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나랏돈 들여 재벌에 떠먹여 준다
대한항공과 함께 한국 항공산업을 양분했던 아시아나항공이 결국 금호그룹을 떠나 매각 절차를 밟게 됐습니다. 엄청난 빚을 쌓아두고 있는 탓에 당장 만기가 돌아오는 수백억 원대 채무를 갚을 수 없게 되자, 금호그룹은 채권단에 긴급 자금지원을 요청하는 대가로 아시아나항공을 다른 기업에 넘기겠다고 한 것이죠.
언론 성향과 관계없이 모두가 금호아시아나그룹 박삼구 회장의 경영실패를 원인으로 지목합니다. 일단 경영권 세습 과정에서 그룹을 쪼개는 분쟁을 벌였죠. 여담이지만, 가끔 재벌들의 경영 승계 ‘원칙’을 보고 있자면 과연 21세기를 살아가고 있는 것이 맞는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가령 ‘착한 기업’이라는 LG의 경우, 그 이름조차 고색창연한 ‘장자승계원칙’에 따라 경영권을 세습합니다. 만약 장손이 없다면? 입적을 시켜서라도 장손으로 만듭니다. 그렇게 경영권을 승계한 게 바로 지금의 LG그룹 4대 회장 구광모죠. 이와 달리 금호그룹의 경우 독특하게도 ‘형제 세습’이 원칙이었습니다. 일정한 나이가 되면 물러나 동생에게 총수직을 물려주는 것이죠. 박삼구 회장도 그렇게 두 형으로부터 경영권을 물려받았습니다. 하지만 동생에게 물려줄 나이가 되자 이 ‘원칙’을 거부하고 자신이 회장직을 계속 유지하면서 아들에게 경영권을 세습하려는 시도를 벌이죠. 그러자 동생인 박찬구가 반발하며 화학업종 계열사들을 분리해 ‘금호석유화학’이라는 별도 그룹으로 떨어져 나갔습니다.
이렇게 경영권 분쟁을 벌이는 한편, 박삼구 회장은 무리한 사업 확장에 나섰죠. 2006년 대우건설, 2008년엔 대한통운을 인수하겠다면서 10조 원이 넘는 자금을 투입했습니다. 이 돈이 갑자기 생겼을 리가 없죠. 아시아나항공을 포함해 계열사 자금을 끌어 모으고, 이 과정에서 막대한 부채를 쌓게 됩니다. 하지만 2008년 세계경제위기가 터지면서 이렇게 끌어 모은 빚이 금호그룹을 짓누르게 되고, 결국 대우건설과 대한통운을 모두 인수한 후 불과 3년 만에 각각 산업은행과 CJ그룹에 되팔았습니다. 물론 인수할 때보다 훨씬 낮은 가격이었죠. 남은 것은 적자와 부채뿐이었습니다. 대우건설 인수에 자금을 댔던 금호타이어는 2009년 워크아웃을 신청해 산업은행 관리체제로 들어가게 되고, 결국 산업은행과 문재인 정부는 2018년에 노동자들의 반발과 파업투쟁에도 중국 타이어업체인 더블스타에 매각을 강행했습니다. 대한통운 인수에 동원된 아시아나항공 역시 빚더미에 올랐고,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은 아시아나항공 역시 제3자 매각을 밀어붙이고 있는 것이죠.
이렇게 보면 한 거대 재벌그룹이 어떻게 경영실패로 몰락하는지 보여주는 서사 같지만, 사태는 그리 단순하지 않습니다. 일단 1만여 명에 달하는 아시아나항공 노동자들의 생존이 걸려 있고, 나아가 매각과정에서 조 단위의 나랏돈이 들어갑니다. 최근 정부는 아시아나항공에 1조6천억 원에 달하는 긴급 자금을 투입하겠다고 밝혔는데요. 금호그룹 경영실패로 아시아나항공에 쌓인 부채가 많기 때문에, 이 자금 투입으로 재무구조를 건전하게 바꾸고 ‘매력적인 매물’로 만들어서 제3자가 인수할 때 부담을 줄여주겠다는 겁니다. 현재 아시아나항공을 인수할 유력한 후보로는 CJ, 롯데, 한화 등 다른 재벌그룹들이 거론되고 있는데요. 결국 재벌그룹의 인수를 돕기 위해 1조 원 넘는 나랏돈을 쓴다는 겁니다.
#2. 모두를 위한 ‘공공 비행기’
그렇다면 이런 생각을 해볼 수도 있지 않을까요? ‘그 막대한 나랏돈을 들여 다른 재벌에게 알짜 항공사를 넘겨주느니, 차라리 번듯한 국영 항공사로 전환하면 안 될까?’ 그간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양대 항공재벌은 하늘길을 장악하고 막대한 이윤을 누려왔습니다. 가령, 금호그룹 전체 매출에서 60~70%를 아시아나항공이 벌어다 주었을 정도니까요. 항공교통이 더 이상 ‘사치재’인 것도 아닙니다. 항공 여객 수송 통계를 보면 2017년 기준으로 국내선 여객 3천만 명, 국제선 여객은 7천만 명을 넘어서면서 10년 전인 2007년 수치의 2배를 기록하고 있죠. 물론 이 가운데는 늘어난 외국인 관광객이 차지하는 비중도 상당하겠지만, 연휴 때마다 공항이 북새통을 이루는 풍경은 이제 낯설지 않죠.
