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설문
《워커스》는 지난 5월 13일부터 닷새 동안 무주택자인 독자 113명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응답자 연령은 30대 37.2%(42명)와 20대 36.3%(41명)가 가장 많았고, 40대 21.2%(24명), 50대 5.3%(6명) 순이었다. 연평균 소득은 2천만 원 이상~3천 만 원 미만이 25.7%(29명)로 가장 많았고, 1천만 원 이상~2천만 원 미만과 3천만 원 이상~4천만 원 미만의 응답자가 각각 19.5%(22명)로 동일했다. 1천 만 원 미만도 17.7%(20명)를 차지했다. 주거공간의 임대계약 형태는 월세가 54.9%(62명), 전세가 36.3%(41명)였다.
그렇다면 《워커스》 독자들이 생각하는 적정한 서울 아파트 평균 가격은 얼마정도일까? 유효 응답 중 가장 높은 비율인 24.3%(25명)를 차지한 가격대는 ‘평균 3억 원’이었다. 이를 기점으로 3억 원 미만을 제시한 비율은 39.5%(41명), 3억 원 초과를 제시한 비율은 35.9%(37명)이었다. 이들 응답자 중 53.1%(60명)은 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향후에도 주택가격을 하락시키지 못할 것이라 내다봤고, 35.4%(40명)는 보통 수준, 11.5%(13명)는 하락시킬 것이라 답했다.
#3억으로 구해줘, 홈즈
설문 결과를 바탕으로 《워커스》 기자들은 집 구하기에 나섰다. 가장 많은 응답자들이 적정한 서울 아파트 평균 가격으로 선택한 3억 원. 월 250만 원을 버는 사람이 한 푼도 쓰지 않고 10년을 모아야 모으는 돈. 결코 적지 않은 3억 원이라는 돈으로 기자들은 어떤 아파트를 구할 수 있을까? 최소 기준은 전용면적 18평 이상의 방 세 개짜리 아파트. 조사 지역은 총 세 곳. 올해 4월 기준, 아파트 평균 가격이 가장 낮은 금천구(4억300만 원), 평균가격과 가장 유사한 양천구(7억9200만 원), 평균가격 따위 아랑곳없이 제 갈 길 가는 강남구(15억8200만 원)다.
① 금천구
지하철역에서 31분을 걸어야 도달하는 아파트 단지. 마을버스로도 역까지 20분이나 걸리는 도시 속 오지 마을. 때 이른 더위가 찾아온 5월 어느 날. 기자들은 땀을 뻘뻘 흘리며 31분을 걸었다. 서울에서 가장 아파트 가격이 싼 지역이라지만, 3억 원으로 역세권 아파트는 어림없었다. 기자들이 찾은 곳은 올해로 준공 31년을 맞은 A아파트. 방 2개, 전용면적 18평의 매매가는 3억1800만 원. 그보다 더 큰 평수는 4억 원이 넘는다고 했다. 그나마 인근 지역에서 가장 저렴한 축에 속했지만, 부동산 중개인은 주차가 어렵고 구조가 불편하다며 영 탐탁지 않아 했다. 대신 그는 A아파트 바로 옆에 있는 B아파트를 추천했다. 18년 된 같은 평수의 아파트 가격은 3억5000만 원. 평수는 A아파트와 같았지만 방이 3개인 구조였다. 조금 더 깨끗하고 연식이 좋은 C아파트도 있었다. 다만 그곳은 전세금만 3억4000만 원에 달할 뿐.
“금천구는 9.13대책 이후 오히려 집값이 올랐어요. 집값은 떨어졌다가도 또 오르고 그래요. 10년 정도 갖고 있으면 물가보다는 많이 오를 겁니다.” 부동산 중개인은 2년 전, 매매와 전세 사이를 고민하다가 결국 전세를 택한 어떤 손님 이야기를 들려줬다. 집값이 떨어질 줄 알고 전세로 들어갔는데, 오히려 2년 뒤 집값이 올라 집 사기가 더욱 힘들어졌다는 것이었다. 실제로 부동산 중개인이 추천한 3억5000만 원짜리 B아파트는 2017년 6월 경, 약 2억9000~3억 사이에 거래됐다.
“한 채는 필수고, 여유가 좀 되면 한 채 더 사는 게 좋지요.” 중개인은 마치 비밀 이야기를 하듯 기자에게 ‘세금 피하는 방법’을 설명해 줬다. 한 채를 산 뒤, 일 년 반 뒤에 한 채를 더 사서 두 채를 운용하는 것이 가장 좋다고. 첫 번째 집을 팔 때도 2년 안에 팔아야 양도세가 없다나. “집값이 1~2억 올랐는데 양도세 50%에 2주택 중과세까지 가면 3~4천정도 잔챙이만 먹는 거예요. 하게 되면 모니터링 해 드릴게.” 중개인이 신나게 설명을 늘어놓는 사이, 60대 중년 여성이 부동산을 방문했다. 월세 아파트를 알아보고 있는 그녀에게 중개인이 B아파트의 월세를 추천했다. 전용면적 18평짜리 B아파트의 월세 가격은 보증금 3천에 월 60만 원이었다.
