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말] 한국에 있는 난민의 수는 약 4만 명이다. 이중 약 20% 여성이지만 이들의 이야기는 좀처럼 주목되지 않는다. 지난해 난민 대 국민 또는 난민 대 여성 구도로 논쟁이 붙었을 당시에도 그랬다. 세계 여성의 날을 계기로 한국 난민여성의 여건을 살펴본다.
[이슈(1) 차례]
①새드엔딩으로 끝난 난민여성의 한국 결혼생활(링크)
②여성난민, 전쟁과 폭력에 쫓겨 대한민국에 왔지만
③한반도 평화? 전쟁지원국의 무기대장 문재인
“엄마, 우리가 뭔가 잘못했어요? 감옥에 있는 것 같아요.”
인천공항에 억류됐을 때 작은 아이가 말했다. 사라(가명) 씨는 지난해 3월 아이 둘과 함께 한국행 비행기를 탔다. 반정부 활동을 문제 삼은 본국 경찰의 체포를 피해 택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그런 사라 씨를 맞은 한국의 첫 마디는 “너희 나라로 돌아가라”였다. 공항 출입국 직원의 말이었다. 그는 8일간 인천공항에 억류됐다. 창문이 없는 형광등 아래서 낮을 보내면 밤에는 차가운 바닥에 누워 잠을 청해야 했다. 며칠 후 생리를 시작했지만 담요 한 장 구할 데가 없었다. 구금이 끝나고 밖으로 나오자 아이가 “엄마, 태양이에요”라며 감격했다. 아이들은 이미 고국과 망명길에서 많은 일을 겪은 상태였다. 사라 씨는 ‘이제는 나밖에 없는데, 다시 고통스러운 삶으로 아이들을 데려 왔구나’라고 생각했다.
박해를 피해 한국으로 탈출해온 여성난민은 공항에서부터 또 다른 고통과 마주한다. 이를테면, 인천공항이나 제주공항 모두 여성난민에게 생리대 같은 여성용품을 지원하지 않는다. 제주공항은 난민들을 성별로 나누어 억류하지만, 남성이 언제든 여성실로 갈 수도 있다. 여성난민이 아이와 함께 환승구간의 수유실이나 놀이방에라도 들어가면 쫓겨나는 사례도 있다. 공항에서부터 다시 반복되는 여성난민들의 수난을 당사자와 난민 인권 활동가들의 의견을 중심으로 살펴봤다.
여성난민, 보이지 않는 사람들
한국에 있는 난민의 수는 약 4만 명이다. 이 중 약 20%인 여성 대부분은 사라 씨가 겪은 이야기를 공유한다. 그러나 어디에서도 여성난민들의 이야기는 좀처럼 눈에 띄지 않는다. 지난해 예멘 난민 뉴스가 전해졌을 때도 그랬다. 별안간 ‘난민 대 국민’, ‘난민 대 여성’이라는 구도로 불이 붙으면서 여성난민은 못 본 체했다. 난민 혐오 논리 속에 ‘여성’은 ‘내국인’으로 정체화됐고 ‘남성난민’이 ‘내국인여성’의 안전을 위협할 것이라고 성화를 부렸다. 난민은 가해자가 되고 내국인은 피해자가 되는 논리. 그러나 이 논리는 일반적으로는 무시되는 내국인 여성의 피해를 유독 강조하면서도 난민은 남성화해 여성난민의 존재는 지우는 이중의 모순을 지니고 있다.
여성난민의 비중이 적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여성난민 수는 매년 증가하고 있다. 전체 난민 중에서도 증가폭이 더욱 늘고 있다. 정부의 난민통계 현황에 따르면, 여성난민의 수는 2010년 전체 423명 중 64명으로 15.1%였지만, 2017년엔 전체 9,942명 중 2,117명으로 21.3%를 차지했다.
