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한주, 윤지연, 정은희 기자
“국민들의 주거 수준은 전반적으로 개선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5월 16일, 문재인 정부가 ‘2018년도 주거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하며 내놓은 평가다. 이들은 최저주거기준 미달가구의 비중이 감소했고, 주거비 부담도 완화됐으며, 청년 및 신혼부부의 주거 여건도 개선됐다고 밝혔다. 드디어 정부 정책의 성과가 드러나기 시작했다는 점도 강조했다.
지난 5월 9일, 더불어민주당 등이 주최한 ‘9.13 부동산대책 성과 및 주택시장안정과 공급전략 토론회’에서도 정부 정책에 후한 평가를 줬다. 2017년 8.2부동산대책부터 2018년 9.13대책까지. 지난 2년간의 정부 정책을 통해 서울 주택가격 안정과 투기수요 억제, 실소유자의 내 집 마련 기회가 확대되고 있다는 평가였다.
과연 떠들썩했던 지난 2년간의 정부 대책이 부동산의 양극화와 독점, 그리고 서민 주거의 안정을 이뤄냈을까. 우리의 ‘주거할 수 있는 권리’와 토지의 ‘공공성’은 정말 확대된 것일까. 언제나 1%의 사람들과 정부, 그리고 우리가 느끼는 체감 온도는 달랐다. 근본적 문제에 다가서지 못하는 정책들은 늘 그랬다. 여전히 새로운 불로소득의 원천을 만들어내고 있는, 그래서 여전히 속수무책인 부동산 시장을 ≪워커스≫가 들여다봤다.
워커스 이슈① 차례
1. 이 집이 내 집이 아닌 이유
2. 3억 원으로 구해줘, 홈즈
3. 자본의 출구 전략, 부동산 시장은 여전히 뜨겁다
4. 독일 ‘부동산기업 몰수 운동’…”모두를 위한 사회화를!”
|
1. 네가 산 그 집, 그 집이 내 집이었어야 해
|
내가 살(매매) 수 있는 집은 없지만, 내가 살(거주) 수 있는 집은 세상에 널렸습니다. 주택수가 가구수를 추월한 것은 11년 전인 2008년입니다. 당시 주택보급률은 100.7%를 기록하며, 주택난을 해결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지요. 이후에도 주택보급률은 꾸준히 올랐습니다. 2017년 기준, 주택보급률은 103.3%까지 상승했습니다. 주택보급률이 가장 낮은 도시인 서울의 경우에도, 2008년 93.6%에서 2017년 96.3%로 올랐습니다. 수요보다 공급이 많은데, 1인 1주택이 가능한데, 왜 우리는 10년이 지나도록 만성적인 주택난에 시달리고 있는 걸까요?
2. 여관보다 고시원
|
|
바야흐로 1인 1주택이 가능한 시대가 왔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상한 일입니다. 주택이 남아도는데도, ‘주택이외의 거처’에 거주하는 사람들이 지속적으로 늘고 있다는 겁니다. ‘주택이외의 거처’는 숙박업소 객실, 판잣집이나 비닐하우스, 움막, 고시원 혹은 고시텔, 기숙사 및 특수사회시설 등을 포함합니다. 주택을 갖고 있지 못하거나, 주택에서 살 수 없는 사람들이 사는 곳이겠지요.
2005년 5만7066가구였던 주택이외의 거처 가구수는 2017년 36만9501가구로 약 7배가 늘었습니다. 그리고 이들 중 가장 많은 15만1495가구(41%)가 고시원이나 고시텔에 살고 있습니다. 3만299가구(8.2%)는 숙박업소 객실에서, 6천651가구(1.8%)는 판잣집이나 비닐하우스에서 거주한다고 합니다. 2005년만 해도 38%가 비닐하우스나 움막, 판잣집에서, 15.9%가 숙박업소에 거주했습니다.
