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 당사자들이 스쿨미투를 이끌고 있다면, 교사와 여성인권단체들은 페미니즘 교육 운동으로 가부장적인 교육제도에 균열을 내고 있다. 이들은 보수적인 성교육 대신 페미니즘 교육을 전면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지난해 초만에도 21만 명이 학교 페미니즘 교육 의무화를 요구하는 청와대 국민청원에 응답했다. ‘포괄적 성교육 권리 보장을 위한 네트워크’와 ‘(가칭)페미니즘 교육 실현을 위한 네트워크’는 지난해 2월 27일 ‘모두를 위한 페미니즘 교육, 지금 당장!’ 기자회견을 열고 페미니즘 교육 의무화 국민청원에 대한 정부 답변을 촉구하며 정책 제안을 발표하기도 했다.
이들은 페미니즘 교육을 통해 성별고정관념을 재생산하는 교육과정이나 위계적인 학교 문화, 교실 안 여성혐오 같은 문제들을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한 현행 교육과정에 성차별적인 사회 현실과 성평등한 사회를 위한 노력 또한 제대로 반영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이들이 주목하는 페미니즘 교육의 쟁점을 따라가 보자.
낯설지만 평등한 세계
페미니즘 교육을 말하는 이들은 무엇보다 성평등 교육을 강조한다. 성평등한 태도와 문화를 만들어갈 수 있도록 성별고정관념을 재생산하거나 성차별적인 사회현실을 드러내고 대안을 경험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오히려 성차별이 과거의 문제인 것 마냥 등장하는 경우가 많다. 페미니즘 교육 제안자들은 이런 식의 기술이 유리천장이 공고한 성차별의 구조를 은폐한다고 말한다. 예를 들면, 문학 과목에서 가르치는 ‘여성적 어조’나 ‘남성적 어조’ 등이 ‘여린·섬세한·가벼운 표현’과 ‘단도직입적·무뚝뚝한·무거운 표현’ 등으로 대체돼야 한다는 제안이 그렇다.1)
성적 자기 결정권을 키우기 위한 교육도 페미니즘 교육의 핵심 중 하나다. ‘생식기’ 중심적이거나 학교 ‘성폭력’에 치우친 보호주의 식 성교육을 성과 신체에 대한 결정권이 자기 자신에게 있다는, 성적 자기 결정권을 향상하는 교육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것이다. 단적으로 2017년 교육부에서 배포한 현장 맞춤형 안전교육콘텐츠 ‘성폭력 편’에 따르면 성폭력은 모르는 사람에 의해 발생하며, 강제로 끌고 가면 “싫어요, 안 돼요” 소리치고 손이나 팔을 물거나 팔과 다리를 버둥거려 있는 힘을 다해 도망친 후 도움을 요청해야 한다고 나와 있다.2) 이 같은 교육 내용은 성폭력 가해자의 대다수가 피해자와 아는 사람이거니와, 분명한 의사표현으로 성폭력을 막을 수 있다는 것처럼 들려 피해자를 탓하기 쉽게 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성소수자를 아우르는 교육도 중요하다. 교육부가 ‘양성평등 교육’ 강화와 학교 성교육 표준안을 고수하며 학내 성소수자의 존재를 지우고 있기에 더욱 그렇다. 이러한 제안은 현재 청소년들의 고민과도 정확히 맞물려 있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의 조사3)에 따르면, 성 정체성 또는 성적 지향에 대해 고민해본 경험이 있다고 응답한 학생은 각각 26.1%, 30.7%였다. 또 연애경험이 있다고 응답한 여학생 252명과 남학생 176명 중 자신과 성별이 같은 상대와 연애하고 있다고 응답한 비율은 각각 12.1%, 4.1%였다.
차별적 학교 관행 자체를 타파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크다. 남자는 1번부터, 여자는 51번부터 시작하는 출석번호 규정이나 치마와 바지 교복으로 남녀를 구분하는 것, ‘녹색어머니’나 ‘북리딩맘’ 같이 양육과 돌봄의 역할을 엄마에게만 부과하는 관행들을 개선하지 않는 한 진정한 성평등 교육이 실현될 수 없다는 것이다.
한편, 단체들은 이러한 페미니즘 교육을 실시하기 위해선 제도 개혁이 필수적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포괄적 성교육권리 보장을 위한 네트워크, (가칭)페미니즘교육실현네트워크 등은 특히 교육부, 여가부에 적극적인 역할을 촉구하고 있다. 이들은 △교육부와 지역 교육청에 성평등 정책 담당 부서 마련 △여성가족부 고유의 성평등 정체성과 추진력 강화 △2015년 교육부가 발표한 학교 성교육 표준안 폐기 △평등과 인권에 기반한 포괄적 성교육 가이드라인 정비 등을 요구하고 있다.
