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재벌에 국가자산 팔아먹는 정부
최근 산업은행의 대우조선해양 매각이 일사천리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사전에 치밀한 계획과 각본이 없었다면 불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속전속결이죠. 1월 30일 현대중공업이 인수의향서를 제출하자마자 하루 만에 산업은행, 현대중공업, 대우조선해양 3곳 모두 이사회를 열고 인수합병을 추진하기로 했다고 발표했습니다. 이후 산업은행은 ‘한국 조선업 빅3’ 중 나머지 한 곳인 삼성중공업에도 인수 의사를 물었지만, 불과 열흘 뒤 2월 11일 삼성중공업은 애초 제시된 답변기한(2월 28일)보다 한참 빠르게 인수 의사가 없음을 통보했습니다. 그야말로 형식적인 확인 절차일 뿐이었죠. 산업은행과 현대중공업은 3월 8일 본계약 체결을 앞두고 있습니다. 그간 구조조정으로 희생만 강요당했던 노동자들은 매각이 더 심각한 생존권 위기를 불러일으킬 수밖에 없기에 파업을 비롯한 저항에 나서고 있죠.
대우조선해양은 국책금융기관인 산업은행이 과반 지분을 보유한(약 56%) 사실상 국유기업입니다. IMF 위기로 대우그룹이 붕괴하자 국가는 대규모 공적자금을 투입해 주요 계열사들을 인수했죠. 대기업이 무너지면 그 대기업에 투자하거나 돈을 빌려준 금융자본은 물론이고 거기에 딸린 부품사 등 중소하청업체들까지 줄줄이 도산위기를 맞게 되니 국가로서는 그야말로 감당할 수 없었던 겁니다. 하지만 국가(정부와 산업은행)는 이 기업들을 공적으로 운영한 게 아니라 철저히 ‘채권자’로서 행동합니다. 어떻게든 이윤을 내서 다시 사기업으로 팔아치우려 한 것이죠.
손해는 세금으로 메우고 이윤은 다시 민간자본에 넘겨주는 행태, 이른바 ‘손실의 사회화, 이익의 사유화’는 IMF 이후 지난 20년간 반복됐습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대우자동차입니다. 대주주이자 채권단 대표 격이었던 산업은행은 2002년 미국 자동차회사인 GM에 대우차를 헐값으로 팔아넘기죠. 대우차는 현재 ‘한국지엠’으로 이름을 바꾸었지만, 당장 작년만 해도 산업은행은 GM의 철수 협박에 비공개협상을 진행하며 8천억 원의 세금을 추가로 GM에게 퍼줬죠. 국가의 지원을 뜯어먹은 GM은 군산공장 폐쇄에 이어 지금도 연구개발부문 분할, 정비사업소 외주화, 공장가동률 축소 등 구조조정을 계속하는데도 말입니다.
산업은행은 일찍부터 대우조선해양도 마찬가지로 팔아치우려 했습니다. 대우그룹이 붕괴한 1999년부터 말이죠. 하지만 번번이 인수 협상에 실패했고, 더군다나 2013년부터는 연간 수천억 원에서 1~2조 원대의 영업이익 적자를 기록하면서 이는 더 어려워졌습니다(뒤에서 살펴보겠지만 이 천문학적 적자는 결코 노동자들 때문이 아니라 대우조선해양을 사기업처럼 운영했던 경영실패 때문입니다). 자본주의에서 어떤 사기업이 빚더미에 앉은 회사를 떠안으려고 하겠습니까? 때문에 정부는 가혹한 구조조정으로 대우조선해양을 흑자로 전환하고 어떻게든 매각하려 한 것이죠. 가령 박근혜 정부는 조선업 구조조정이 한창 진행 중이던 지난 2016년 <조선산업 경쟁력 강화방안>을 발표해 인력과 자산의 대폭적인 축소, 매각과 함께 “대우조선 민영화, M&A 등 산업재편”을 추진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문재인 정부도 똑같습니다. 작년 4월 정부는 <조선산업 발전전략>을 내고 “대우조선 주인 찾기”를 검토하겠다고 명시했습니다. 그리고 2017~18년 대우조선이 흑자를 기록하자 재빨리 현대중공업에 팔아넘기려는 것이죠.
그간 대우조선해양에 들어간 공적자금은 약 13조 원에 달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지금 현대중공업이 대우조선 인수에 들이는 현금은 4천억 원에 불과하죠(참고로 대우조선해양 자산규모는 2018년 3분기 말 기준 11조 5천억 원입니다). 산업은행이 보유한 대우조선 지분을 현금을 받고 파는 게 아니라 현대중공업 주식과 맞바꾸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현대중공업 정몽준, 정기선 등 총수 일가는 흑자로 전환한 11조 원 규모의 알짜배기 국유기업을 단 4천억 원에 사들이면서 동시에 산업은행이라는 국책금융기관을 후원자로 둘 수 있게 된 것이죠.