3. 최고와 최악, 계층 따라 갈리는 주거형태
|
|
한국에서 최고의 주거형태로 꼽히는 아파트. 그리고 최악의 주거형태로 꼽히는 ‘주택이외의 거처’. 최고와 최악의 간극은 계층에 따라 더욱 깊어지기만 합니다. 저소득층의 ‘주택이외의 거처’는 2008년 1.8%에서 2017년 6.5%로 기하급수적으로 늘었습니다. 중소득층과 고소득층에서도 각각 1.1%, 0.4%가 늘었는데, 그것은 ‘주택이외의 거처’에 ‘오피스텔’도 포함되기 때문인 것으로 보입니다. 어쨌든 불안정한 주거형태의 상승을 견인하고 있는 계층은 저소득층이지요.
반면 아파트 거주율은 2017년 기준 저소득층이 28.1%, 중소득층이 56.%, 고소득층이 74.5%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2008년 대비 저소득층이 2.2%, 중소득층이 6.5%, 고소득층이 6.4% 늘었습니다. 아무리 아파트가 많이 지어져도, 저소득층이 거주할 아파트는 그리 많지 않나봅니다.
4. 자가를 빼앗기는 사람들
|
|
|
이상한 일은 또 있습니다. 특정 계층에서 자가 비율이 뚜렷하게 감소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저소득층의 자가 점유율은 2008년 51.9%에서 2017년 47.5%로 감소했습니다. 그렇다면 자가를 포기한 사람들은 어떤 형태의 주거공간으로 이동을 할까요. 안타깝게도 저소득층의 전세 점유율도 2008년 16.8%에서 2017년 11.5%로 줄었습니다. 반면 이들의 월세 점유율은 2008년 24.3%에서 2017년 34.2%로 무려 10%가 늘었습니다. 저소득층을 중심으로 목돈 마련이 계속 어려워지고 있다는 뜻입니다.
중소득층의 주택 점유형태 이동경로도 흥미롭습니다. 이들의 자가 점유율은 54.7%에서 2017년 60.2%로 증가했지만, 전세 점유율은 9%가 줄었고, 월세 점유율이 4.3%가 늘었습니다. 일부 가구는 전세에서 자가로, 또 다른 가구는 전세에서 월세로 옮겼다는 것입니다. 사실상 중소득층 역시 주거안전층이 아닌 것이지요. 반면 고소득층의 자가 점유율은 2008년 69.4%에서 2017년 73.5%로 증가했고, 전세 비율은 5%감소, 월세 비율은 0.5%가 증가했습니다.
5. 한 푼도 안 쓰고 11년의 노예생활
|
그렇다면 우리는 주택을 마련하기 위해 얼마나 아등바등 살아야 할까요. ‘연소득 대비 주택가격 배율(PIR)’이라는 지표가 있습니다. 몇 년을 한 푼도 쓰지 않고 모아야 주택을 살 수 있는지를 계산하는 방법입니다. 우선 저소득층의 평균 PIR을 살펴봅시다. 2008년 9.9에서 2017년 11.1로 늘었습니다. 즉 11.1년간 연소득을 한 푼도 쓰지 않고 모아야 집을 살 수 있다는 뜻입니다. 2008년에 비해 1.2년이 늘어난 셈입니다. 중소득층의 평균 PIR는 2008년 5.6에서 2017년 6.2로, 고소득층은 5.2에서 5.3으로 소폭 늘어났습니다. 결국 소득계층이 낮을수록 PIR이 급격히 증가하고 있으며, 소득이 낮을수록 주택마련이 더 어렵다는 말입니다.
6. 토지가격은 쉴 새 없이 오르고
|
주택시장에 겨울이 찾아왔다면, 토지시장은 1년 365일 내내 한여름 땡볕입니다. 문재인 정부 들어서도 땅값 상승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지가변동률은 2009년 0.96%, 2011년 1.17%, 2014년 1.96%, 2016년 2.7%, 그리고 지난해엔 무려 4.58%가 상승했습니다. 아파트 매매가 변동률이 2016년부터 2018년까지 0~1%의 수준을 유지한 반면, 지가변동률은 해마다 더 큰 폭으로 오르는 상황입니다. 땅값이 상승하는 만큼, 토지거래량도 꾸준히 증가했습니다. 특히 2017년 331만 필지가 거래되며 역대 최고를 경신했습니다. (필지는 하나의 지번이 붙어 있는 토지를 부르는 등기 단위입니다.) 지난해엔 역대 두 번째로 높은 318만 필지가 거래됐습니다. 토지 거래 면적도 2012년 18억2300㎡에서 2017년 22억600㎡로 늘어났습니다.
