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례]
(1) 교실 안 수상한 성교육(링크)
(2) 페미니즘의 도전…학교 문턱을 넘을 수 있을까?(링크)
(3) 스쿨미투 방아쇠를 당긴 것
여성과 소수자에게 학교는 그다지 안전한 공간이 아니었다. 이들에게 학교는 성차별, 성폭력이 이뤄지는 공간이었고, 그것은 스쿨미투를 통해 자연스럽게 발화됐다. 하지만 그들이 고발한 내용은 학내 주체에 따라 다르게 읽히고 해석됐다. ‘이게 성폭력이야!’와 ‘이게 성폭력이야?’가 충돌했다. 의문을 던진 쪽은 학교, 교사 집단 등 주로 권력을 가진 쪽이었다. 박선영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이를 두고 “스쿨미투는 학교가 평등과 민주성, 공공성을 학습하는 공간으로 기능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라며 “여성에 대한 혐오와 성적대상화가 학교라는 공간에서 교사들의 입과 눈을 통해 재생산되고 있는 것”(1)이라 말했다. 학교는 한술 더 떠 미투 제보자를 색출하고, 회유했으며, 학생 간 갈등을 조장하며 피해자를 고립시키려 했다. 하지만 ‘지울수록 번지리라’라는 말처럼 스쿨미투는 계속 이어져, 현재까지 80여개의 학교에서 스쿨미투가 고발된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스쿨미투는 지난해 트위터에서 가장 많이 검색된 키워드이기도 하다.
이 지난한 상황에서 스쿨미투 고발자들은 용기를 냈다. 학생들은 안전하게 교육 받을 권리가 있다며 구조의 변화를 촉구하고 있다. 앞선 자들의 용기가 아니었다면 언제까지 고여 있었을지 모를 일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이들을 고발자로 만들었을까. 고발의 방아쇠를 당긴 것은 무엇이었을까. 《워커스》는 스쿨미투 고발자들이 위로받고 용기를 얻게 된 컨텐츠들을 소개한다. 북일고 A씨, 신명여고 B씨, 혜화여고 C씨, 정발고 D씨, 충북여중 E씨가 답했다.
▲ C씨는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학교 선생님들의 문제적 발언을 기록했다. 참 다양한 과목의 선생님들이 다양한 종류의 혐오 발언을 했다. 이 기록은 스쿨미투의 중요한 자료로 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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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씨 PICK
넷플릭스 드라마 One Day At A Time
“스쿨미투 고발 후 2차 가해를 목격하며 불안감에 시달리게 됐다. 그전까지는 나에게 있는 많은 자질들과 개성들이 ‘페미니스트 걔’로 함축되고 납작해지는 것이 스트레스였다. 그러던 중, 페미니즘 이론이나 퀴어, 젠더에 대한 수업이 아닌, 나에 대해서 잘 알 수 있도록 해준 고마운 드라마가 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인 〈One Day At A Time〉이다. 쿠바에서 이민 온 할머니, 그 후 미국에서 태어난 어머니와 그 어머니의 딸과 아들에 대한 에피소드를 다룬다. 장르는 코미디지만, 누군가의 정체성이나 어려움을 소비하며 관객을 웃기려 들지 않는다. 오히려 동성애, 페미니즘, 이민자 차별, 인종차별, 정신건강, 알코올 중독, 총기 제재 등 사회적 담론이 필요한 다양한 주제를 용기 있게 연출한다. 이 코미디에서 나는 딸인 엘레나에게서 내 모습을 많이 봤다. 같은 고등학생이라는 점뿐만 아니라, 자신에 대해서 알아가며 목소리를 찾는 모습이 내가 겪고 있는 어려움과 닮아 보였다. 강한 페미니스트이자 환경주의자인 엘레나는 성적 지향에 대한 고민도 깊다. 엘레나에게는 많은 정체성과 철학과 그에 따른 어려움이 있지만, 이에 대한 고민은 장애물이 아니라 자신을 더 잘 알게 되는 성장판이 된다. 엘레나라는 캐릭터와 그의 성장기를 보는 것이 너무나도 큰 즐거움이자 배움의 기회였다. 본인과 다른 어려움을 겪으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인생을 배우고 싶거나, 사회적 이슈에 대해 더 잘 알고 싶거나, 아니면 그냥 한바탕 크게 웃고 싶은 사람들에게 이 드라마를 추천한다.”
