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석만(참세상연구소)
케인스 할아버지, 예상이 빗나갔어요
공장이 문을 닫고 실업자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던 1930년 대공황 시기. 존 메이너드 케인스는 무려 100년 뒤를 전망하며 <손자를 위한 경제적 가능성>이라는 책을 낸다. 책에서 케인스는 100년 뒤 선진국 후손들은 생활수준이 8배는 좋아지고, 기술혁신과 경제성장으로 경제 문제는 대부분 해결했을 것이라 전망했다. 자본주의 세계경제가 여태껏 겪어보지 못했던 대공황, 이 체제가 얼마나 지속될 수 있을지 아무도 확신하지 못했던 상황에서 케인스는 자본주의의 혁신과 발전에 대한 굳은 믿음을 이렇게라도 표현하고 싶었을까?
케인스의 예측대로 자본주의는 위기탈출에 성공했다. 비록 2차 세계대전이라는 고통스러운 시간을 반복했지만 그 이후 자본주의 세계경제는 미증유의 경제성장을 이뤄냈다. 1950년 이후 미국 경제는 10배 이상 성장했고, 대부분의 개발도상국도 수십 배 이상 성장했다. 90년 가까운 시간동안 생활수준도 엄청나게 올라갔다. 세탁기, 냉장고와 같은 가전제품의 등장으로 여성들의 가사노동 부담이 완화됐고, 깨끗한 수돗물이 공급되면서 유아사망률도 10배 이하로 떨어졌다. 컴퓨터, 인터넷, 휴대전화 등으로 생활의 편의와 생산력의 증진도 이룰 수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다른 데 있다. 케인스는 100년이 지나 기술혁신과 자본축적이 어느 정도 궤도
오르면 기본적인 경제 문제가 해결되고, 인간은 늘어난 여가 시간과 에너지를 돈 버는 일이 아닌 데 쓰면서 가치관의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날 것이라 전망했다. 하지만 과연 지금이 그런가? 자본주의의 불안정성은 여전하고, 장기침체가 이어지고 있다. 실업률도 결코 낮아졌다고 할 수 없으며 열악한 일자리만 늘어났다. 빈부격차는 더 벌어졌으며, 노동자들은 줄어든 소득을 부채로 메워가면서 빚만 늘었다. 독점은 엄격한 규제에도 세계적으로 더 확대되고 있다. ‘경제적 문제’는 거의 해결된 것이 없고 부채와 스태그플레이션 등 그 때는 없었던 더 큰 경제 문제들이 생겨났다.
“생산성 증가는 끝났다”
여기 로봇과 인공지능이 나타났다. 로봇과 인공지능이 인간을 대신해 생산하면서 엄청난 부를 가져다주고 인간은 더 이상 생존을 위한 노동이 아닌 여가를 즐기며 자기발전과 사회공동체의 발전을 위해 시간을 소비하는 그런 유토피아적인 사회로 나아갈 것인가? 케인스 예측대로 20년 쯤 지나면 로봇이 로봇을 생산하는 경제적 특이성(economic singularity)과 인공지능이 인간을 능가해 인공지능을 개발하는 기술적 특이성(technological singularity)의 시간이 올 것인가? 그러면 자본주의는 생산성을 회복하고, 생산은 주로 로봇이 하면서 인간은 그저 자기계발에 충실한 그런 삶을 살게 될 것인가?
하지만 이에 대해 케인스의 후예들은 비관적이기만 하다. 클린턴 행정부 재무장관과 오바마 행정부 국가경제위원회 의장을 지낸 래리 서머스는 수요부족과 생산성 둔화로 미국과 세계경제가 구조적 장기침체(secular stagnation)에 빠졌다고 역설하고 나섰고, 조지프 스티글리츠는 불평등이 성장을 둔화시키고 있다며 자본주의의 구조적 모순을 지적한다. 폴 크루그먼도 불평등, 로봇과 독점이 생산성 저하의 원인이라고 주장하고 나섰다.