7. 땅 부자가 살 맛 나는 세상
|
지가가 오르고, 토지거래량도 증가하면서 땅 부자들도 더욱 늘어나고 있습니다. 토지가액 규모가 5억~10억인 땅 소유주는 2012년 대비 19만5105명이 늘었고, 10억~50억 미만의 소유주는 9만5564명이, 50억~100억 원 미만 소유주는 3천183명이, 100억 원 이상 소유주는 1천653명이 늘었습니다. 반면 토지 가액규모가 5천만 원 미만인 소유주들은 2012년 대비 66만5517명이 줄었습니다.
8. 부동산 부자는 더 큰 부자가 된다
|
부동산 투기 등을 통한 불로소득의 총액입니다. 연간 300조 원 이상의 돈이 부동산을 독점하고 있는 자산가와 투기꾼들의 주머니 속으로 흘러갑니다. 연간 중앙정부 총 지출 예산과 맞먹는 돈입니다. 심지어 2011년까지는 중앙정부 예산보다도 큰 규모였습니다. 2016년 기준, 불로소득은 374.6조 원. 당시 한국 정부의 사회복지 총 예산인 123.4조 원의 3배가 넘는 규모입니다.
9. 서울시 세 배의 땅을 가지고 있는 기업들
|
|
기업들이 소유한 토지 규모도 상상을 초월합니다. 2017년 기준, 상위 10개 법인이 5억7천만 평의 땅을 갖고 있습니다. 5억7천만 평이라니, 상상도 할 수 없는 면적입니다. 쉽게 말해, 서울시의 3.1배에 달하는 면적이라고 보면 됩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에 따르면, 이들 법인 소유의 토지는 10년 전보다 무려 4억7천만 평, 약 5.8배가 늘었다고 합니다.
현재 대한민국에서 토지를 보유한 법인 중 상위 1%는 1,752곳으로, 서울시의 6배가 넘는 면적을 소유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상위 10개 법인이 이들 중 30%를 소유하고 있지요. 소수의 기업이 막대한 토지를 독점하고 있는 겁니다. 또한 상위 10개 법인이 소유한 토지의 공시지가는 385조 원에 달합니다. 한국 정부의 1년 국가 예산과 맞먹는 규모이지요. 2007년 상위 10개 법인이 보유한 토지의 공시지가는 102조 원이었습니다. 10년 사이에 무려 283조 원의 자산을 불린 셈입니다.
10. 5대 재벌의 부동산 부심
|
5대 재벌이 보유한 토지도 10년간 3배 가까이 뛰었습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에 따르면, 2017년 삼성과 현대차, SK,롯데, LG가 보유한 토지자산의 장부가액은 총 67.5조 원입니다. 2007년 23.9조 원보다 43.6조 원이 더 늘었습니다. 토지자산이 가장 큰 폭으로 증가한 재벌은 현대차입니다. 현대차의 토지 자산은 10년 사이 19.4조 원이 증가했습니다. 5대 재벌 그룹을 계열사로 구분해 봐도 현대차의 토지자산은 단연 원톱입니다. 5대 재벌 계열사의 토지 자산 순위는 현대자동차(10.6조 원), 삼성전자(7.8조 원), 기아자동차(4.7조 원), 호텔롯데(4.4조 원), 현대모비스(3.5조 원) 순입니다. 상위 5개 중 3개가 현대차 계열사입니다.
한편으로 재벌은 시세차익이나 임대수익 등을 목적으로 한 ‘투자부동산’도 소유하고 있습니다. 투자부동산의 경우 삼성이 5.6조 원으로 가장 많았습니다. 다음은 롯데 3조 원, LG 1.6조 원, 현대차 1.4조 원 순입니다. 이들의 총 투자부동산은 12조 원에 달합니다. 5대 재벌의 투자부동산과 토지자산을 합하면 무려 80조 원. 참고로 지난해 세계 4대 컨설팅사인 롤랜버거는, 기업이 75조 원을 추가로 부담하면 한국이 최저임금 1만 원을 실현할 수 있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발표한 바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