사회주의에서 항공교통은 공공 대중교통으로 자리 잡을 겁니다. 철도·지하철과 마찬가지로, 국영 항공사가 운영하는 공공부문이 되는 것이죠. 이렇게 된다면 세 가지 장점이 생깁니다.
첫째, 낭비가 사라집니다. 재벌이 장악한 항공산업은 그저 하루하루 이윤을 뽑아내는 기계일 뿐이죠. 당장 아시아나항공만을 보더라도, 박삼구 회장의 파멸적 경영행위에 자금을 동원하는 주요 통로로 전락했습니다. 대한항공 역시 마찬가지죠. 조양호 회장은 지난해 대한항공에서만 급여로 27억 원을 받았고, 그 아들인 조원태 사장도 6억 원을 받아갔습니다. 심지어 ‘물컵투척’ 사건의 당사자인 조현민 전 대한항공 전무는 ‘퇴직금’ 명목으로 대한항공과 진에어에서 무려 13억 원을 챙겼죠. 범죄를 저지르고 쫓겨나면서도 챙길 건 알뜰하게 챙겨간 겁니다. 배당금 뽑아가고, 고액 급여에다 퇴직금까지, 총수일가에 지불하는 막대한 돈은 사회적 낭비입니다.
사회주의에서 항공사는 특정 집단의 사유물이 아닙니다. 공동체가 소유하고 운영하기에, 지금처럼 총수일가나 소수 경영진에게 고액의 보수를 챙겨주거나 이윤을 빼돌리는 행위를 원천 봉쇄하죠.
둘째, 이렇게 낭비를 막은 돈으로 이용객 편의를 얼마든지 증진할 수 있습니다. 주변에서 비행기를 상대적으로 자주 이용하는 사람들에게 들어보니, 비행기값을 아끼기 위해 싼 좌석을 구매하면 다리 하나 제대로 펴기 힘든 좁아터진 공간을 참고 견뎌야 한다고 하더군요. 일등석 한 번 타보겠다고 가뜩이나 적은 월급을 1년간 다달이 모으는 경우도 봤습니다. 물론 물리적인 문제를 고려할 때 모든 좌석을 전부 지금과 같은 일등석으로 배치할 수는 없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공공교통으로 기능하는 ‘사회주의 비행기’는 적어도 모든 이용객이 비싼 값을 지불하지 않더라도 좁은 좌석에서 근골격계 통증을 느끼는 일은 없도록, 수익이 나지 않더라도 편의 확충에 적극적으로 투자할 임무를 부여받게 될 것입니다. 공적 재원으로 운영하는 것이니만큼, 비행기를 이용하는 시민들의 편의를 보장하는 것은 ‘서비스 상품’이 아니라 ‘공공재의 의무이자 시민의 권리’가 되는 것이죠.
셋째, 항공 노동자들의 처우를 획기적으로 개선할 수 있게 됩니다. 1년 전으로 돌아가 보죠.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모두에서 회장 퇴진을 요구하는 노동자들의 투쟁이 벌어졌습니다. 항공 노동자들은 거의 가노 신세였죠. 대한항공 총수 일가의 막말과 폭행은 물론이고, 아시아나항공에서는 박삼구 회장을 위한 ‘이벤트’ 행사에 승무원들을 동원해 성희롱을 당하는 일도 벌어졌습니다. 노동환경도 열악합니다. 항공 노동자들은 지속적으로 인력 충원을 요구해왔습니다. 승무원들 중에 과로에 시달리다 실신하거나 사망하는 사건도 있었고, 여성 노동자들의 경우에는 불임과 유산의 고통을 겪기도 한다는 사실이 드러났죠.
안정적인 공공서비스 공급의 차원에서 접근한다면, 인력을 확충하고 노동조건을 개선하는 것은 가장 기본적인 의무입니다. 더구나 사회주의에서 기업을 운영하는 핵심 주체가 바로 이 노동자들입니다. 물론 이용객을 대변하는 소비자 대표들 역시 공공교통산업의 운영에 참여할 겁니다. 더 이상 이윤을 뽑아내려고 혹독한 노동환경을 강요하는 일은 존재할 수 없습니다. 갑질과 폭력을 행사하는 ‘총수’나 ‘사주’의 존재도 없죠. 사회주의 항공사에서는 안전한 공공 비행서비스를 위해 항공사 노동자들과 소비자 대표들이 함께 논의하면서, 노동자 자신의 권익과 노동조건을 결정하고 통제할 수 있게 됩니다.
