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인줄 알았지만 그렇게 큰 잘못인 줄은 몰랐다, 피해자가 그렇게 충격 받았는지도 몰랐다.’ 22명의 남고생들에 의한 여중생 집단 성폭력 사건, 가해자의 말이다. 공모할 친구들을 모집하고,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렸다는 그들. 하지만 나는 가해자의 그 말이 진심이었을 것만 같다. 사건 이후 5년 동안 피해자들은 우울증과 자살 시도의 시간을 보냈지만, 가해자들은 대학생이나 직장인으로 평범한 삶을 살았다고 한다.
교사였던 이창동 감독 영화 〈시〉의 종욱도 그랬다. 평범하고 조금은 순박해 보이기까지한 남고생 종욱은 친구들과 함께 여학생에게 성폭력을 가한다. 여학생은 자살하고, 종욱은 마음 불편해 하는 것 같긴 하지만, 여느 때와 같은 일상을 산다. 이미 오래 전 영화 속에도 등장하는 이런 소년들은, 안타깝게도 낯설기만 한 존재가 아니다.
# 소년들의 남자 되기
그 소년들은 괴물이 아니다. 주지하다시피, 반성폭력 운동에서 가장 경계하는 것 중 하나가 바로 가해자의 ‘괴물화’다. 갑자기 세상에 떨어진 괴물 같은 가해자가 성폭력 사건을 저지르는 게 아닐뿐더러, 가해자를 특별한 괴물로 형상화하고 강력한 처벌로 끝나는 방식은 성폭력을 발생시키는 이 사회의 구조와 문화를 지워버리기 때문이다. 그 소년들 사이에서, 그것은 하나의 ‘모험’이고, 동료들 사이에서 뒤처지고 싶지 않은 ‘경쟁’이며, 서로의 ‘연대’를 확인하는 방법이고, 나쁜 일이긴 하지만 소년에서 ‘남자’가 되어가는 과정이라고 여겨졌을 것이다.
이런 모습은 지속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는 탁현민의 <말할수록 자유로워지다>에도 잘 나타나 있다. “고등학교 때, 친구가 어떤 여자애랑 했다고 자랑해서, 다음 날 그 여자애한테 가서 나랑은 왜 안 해주냐고 했다. 결국 그 중학생인 여자애와 첫 경험을 했고, 친구들과 공유했던 그 여자애는 쿨 했다. 내가 사랑하는 애가 아니었으니 어떤 짓을 해도 상관없었고, 딱지 뗐다는 자부심도 있었다. 성경험에서 4등으로 자리를 굳혔다.”
참고로 나는 그가 책에 쓴 내용이 실제 자신의 이야기가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든다. 남성성을 인정받기 위해 자신의 성경험을 ‘더 거칠고 더 많게’ 과장하는 남성들이 적지 않다는 것을 떠올려보면 말이다. 내가 관심을 갖는 것은 오히려, 과장을 해서라도 더 거칠고 더 많은 경험을 한 강한 남성으로 인정받고 싶어 하는 문화다. 무엇보다 여성을 성적으로 대상화함으로써 형성되는 이런 식의 남성성, 남성 되기에 대한 질문이다.
# 여성을 대상화하는 남성성을 허용하며 공모하는 사회
그리고 이 사회가 ‘허용으로 공모’하는 태도에 대한 문제제기다. 탁현민은 여성을 총체적 인격을 지닌 사람이 아니라, 더울 때 켜는 선풍기나 물을 마시기 위한 컵처럼, 여성에게서 인격을 지우고 성적 대상으로만 삼는 모습을 여러 책에서 보여줬다. 그게 ‘자연스러운 남성성’의 한 모습이라는 태도로 말이다. 그러니까 그는 그런 내용을 친구들과 만취한 술자리가 아니라, 반복적 수정을 거쳐서 출판하는 책에 실었다.
그 책을 쓰던 당시 탁현민은 이미 노련한 문화기획자였다. 대중에게 어떤 말이, 어느 정도까지 허용되는지 명확히 알고 있었을 것이다. 자신의 그런 언행을 책에 실어도 사회적으로 수용될 수 있으리라는 판단이 있었을 것이다. 당시 탁현민은 문화기획사에 몸담고 있으면서 대학 겸임교수로도 있던 시절이다. 그럼에도 그가 책에 써놓은 남성성은 별 문제가 되지 않았던 것 같다. 오히려 같은 해 나온 <남자마음설명서>는 당시 베스트셀러가 됐다.
최근 뜨거운 이슈가 된 탁현민 사태. 현재 청와대 행정관 탁현민에 맞춰진 포커스가, ‘탁현민이 재현한 남성성’에 대한 토론으로 뜨겁게 번져나가길 바란다. ‘악(惡)은 잘 짜여진 구조의 결과’라는 말을 떠올리면서, 우리사회에서 ‘남자는 그럴 수도 있다’는 말이 허용하고 재생산해 온 문화가 무엇인지 질문해야 한다. 누가 지속적으로 그런 식의 말에 권력을 부여하고 싶어 하는지 살펴봐야 한다. 그리고 ‘여성을 성적 대상화하며 형성되는 남성성’의 결과가 무엇인지 확인해야 한다. 그것을 사회적으로 함께 질문하고 토론하지 않는 한, 만연한 성폭력과 성차별은 영원히 지속될 것이다.[워커스 33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