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파견법은 사이다법이다!’ 정부가 버스 광고판과 SNS 등을 통해 파견법 이미지 쇄신에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파견법 개정이 중장년층의 질 좋은 일자리 창출을 위한 해법이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심지어 고용노동부는 <파견법(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 개정이 조선소 구조조정으로 일자리를 잃은 해고자들을 위한 법인 양 광고를 해댄다. ‘일자리 창출’이라는 구호 아래 파견제도에 따른 고용불안, 중간착취, 질 낮은 일자리 등의 문제를 지웠다.
정부와 여당은 20대 국회에서도 <파견법> 개정을 밀어붙이고 있지만, 야당과 노동계는 ‘<파견법>은 사이다’ 라는 구호에 맞설 적절한 대응을 펴지 못하고 있다. <파견법> 문제가 ‘불법파견 정규직화’에 쏠려 있다 보니, <파견법> 자체에 대한 문제제기는 이뤄지지 않았다. ‘<파견법> 폐지’를 이야기하지 못하니, 불법파견만 아니면 괜찮지 않느냐는 혼란도 심심치 않다. 최근 더민주 소속 홍영표 국회 환경노동 위원장은 언론 인터뷰에서 “(최저임금을 올리면) <파견법>도 얼마든지 좋다.”, “(<파견법>에서) 제조업을 배제하고 있는데 어떤 면에서는 필요성도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파견제도의 문제점을 뻔히 알고 있으면서도 우리는 왜 ‘<파견법> 폐지’를 외치지 못하는 걸까? <파견법> 개정 찬반 프레임을 넘어설 ‘<파견법> 폐지’는 과연 불가능한 것일까. 《워커스》와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는 4회에 걸친 공동 기획을 통해 ‘<파견법> 폐지’의 가능성에 관해 이야기해본다.
엄진령(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활동가)
<파견법>이 이끄는 것은 정규직화가 아니라 상시적 해고다
<파견법>이 노동자를 해고한다는 사실은 자명하다. 처음 <파견법>을 시행할 때로 돌아가 보자. <파견법> 시행 후 첫 2년이 돌아오던 시점, 수많은 노동자가 <파견법>으로 해고됐다. 방송사에서는 1년 동안 227명의 운전직 노동자들이 2년이 되는 시점을 앞두고 차례차례 해고 됐다. SK텔레콤에서 상담, 미납관리, 창구영업 등을 하던 1,400명의 파견 노동자들 역시
2년을 채운 후 정규직이 되는 시나리오를 실현하지 못했다. 당시 이를 파견 노동자 ‘대학살’이라 불렀는데, 전국적으로 이렇게 해고된 노동자들이 수만 명에 이르렀다. <파견법>이 채운 2년의 족쇄로 인해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저임금으로 살아가게 되었고, 2년 후 정규직 전환이란 법적 구상은 허구가 됐다. 방송사들은 방송사 간에 노동자들을 서로 바꿔치기하는 방법으로 파견근로 사용을 지속했고, SK텔레콤의 노동자들은 1~3개월의 단기 아르바이트로 전환됐다.
그리고 십 수 년이 흐르는 동안 <파견법>은 고용의제 (직접고용 간주)가 고용의무로 완화돼 개악되기도 했고, 불법파견 시에는 즉시 직접고용 하는 것으로 일부 개선되기도 했다. 그러나 노동자들의 사정은 달라지지 않았다. 불법파견 시 즉시 직접고용이 도입되던 그때 고용노동부는 공단 지역의 불법파견을 단속했다. 평택 등지에서 적발된 불법파견 사업장은 이를 시정한다며 노동자들을 10개월, 11개월짜리 계약직으로 전환한 후, 기간이 만료되자 해고했다. 파견 노동자는 쉽게 해고됐지만, 이런 진실은 감춰졌다. 파견이라는 고용형태가 일으키는 고용불안은 파견 노동자의 이야기가 사회로 전달되는 것을 막았고, 단결하지 못한 노동자는 투쟁으로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지 못했다.