페미니즘 교육, 순탄치는 않아도…
이렇게 학교 내 페미니즘 교육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으나, 양성평등 교육 또는 폭력피해 예방 교육 등으로 완곡하게 대체되는 경우가 많다. 더구나 현실에선 페미니즘을 교육하는 교사는 공격의 대상이 되고, 페미니즘은 학교의 금기어로 자리 잡는 경우가 빈번하다. 과연 페미니즘은 학교 담장을 넘을 수 있을까, 라는 우려가 큰 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양지혜 청소년페미니즘모임 운영위원은 “지금의 주입식 교육에서, 페미니즘 교육이 페미니즘적으로 되지 않을 가능성이 큰 게 사실이다. 페미니즘 교육이 제대로 이뤄지기 위해선 학생의 인권을 신장시켜 평등한 공동체 문화를 만들어 나가는 일이 병행돼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김성애 전 전교조 여성위원장은 “페미니즘 교육은 교과를 신설하는 방식보다 교육 철학으로서 페미니즘을 주요하게 사고해야 한다는 의미”라며 “성별, 성차별을 재생산하는 교육과정, 교과서, 학교 문화 등에 대한 근본적인 혁신이 필요하다”4)라고 밝혔다.
스쿨미투 1년, 정부는 여전히 미흡한 수준의 대책에서 전진하지 못하고 있다. 그래도 어쩔 것인가. 페미니즘의 길은 순탄한 적이 없었다. [워커스 52호]
성교육은 ‘포괄적 성교육’으로
지난해 학교 페미니즘 교육 의무화를 요구했던 단체들은 시대착오적 학교 성교육 표준안을 폐기하고, 〈유네스코 성교육 가이드라인〉을 참고해 ‘포괄적 성교육 가이드라인’을 새로 정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미 국제사회에서는 권리에 기반을 둔, 젠더를 반영한 포괄적 성교육이 힘을 얻고 있다.유네스코는 2009년부터 세계보건기구(WHO), 유엔여성기구 등과 함께 교육 현장에서 포괄적 성교육(Comprehensive Sexuality Education, CSE)을 시행하자고 제안해 왔다.
유네스코가 지난해 발표한 개정 성교육 가이드라인은 국제적 참고 자료로 쓰이고 있다. 유네스코에 따르면 포괄적 성교육은 일부 사회문화적 상황에서는 어려울 수 있는 주제를 포함해 학습자가 알아야 할 모든 주제를 다룬다. 또 5세~18세, 그 이상의 연령대까지 포괄적 성교육의 대상이 된다. 8개의 주요 핵심 개념은 △관계 △가치, 권리, 문화, 섹슈얼리티 △젠더 이해 △폭력과 안전 △건강과 복지를 위한 기술 △인간의 신체와 발달 △섹슈얼리티와 성적 행동 △성과 생식 건강 등이다. 아동조기강제결혼과 여성할례 등의 유해한 관행도 학습내용에 포함된다.
교원에 대한 페미니즘 교육 강화부터
학교 성폭력은 주로 교원에 의해 발생하지만, 교원의 성교육 시간은 학생과 비교해 훨씬 적다. 시교육청에 따르면 교사들은 연간 45시간 이상 연수를 받지만 성폭력 관련 의무교육은 고작 3시간에 불과하다. 이 짧은 시간마저 온라인 강의 같이 형식적으로 진행되거나, 단체교육으로 귀결돼 실효성이 없다는 비판이 꾸준히 나오고 있다.지난 2월 16일 청와대 앞에서 열린 스쿨미투 집회에서 한 교대 재학생은 성차별과 성폭력을 저지르는 교사가 ‘대학’에 의해 ‘양성’된다고 분노했다. 그는 “교육대학교는 피해자를 향한 2차 가해성 댓글을 당당하게 실명으로 게시하고, 이를 문제 삼는 글을 명예훼손이라고 협박할 만큼 성평등 감수성이 낮은 곳”이라며 “교사 권력이 우위인 학교와 교실에서 이 같은 폭력이 심해지면 심해졌지 나아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서 “교대에서 성평등 관련 과목 하나 이수하지 못하고 졸업하니 성차별, 성폭력을 당당하게 저지르는 교사가 된다. 교사 한 명을 욕할 게 아니라 교사들의 성평등 교육을 제도화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한국여성단체연합에 따르면, 실제 교대나 사범대에서 페미니즘 교육 내용을 다루는 수업은 전무하다. 성평등 교육도 마찬가지다. 교육부는 교·사대 교육과정 개선을 위한 논의를 진행하고 있으나 법률적 근거가 마련돼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자격연수 및 직무연수에서의 성희롱 교육 강화와, 사범대와 교대에 관련 교과과정을 신설해야 한다는 필요성도 제기되고 있다.
각주
1) 이는 지난해 여가부가 교과서의 성차별적 표현을 개선하기 위해 온라인으로 모은 894개의 의견 중 하나다.
2) ⟨학교에 페미니즘을⟩, 초등성평등연구회, 2018.
3) ‘청소년 성교육 수요조사 연구: 중학생을 중심으로’, 한국여성정책연구원, 2018.12.
4) 한국여성단체연합 주관, ⟨#미투운동 중점 입법 과제 해결을 위한 성평등 포럼 – #미투운동, 法을 바꾸다⟩, 2018.11.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