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승은(전국공공운수노조 정책기획차장)
최저임금의 영향을 받는 일자리가 늘고 있다. 그만큼 최저임금에 생활을 맞추려는 사람도 늘었겠다. 그런데 법정 최저임금이 결정되고 고시되는 형태는 바로 시간급. 시간급제에서 노동자의 벌이는 쉽게 시간 싸움이 된다. 일한 시간에 생계가 좌우되니 하루 투잡, 쓰리잡이 성행한다. 몇 시간 일한 것으로 인정받느냐도 관건이다.
사장 입장에서는 몇 시간 일한 것으로 쳐주느냐가 관건이다. 이들에겐 근로계약서가 정한 노동시간을 앞뒤로 꺾거나 덧붙이고 가짜 휴게시간을 끼워 넣는 게 돈 버는 정석이다. 사장들은 이런 불법관행을 만들고 지켜내는 데 한 마음 한 뜻이다. 시간급제의 숙명이겠다.
근대 들어 노동자의 임금은 월급, 주급, 못해도 일당으로 산정돼 왔다. 인간이 먹고 자고 또 생활을 계획하는 리듬을 반영한 것이다. 여기엔 임금이 노동자계급의 생계비라는 사회적 합의도 깔려 있다.
그렇다면 시간 단위로 임금을 따지는 것은 세계노동운동사에서 하나의 퇴보다. 1일 8시간 노동제를 전제하면 월급이나 주급도 시급으로 역산할 수는 있다. 그러나 세계 노동자계급이 처음 8시간 노동을 쟁취했을 때 취지는 하루 일과 중 노동시간을 줄여 그 다음날에도 일하기 위한 ‘노동력 재생산’에 할애하겠단 것이었지, 줄어든 노동시간만큼 임금에서 빼겠다는 시급 계산은 아니었다. 고용을 시간 단위로 분절해도 좋다는 합의는 더더욱 아니었다.
시간당 고용의 진화
시간당 고용은 점점 더 유연한 고용으로 진화한다. ‘공유경제’로 불리며 세계 벤처자본을 흡수한 ‘우버’가 대표적이다. 위치기반기술로 구현한 플랫폼을 통해 택시 수요자의 ‘호출’과 자차 소유자의 운수노동을 연결해 주고, 그렇게 발생한 운임에서 수수료를 챙기는 글로벌 IT기업이다. 다만 법상 택시운송사업체는 아니기에 우버가 교통 공급량, 안전, 고용관계 등의 문제를 직접 책임지지는 않는다. 그 비용은 고스란히 기사 본인과 사회에 전가된다.
우버의 가장 획기적인 사회적 해악은 고용관계에 있다. 우버는 기사들을 직접 등록(채용)시키고 지시‧관리하고 보수도 준다. 우버가 개인사업자라고 주장하는 이들은 사실상 우버의 직원인 셈이다. 다만 이들은 자신의 차에 승객을 태워 출발하는 순간부터 승객이 내리는 순간까지만 고용된 상태로 있다. 승객의 나쁜 평가가 쌓이거나 호출을 받지 않는 기간이 길어지면 자동 퇴출(해고)된다. 이런 노무관리는 저성과자를 솎아내는 수준을 넘어, 모든 노동자의 노동시간 중 실질적 성과가 발생하는 순간들에만 임금을 주겠단 발상이다.
유급노동시간이 분절될수록 유급휴식은 사라진다. 사실 일을 하다보면 업무가 덜 몰리는 시기도 있고, 하루 업무시간 중 집중력과 수행력이 떨어지는 때도 있다. 틈틈이 밥도 먹고 화장실도 가고 이동이나 대기도 해야 한다. 그래도 자본가는 고용이 계약된 기간에 대해 약속한 임금을 쭉 지급해야 한다. 애초 유급휴일과 유급휴게시간이 법에 보장돼 있기도 하다.
매시간 매분 수익성이 다른데 임금은 똑같이 줘야 한다니 얼마나 억울하겠는가. 이 억울한 자본가들에겐 노동자의 모든 잡스러운 움직임을 들어내고 확실히 이윤이 되는 순간들만을 추려 고용하는 것이 소원이겠다. 그 모범이 바로 우버였다. 뒤이어 다양한 유사업체가 등장했고, 지금 영국에선 우버의 사업모델과 닮은 ‘0시간 계약’이 횡행한다.
사회안전망을 떠받치는 시간당-건당 노동자들
우버 식의 고용이 기술발달로 새롭게 열린 공간에서 한 번쯤 해볼 만한 실험인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가장 탄탄해야 할 사회안전망이 그렇게 운영되고 있다면 어떤가? 한국의 노인장기요양보험제가 그 예다. 이 제도를 떠받치는 건 수십 만 요양보호사들로, 이들의 임금은 실제 시간당으로 책정되고 있다. 이용자 집을 방문해 일하는 재가요양보호사의 경우 방문 건당 3시간으로 노동시간이 제한되니, 이들의 임금은 ‘건당 임금’이기도 하다. 3시간 단위로만 일을 하(는 것으로 인정되)니 복리후생은 자취를 감추었다. 이동하고 대기하고 밥 먹는 시간은 모두 본인 비용이다. 호출이 없는 날은 사실상 실업 상태기도 하다.
그 결과는 뚜렷하다. 민간기관장의 돈이 남는다. 애초 국가가 기관들에 사업비와 인건비의 구분 없이 통으로 수가를 지원하니, 줄어든 인건비는 곧장 기관장의 수입이 된다. 요양보호사만이 아니다. 장애인활동보조인 역시 시간당-건당 노동자다. 이들의 임금은 활동보조 서비스를 건별로 구매할 수 있도록 장애인에게 정액으로 지원되는 바우처에 묶여 있다. 요양수가와 활동보조 바우처 모두 공익적 필요가 인정돼 공적기금에서 지원되는 돈이지만 노동자의 임금은 따로 보장하지 않는다.
필요한 건 조직, 투쟁, 연대
노동시간을 논의할라치면 일자리 나누기나 정규직 양보론을 떠올리는 사람이 많다. 일자리 창출, 교대제 개선, 적정인력 충원도 물론 중요한 노동현안이다. 다만 그저 월급제를 쟁취하기 위해 노동시간을 논해야 하는 노동자들도 있음을 잊지 말자. 시간 장난질로 얼룩진 근로계약서를 거부하고 쪼개진 노동시간을 ‘조직’해내야 하는 노동자들이 우리 사회의 안전망을 떠받치고 있다. 당장 일할 시간부터 정확히 셈하라는, 일한 시간부터 똑바로 임금 지급하라는 투쟁을 하고 있는 노동자들이다.
그 이름이 공유경제든 사회서비스든 누구의 노동도 시간당 노동, 건당 노동이어선 안 된다고 믿는 당신이라면 부디 이 노동자들의 존재와 싸움을 발견하자. 그리고 연대하자. 모두의 노동시간이 하나의 노동현안으로 논의되는 그 날까지.[워커스 33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