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베스의 ‘21세기 사회주의’가 무너지고 있다. 세상을 바꿀 듯한 기세로 남미 전역을 휩쓸던 이른바 ‘핑크타이드’가 저물며 80년대 말 현실 사회주의 붕괴 이후 사회주의의 새로운 전망을 열어낼 듯하던 실험이 베네수엘라의 차베스주의와 함께 무너지고 있다.
세계 자본주의는 60년대 말 시작된 기나긴 공황을 거치며 신자유주의 체제로 재편됐다. 전후체제의 양대 지주이던 달러본위제인 브레튼우즈체제가 붕괴한 이후, 서구는 자본의 세계화를 위해 GATT(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 협정) 체제를 강화하고자 했다. 이를 위해 그들은 이른바 우루과이라운드 협상으로 교역에 농산물을 포함해 물과 교육, 의료 등 공공서비스, 그리고 지적재산권을 포함하고자 했다. 이후 94년 마라케쉬에서 우루과이라운드가 타결되고 세계무역기구(WTO)가 출범하면서 전 세계 노동자민중의 반세계화투쟁이 시작된다. 1999년 시애틀을 시작으로 WTO의 최고 의결기구인 각료회의를 저지하기 위한 투쟁이 칸쿤, 홍콩 등으로 이어지면서 각료회의는 결국 집회와 시위가 원천봉쇄된 카타르 도하에서 미봉적으로 합의한다.
이렇듯 현재의 반세계화 투쟁의 배경에는 각 나라 노동자민중의 반세계화 투쟁이 있다. 이 투쟁 과정에서 자본의 세계화를 주도하는 다보스포럼, 즉 세계경제포럼(WEF)에 맞서 세계사회운동은 노동자민중의 대항 포럼을 만들자는 데 합의하면서 브라질 포르투알레그레에서 세계사회포럼(WSF)을 출범하게 된다. 영국의 대처(Thatcher)가 ‘국병’을 고친다며 노조를 공격했던 “다른 대안은 없다(TINA, There Is No Alternative)”에 맞서 노동자·농민·시민사회운동이 모여 다양한 대안을 모색하는 축제의 자리를 마련했다. 전 세계에서 모였지만 특히 남미에서는 마침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에 반대하는 멕시코 사파티스타에서부터 아르헨티나 신자유주의저지투쟁의 상징인 피케테로스운동까지, 브라질의 노동자당(PT) 등과 같은 노동운동에 기반한 정치운동, 무토지 농민운동(Landless Workers’ Movement) 등이 모여 남미의 핑크타이드가 넘실거렸다. 마침 2005년 세계사회포럼에 참석한 차베스는 ‘차베스’를 외치는 대중들 앞에서 “자본주의를 극복해야” 한다며 “평등과 정의가 있는 진정한 사회주의를” 말하며 ‘21세기 사회주의’를 향한 행진을 선언한다.
이렇듯 핑크타이드는 반세계화투쟁과 함께 했다. 이후 반세계화투쟁은 부시의 이라크침략전쟁에 맞선 반제국주의투쟁으로 중심을 이동해갔으나 더는 명맥을 잇지 못하다가, 2008년 세계공황을 계기로 아랍, 남유럽, 미국 등에서의 노동자민중투쟁으로 새로운 전환을 맞이하게 된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핑크타이드는 공황과 함께 저물었다. 이는 처참했던 서구의 침략에 따른 역사적 한계를 넘지 못한 것이 결정적 원인이었다.
역사의 굴레
지금 베네수엘라는 전복의 위기에 처해있다. 초인플레이션으로 돈이 가방이나 수공예품을 만들어 파는 재료로 바뀔 정도니 실질임금은 바닥을 쳐 생계를 유지하기 어렵고, 생필품은 물론 의약품까지 바닥나다 보니 분노하고 절망한 대중들은 거리로 나오거나 국경을 넘는다. 국경에서는 인도적 지원이라는 명분으로 미국에서 보낸 생필품의 반입을 막는 정부군과 굶주린 국민과의 실랑이가 끊이지 않는다. 간호사와 교사의 파업도 이어지고 있다.
‘아메리칸 키즈’ 과이도 국회의장은 스스로 임시대통령임을 선언하고 원조물자를 들여오기 위해 100만 자원봉사자를 모집하는 등 미국과 함께 니콜라스 마두로 정부를 전복할 쿠데타를 위한 명분 쌓기에 바쁘다. 차베스가 사망한 이후 이미 오바마 대통령 시절부터 마두로 정부에 대한 압박은 시작됐다. 베네수엘라 국영석유회사 PDVSA의 미국 내 자회사인 시트고(Citgo)의 금융거래를 차단했고, 미국 재무부는 1월 29일 베네수엘라 민주주의를 회복시킬 후안 과이도 대통령 대리에게 시트고의 은행 계좌 사용 권한을 내줬다. 최근에는 베네수엘라 수출의 90%, 미국 수입의 20%를 차지하는 석유의 미국 수입을 전면적으로 차단하면서 경제봉쇄를 전면화하고 있다.
