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명관(참세상연구소)
[편집자 주] 문재인 대통령 취임 후 부동산 가격이 가파르게 뛰기 시작했다. 6.19 대책도 나왔지만 역부족이다. ‘지옥고’(반지하, 옥탑방, 고시원) 생활자들에겐 딴 세상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필자는 한국사회 부동산 문제의 뿌리를 파헤치며 과연 우리에게 필요한 대책은 무엇인지 짚어본다.
집 집 집, 내 집은 어디에
대선 직후 한 달 동안 부동산 뉴스가 뜨겁게 달아올랐다. 강남 재건축 단지 매물이 며칠 사이에 수천만 원이 올랐다는 뉴스가 대중들의 귀를 당겼다. 그러면서도 지방엔 미분양이 쌓여간다는 전혀 다른 뉴스도 흘러나왔다. 이른바 부동산 양극화 현상. 이런 현상을 두고 소위 부동산 전문가들의 시장 분석과 정부의 규제카드를 예상하는 인터뷰 기사들도 쏟아졌다. 대표적으로 박근혜 정부가 완화한 대출규제를 원상 복귀해야 한다는 방안이 나왔다. 돈줄을 조이는 게 가장 확실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한국은행 총재마저 금리 인상을 시사하면서, 전반적인 긴축 분위기가 형성됐다. 문제는 금융정책이라는 게 특정 투기성 신규 부동산에만 영향을 끼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미 대출을 많이 받아 놓은 오래된 부동산 소유자들도 영향을 받기는 매일반이다.
한편에선 ‘지옥고’(반지하, 옥탑방, 고시원)라 불리는 신조어처럼 전혀 다른 세상이 존재한다. “아프니까 청춘이다”를 비꼬아서 “없으니까 청춘이다”라 부른다면 여기에 가장 들어맞는 말일 듯싶다. 맘 편히 쉴 수 있는 방 한 칸조차 없는 청춘들에게, 뉴스가 전하는 억대 부동산 대출 이야기는 전혀 다른 세상으로 보일 것이다. 행복주택, 공공임대주택도 신혼부부 중심이라 1인 청년 가구는 주요 대상에서 빠진다. 이 청춘들에게 저금리니 부동산규제니 하는 이야기보다 더욱 절실한 건, 매월 수십만 원에 달하는 월세다. 수십 년 전 산업화 시대에나 나올 법한 도시빈민 이야기는 현재 미래를 잃어가고 있는 청춘들에게서 고스란히 재연되고 있다. 도대체 내 집은 어디에 있나?
자산복지체계가 낳은 양극화
도대체 어디서부터 이 난국을 설명해야 할까? 한국 현대사에서 부동산을 둘러싼 대중들의 자산증식 열망은 불패신화라는 말을 만들어낼 정도로 매우 강한 주체의식을 형성해왔다. 부동산 투기를 비판하면서도, 다른 한편에선 그 대열에 동참할 기회를 잡지 못한 것에 대한 열등감이 잠재돼 있을 정도니 말이다.
그런데 이런 현상은 단순히 주택이 투기적 대상이어서 만이 아니다. 제대로 된 복지체계가 없던 산업화 시절부터 복지를 대체할 수 있는 수단은 알뜰히 모아 둔 저축과 주택뿐이었다. 두 다리 맘 편하게 잘 수 있는 ‘내 집’(주택)만이 유용한 복지수단이었다. 그러나 도시화가 급속히 진행되면서 도시로 몰려든 이주민들의 내 집 장만은 쉽지 않았다. 강남개발로 상징되는 부동산 불패신화는 관료와 결탁한 투기세력과 상류층의 전유물이었고, 대중들이 그 수혜를 입을 순 없었다. 이런 분배갈등에 대한 지배계급의 정책은 저축 장려정책(저축캠페인, 저축계몽운동)에 불과했다. 그나마 이것도 산업화에 동원할 자본을 끌어 모으기 위한 전략적 측면이 더 컸다. 하지만 인플레이션이 매우 높아 화폐가치가 계속 떨어졌기 때문에 저축을 해도 실질 가계소득은 줄어들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보니 당연히 실물가치인 내 집(주택)을 마련하는 게 가장 현명한 선택이 될 수밖에 없었고, 가계 자산증식의 중요한 도구로서 주택이 자리 잡게 됐다.
