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영(지구지역행동네트워크 적녹보라 의제행동센터장)
한국은 ‘여성 대통령 쇄신론’을 내세우고 당선한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인용 결정으로 떠들썩했다. 같은 시간 인터넷 무대에선 나이지리아 흑인 페미니스트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의 한 인터뷰가 논란이 됐다. 한국에서도 그의 책, <우리는 모두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합니다>로 잘 알려진 그가 영국 <채널 4>와의 인터뷰에서 “트랜스여성은 트랜스 여성일 뿐이다. 남성의 특권을 갖고 남성으로서 살다가 젠더를 바꾼 사람을 처음부터 여성으로서 살며 여성의 경험을 한 이들과 동등하다고 할 수 없다”고 답했기 때문이다. 애초 진행자인 캐시 뉴먼이 뻔한 유도 질문을 던졌던 것부터가 문제였지만, 흑인 여성으로서 여성들의 경험이 모두 동일하지 않고 또 다른 특권과 위계가 존재할 수 있음을 이미 잘 알고 있을 그녀가 이런 발언을 했다는 사실은 많은 사람들에게 상당한 충격을 주었다.
이 일이 있은 지 며칠 후, 한국에서도 페이스북의 한 게시물이 큰 논란을 일으켰다. “페미호 노젓기도 턱 끝까지 숨차 오르는데 가로막는 암초에 이젠 다른 배 노까지 저으라고 압박하네요”라는 글과 함께 게시된 그림이었다. 이 한 장의 그림 안에는 “페미니스트라면 종차별 하면 안돼요! 고기 끊읍시다!”라며 동물권을 주장하는 사람, “페미니스트라면 소수자와 공감해야죠! 병신이란 말 쓰지마 씨발련아!”라고 하고 있는 ‘장애인권’ 활동가, “게이도 약자인 거 알죠? 페미니스트라면 게이인권에도 힘써주세용”하고 있는 게이, 그리고 “저 저번 달에 여자됐어요! 우리 성매매 하는 거 도와주세용! 페미니스트라면 우리 마음도 잘 알겠죠?”라고 하고 있는 ‘트젠’(트랜스젠더)이 그려져 있다. 이 그림이 다른 소수자들에 대한 혐오표현이라는 주장이 제기되자, 페이지의 게시자와 의견을 같이 하는 사람들은 성소수자 여성, 장애인 여성까지 배재하겠다는 의미는 아니라고 항변했다. 남성 중심의 문화와 여성혐오를 성찰하지 않으면서 ‘페미들에게만’ 연대를 강요해온 다른 운동의 요구들과는 단절하고 ‘여성들만’ 챙기고 가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맥락에서 장애인 남성, 게이 남성, 트랜스젠더 여성은 이미 남성이라는 특권을 지니고 있거나 경험했으므로 시스젠더(자신의 성별 정체성이 사회적/법적 지정성별과 일치하는 사람) 여성에 비해 소수자이거나 약자인 것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여성 성기와 XX 염색체를 가지고 태어나 ‘여성으로서의 경험’을 한 ‘시스젠더 여성’만이 ‘진짜 여성’이고, ‘시스젠더 여성임’은 특권이 아니며, 트랜스젠더 여성에 관한 운동 의제는 페미니즘 의제들로부터 분리되어야 한다는 일련의 주장을 가진 급진 페미니즘의 한 부류를 TERF(Trans-Exclusionary Radical Feminism/-st 트랜스젠더 배제적인 급진 페미니즘/페미니스트)라고 부른다.
이들은 흔히 ‘사회적 성별’로 설명되는 ‘젠더’가 성별에 따른 역할과 표현을 억압적으로 길들이기 위한 이데올로기일 뿐이라고 이해하기 때문에 “젠더를 폐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트랜스젠더 여성들은 가부장제가 요구해온 ‘전형적인 여성성’을 강하게 드러내기 때문에 여성들에 대한 차별적 인식과 폭력을 강화하는 데 기여한다고 보는 것이다. 나아가 트랜스젠더 여성들을 이미 남성으로서 누린 특권을 유지한 채 ‘여성 영역에 침입’하는 이들로 본다. 최근에 이런 주장들은 성 중립 화장실 논의가 본격화되고, 트랜스젠더 성노동자들과 반성매매 입장이 부딪히면서 더욱 강하게 드러나고 있다. 이들에게 트랜스젠더 여성은 언제든 자신에게 남아 있는 ‘남성’으로서의 생물학적/신체적 조건이나 사회적 특권을 이용해 폭력을 저지를 위험을 안고 있거나, 여성들에게 중요한 사회적 논쟁의 영역을 침범하여 논점을 흐리는 이들로 여겨진다. 따라서 “트랜스 여성은 트랜스 여성일 뿐”이라는 치마만다의 발언이 이런 주장들의 맥락과 맞닿으면서 더욱 논쟁의 대상이 된 것이다.
