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회의 결정이 보도되기 3개월 전인 2018년 11월 8일에는 군사고등법원이 성소수자 여군에게 수차례 성폭력을 가한 해군 상관 가해자 두 명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피해자는 첫 임관교육 때부터 동성애자라는 소문으로 이미 힘든 경험을 했고 군 조직의 특성상 성소수자에게 가해질 폭력이나 처벌, 불이익에 대해 계속해서 긴장 상태에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 피해자에게 “남자랑 경험을 안 해봐서 그런다. 남자 경험을 알려 주겠다”는 말을 하며 강간을 한 가해자가 무죄 판결을 받은 것이다.
가해자의 이런 행동은 성소수자들에게 강간을 통해 성정체성을 바로잡게 해준다는 명분으로 자행되는 소위 ‘교정강간’의 전형적인 언행이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하게 짚어야 할 몇 가지 지점이 있다.
첫째는, 소위 ‘교정강간’을 통해 바로잡겠다는 ‘교정’의 목적이 실은 피해자의 성정체성에 있는 것이 아니라 성별이분법, 이성애 중심주의, 성역할과 섹슈얼리티에 관한 규범과 질서를 지키겠다는 데에 있다는 점이다.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의 ‘교정강간’ 사례들은 이 사실을 응축적으로 보여준다. 레즈비언이라는 사실이 굳이 확인될 필요도 없이, 축구를 한다거나 ‘여자답지 않은’ 행동을 하는 여성들, 부족 공동체를 떠나 자기 삶을 사는 여성들, 남성과의 성관계를 거부하거나 결혼을 하지 않는 여성들이 교정강간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1997년 이후 남성들의 심각한 실업 사태는 이러한 폭력을 사회적으로 정당화하는 데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 그리고 백인 여성들보다 흑인 여성들에게 더 많은 ‘교정강간’이 자행됐다. 즉 ‘교정강간’의 실제 원인은 피해자의 성정체성에 있는 것이 아니었다. 이 사건의 경우에도 가해자의 행위는 단지 피해자 개인에 대한 ‘교정’을 목적으로 했다기보다는 이를 명분으로 군 내에서의 위계와 권력적 위치를 확인하고 피해자를 길들이겠다는 생각을 바탕에 깔고 자행된 것으로 봐야 한다.
둘째로, 이 사건이 군에서 벌어진 일이라는 점이 이 ‘교정강간’의 맥락을 더 복잡하게 만든다. 군은 남성 중심의 위계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남성성과 남성 섹슈얼리티를 강하게 통제하는 집단이다. ‘군은 가장 남성적인 집단’이라는 전제 하에 권력에 의한 성폭력은 동성 간이나 이성 간을 불문하고 묵인되지만 동성애자 군인은 처벌하며, 여기서 다시 여성 동성애자 군인은 비가시화 된다. 이런 조직에서 가해자는 피해자의 섹슈얼리티를 철저하게 무시하고 자신의 남성성을 과시하며 확인하는 방편으로 위력을 이용한 성폭력을 자행했다. 소위 ‘교정강간’에 해당하는 행위를 했지만 재판 과정에서 가해자가 피해자의 성적지향을 교정하겠다는 명분을 내세우지 않았던 것은 여성 성소수자인 피해자의 섹슈얼리티 자체를 제대로 인식하거나 인정하지 않게 만드는 이와 같은 군의 맥락 속에서 읽어내야 하는 것이다.
‘교정강간’은 ‘전환치료’의 명분이 지니고 있는 폭력성이 사회적으로 정당화될 때 다다를 수 있는 극단의 결과를 보여준다. 여기에는 성소수자 혐오뿐 아니라 여성혐오와 계급, 인종 등 다양한 조건들이 동원되고, 교차된다. 기왕에 한국상담심리학회가 ‘전환치료’의 심각성에 대해 인지했다면 변명할 필요 없이, 이것이 개인에 대한 폭력일 뿐만 아니라 결과적으로 매우 심각한 사회적 폭력임을 분명히 확인하고 원칙을 견지하기를 바라는 이유다.
게이로서 칠레의 시인이자 정부에 맞서 싸웠던 활동가인 페드로 레메벨(Pedro Lemebel)은 1986년 9월, 산티아고에서 열린 좌파 정치행동 집회에서, 좌파조직과 행동 전망에서도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가 존재한다고 비판하며 이렇게 선언했다.
“여기, 나의 얼굴이 있다.
나의 차이를 말하는
내가 누구인지를 옹호하는
나는 그리 드문 존재가 아니다.”
<선언_나의 차이를 말한다>[워커스 52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