. 그는 마이너스 통장을 쓰고, 고장난 보일러조차 고치지 못한 채 추운 겨울을 보냈다. 그래도 홍 씨는 다른 동료들보다 운이 좋은 편이었다. 임금체불로 중장비 할부금 납부가 막혀 장비를 빼앗기는 동료도 있었다. 홍 씨는 “중장비를 가진 사람들은 캐피털을 끼고 차를 사기 때문에 1개월만 연체돼도 차를 빼앗기는 경우가 많다”며 “임금체불 때문에 포크레인도 빼앗기고 큰 손실을 입은 사람이 한 두 명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홍 씨는 체불된 임금을 받기 위해 꼬박 3개월을 고군분투했다. 빙설대축제, 강원도청, 강원도개발공사, 알펜시아 리조트 등을 찾아다니며 집회를 했고 시공사를 찾아가 따졌다. 하지만 그들은 모두 서로에게 책임을 미루기에만 급급했다.
빙설대세계 축제의 주최 측은 ㈜트루이스트라는 회사였다. 트루이스트는 시큐팜이라는 하청 회사를 끼고 공사를 진행했다. 후원 회사로는 강원도개발공사, 한국관광공사, 강원도민회중앙회 등이 이름을 올렸다. 하지만 현장 노동자들은 ‘강원도개발공사’가 발주처인 줄만 알고 있었다. 2015년 6월 강원도개발공사와 트루이스트는 축제 협력을 위한 업무협약을 추진했다. 당시 신만희 강원도개발공사 사장은 “알펜시아에 지속 가능한 이벤트 유치를 통해 부가수익 창출 뿐 아니라 평창올림픽 붐 조성, 일자리 창출 및 지역경제 증진의 공익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며 “단순한 이벤트성이 아닌 우리나라 대표 축제로 성장시키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하지만 정작 축제가 ‘폭망’의 길을 걷자, 주최 측과 후원사들은 앞다퉈 자신도 ‘피해자’라며 모든 책임을 부인하기 시작했다. 강원도개발공사 역시, 땅을 빌려준 것밖에는 한 것이 없는데 피해만 입었다며 앓는 소리를 했다. 원래는 부지 이용료를 받았어야 하는데, 축제가 망하면서 장당 2만5천 원짜리 입장권만 1만 장 받았다는 것이었다. 홍 씨는 “나보다 일찍 일을 한 사람의 경우 2천만 원을 못 받기도 하고, 다른 일반 인부들도 원래 받아야 할 임금의 60% 정도만 받았다”며 “트루이스트나 강원도개발공사는 어떤 책임도 지지 않고 있는데, 법정 구속을 시켜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강원 건설노조는 홍 씨와 다른 임금체불 노동자들의 위임을 받아 트루이스트를 고발한 상태다.
공사를 발주한 정부기관은
‘모르쇠’로 일관하는 게 상책
지난달 법정관리에 들어간 삼환기업 역시 건설노동자들에게 11억 원에 달하는 체불임금을 지급하지 않고 있다. 삼환기업은 철도시설공단이 발주한 ‘원주-강릉 철도건설 제11-3공구 노반신설 기타공사’를 맡아 진행하고 있었다. 발주처인 공단에 따르면, 삼환기업 법정관리로 공사 차질은 불가피하지만 현재 98%까지 공사가 진척돼 있어 올해 12월로 예정된 개통은 무난할 것이라 밝혔다. 공사는 무난해도, 노동자들은 죽을 맛이다. 발주처인 공단은 ‘체불임금’ 관련해 나설 이유가 없다는 입장이다. 철도시설공단 노반PM부서의 한 담당자는 “(임금체불 문제는) 법원 판결을 통해 해소할 문제지, 발주처가 나설 문제는 아니”라며 “도급사가 기성금을 청구하면, 검토를 해서 지급을 하는 과정이 있다”고 설명했다.
삼환기업이 떼먹은 임금체불은 이것만이 아니다. 강릉역사를 짓는 공사도 삼환기업이 맡았는데, 여기서도 10억 원에 가까운 임금체불이 발생했다. 곽희은 건설노조 강릉지회장은 “법정관리에 들어가기 전에도 하청 회사들이 몇 번 씩 공사를 못하겠다고 손을 뗐다”며 “3월부터 체불이 발생해 이번 여름 강릉지역 노동자들이 집회를 열며 대응해 왔다. 다행히 체불된 금액들은 계산서를 끊은 상태인데, 삼환의 다른 사업장 중에는 계산서를 끊지 않은 곳도 있어 임금을 받기 어려울까 걱정이다”라고 말했다.