불법파견에 맞서 투쟁하다 해고된 노동자들의 투쟁은 이어지지만 <파견법> 때문에 직접 해고됐다는 이야기는 더 이상 흔치 않다. 정부의 ‘<파견법>이 노동자를 정규직으로 이끈다’는 주장은 아마 이런 조용함에 기대어 있는 것이리라. 파견 노동자는 사회를 향해 <파견법>이 나를 평생 비정규직으로 만들고 있다고, 그것이 삶의 희망조차 놓게 했다고 말하지 않았다. 처음에는 법이 파견 노동자의 입을 막았지만, 이제는 스스로가 입을 막으려 한다. 노동자들은 <파견법>이 중간착취를 용인하기에 반대했고, 상시적인 고용불안을 야기하기에 반대했지만, 이제 파견노동은 당연한 것이 되고, 파견 업체에 지불하는 수수료는 중간착취가 아닌 정당한 수수료로 인식되고 있다. 결국 지금의 노동개악, <파견법> 개악을 막지 못한다면, 정규직이라는 고용형태 자체가 흔치 않은 일이 돼버리고 말 것이다.
정부는 왜 <파견법> 메이크오버에 그렇게 공을 들이나?
이런 사실을 감춘 채 정부는 일자리를 무기로 <파견법> 개악을 선전한다. <파견법>만이 일자리를 제공해 줄 수 있는 양, “사오십대, 이전처럼, 다시 출근하자”며 만병통치약처럼 휘두른다. 고령자의 노동시장 진입을 위해 필요하다고 하더니 은근슬쩍 사십 대까지 엮었다. 그리고 조선업종 구조조정으로 대량해고 되는 노동자들에게 <파견법>을 개악하면 다시 일자리가 만들어진다는 마술을 소개하며 제조업 파견 허용의도를 은폐한다. 당연히 파견이 좋은 일자리를 제공할 리 없고, 없는 일자리를 만들어 낼 리 없다.
정부가 파견 확대를 일자리 문제의 유효한 관리책으로 인식하는 것은 명확해 보인다. 실업의 타격을 해소하고, 완충 지대를 설정하는 것이다. 통상 실업에 대한 완충지대는 사회보장을 통해 이뤄지지만, 정부는 일자리가 최선의 복지라면서 다른 파견 일자리로 실업자를 이동시켜 해소하려 한다. 더 핵심적인 것은 고용서비스 자체의 완전한 시장화다. 이는 파견노동자 만의 문제가 아니다. 고용서비스란 모든 노동자가 당연히 공적 서비스로 누려야 할 권리가 있는 직업소개, 직업훈련, 전직지원 등 고용과 관련한 서비스 일체를 말한다. 그런데 정부는 이를 공적 영역이 아닌 민간 시스템을 활용해 충족하려 한다. 그 방식은 지극히 자본주의적이다. 고용서비스를 사고파는 상품이 되게 하는 것이다. 그러려면 당연히 현재의 <파견법>으로는 장사가 안된다. 그들 말로 소위 ‘규제’가 많다. 그러니 소규모 파견 업체만 난립하고, 제어되지 않는 불법 파견 업체가 넘쳐난다. 이를 제어하는 방법으로 정부는 산업화를 통한 대자본의 유입과 이를 통한 관리체계 구축을 꾀한다. 그 핵심이 바로 제조업에 대한 파견 허용이다. 지난 2010년에는 제조업까지 파견을 확대하는 네거티브 리스트로의 전환을 포함한 네 가지 시나리오가 등장했고, 지금은 뿌리 산업 파견 허용이라는 방식으로 등장했다.
여기에 빠진 것은 늘 그렇듯이 노동자다. 그저 관리대상 일 뿐인 노동자에게 미치는 영향 따윈 굳이 고려할 필요가 없다. 정부의 노동개악에 반대하는 정치인들 역시 태도가 크게 다르지 않다. 야당은 정부 여당과의 협상에서 자신의 요구를 받아들이면 <파견법>을 포함한 노동4법을 논의할 수 있다는 태도를 보였다. 논의만 할뿐이고 (정부의 노동개악에) 반대한다는 야당의 입장을 믿어주고 싶지만 그것은 바람일 뿐이다. 바꿔치기의 장인 국회에서 노동자에게 심대한 영향을 미칠 법과 제도들은 거래의 대상이 되고, 치적 쌓기의 용도가 되는 것이 우리 현실이다. 국회에서 이루어진 거래에 반발하면 ‘노동자들 요구가 너무 과도하고 강경했다’거나 ‘다른 부분이 개선되었으니 나아진 것 아니냐’는 말이 돌아온다. 그런 점에서 지금 정부가 그렇게도 공을 들이는 ‘<파견법> 이미지 개선 사업’은 파견 노동으로 살아가는 노동자들을 설득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정치적 거래의 끝에 변명의 여지를 붙이기 위한 수단으로 작동될 수 있다.