#3. 사회주의는 다 공짜로 주나
이런 질문이 나올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다면 사회주의에서는 비행기값을 공짜로 하겠다는 것이냐? 그 비용은 어떻게 감당할 건가? 너도나도 비행기를 타겠다고 몰리면 어쩔 건데?’
사회주의에서 비행기값은 확실히 내려갈 겁니다. 총수일가나 경영진, 주주들이 누리는 이윤을 뽑아낼 필요가 없으니까요. 그 혜택은 노동자들과 이용객인 시민들에게 돌아가야 합니다. 하지만 사회주의에서도 변하지 않는 것은, 물건이건 서비스건 그걸 생산하는 데 노동과 자원이 들어간다는 사실입니다. 그 대가도 지불해야겠죠. 개인적으로, 비행기값이 공짜가 되긴 어렵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다만 최소한의 이용료를 받을 수 있겠죠. 중요한 건, 그 자체를 사회구성원들이 결정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공공 항공사이니, 운영비용은 공적 재원으로 감당하게 되겠죠. 비행기값이 무료라면, 운영비용 일체를 세금으로 충당해야 할 겁니다. 즉, 공동체는 전적으로 세금을 통해 항공사를 운영할지, 아니면 공적 재원으로 보조하되 일정한 이용료를 받을지 스스로 결정하게 됩니다. 이윤 논리를 배제한다면, ‘공공재로서 항공교통이 담보해야 할 공익’과 ‘그 재원을 소비자에게 얼마나 거둘지’ 사이에서 얼마든지 스스로 조정하고 선택할 수 있는 거죠.
사회주의에서도 노동과 자원은 한정적입니다. 다만 그걸 배분하는 원리가 자본주의와 다른 거죠. 사회주의라고 무작정 모든 걸 다 공짜로 만드는 게 아닙니다. 그렇게 수요가 몰려 비효율적으로 과다한 자원을 배분하거나, 아예 공급을 못해 끝없는 줄서기로 인민을 기다림에 지치게 만드는 건 정말 관료적인 통제의 산물이죠. 민주적인 사회주의 사회라면 문제가 생겼을 때 공동체의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구성원들이 직접 결정하면서, 자원의 비효율적 배분을 교정할 수 있습니다. 항공산업도 마찬가지입니다. 요금이 없거나 너무 낮아 수요가 지나치게 몰리는 일이 발생한다고 해서 무작정 항공사에 과다한 자원을 투입하고 비행기를 늘릴 수는 없죠. 자신의 권리에 따라 집단적 결정을 내리는 대중은 우매하지 않습니다. 자기 스스로의 필요를 따져볼 때 일정 수준 이상으로 항공산업 확장에 자원을 투입하는 게 적절치 않다고 판단하게 된다면, 다소 스스로 부담을 지더라도 비행기값을 올리는 대신 사회적 자원을 다른 곳에 투입하는 결정을 내릴 수 있죠.
여기에서 중요한 건 시민의 자유로운 이동권의 일환으로서 항공교통을 제공한다는 겁니다. 항공교통은 앞서 언급했듯 이제 수많은 사람이 이용하는 대중교통의 위상을 점하고 있고 더 이상 ‘사치재’로 취급되지는 않지만, 분명 비행기 값이 부담으로 작용하는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이 나라에서 해외 한 번 나가려면 비행기 외에는 수단이 없죠. 철도는 휴전선 너머로 끊겨 있고, 설령 대륙철도를 연결한다고 한들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립니다. 배 타고 가는 건 더 말할 나위가 없죠. 결국 비싼 비행기값을 감당하지 못하면 해외에 나가는 건 엄두도 내기 힘든 일입니다.
사회주의라고 해서 당신이 비행기를 타고 싶은 대로 맘껏 탈 수 있는 건 아닐 겁니다. 하지만 적어도 돈이 없다는 이유 때문에 가고 싶던 해외여행 한 번 가지 못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는 거죠. 사회주의는 먹고, 자고, 일하는 것만 권리인 세상이 아닙니다. 자신이 원할 때 떠날 수 있고, 자신의 행복을 위해 여행도 하면서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는 세상, 지금의 헌법에서 ‘행복추구권’이라고 추상적으로 적어놓은 권리를 실질적으로 보장하는 게 바로 사회주의의 목표이기도 하죠. 자본주의에서 이 실질적인 행복 추구는 그저 개인의 책임일 따름입니다.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는 문구가 대변하듯, 열심히 일해서 돈 벌고, 그 돈으로 알아서 가라는 겁니다(물론 열심히 일한다고 돈을 벌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여유롭게 여행을 떠날 수 있는 건 더더욱 아닌 게 현실이지만 말입니다). ‘개인이 여행 떠나는 것까지 보조해줘야 하냐’고요? 질문을 살짝 틀어서 답하겠습니다. 개인이 여행도 떠나지 못하는 일은 없도록, 사회가 어느 정도까지 각 개인과 책임을 나눠질 것인가를 고민하는 것. 이게 사회주의입니다.(워커스 54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