B씨 PICK
불편함을 말할 수 있게 해 준 철학 선생님
“2학년 때 차별받은 경험을 물어준 선생님이 있다. 처음 질문을 받았을 땐 차별받은 기억이 없다고 했다. 하지만 제사 때 누가 준비를 하는지, 명절 음식들을 누가 주로 요리하는지, 지금껏 외모지적은 한 번도 없었는지, 남여를 구분해서 역할을 강요받은 적은 없었는지 세세하게 물어주셨다. 그러자 우리들 입에선 봇물 터지듯 차별의 경험들이 쏟아졌다. 모두가 경험했지만, 아무도 물어봐주지 않았던 질문이었다. 한번 목소리를 내니 두 번, 세 번 말하게 됐다. 스쿨미투에서 용기를 냈던 나의 경험은 앞으로 또 다른 용기의 토대가 될 것 같다.”
C씨 PICK
내 경험을 드러낼 수 있게 해준 SNS
“고등학교 2학년 때 처음 트위터라는 SNS를 접했다. 그 곳에선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경험을 말하는 것을 시작으로 행동하고 있었다. 트위터에서 사람들의 이야기를 접하고 사소한 것에도 의문을 가지게 됐다. ‘왜 여학생만 치마를 입을까?’ ‘왜 여학생에게는 시집가는 것을 전제로 말을 할까?’ 등의 의문이 꼬리를 이었다. 나는 그때부터 불편한 발언들을 기록했다. 그리고 교내에 질문을 던지는 포스트잇을 붙였고, 몰카반대 시위 등에도 참석했다. 이 경험은 스쿨미투로 이어졌고 선생님들의 혐오발언에 이건 잘못됐다라고 이야기할 수 있었다.”
D씨 PICK
죽을 수 있음을 체감했던 그 날의 강남역과 ‘진보한남’
“2016년 5월, 한 여성이 화장실에서 살해당했다. 이것은 비단 단순한 묻지 마 살인이 아닌 여성을 대상으로 한 혐오범죄였지만, 선배들은 이를 묵인했다. 묻지 마 살인이었을 뿐이라며 여성의 피해를 부정하던 그 선배들의 태도에서 내가 만약 그 장소에 있었더라면, 이라는 공포는 시작됐다. 그리고 2년 후, 학내 성폭력 고발을 향한 탄압은 다시 목을 조였다. 고소 협박, 징계 협박, 뒤에서 수군거리는 동급생들의 뒷담화라는 공포가 내게 왔다. 하지만 후배들을 생각하면 말하기를 멈출 수 없었다. 같은 경험은 죽어도 겪게 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아직도 두렵지만, 그 두려움은 또 다른 동력으로 작동하고 있다.”
E씨 PICK
친구와 말싸움에서 진 날
“16살, 아는 것도 많고 모르는 건 더 많은 나이. 한창 페미니즘을 알아가던 내게 친구는 말했다. ‘여자랑 남자는 잘하는 일이 정해져 있어.’ 남녀가 다르기 때문에 여자가 말하는 차별적 상황은 불가피하다는 것이었다. 그의 엉터리 논리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와의 말싸움에서 졌다. 그날 집에 돌아와 생각했다. ‘분명 그 말은 틀렸는데 왜 난 반박하지 못했을까’라며 침울해져 있었는데, 해답은 간단했다. 바로 공부였다. 〈아무도 대답해주지 않은 질문들〉 〈우리의 의지에 반하여〉 〈이갈리아의 딸들〉 〈페미니스트의 개념들〉 〈싱글 레이디스〉 〈나의 첫 젠더수업〉 〈아마도 올해의 가장 명랑한 페미니즘 이야기〉 등의 책을 닥치는 대로 사서 읽었다. 그러면서 그동안 불평등을 합리화시켰던 세상에 대한 분노가 생겼다. 스쿨미투는 내가 아는 것을 실천하기 위한 방법이었다. 옳다고 생각하는 것에 기꺼이 나는 내 목소리를 내게 됐다.”[워커스 52호]
[각주]
(1) 2018.12.04. 한국여성정책연구원 2층 국제회의장에서 열린 제23차 젠더와 입법포럼 〈한국의 스쿨 #MeToo 실태와 성평등한 학교를 위한 조건〉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