이런 ‘내 집 마련’을 위한 대중의 열망은 종종 사회적 분위기와 맞물려 폭발적으로 나타났다. 80년대 말 민주화라는 사회적 변화에 따라 잠재돼 있던 대중들의 분배갈등이 폭발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지배계급은 ‘중산층 신화 만들기’ 전략을 동원했다. 당시 노태우 정권이 내건 ‘200만호 건설’은 이런 대응 전략을 상징하는 슬로건이었다. 1기 신도시라 불리는 일산과 분당에 깨끗한 아파트 숲들이 대거 들어섰고, 이 신도시는 중산층을 꿈꾸는 신세대 라이프 스타일을 상징했다. 일단 자기 집이 마련되면 내구재가 모두 바뀌면서 소비 패턴의 중산층화가 시작되기 때문이다. 이런 주택을 중심으로 형성된 중산층화 현상은 특정 지역에 국한된 게 아니었다.
그런데 이런 자산형성 복지체계는 결정적인 약점이 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자산소유자와 비소유자간의 양극화가 확대된다는 점이다. 자산형성 복지체계가 잘 기능하려면 기본적으로 안정적인 자산가격 상승이 이뤄져야 한다. 그래서 주택가격이 상승과 하락에 따라 소유계층과 비소유계층간의 갈등이 직접적으로 드러날 수밖에 없다. 만약 무주택계층이 자산기반 복지를 누릴 수 있도록 주택구입을 쉽게 하려면 주택가격의 유지 혹은 하락이 필수적이다. 그러나 이 경우에는 주택소유계층의 저항에 직면하게 된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자산기반복지의 발전을 위해서는 자산가격의 안정적 상승이 필요하지만, 이것은 무주택자들이 자신의 소득만으로 주택을 구매하기 어렵게 만든다. 결국 과도한 빚을 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빚 권하는 사회’의 실패와 ‘푸어족’의 등장
이런 한국사회의 모순적인 자산형성 복지체계는 2000년대 중반 전 세계적으로 불어 닥친 부동산 거품과 맞물리면서 또 한 번 확대된다. 과도한 빚을 안고 주택구입에 대중들이 대거 뛰어든 것이다. 이미 97년 외환위기를 계기로 확산된 신자유주의적 부채-자산 경제가 대중들에게 ‘빚 권하는 사회’를 만들던 상황이었다. 당시 외환위기 극복 명분으로 시행된 경기부양 대책들은 가계를 내수부양의 희생양으로 삼는 것이었고, 가계가 돈을 쉽게 빌리도록 만드는 정책들이 확대되던 시절이었다. 여기에 부동산 투기거품까지 발생하면서 노무현 정권 말기엔 ‘버블세븐’이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어졌다. 분양권을 얻기 위해 밤샘 노숙을 벌이는 진풍경이 공중파 TV를 타고 전국으로 퍼져나갔다. 또 한 번 대중들은 마법에 걸린 것처럼 부동산 열병을 앓게 된 것이다.