주요 언론은 말할 것도 없고 문재인 정부를 포함해 역대 정부는 지금까지 “대우조선해양에 주인이 없어서 회사가 제대로 운영되지 못했다. 주인을 찾아줘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런데 대우조선해양이 정말 ‘주인 없는’ 기업일까요? 여태 대우조선에 투입된 공적자금은 ‘주인 없는’ 돈이었습니까? 오히려 진짜 주인들을 철저히 배제하고 사기업으로 전락시켜 경영진과 권력자들이 멋대로 운영한 게 문제 아닐까요? 국가자산이자 기간산업을 재벌 특혜로 넘기려는 지금, 노동자 수만 명의 생존권이 계약서 하나에 나락으로 떨어질 위기에 처한 지금, 사회주의가 제시하는 대우조선의 진짜 주인을 찾아봅시다.
#2. 누가 대우조선을 망쳤을까
2013년 ‘글로벌 컨설팅 업체’라는 맥킨지가 대우조선에 컨설팅 보고서를 보냅니다. ‘2020년까지 해양플랜트산업이 성장할 것이니, 여기 주력해 사업 비중을 높이라’는 게 골자였죠. 당시 국제 유가가 상당히 높았기 때문에, 해저 시추로 천연가스와 석유를 뽑아내는 해양플랜트가 이윤을 가져다줄 수 있으리라 예상한 것입니다. 대우조선 경영진은 이 조언을 충실히 이행해 핵심기술도 없는 해양플랜트에 무작정 뛰어듭니다. 천문학적인 비용이 들었죠.
불과 1년 뒤 국제유가가 폭락합니다. 2014년 6월부터 꺾이기 시작한 유가는 반년 만에 절반 이하로 추락했죠. 해양플랜트 사업에 올인했던 전제가 허무하게 무너진 겁니다. 해양플랜트에 뛰어든 한국의 대형조선 3사가 모두 위기에 빠집니다. 대우조선의 대규모 부실도 이때 발생하죠. 2011년 말까지 연간 1조 원 수준의 영업이익 흑자를 내던 대우조선은 2013년 1조 원 규모 적자를 기록합니다. 이어 2014년 5천억 원, 2015년 2조 원, 2016년 1조5천억 원의 영업손실을 연달아 보게 되죠. 언론과 분석기관들은 앞 다퉈 해양플랜트가 문제의 근원이라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이제 다시 맥킨지가 등장합니다. 2013년에 해양플랜트사업을 종용해 막대한 부실을 야기했던 이 ‘컨설팅 업체’는 3년 뒤인 2016년 한국 조선업에 대한 구조조정 보고서를 제출하죠. 그리고 뻔뻔하게도 자신이 컨설팅한 대우조선이 ‘독자 생존할 수 없으며 한국 조선업을 현대중공업·삼성중공업의 빅2 체제로 재편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한국 정부는 이 ‘극단적인’ 대책을 받아들이지 않겠다고 하면서도 앞서 지적했듯 “대우조선 민영화, M&A 등 산업재편”을 추진하겠다고 발표하죠. 그리고 이를 위해 2015년부터 고강도 구조조정을 밀어붙입니다.
이 엄청난 경영실패에 대해 대우조선 최대주주인 산업은행과 국가는 어떤 책임도 지지 않았습니다. 1년 만에 밑바닥이 드러난 해양플랜트 사업은 오히려 정부가 맞장구치며 독려한 바 있었죠. 구조조정의 피해는 고스란히 노동자들이 떠안았습니다. 구조조정 이후 대우조선의 자본 대비 부채 비율은 2015년 말 기준 무려 3,000%에 달했지만 2018년 3분기 말에는 216% 수준으로 떨어져 ‘정상기업’과 별반 다르지 않은 상태를 회복합니다. 영업이익은 2017년 7천억 원 흑자를 기록했고, 2018년에도 3분기까지 누적 흑자액이 7천억 원을 넘어섰죠. 2021년까지 선박 인도에 따라 2조 7천억 원에 달하는 현금도 들어올 예정입니다.
그동안 노동자들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대우조선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2013년 말 기준 1만 3천 명이 넘었던 노동자 수는 2018년 9천 9백 명 수준으로 줄어들었습니다. 3천 명 이상이 쫓겨난 것이죠. 1인 평균 급여도 연간 3천만 원가량 삭감했습니다. 게다가 이건 어디까지나 직접 고용한 노동자들에 관한 수치입니다. 조선업은 직접고용 정규직보다 다단계 하청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훨씬 더 많은 수를 차지하죠. 이 조선소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소리 없이 수만 명이 잘려나갔습니다.