가부장제의 도돌이표
그러면 여성난민들은 한국에서 어떤 상황에 처하게 될까? 여성이든 남성이든 난민 모두의 상황이 녹록지 않지만 여성난민의 운동장은 더욱더 가파르다. 이들은 이미 고국에서 정치와 종교, 전쟁에 의한 박해를 당하면서도 젠더폭력의 희생자로 쫓겨 더 험난한 길을 걸어야 하는 경우가 많다. 더구나 피신하면서 폭력과 착취, 성폭력 위험에 노출되기도 하고 한국에 도착한 후에도 젠더폭력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여성난민이 가정폭력을 호소한 경우가 있었어요. 그 뒤 남편은 고국으로 돌아가 버렸는데, 아내의 난민신청 사유가 남편에 종속돼 있기도 했고, 좁은 난민 커뮤니티에서 모른 채 살아가기도, 생계도 어려워 아내 역시 본국으로 돌아갔습니다. 가정폭력은 어디서든 일어날 수 있는 문제인데, 여성난민의 경우에는 더욱 취약해요.” ― 정형 한국이주인권센터 활동가
“할례를 당한 한 여성이 딸과 함께 난민 신청을 했는데 둘 다 인정을 받지 못했어요. 한국정부는 어머니가 이미 할례를 당했기 때문에 더 이상 위험이 없다고 봤어요. 딸의 경우에만 위험이 인정돼 인도적 체류 지위를 받았습니다.” ― 김영아 아시아평화를향한이주 MAP 대표
여성은 가부장제의 박해를 피해 난민이 되더라도 한국에서 또 다른 가부장제를 만나야 한다. 난민 신청 사유에서부터 그 사례를 확인할 수 있다. 여성난민은 대개 배우자나 부모가 보호하는 가족구성원으로 여겨져 ‘보호자’에게 난민 신청 사유도 귀속된다. 그렇게 되면 여성난민이 ‘보호자’와는 다른 별도의 난민 사유가 있더라도 난민 심사에서 다뤄지지 않는다. 일례로 배우자가 정치적 박해를 당해 한국으로 쫓겨 온 한 여성난민은 본국에서 보복성 강간을 당했지만, 이는 난민심사 과정에서 다뤄지지 못했다.
난민 인정 사유로 젠더 이슈가 다뤄지는 경우도 드물다. 대표적인 사례가 여성 할례다. 여성 할례를 이유로 난민 지위를 신청한 사례가 있지만, 입증이 어렵다는 이유로 모두 거부됐다. 여성 할례는 어머니나 이모, 소속집단의 여성지도자가 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럴 경우 박해가 아니라고 해석된다. 물질적인 증거를 중시하는 심사 절차로 인해 입증이 어렵기 때문이다. 할례를 이유로 난민을 신청하는 경우에는 보통 인도적 체류 지위만을 주고 있다.
마찬가지로 성폭력 피해를 주장하기도 어렵다. 내전이나 독재 상황에서 성폭력을 당해도 역시 증거를 제시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성폭력이나 성고문을 겪은 난민 신청자가 심리적 안정 속에서 인터뷰할 수 있도록 배려하지도 않는다. 최근까지만 해도 여성난민 심사를 남성이 하는 경우도 많았다. 이외에도 목숨을 위협하는 가정폭력도 난민 사례로 인정되지 않는다. 김영아 MAP 대표는 “국내 난민정책은 젠더인지적 관점에 근거한 통계조차 없을 만큼 여성난민에게 취약한 것이 사실”이라며 “국회서도 난민법 개정을 논의하고 있지만, 성인지적 관점에서 개정을 말하는 경우는 없다”고 지적한다.
[출처: 참세상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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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뿐인 구직 허가, 출산과 육아는 무대책
“4인 가족이 쓰는 최소 생계비가 200만 원 정도에요. 집값이랑 전기세 다 해서 120만 원에 식비로 50만 원 정도 더 쓰는 것 같아요. 일자리를 구하기 어려운 건 비자 때문이죠. 고국에 있는 친지의 도움으로 그나마 버티고 있어요.” ― 인천에 거주하는 50대 여성난민
여성인 난민 신청자들은 구직에도 많은 어려움을 겪는다. 난민 신청을 한 지 6개월이 지나면 단순노무직종에 한해 취업할 수 있지만 이는 많은 여성에겐 그저 형식적인 말일 뿐이다. 가장 큰 원인은 육아다. 보통 여성이 육아를 맡는데 아이를 맡길 수 있는 곳을 구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더구나 싱글맘인 경우에는 구직 가능성이 더욱 적다. 여성의 경우 본국의 박해로 배우자가 실종되거나 사망하고 남겨진 가족에게 가해질 박해를 피해 오는 사례가 빈번해 싱글맘이 많다. 하지만 이들의 자립을 돕는 노력은 전혀 뒷받침되고 있지 않다. 정형 한국이주여성센터 활동가는 “인천 지역의 유치원비가 보통 4~50만 원인데, 비용도 문제지만, 일자리를 구하더라도 얼마 못 가서 그만두는 경우가 많다”며 “장시간 노동을 원칙으로 하기 때문인데 풀타임 업종으로 일할 수 있을 만큼 아이를 돌봐주는 기관이 없다”고 설명한다.