그런데 이런 부동산 투기현상은 단순히 ‘빚 권하는 사회’가 만들어 낸 단면적인 현상이 아니다. 당시 90년대를 지나 2000년대를 넘어오면서 수도권으로 몰려드는 인구로 인해, 이를 수용할 새로운 2기 신도시가 필요했다. 노무현 정부 주도로 2003년부터 건설된 신도시들은 이런 수요를 감당하기 위한 것이었다. 오랫동안 국가복지가 전무했던 시절을 겪었던 대중들은 외환위기를 경험하면서 더욱더 사회안전망을 대체할 노후대책 수단으로서 주택소유에 대한 집착이 강해졌다. 이런 자산형성에 기댄 복지체계가 ‘빚 권하는 사회’와 만나면서 부동산 시장이 폭발한 것이다. 이것은 한편에서 보면 투기적 욕구와 신분상승의 열망이 가세하여 만들어진 것이지만, 다른 한편에서 보면 가계의 주택소유가 기본적인 복지수단일 수밖에 없었던 대중의 경제적 현실 때문이기도 하다. 가계가 보유한 주택자산에서 투기적 욕구와 복지적 욕구를 구분해 내기란 사실상 불가능한 것이다.
그런데 이런 사회변화와 생존전략이 모두에게 이익을 가져오진 않았다는 점은 누구나 잘 알 것이다. 한국도 미국처럼 2008년 금융위기를 계기로 빚테크의 환상이 깨지기 시작했고, 투자에 실패한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하우스푸어’가 바로 이것을 지적하는 말이다. 그리고 ‘하우스푸어’ 문제는 ‘역전세’, ‘깡통주택’, ‘깡통전세’라는 말을 만들어냈고, 이후 각종 푸어족을 만들어내는 시발점이 됐다. 학자금대출로 고통 받는 ‘에듀푸어’, 결혼으로 빚을 지기 시작하는 ‘웨딩푸어’, 수년 간 벌어진 전세급등으로 인해 전세대출을 상시적으로 끼고 살 수밖에 없는 ‘전세푸어’까지 등장했다. 가히 ‘푸어족’ 전성시대라 할 만하다. 이젠 삶의 모든 영역을 빚으로 메워야 재생산할 수 있는 시대가 되어 버린 것이다.
하지만 이런 가운데 ‘금융선진화 전략’을 통한 ‘주택금융화’는 위기 이전보다도 더 성장했다. 부실화 가능성이 높은 단기-변동금리-일시상환 주택담보대출을 장기-고정금리-분할상환 주택담보대출로 전환하고, 투자 대상으로서 모기지증권(MBS) 발행을 촉진했다. 이를 위해 MB정부는 비투기지역을 중심으로 주택담보대출 규제를 완화시키고, MBS 발행 확대를 위해 한국주택금융공사의 역할을 강화시켰다. 이후 주택담보대출은 다시 증가했고, 잔액은 2007년 말 약 287.7조원에서 5년 뒤인 2012년 말 약 431.8조로 증가했다. 박근혜 정부 역시 이런 주택금융 완화정책을 이어 받았는데, 심지어 전세대책을 빚내서 집 사는 대책으로 둔갑시키면서까지 부동산 시장 부양에 안간힘을 썼다. 그리하여 2015년엔 90년 이후 가장 많은 주택분양 물량(70만호)이 쏟아지기도 했다. 결국 다시 한 번 가계가 내수부양의 버팀목으로 동원된 것이다.
미래를 갉아먹는 주거난
하지만 이 과정에서 어느 누구도 ‘지옥고’에 시달리는 주거난민들을 위한 대책에 힘을 쏟지 않았다. 생색내기에 급급한 임대주택마저도 부지확보 실패와 지역 자산소유자들의 반대로 진척을 보지 못하고 있다. 한쪽에선 노후대비를 위한 수익형 부동산 투자광고가 뿌려지지만, ‘푸어족’들은 노후 대비는커녕 오늘을 살아가는 데도 버거워하고 있다. 금융위기 이후 10년이 지났다. 앞으로의 10년도 지금과 똑같이 보낸다면 우리사회에 정말 미래가 없을 것이다. 20년이면 한 세대다. 한 세대의 미래가 증발했다고 생각해보라. 이게 사회의 재생산토대가 붕괴된 게 아니고 뭐란 말인가. 대출규제냐 완화냐라는 숫자놀음에만 계속 맴돌고 있을 여유가 우리에겐 없다.[워커스 32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