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하반기, 주변은 온통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에 관한 이야기로 들썩였다. 아니나 다를까. 이제 한국 관람객의 숫자가 영국 관람객 수를 넘어섰다고 한다. 퀸을 아는 세대는 저마다의 추억을 이야기하고, 몰랐던 세대도 “이 곡들이 다 퀸의 노래였다니”하며 수차례 극장을 찾아 함께 노래 부른다. 그런데 내 주변엔 조금 다른 지점에서 이 영화에 눈물을 흘리는 친구들이 있다. 프레디 머큐리보다는 파록 버사라인 친구들. 혹은 그 친구들의 이야기다.
파록 버사라는 이민자의 자녀였고, 한때 공항에서 수하물을 운반하는 노동자였으며, 양성애자였다. 동시에 발레를 사랑했고, 그림을 그렸으며, 엄청난 음악적 재능을 지니고 있었다. 그는 이민자의 자녀이자 양성애자인 파록 버사라를 거부하고 프레디 머큐리로 살아가고자 했다. 그러나 ‘부적응자들을 위해 노래하는 부적응자들’로서 무대에 설 때 그는 프레디 머큐리이자 동시에 파록 버사라였다.
이 영화는 파록 버사라가 프레디 머큐리로 살다가 다시 프레디 머큐리로서 파록 버사라와 하나가 되는 이야기다. 그래서 그가 마침내 앞에 앉아 손을 잡은 후 잠시 동안의 망설임 끝에 “친구에요”라고 말했을 때, 내게도 어쩔 수 없이 눈물이 고였다. 비록 이 장면이 실제와는 다른 영화적 장치일지라도, 그 장면들에서 지금 여기의 파록 버사라들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프레디 머큐리와 짐 허튼은 동성결혼이 법적으로 인정되지 않았던 1986년, 머큐리의 40세 생일에 비공식 결혼식을 했다. 머큐리는 허튼에게 런던의 집에서 계속 살게 했지만, 그의 사후 허튼은 머큐리의 전 연인이었던 메리 오스틴에 의해 집에서 쫓겨났다.
그리고 파록 버사라이자 프레디 머큐리, 그는 HIV/AIDS 감염인이었다. 에이즈 발병 이후 세상은 그를 지독하게 괴롭혔다. 언론은 그가 게이이며 감염인이라는 사실을 집요하게 가십거리로 삼으며 따라다녔고, 한국에서도 부정적인 기사가 많이 나왔다. 그는 바르셀로나 올림픽 주제가를 만들었지만, 그의 사후 바르셀로나 올림픽 위원회는 “에이즈로 사망한 가수의 노래를 올림픽 주제가로 인정할 수 없다”며 공식 주제가에서 제외했다. 어쩌면 오랫동안 우리가 그를 잊고 있었던 것은 단지 세월이 흘러서가 아니라 세상이 그를 지워나갔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2018년 한국의 파록 버사라들
<보헤미안 랩소디>의 흥행이 멈출 줄을 모르고 수많은 사람들이 프레디 머큐리의 일화들을 찾아내며, 곳곳에서 퀸의 노래가 다시 울려 퍼지는 한국의 2018년. 그러나 이곳에도 파록 버사라들은 여전히 존재한다.
원주시의 어느 화학공장에서는 베트남 이주노동자들이 원인을 알 수 없는 폭발로 사망하거나 크게 다쳤다. 수원 에서는 아파트 외벽 페인트 작업을 돕던 20대 러시아 노동자가 추락해 숨졌고, 부산에서는 캄보디아 노동자가 입국한지 3개월 만에 굴착기에 치여 숨지기도 했다. 기본적인 안전 조치조차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작업환경에서 세상에 제대로 알려지지도 못한 채 사망한 이주노동자들이 지금 여기, 파록 버사라로서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여전히 수십 년을 함께 살아도 파트너이자 인생의 동반자로서 아무런 권리도 인정받지 못하고 연인의 장례식에조차 참여할 수 없는 사람들이 있다. 지금도 어느 강연장, 교회, 텔레비전, 라디오, 신문, 유튜브 채널에서는 “에이즈의 원인은 동성애”이며, “에이즈 환자들 치료비로 국민의 세금이 낭비된다”고 선동하는 이들이 목소리를 높이고, 어떤 이들은 이 영화가 프레디 머큐리를 통해 게이와 에이즈를 미화한다고 떠들어댄다.
요양병원을 운영하며 에이즈 환자들에게 수차례의 인권 침해를 자행했던 염 모 원장은 여전히 감염인들의 인권을 침해하는 강연과 방송을 하고 다닌다. 치료를 거부당하는 HIV/AIDS 감염인들은 기본적인 치과 치료조차 받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보헤미안 랩소디>의 화려한 흥행 가도가 무색하게, 너무 많은 파록 버사라, 어쩌면 프레디 머큐리인 사람들이 여전히 삶을 왜곡당하거나 존재가 지워진 채 사라져가고 있다. 영화가 다 끝나고 사람들이 거의 남지 않은 상영관에서 마지막 자막이 올라갈 때쯤, 프레디 머큐리가 참여한 마지막 곡, <The show must go on>이 흘러나온다. 전해지는 이야기로는 브라이언 메이가 이 곡을 완성하고 나서 음이 너무 높아 걱정했을 때, 투병 중이던 프레디 머큐리가 보드카를 한 잔 들이키고는 한 번에 불렀다고 한다. 판토마임 같은 세상에서 마음이 부서지고 분장이 흘러내려도 삶을 이어나가는 파록 버사라들이 지금 여기에 있다. 세계인권선언 70주년이라는 2018년, “모든 사람은 자유로운 존재로 태어났고, 똑같은 존엄과 권리를 가진다”는 세계인권선언 1조가 영화 속의 프레디 머큐리와 파록 버사라를 넘어, 이곳의 우리들에게 연결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