‘원칙적으로 동의하지만’… 은근슬쩍 뒤로 밀어두는 <파견법> 폐지
한편 뭔가 국회에서 논의하는 분위기가 형성되면 현실론이 노동계 내에서도 슬며시 고개를 들이민다. 이런 입장은 ‘법을 폐지하는 것은 힘들다’, ‘이 정도로 개선되면 괜찮지 않느냐’며 달래기도 하지만, 때로는 꽤 강경하다. 다른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생각해야 하지 않느냐며 온갖 대의를 등에 지고 <파견법> 폐기, 비정규직 철폐를 외치는 목소리를 타박한다. 그것은 때로는 전문가의 이름으로, 때로는 운동가의 이름으로, 심지어 때로는 당사자의 이름으로 등장하기도 한다. 그리고 ‘<파견법>이 폐지되어야만 한다는 것에 원칙적으로 동의하지만’을 빼놓지 않고 덧붙인다.
<파견법> 폐지는 그 법을 없애고 파견을 무법지대화 하자는 것이 아니라 간접고용을 제대로 규율 하자는 것이다. 하지만 파견법 현실론은 이를 외면한 채, 원칙적 주장만 반복하는 것은 현실개선에 보탬이 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최소한 지금 손에 잡히는 투쟁들이 <파견법>에 기반해 발언하고 있기 때문이다. <파견법>상 불법파견이니 정규직화 해야 한다는 요구가 <파견법>이 있어 가능하다는 생각은, 은연중에 <파견법>의 지위를 공고히 하는 역할을 한다. <파견법>이 놓은 ‘정규직 전환’의 다리가 진짜가 아니라는 사실은 이런 생각의 흐름 속에 다시 가려진다.
만약 <파견법>상의 규제를 통해 노동조건을 개선한다면 현실이 나아질까? 최저임금을 대폭 인상하거나, 차별을 강력하게 규제하는 것도 방안일터이다. 하지만, 최저임금은 최소한 인간다운 생활 보장의 성격이지 고용형태의 차별을 극복할 근본적 방안은 아니다. 또한 차별시정을 피해가는 방법은 이미 다양하게 존재한다. 불법파견의 소지를 피하려고 직무를 분리하는 모든 조치는 차별시정을 피하는 방법과 상통한다. 무엇보다 중간착취를 용인하는 가운데 노동조건 개선이라는 것은 그 한계가 자명할 뿐이다. 노동조건 개선이 노동3권 보장을 대신할 수는 없으며, 파견
이라는 간접고용 구조가 가지는 고용불안정성이 나아지지 않는 한, 개선될 수 없다는 것 역시 자명하다. 또 노동자를 해고하는 법인 <파견법>을 개정해 해고를 규제한다는 것도 그리 가능한 구상은 아니다. 단언컨대, 그 정도의 투쟁력이 있다면 굳이 <파견법> 개정의 방식으로 접근할 이유가 없다.
‘불법파견’이 아니라 ‘파견’이 문제다
문제는 파견이다. 불법파견이 문제가 아니라, 파견이라는 고용형태 자체가 문제다. <파견법>은 <사이다법>이 아니라
<사람 장사 법>이며, 파견 업체가 가져가는 이득은 정당한 수수료가 아니라 중간착취이고 원청이 외부화한 관리비용일 뿐이다. 중간착취, 사람장사를 막기 위해서는 <파견법>을 폐지하고, 간접고용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는 것이 답이다. 그것을 시작으로 사회적으로 간접고용을 철폐해 나가는 전략을 세워야 한다. 그리고 이를 원칙적 요구나 장기 과제로 미뤄둘 것이 아니라 지금 당장 실천해야 한다.
이 순간에도 누군가는 <파견법>에 의해 고용되고, <파견법>에 의해 해고되며, 또 다른 사업장으로 이동되고 있다. 그 모든 것이 불협 없이 유연하게 처리되는 것이 정부가 바라는 바다. 그리고 그것은 노동자가 현실의 불합리에 눈감는 것을 전제로 한다. 불법이 아니라 파견 자체가 문제라는 것, 노동자가 상품처럼 사고팔려서는 안 된다는 것이 바로 합리다. 불합리한 제도적 기반이 바로 <파견법>이고 <파견법> 폐지를 제대로 외치는 것에서 불협은 만들어 진다.
기획연재 순서
- 문제는 ‘불법파견’이 아니라 ‘파견’노동
- 그래도 ‘파견’은 ‘필요악’?
- 파견이 우리의 삶에 미치는 영향
- 일본을 반면교사 삼아 ‘파견’을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