그런데 과연 우리는 ‘생물학적 여성’이라는 조건과 ‘여성으로서의 사회적 경험’이라는 조건의 일치를 어떻게 완벽하게 증명할 수 있을까? 2012년 대선 당시 야권에서는 “결혼도, 출산도 해보지 않았고 여성 노동자로서 살아보지도 않은 박근혜는 ‘생식기만 여자일 뿐’, ‘여성’ 대통령으로서의 자격이 없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남성 후보에게는 특정 성별을 대표할 자격을 묻지 않으면서 유독 여성 후보에게만 ‘여성을 대표할’ ‘여성으로서의’ 자격을 묻는 구도는 이미 공정하지 않을뿐더러, ‘여성으로서의 경험’이란 보편적이거나 동일하지 않다는 점에서 당시 박근혜 후보에 대한 이러한 공격 전략은 실패할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한편, ‘생물학적 조건’이라고 간주되는 생식기, 자궁, 염색체, 호르몬, 생리, 임신/출산 경험 등도 실제로는 모든 여성들에게 동일한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TERF는 ‘생물학적 조건’과 ‘여성으로서의 경험’을 기준으로 ‘진짜 여성’이라는 집단을 설정하고, 트랜스젠더 여성들을 배제한다. 나아가, 모든 트랜스젠더 여성들이 소위 ‘전형적인 여성성’을 드러내는 복장과 행위를 하거나 완전한 수술을 원하는 것이 아님에도 그렇다고 전제하며, 트랜스젠더로서의 정체화가 단지 정신적인 문제이거나 자신의 지정성별과 다른 젠더 표현에 대한 욕구 문제가 아니라는 점을 의도적·비의도적으로 간과한다.
자신의 성별 정체성과 지정성별의 불일치 속에서 끊임없이 다양한 통제와 낙인, 폭력을 경험하는 트랜스젠더들에게 자신의 성별 정체성을 표현하는 행위와 복장은 사회적 생존과 자존감의 문제다. 성별 이분법에 따른 위계를 교란시키는 존재로서의 ‘트랜스젠더’에 대한 낙인이 ‘여성’에 대한 혐오폭력과 함께 중첩되고 강화될수록 사회는 트랜스젠더 여성들뿐 아니라 시스젠더 여성들에게도 점점 위협적인 공간이 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이들의 젠더 표현이 여성성을 강화한다고 공격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성별 이분법을 통한 위계 속에서 ‘여성으로서의 자격 요건’을 증명하라고 요구하는 사회를 함께 흔들어야 하는 것이다.
치마만다의 인터뷰를 본 흑인 퀴어 트랜스젠더 활동가 라켈 윌리스는 이런 트윗을 남겼다.
“당신이 트랜스 여성과 그들의 여성성을 배척하고 평가절하할 때, 당신은 가부장제의 도구가 된다. 그건 마치 역사적으로 백인 여성이 자신들의 방식으로 여성성을 말하는 흑인 여성들에게 위협을 느꼈던 것과 같다. 시스젠더 여성들은 트랜스 여성에게 똑같은 것을 느낀다. 시스젠더 여성들이 괴롭힘이나 폭력을 한 번도 경험한 적 없다고 해서 그들이 ‘덜 여성’이라고 우리가 말하는가? 그렇지 않다. 트랜스 여성들에게 그들이 얼마나 여성인지 증명하라며 특정한 억압의 경험을 제시하라고 하는 건 터무니없을 뿐더러 ‘특권적’이다. 그런 조건에 따르면 많은 부유한 시스젠더 헤테로 여성들 역시 ‘진짜 여성’은 아닐 것이다.”[워커스 29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