건설노조 강원본부에 따르면, 지난해 강원지역 34개 공사현장에서 220억5000여 만 원의 임금체불이 발생했다. 이 중 아직 해결되지 않은 건은 16건. 체불액은 총 196억 원에 달한다. 특히 정부기관이 발주한 평창 동계올림픽 기반 시설 공사에서 빈번한 임금체불이 반복됐다. 강원본부는 “34곳은 평창 동계올림픽과 관련한 토목건축 공사가 대부분인 강원도청을 비롯한 정부기관들이 발주한 관급공사 현장”이라며 “평창 동계올림픽 관련 건설 현장이 무법천지로 변해가고 있다”고 비판했다.
평창올림픽 관련 공사는 정부와 강원도가 100% 사업비를 댄다. 발주처는 정부기관이지만, 임금체불 문제는 어김없이 불거져 나온다. 공공기관-원청-하청-재하청으로 이어지는 구조 속에서, 어느 한 곳이라도 자금 부족에 시달리면 돈이 막혀 버린다. 저가 수주 경쟁으로 영세한 업체들은 늘 쪼들리고, 노동자들은 체불 임금의 두려움에 시달린다.
평창 동계올림픽이 90여일 앞으로 다가온 현재. 건설노동자은 임금체불의 최대 고비를 목전에 두고 있다. 김동환 건설기계 강릉연합회장은 “고속전철구간, 역사, 선수촌 아파트 때문에 현재 장비가 모자랄 정도로 일을 하고 있다. 가장 체불임금이 많이 발생하는 때가 공사 막바지인데, 다들 일손 놓을 생각도 하고 있다”며 “마감치고 보통 90일 뒤에야 임금을 받는데 벌써부터 불안하다”고 토로했다. 이들은 오는 12월이 임금체불의 최대 고비가 될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어김없이 사망자가 발생한 공사현장
평창올림픽 예산 약 13조8000억 원은 경기장 및 도로 등의 인프라 건설 공사에 집중돼 있다. 철도와 도로 등 교통망 확충에 9조4000억 원, 선수촌 등 부대시설에 1조3200억 원, 경기장 건설에 7300억 원이 들어간다. 기간 내에 어떻게든 공사를 끝내야 하는 대규모 건설 사업의 경우 작업장의 안전 관리는 더욱 불확실하다. 올림픽 관련 공사 중 발생한 노동자 사망 사건 역시 지난해와 올해에 유난히 몰려 있다.
지난해 7월 24일 강릉시 교동 아이스 아레나 건축 공사현장에서 ‘스카이’라고 불리는 고소작업차 붐대가 쓰러져 인부 한 명이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올해 6월 1일에는 평창군 대관령면 원주-강릉 고속철도 9공구 공사현장에서 콘크리트 구조물이 무너져 인부 한 명이 사망하고 동료 2명이 부상을 입었다. 지난달 13일에는 올림픽을 대비해 수송 지원 시운전을 하던 기관차가 경기 양평군 중앙선 선로에서 추돌사고를 내 기관사 1명이 숨지고 6명이 다쳤다.
철도노조는 즉시 성명을 내고 “생명과 안전은 안중에 없고 개통에만 급급한 철도시설공단의 무모함과 시범운영 계획에 대한 안전성 점검조차 하지 않은 철도공사의 직무유기가 이번 참사의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김선욱 철도노조 미디어소통실장은 “평창올림픽 개통 시기에 맞춰 철도공사가 시운전 점검을 빨리 하려고 기관차 두 대를 연속으로 투입했다”며 “위험성이나 안전조치, 대비책을 세우지 않았다”고 꼬집었다.
덤프트럭을 운전하는 강원지역 건설노조의 한 조합원은 “올림픽 관련 건설현장에서 안전사고가 나도 일자리가 끊길까봐 밖으로 얘기를 못하는 사람이 많다”고 토로했다. 그 역시 공사 현장에서 차량 전복 사고를 경험했지만, 내부에서 조용히 처리하고 말았다. 이 조합원은 “후방카메라가 있지만 사각지대가 있고, 신호수도 종종 없어 다른 건설 현장만큼이나 위험하다”고 설명했다. 노조라도 조직돼 있다면 안전 및 체불문제에 공동 대응을 할 수 있지만, 일용직 토목공사 노동자들의 특성상 조직이 쉽지 않다. 때문에 공사현장에서 사망사고가 발생했다 한들, 재발 방지 대책 등의 발표조차 나오지 않는 경우가 많다.
‘2018 평창 동계올림픽대회 조직위원회 윤리헌장’에는 건설 노동자의 안전과 노동권에 대한 언급이 나온다. ‘근로기준법, 최소임금기준 및 최소근로시간 등의 준수를 통해 근로자의 노동, 인권 보호를 위해 노력한다’는 문구다. ‘철저한 안전사고 사전 예방을 통해 안전사고, 재해 등 위험관리에 최선을 다하며, 근로자의 안전, 보건 관리를 위해 필요한 조치를 취하겠다’는 약속도 있다. 하지만 올림픽은 건설현장은 여전히 무법천지이자 악몽의 일터에 머물러 있다. 평창 동계올림픽 개회식을 앞두고, BWI는 어떤 보도자료를 배포하게 될까.[워커스 36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