노동을 할 수 있어도 저임금 직종 외엔 일자리를 찾기 힘들다. 사업주가 여성난민의 복장이나 문화적 관습을 침해하는 사례도 빈번하다. 할랄 음식이 보장되는 경우는 거의 없으며 히잡을 금지하기도 한다. 성희롱이나 성추행, 성폭력에도 노출돼 있다.
경제적 자립 기회가 열악하다 보니 생계나 주거 문제로 인해 여성난민이 한국 남성이나 다른 난민 또는 다른 출신지의 외국인을 만나 함께 사는 사례가 많다. 생계를 의존하다보니 성착취를 당하기도 한다. 김연주 난민인권센터 변호사는 “여성난민이 경제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여건이 제대로 보장되지 않고 있다”며 “다른 나라의 경우에는 한부모, 여성 혼자일 경우에는 의무적으로 우선해 지원하도록 하는데, 한국은 그렇지 않다”고 지적한다.
“어느 날 한 여성난민이 아이 학교에 같이 가달라고 부탁하셨어요. 입학할 방법이 있는지 알고 싶어 하셨죠. 학교에 가서 한국이 중학교까지 의무교육이기에 미등록 자녀라도 입학을 시켜야 한다고 설명했죠. 그제야 이 어머니의 아이는 입학할 수 있었어요. 학교에서 함께 나온 후 난민 어머니가 엄청 우셨던 기억이 납니다.” ― 김세진 공익법센터 어필 변호사
더구나 난민가정의 출산과 육아에 대해선 어떤 정부 대책도 없다. 그리고 이는 고스란히 여성난민의 몫이 된다. 우선, 이곳에서 태어난 아이는 부모가 난민 지위를 받지 못하고 신변의 안전 때문에 자국 대사관에 가서 출생신고도 하지 못하면 무국적자가 된다. 난민 인정이나 인도적 체류 지위를 받았어도 난민 아이들에겐 취학 통지서가 오지 않는다. 정부가 다문화센터를 운영하고 있지만, 이 또한 결혼이주 여성에 집중돼 있어 여성난민은 이용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때때로 민간의 지원을 받는 난민들이 있지만 예외적인 경우다. 올해부터 인도적 체류자도 건강보험 가입을 할 수 있게 된 게 그나마 다행스런 일이다.
정부가 일시적으로 지원하는 보조금도 육아 문제는 제대로 고려되지 않았다. 정부의 생계지원금 심사에서 취약성이 인정되면 난민신청자는 최장 6개월 동안 40여만 원을 지원받는다. 물론 지원받는 난민의 비중은 신청자의 3%뿐인데 임산부라고 예외가 아니다. 일례로 임신한 한 여성난민은 아무런 생계 능력이 없는데도 생계비를 지원받지 못했는데, 소송을 통해 일부만을 지원받을 수 있었다. 승소한 이유도 임신 때문이 아니었다. 재판부는 정부가 생계비 지원 여부를 문자로 통보한 게 문제라고 봤다.
모두가 안전한 사회
남성화된 난민 논란 속에 가려진 여성난민. 그러나 그들이 한국에서 살기 위해 넘어야 하는 문턱은 너무나 높다. 그 문턱은 젠더위계나 폭력, 일자리와 육아 문제라는, 한국의 선주민 여성들이 씨름해온 남성중심의 가부장제가 만든 걸림돌을 가장 밑바닥에서 경험하는 것이다. 결국 이를 주목하지 않고 난민 대 국민이나 여성이라는 논리만을 들이댄다면 여성난민의 자리는 더욱더 좁아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난민을 지원해온 활동가들은 가장 취약한 여성난민과의 연대가 더욱 중요하다고 말한다. 정형 한국이주인권센터 활동가는 “본국에서 아랍 여성이 차별 받는다거나 아랍 남성이 성폭력을 저지를 것이라며 남성난민을 반대한다면, 여성난민에 대해서는 어떤 고민을 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이 논리는 정당하지 않다”고 지적한다. 또 김영아 MAP 대표는 “우리는 공정성을 따지며 여성은 한국남자에, 남성은 여성과 외국남성에 치인다고 생각하는데, 경쟁 속에서 하나둘 씩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안전할 사회를 같이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가장 취약한 여성난민과 함께 사는 방법을 찾으며 이를 촉진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워커스 52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