주류 거시경제학의 대가인 로버트 고든은 자신의 책 <미국의 성장은 끝났는가?>에서 ‘성장은 끝났다’고 단언한다. 앞으로 40년이 지나도 미국은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지 못할 것이라 전망하며 미국사회와 주류 경제학계를 들었다놨다했다(그런데도, 한국에서는 여전히 ‘4차 산업혁명’이라는 나팔소리만 울려 퍼지고 있다).
고든은 2015~2040년까지 미국의 노동생산성 증가율을 연간 1.2%로 전망한다. 1920년에서 2014년 사이 평균 성장률 2.26%의 절반정도 되는 수치다. 그나마 2015년의 0.5%에 비해서는 두 배 이상 증가한 수치이기는 하다. 이것도 로봇 공학, 인공 지능 및 빅데이터, 3D 프린터 및 자율주행 차량의 혁신에 의해 달성 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최소 25년 동안 생산성은 이처럼 답보상태에 있을 것이라 강조한다.*
생산성 역설?
경제가 좋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고 투자마저 위축되자, 기술혁명론 진영에서는 두 가지 대안을 얘기하기 시작했다. 첫째, 생산성 혁신은 이미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데, 생산성 통계가 잘못됐다는 것이고 둘째, 기술혁신이 적용되는 데는 시간이 필요하고 아직 때가 무르익지 않았으니 기다려보라는 입장이다.
혁신적인 기술이 생산성 통계에 미치는 미미한 영향 때문에 거시경제학자인 로버트 솔로우(Robert Solow)는 1987년에 ‘컴퓨터는 어디에나 있는 시대이지만 (생산성) 통계에서만은 볼 수가 없다’는 문제를 제기했다. 이른바 솔로우의 역설(Solow’s paradox)이다. 이것이 최근 디지털 전환과 생산성에 대해서 다시 얘기되고 있다.
디지털 경제가 확대되면서 디지털 제품을 무료로 제공하거나 광고와 같은 대체 수단을 통해 자금을 조달하거나 고객에 대한 정보를 제 3자에게 판매한다. 이것은 소비자에게 명확한 가치를 나타내는 반면, 제로 가격에서 이용 가능한 디지털 제품은 국제적으로 합의된 통계 기준에 따라 GDP에서 완전히 배제된다는 것이다. 가령, 음악 산업의 경우 1990년대의 지배적인 매체인 CD는 온라인 다운로드 및 스트리밍 서비스의 급증으로 대체돼 현재는 대체로 무료 또는 정액 요금제로 이용할 수 있다. 따라서 다운로드 형식으로의 전환은 매출의 급격한 증가에 반영되지 않을뿐더러, 매출 및 이익은 급격히 하락한다. 기술혁신으로 음악은 두 배 이상 많이 듣게 됐는데, 매출은 반이 줄어 GDP 통계에서 절반이 줄어들었다. 이처럼 GDP나 생산성 통계가 잘못됐고, 계측에 문제가 있으니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식의 소비자 잉여 또는 측정되지 않은 가치는 인터넷과 디지털 경제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지금까지도 수없이 많은 기술들에서 생략된 가치들은 존재했다. 로버트 고든은 “19세기 이래 모든 것이 반복되고 있다. 실제로 과거의 혁신은 오늘날의 비교적 사소한 혁신보다 훨씬 큰 측정되지 않은 가치를 창출했다”고 강조한다. 등불로 불을 밝히던 세상에 전기가 들어와 전등으로 빛을 비추게 된 세상은 인터넷이나 스마트폰과는 비교할 수 없을 큰 만족을 줬다. 마차가 다니던 길에 자동차가 나타난 것을 자율 주행 자동차가 등장한 것과 비교할 수 있을까? 냉장고가 생겨나 오랜 시간 음식을 보관할 수 있게 된 것과 냉장고에서 인공지능 비서가 자동으로 주문하는 것의 편의 중 어떤 것이 더 큰가? 전기, 전구, 자동차, 냉장고 같은 것들은 엄청난 변화를 야기했지만 성장률과 관련해서는 다소 완만한 형태를 보였다. 게다가 가사노동이나 공공서비스는 시장가치로 평가되지 않아 항상 GDP 통계에서는 빠져 있었다. (주류 경제학은 사용가치와 교환가치를 구분하지 않아 이런 딜레마에 빠진다.)