한편 미국은 베네수엘라의 ‘민주주의의 회복’을 위해 직접적인 군사개입의 기회를 엿보고 있다. 국경선을 가장 넓게 마주하는 콜롬비아부터 푸에르토리코, 도미니카공화국, 그리고 카리브해 전략 요충지에 전력 배치 등 군사적 압박을 강화하고 있으며 새로 당선된 자이르 보우소나루 브라질 대통령과의 공조를 도모하고 있다. 현재로서는 베네수엘라 군부가 마두로 정부를 지지하고 있어 내부 쿠데타 형식을 빌리기는 어려울 듯하다. 한편으론 미국이 주도하는 원조 생필품을 매개로 콜롬비아나 브라질 국경에서 분란을 촉발해 직접 침공할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미국은 직접 침공이라는 부담을 덜기 위해서 경제적 봉쇄, 군사적 압박을 통한 내부적 해결 방식을 계속 도모할 것으로 보인다.
그간 미국은 중남미를 포함한 남미에 대해, 파나마를 직접 침공해 대통령을 체포해서 미국 내 법정에 세우는 등 상상을 초월하는 직간접적인 군사개입을 여러 차례 일으켜 왔다. 지금의 베네수엘라 내부 정치경제적 지형과 미국의 개입 등에 관련한 국제지형은 칠레와 많이 닮아있다. 이렇듯 미국의 군사적 개입이 가능한 배경엔, 독립은 했으나 과거가 청산되지 못한 채 지속되는 식민의 역사가 깔려있다.
라틴아메리카에선 15세기 말 스페인이 무어인을 몰아내고 고도로 중앙집권화된 국가로 형성해가면서 상업자본주의가 나타나고, 콜럼버스가 남미에 발을 디디면서 식민지 역사가 시작됐다. 북미로 간 프로테스탄트가 중심이 된 메이플라워호와는 달리 남미로 간 정복자들은 마야, 잉카문명을 파괴하고 금·은의 약탈과 잉여의 본국 이전을 목적으로 했다. 스페인 정복자들은 산악지역에 집중적으로 살면서 세련된 경작기술과 관개시설을 이용하는 원주민의 농업경제를 파괴하고 광업경제로 재편했다. 박물관에 남아있는 유적이 없을 정도로 금·은으로 된 것은 다 녹여 본토로 보내는 한편 토착민을 강제로 이주시켜 식량을 조달하고, 남자들은 징발해 광산의 강제노역에 동원했다. 산지에서 금이나 은이 바닥나면 곧장 새 산지를 찾아 떠났으며 그 지역은 금방 폐허가 됐고 토착민들도 강제 이주시켰다. 17세기 중엽 들어 금·은이 바닥나 광업경제가 쇠퇴하면서 자급자족 농활동이 되살아나자, 토지가 비옥한 대농장에 토착민의 공물이나 반노예적 노동으로 유지하는 엔꼬미엔다제도라는 새로운 사회체제를 굳혀갔다. 이후 엔꼬미엔다제도는 없어졌지만 토지소유권을 이용한 토착 원주민 쥐어짜기는 계속됐다. 멕시코, 브라질, 아르헨티나 등은 지리적 조건 등으로 인해 다른 형태의 착취와 사회구성체제가 형성돼왔지만 여기서는 생략한다.
그리고 영국의 명예혁명, 프랑스의 대혁명을 거치면서 자본주의 산업혁명이 일어났지만 스페인은 강고한 봉건체제에 나폴레옹의 침공까지 받게 되면서 부르주아혁명을 따라잡지 못해 몰락하고 남미는 독립하게 된다. 그런 뒤 남미는 스페인에 이어 영국에 경제적으로 종속된다. 국제 공산품이 들어오면서 그간의 수공업에 의존한 생산체제는 무너졌다. 그리고 수입상품의 대거 유입에 따른 수지 적자를 보전하기 위해 차관을 들여오지 않을 수 없었고, 이러한 대외부채의 누적은 지금까지 남미가 빚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시초 요인이다. 그러다 1910년경부터는 미국의 그늘에 들어가게 된다. 민족자결이라는 먼로주의조차도 남미에 대한 미국의 지배권을 행사하기 위한 선언일 뿐이었다. 그 후 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수입대체산업화 시도 등 몇 차례 독자적 산업화를 추진한 적이 있으나 세계체제 속에서 결국은 실패했다. 2차 대전 말미에 서구가 GATT체제를 논의했을 때, 남미국가들은 관세를 무기로 보호무역에 예외를 두자고 강력히 요구했으나 무시당했다.