#3. 자본주의 조선을 넘어
국유기업 대우조선은 이렇듯 철저히 사기업으로 운영됐습니다. 막대한 공적자금이 들어가고 정부 지분이 과반을 점하는데도 민주적, 공공적 통제는 없었습니다. 정부가 내려보낸 낙하산 인사들이 대우조선 경영을 좌지우지하면서 자신들의 사익을 챙기는 데 열중할 따름이었죠. 한편, 2015년 본격화한 조선업종 위기는 시장과 자본주의적 경영 실패를 단적으로 드러냈습니다. 바로 앞서 언급한 맥킨지의 컨설팅은 그 적나라한 사례입니다. 또한 고질적인 문제로 지적돼온 조선사들의 이른바 ‘저가 수주 경쟁’도 마찬가지죠. 어떻게든 수주를 따내 이윤을 남기기 위해 조선사 자본이 경쟁적으로 입찰가를 낮추면서 부실경영을 부채질했다는 겁니다.
불투명한 시장변동, 아무 책임도 지지 않는 자본의 컨설팅, 이윤을 얻기 위한 출혈경쟁. 언제까지 여기에 수십조 원의 공공자금과 수만 명 노동자의 생존권이 담보 잡혀야 하나요? 대우조선의 주인은 엄연히 이 사회 전체입니다. 이 사회적 자산을 왜 재벌이라는 사적 자본에, 그것도 헐값으로 팔아넘겨야 합니까? 얼마든지 공적 소유를 유지하면서 공공적 통제를 강화할 수 있는데 말입니다.
사회주의자들은 기간산업의 소유구조를 국가 소유나 사회적 소유 형태로 바꾸고, 공공의 목적에 따라 공동체 구성원들이 민주적으로 통제하고 운영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대우조선은 이미 지난 20년간 계속 국유기업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여태까지의 자본주의적이고 시장에 종속된 한편 관료적이었던 기업운영을 전환하면 됩니다. 정부와 산업은행이 내려보내는 낙하산 경영진이 아니라, 노동자들이 선출한 작업장 대표들과 해당 지역공동체에서 뽑힌 주민 대표들이 일차적으로 경영의 주체가 될 수 있을 겁니다. 또한 직장-지역-산업-전국에 걸쳐 평의회처럼 노동자들의 민주적인 의사결정기구가 존재하는 사회주의 사회라면, 필요 시 산업별 평의회나 전국 평의회에서도 대표자들을 파견할 수 있겠죠. 조선업 같은 기간산업은 다양한 전후방 산업과 연계되어 있으니 말입니다.
더 이상 맥킨지 같은 자본 컨설팅 업체와 불투명한 시장에 미래를 맡기는 일은 없을 겁니다. 사회주의는 생산수단의 공적 소유와 민주적 통제뿐 아니라, 사적 자본의 이윤이 아닌 사회구성원들의 필요에 입각한 생산을 핵심 목적으로 하죠. 노동자들과 주민들이 각급 평의회라는 민주적인 망으로 모여 있어 공동체 단위별로 필요한 재화와 서비스를 확인하고, 국가 전체 차원에서는 경제계획위원회 같은 보조기구를 둬서 소비재나 생활용품·서비스뿐 아니라 국가 경제와 산업 수준에서 필요한 게 무엇인지 조사할 겁니다. 사회주의에서도 당연히 선박과 대형선들은 필요합니다. 진정 자유로운 세계무역(자본의 이윤과 수탈의 도구로서가 아닌)을 위해서라도 말이죠. 또한 가령 국가가 친환경 선박을 상용화하고 늘리고자 한다면, 계획적으로 이를 국영 조선소에 맡겨 건설할 수도 있을 겁니다. 이윤을 낼 수 있을 것이라 예상해 무턱대고 대규모 비용을 들여 배를 만들었다가 수익성이 없다고 판명돼 위기를 맞이하는 지금과 같은 반복되는 혼돈을 없애는 것이죠.
한발 더 나아가면, 사회주의에서는 더 이상 각각의 조선소가 개별 이윤을 위해 경쟁하는 일은 없을 겁니다. 대우조선뿐 아니라 현존하는 거대조선소에서 중소 조선사, 기자재 업체 등에 이르기까지 산업생태계를 구성하는 각 기업의 주인은 더 이상 개별 자본가들이 아니게 됩니다. 사회적으로 합의해 산출한 필요에 맞게 선박 건설계획을 수립하고, 이를 산업평의회에서 노동자들이 논의해 어느 선박을 어느 조선소에서 어떻게 만들지 스스로 결정하게 될 겁니다. 출혈경쟁의 낭비도, 자본의 손실을 노동자들에게 떠넘기는 일도 없는 것이죠.
하지만 상상은 현실의 힘이 없다면 공상에 불과할 뿐입니다. 조선업이라는 기간산업을 공동체가 공적으로 통제할 수 있느냐 없느냐, 대우조선 매각 사태에 맞서 싸움을 시작하는 노동자들은 이 질문을 맞닥뜨리고 있습니다. 생존의 기로에 선 대우조선 노동자들의 절박한 투쟁이, 그리고 그 투쟁에서 생존을 위해서라도 공적 통제를 요구로 정립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한 이유입니다.(워커스 52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