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영(지구지역행동네트워크)
1984년 영국 광부 노조의 장기 파업 투쟁과 이 투쟁에 연대한 성소수자 단체 LGSM(광부를 지지하는 게이와 레즈비언)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 <런던 프라이드>가 최근 많은 이들의 공감과 감동을 이끌어내며 좋은 반응을 얻었다. 영화가 담고 있는 연대의 의미를 재연하듯 민주노총과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는 공동 단체관람 행사를 진행하기도 했다.
많이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한국에서도 성소수자들이 자신들의 정체성을 드러내며 노동운동 현장에 연대한 역사는 꽤 오래 됐다. 1997년 대학교 1학년이던 나는 선배들이 노동법 개악 저지 집회에서 발견한 잘생긴 남자가 알고 보니 게이더라는 둥의 이야기를 하며 아쉬워하던 장면을 기억한다. 아마 이 때가 사람들이 처음으로 집회 행렬에서 무지개 깃발을 발견한 때였을 것이다. 그 후로도 무지개 깃발은 노동 관련 집회 뿐 아니라 수많은 집회 현장에서 투쟁하는 이들과 함께했다. 하지만 아쉽게도 그 반대의 장면은 접하기가 어려웠다. 노동조합이 성소수자 관련 이슈나 투쟁 현장에 함께하는 장면 말이다.
그런데 2011년 ‘희망버스’를 계기로 눈에 띄는 변화가 시작됐다. 누가 일부러 조직하지 않았건만, 첫 번째 희망버스 현장에는 당시 부산 한진중공업 공장 크레인 위에서 외롭게 고공농성을 이어가던 김진숙 지도위원을 만나기 위해 찾아온 수많은 성소수자들이 있었다. 그 사실을 확인한 후 2차 희망버스부터는 성소수자들과 인권활동가들이 함께하는 ‘무지개버스’가 조직됐고, 당시의 1박 2일은 끝내 역사적인 장면을 남겼다. 폭우 속에서 부산역부터 영도조선소까지 행진을 하는 동안 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의 합창단 ‘지보이스’는 참가자들 사이에 섞여 노래를 불렀고, 뜨거운 태양열 아래 빗물과 최루액이 뒤섞인 거리에서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당시 ‘동성애자인권연대’)의 활동가들과 몇몇 성소수자 참가자들은 장애인 동지들과 함께 경찰 차벽 바로 앞에서 무지개 깃발을 들고 서 있었다. 밤새 파란 색소와 최루액 섞인 물대포를 쏘아대던 경찰은 다음 날까지 차벽 뒤에서 끊임없이 최루액을 쏘았고 무지개버스 참가자들은 얼굴과 온 몸에 최루액을 맞은 채로 함께 싸웠다.
결국 크레인 앞에는 가지 못하고 정리집회를 해야 했던 마지막 시간, 아마도 크레인 위에서 그 장면들을 트위터와 기사를 통해 생생하게 확인했을 김진숙 씨는 전화연결을 통해 발언을 하며 집회 현장 사상 처음으로 “성소수자 동지 여러분”이라는 말을 꺼냈다. 그 한 마디에 최루액으로 범벅이 된 무지개버스 참가자들의 얼굴 위에는 뜨거운 눈물이 하염없이 흘렀다. 그후 희망버스엔 항상 무지개 버스가 함께했고, 몇몇 성소수자 참가자들은 희망버스 이후 따로 남아 크레인을 찾아가거나, 희망버스가 아닌 때에도 개별적으로 영도조선소에 갔다. 영도조선소 앞에는 여섯 색깔 무지개가 들어간 지지 현수막이 걸렸다.
1박 2일의 시간 동안 꼼짝없이 길 위에서 싸우고, 먹고, 마시고, 자며 성소수자 참가자들과 노동자들은 그렇게 자연스럽게 만났다. 김진숙 씨의 발언이 한진중공업의 다른 남성 노동자들에게 미친 영향도 컸다. 처음엔 낯설어 하고 서로 긴장감이 흐르던 분위기는 차차 SNS나 메시지로 서로의 안부까지 묻는 사이로 진전됐다. 그 뒤로 대한문에서는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들과 만났고, 맞은편 환구단 앞에서는 재능교육 노동자들과 만났다. 콜트콜텍 노동자들과도 만났고, 세종호텔노조, 코오롱노조와도 만났다. 그리고 이 만남은 서울시 학생인권조례 제정 당시의 서울시의원회관 농성 투쟁, 서울시민인권헌장 제정 당시의 서울시청 농성 투쟁 연대와 퀴어문화축제, IDAHOT(국제성소수자혐오반대의날) 행사로까지 다양하게 이어졌다. 이제 노조 조끼를 입은 노동자들을 성소수자 집회 현장에서 만나는 것도 더는 낯선 일이 아니게 됐다. 이 과정은 그야말로 우리의 감동적인 ‘프라이드’ 역사이다.
성소수자와 노동자, 한 걸음 더
나는 이제, 한 단계 더 진전된 ‘프라이드’를 만들자고 제안하고 싶다. ‘성소수자’ 그룹과 ‘노동자’ 그룹이 서로의 현장에 찾아가는 연대가 아니라, 노동운동의 현장에서 성적 차별의 구조를 찾아 의제로 연결하고, 성소수자 운동의 현장에서 노동의 의제들을 찾아 연결하는 방향으로 말이다. 이 제안은 단지 ‘성소수자 노동자’의 존재를 인식하고 차별을 금지하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정체성 간의 연대나 ‘차별 금지’를 넘어, ‘노동’의 구조와 조건 자체를 다시 보고 의제를 재구성하자는 것이다.
‘노동자’를 임금노동, 상품생산노동을 하는 이성애자 가족의-성인-비장애인-남성 가장으로 전제하고, 다른 가족 구성원들은 기본적으로 그의 임금과 경제력에 의존하는 존재로 설정해 온 구조, 혼인과 혈연으로 구성된 가족만이 제도적 승인을 얻고 그에 따른 사회 보장을 얻을 수 있는 구조를 생각한다면 이 구조가 어떤 성적 차별을 통해 작동하고 있는지가 보다 명확하게 보인다. 그러나 현재의 노동의제들은 고용, 임금, 수당, 복지, 연금, 노동시간 등에 관한 요구들이 모두 이 구조가 내포하고 있는 전제들을 바탕으로 구성돼 왔다. 때문에 일례로 여성 성소수자 노동자들의 경우, 이런 구조 속에서 주거와 생계 유지에 대한 상시적인 불안감을 가지고 살아갈 수밖에 없다. 또한 담당하게 되는 일의 성격이나 고용, 임금에서의 차별 뿐 아니라 유니폼, 화장실, 탈의실 등이 모두 성별이분법에 따라 구획돼 있는 환경은 누군가에겐 애초에 장벽으로 존재하는 조건들이기도 하다.
2015년 민주노총은 내부 규약을 개정해 동성 배우자와 비혼의 실질적 동반자 관계를 모두 포함하여 가족수당을 지급하도록 결정했다. 이제 이런 시도들이 보다 구체적인 노동의제의 전환으로 이어지기를 바란다. 나아가, 노동의 효율성과 신체의 정상성, ‘노동’의 개념과 범주 자체에도 의문을 제기하는 운동이 시작되기를 바란다. 이러한 변화가 이루어진다면 우리는 진정 더 찬란한 ‘프라이드’의 역사를 만들게 될 것이다. 이것은 결국 ‘성소수자’와 ‘노동자’만의 문제가 아니라 이 구조에 연결된 우리 모두의 이야기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워커스 32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