다른 한편, GDP 측정에는 노동과 자본 생산성 뿐 아니라 그 외의 요소들을 평가하는 총요소생산성(TFP)에 기술혁신 기여도를 반영한다. 전기, 항공 및 항생제와 같은 획기적인 발전이 최대 효과에 도달했던 1950년대 최대 성장률은 연간 3.4%에 달했다. 그 이후로는 꾸준히 둔화됐다. 또한 생산성 저하가 전통적으로 측정하기 어려운 산업(ICT)에 집중되지 않았다는 점도 특별히 디지털 영역을 과소평가하거나 측정에 오류가 없었음을 보여준다. 2004년에서 2013년 사이 IT업계뿐만 아니라 전통적인 산업에서도 상당한 속도 저하가 있었다. 오히려 지금의 GDP는 경제 구성의 변화로 인한 경기 침체를 설명하지 못한다.**
죽거나 나쁘거나
인간노동의 기계로의 대체는 제임스 와트가 증기기관을 발명한 이후부터 계속 이뤄졌고, 최근의 디지털 전환을 통한 ‘기계대체’도 1990년 이후 지금까지도 지속되고 있다. 수많은 일자리들이 사라지고 생겨났지만, 노동자들의 노동시간은 여전히 줄지 않았고, 새로운 일자리들은 더 열악하고 질이 낮아졌다.
시간이 지나 로봇생산이 일반화되면 생산성이 비약적으로 증가할까? 아마도 그럴 것이다. 1인당 생산량으로 측정되는 노동생산성은 공장과 대형마트 계산대에서 사람이 줄고 기계가 그 역할을 대신하면 당연히 늘어난다. 그렇다고 자본주의 생산과 유통 시스템도 제대로 작동할까?
로봇에 대해 간과하는 세 가지 문제는 로봇이 소비를 하지 않는다는 점 뿐 아니라, 로봇은 어떤 가치도 새롭게 만들지 못한다는 점, 그리고 로봇이 생산하는 모든 부는 로봇 소유주에게 돌아간다는 점이다. 바로 이점 때문에 미증유의 생산성 향상과 함께 미증유의 위기를 맞게 된다. 로봇은 생산과 소비 및 생산수단의 소유에 대한 모든 점에서 이제까지와는 다른 방식의 문제를 결정적으로 야기하기 때문이다.
결국 자본주의의 미래, 즉 우리 사회의 미래는 둘 중 하나다. 로봇을 통한 비약적인 생산성 증가가 이뤄지면 (로봇으로 인해 자본주의적 생산이 중단될 때까지) 로봇 소유주들은 엄청난 이윤을 벌어들이는 더 극단적인 세상이 될 것이다. 반면, 기술이 발전했음에도 생산성이 여전히 둔화되면, 지금처럼 디플레이션에 고통 받으며 장기침체 속에서 더 빚을 내고 더 많은 빚을 갚으며 말라가게 될 것이다. 지금의 디지털 전환이 기술혁신을 통해 자본주의 성장을 가져다줄지는 아직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대로 가면,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다(계속).[워커스 33호]
* http://www.imf.org/external/pubs/ft/fandd/2016/06/gordon.htm
** Does the United States have a productivity slowdown or a measurement problem?, David M. Byrne, John G. Fernald, and Marshall B. Reinsdorf, brookings, 2016
*** 다음 글에서는 로봇생산의 의미와 자본주의의 미래에 대해서 살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