② 양천구
‘급매를 잡아라!’ 3억 원으로 정상적인 매물은 어림도 없었다. 현타가 온 기자들은 급하게 급매물을 구하기 시작했다. 양천구에 위치한 100세대 규모의 아파트에서 ‘급매’를 발견했다. 지하철역까지 도보로 20분 거리. 1998년에 준공 돼, 올해로 21년을 맞은 D아파트. 그곳의 18평짜리 아파트가 2억9500만 원에 급매물로 나왔다. “3억짜리 아파트 찾는 게 쉽지가 않아요.” 부동산 중개인은 기자들에게 보기 드문 매물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집 주인이 더 큰 평수로 이사를 가는데, 빨리 잔금을 치러야 해 급하게 내놓은 집이라고 했다. 불과 한 달 전, 바로 윗집이 3억1000만 원에 팔렸다고도 했다.
외관은 도색을 해 깨끗했지만, 복도와 엘리베이터, 그리고 집안 내부는 1998년 그 시절의 온기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벽지와 장판은 그렇다 치고, 화장실이 문제였다. 부동산 중개인도 그 점이 마음에 걸렸는지 기자에게 소곤소곤 귓속말을 했다. “집주인이 화장실을 리모델링해 내놓겠다고 했는데 말렸어요. 차라리 그 돈 만큼 낮춰서 팔라고.” 중개인은 자신이 집주인에게 2억8000만 원까지 낮춰보겠다고 했다. 무려 1500만 원을 깎아 주겠다니. 귀가 솔깃했다. 하지만 2층인 터라, 아파트 입구와 주차장에서 집 내부가 훤히 들여다보이는 것이 여간 신경이 쓰였다. 서향이라 여름에는 찜통더위에 시달릴 것도 같았다. 무엇보다 2017년 11월, D아파트의 전용면적 18평, 2층짜리 매물이 2억4500만 원에 거래됐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1년 6개월 만에 같은 매물을 3500만 원이나 더 비싸게 사야 하는 셈이었다. ‘급매물’이란 말 그대로 ‘급하게 팔아야 할 물건’일 뿐, ‘급하게 사야 할 물건’은 결코 아니었다.
③ 강남구
“3억이 여기서는 큰돈이 아니라는 거, 아실 것 아니에요?” 평생 겪을 무시와 냉대를 하루 만에 겪었다. 그저 강남에 3억 짜리 아파트가 있느냐 물었을 뿐인데, 끝도 없는 충고와 훈화가 이어졌다. 심지어 부동산 중개인이 말하는 3억짜리 아파트는 ‘매매’가 아닌 ‘전세가’였다. 중개인은 기자에게 “맹세코 강남에서 전세 3억짜리 단지형 아파트는 절대 구할 수 없다”고, “헛바람 들지 않도록 충고하는 것”이라고, “전세 빌라는 ‘선택’이 아닌 ‘필수’”라고 열변을 토했다. 물론 3억짜리 전세 아파트 매물이 있기는 했다. 문제는 아파트가 아닌 ‘빌라’의 모습을 하고 있다는 것, 주인 사정으로 보름 안에 중도금 1억5000만 원을 쏴 줘야 한다는 것, 주차가 안 된다는 것 정도였다. 70년대에 지어져 재개발을 앞둔 아파트도 3억 후반대의 전세로 들어갈 수 있었다. “그런데, 그런 곳에 살 수 있으세요?” 중개인이 혀를 차며 기자에게 물었다.
또 다른 부동산에서는 3억짜리 아파트 전세 매물이 있다며, 방문을 흔쾌히 허락했다. 지하철역까지 도보로 고작 4분. 심지어 강남의 유명한 ‘핫 플레이스 거리’와도 인접한 알짜배기 매물이다. 중개인을 따라 기자들이 방문한 곳은 오래된 상가건물. 무려 1974년도에 준공 돼, 올해 45세가 된 상가아파트였다. 거리는 각종 유흥주점으로 진입하는 차들로 북적거렸다. 아파트는 낮보다 밤이 환한 유흥의 거리 한복판에 위치해 있었다. 불야성 같던 거리와는 달리, 아파트 내부는 극도의 허름함을 자랑하고 있었다. 구석구석 들러붙은 새까만 곰팡이는 쿱쿱한 냄새를 뿜어냈다. 싱크대와 세면대, 변기는 곧 무너져 내릴 것처럼 위태롭게 서 있었다. 덜렁거리는 수도꼭지를 비틀자, 물이 쫄쫄쫄 흘러나왔다. 이정도 수압이면, 샤워하다 화병으로 생을 마감할지도 몰랐다.
“여기는 3억짜리 빌라 전세도 없어요. 빌라도 5억은 있어야 들어가요.” E아파트를 빠져나오며, 중개인이 위로하듯 말을 건넸다. 문득 저 반백 살 아파트를 구입하려면 얼마가 필요할지 궁금해졌다. 중개인은 6억 원이 넘는다고 답했다. 말을 잃은 기자들은 네온사인이 번쩍이는 강남의 거리를 조용히 빠져나왔다. 3억. 한 달에 100만원 씩 25년을 꼬박 모아야 하는 돈. 부동산 시장은 여전히 거대하고 허황된 가상의 현실이었다. 부동산 시장은 안정세일지 몰라도, 우리의 현실은 끝내 안정적이지 못했다. 우리는 언제까지 비현실의 세계를 위태롭게 쫓아야 하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