이후 온대작물 또는 열대작물 등을 생산·수출하면서 사회체제가 구축된 아르헨티나, 브라질과는 또 다르게 멕시코, 칠레, 페루 그리고 볼리비아를 포함하는 이른바 광산물 수출국들 역시 허약한 정치경제체제를 구축할 수밖에 없었다. 베네수엘라는 1930년대에 들어서 석유 수출로 같은 경로를 걷게 되는데 수출광업을 지원하기 위한 하부체제는 극히 전문적이거나 특수한 것이었기 때문에 국내시장 형성에 하등의 영향도 끼치지 못했다. 또 그 자체로 세계경제체제에 연동될 뿐이어서 세계경제의 불안정성과 같이할 수밖에 없었다.
독립의 한계, 혁명의 한계
남미의 독립은 카라카스, 부에노스아이레스, 그리고 멕시코라는 세 개의 거점에서 일어났다. 그중 베네수엘라의 귀족 출신 시몬 볼리바르에 의해 주도된 독립운동은 스페인 해군력의 쇠퇴와 영국 이권의 침투를 배경으로 한다. 자유주의적이고 유럽화한 점에서 진보적이지만 위로부터의 혁명이라는 점에서 이후 지속해서 그 한계를 드러내게 된다. 이는 거대 지주와 상업부르주아들의 쿠데타 등에 의한 집권과 노동자민중을 포괄하고자 하는 남미 특유의 민중주의가 탄생하는 배경이 되기도 한다. 한편 볼리바르는 마지막까지 현재의 콜롬비아, 베네수엘라, 그리고 당시에는 키토라 불리던 에콰도르 등을 통합한 대콜롬비아공화국(the Republic of Greater Colombia)을 건설하고자 했으나 식민지 특성으로 가장 크게 자리 잡고 있던 지방주의에 따라 무산된다.
차베스는 21세기 사회주의를 말하면서 원대한 계획을 세웠다. 석유라는 밑천으로 건강·교육·주택 분야의 사회프로그램을 운영한다고 약속했으며 석유 의존성의 함정을 벗어나 경제를 다변화하겠다고 선언했다. 또 남미의 독자적인 블록 정치경제체제를 형성하고 이를 위해 사용가치가 아니라 가치를 매개로 한 민중무역협정을 구축하겠다고 약속했다. 뿐만 아니라 이를 추진할 주체 형성을 위해 노동조합을 재편하고 빈곤을 퇴치하겠다고 천명했다. 그러나 그의 이 원대한 계획은 결국 무산되기 직전에 있다. 지금 마두로체제는 군부와 대법원, 그리고 부패가 만연한 차베스주의 엘리트에 의해 유지되고 있다. 그리고 이제 마두로는 차베스가 환경과 원주민의 권리를 위해 탄광을 국유화하면서 쫓겨났던 캐나다업체 배릭골드를 다시 불러들이는 등 국제자원개발업체는 물론 국제금융자본과도 함께 하는 행보를 보이고 있다. 이제 트럼프는 사회주의, 그리고 차베스의 ‘21세기 사회주의’의 흔적을 지우려고 하지만 한때 차베스주의를 지지하던 자들도 베네수엘라가 사회주의던 적은 없었다고 말하기도 한다.
지금 베네수엘라는 칠레 피노체트의 군부쿠데타 직전의 아옌데정권 시기와 많이 닮아있다. 쿠바혁명에 놀란 칠레에서는 게릴라운동의 토대를 제거할 겸 선제적인 농업개혁을 추진했으나, 인민연합의 아옌데정권조차도 근본적인 개혁을 우회하여 선거에 의한 집권 이후 계급주체 형성에 실패했다. 그리고 광산을 국유화했으나 세계체제와 연동돼 불안정성을 보였고, 노동을 세우고 사회복지체계를 형성하기 위한 프로그램은 인플레를 유발했다. 이에 자본이 중심이 된 파업으로 물자가 부족하고 이에 민심이 동요하자 미국 키신저가 주도하는 CIA의 공작으로 피노체트의 쿠데타가 일어나게 된다. 결국은 역사의 한계를 넘어서지 못하고 무너져갔다.
사실 핑크타이드를 주도하던 브라질, 칠레, 페루, 에콰도르 등 많은 남미국가에서도 볼리비아 등 몇 개국을 제외한다면 사정은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결국은 새로운 주체를, 새로운 공동체를 형성하지 못한 한계에 스스로 무너져 내리고 있다.
2008년 공황을 거치면서 원자재, 그중 유가 하락이 베네수엘라의 ‘21세기 사회주의’ 구상에 결정적 발목을 잡았지만, 아래로부터의 혁명은 계속될 것이다. 그리고 2008년 공황을 거치면서 아랍, 남유럽, 미국에서는 새로운 주체가 형성되고 있으며 동시에 새로운 반신자유주의, 반세계화의 물결이 시작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