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
언젠가 누군가에게 그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세상 여자들이 매끼 ‘뭐 할까, 뭐 먹일까’ 걱정하는 에너지를 다른 데 썼다면 지구가 열두 개는 더 생겨났을 거라고. 나도 그 여자들 중 한 명이다. 아니, 이‘었’다.
H와 처음 살림을 합친 다음 날 아침이었다. 나는 우리가 함께 몸 누일 공간이 생겼다는 감격이 가시지 않았는데, 그는 눈을 부비며 비몽사몽 한 목소리로 로맨스를 깨는 첫인사를 건넸다. “밥은?” 7년 전인데 잊을 수 없다.
나는 분한 마음으로 동네 언니에게 하소연했다. 어떻게 같이 산 첫 날 그렇게 산통을 깰 수가 있냐, 내가 지 엄마냐, 왜 나한테 밥을 달라고 하냐…. 듣던 언니는 깔깔 웃으며 내 등짝을 때렸다. “어머 너 진짜 웃긴다! 그럼 결혼 왜 했어?” 순간 이성의 끈이 뚝 끊어지는 소리를 들었다. 동시에 머릿속은 하얘졌다. 여성운동한 세월이 아깝다. 이년아, 네 발등 네가 찍었구나!
우리는 연애시절 귀농하자 약속했고 결혼하며 땅을 구해 농사를 지었다. 그의 ‘바깥일’ 비중이 높아지자 나의 ‘집안일’ 비중은 그에 비례해 상승했다. 사실 나는 그와 같이 살기 전까지 밥 한 번 제대로 지어본 적 없었다. ‘딸’로 살 땐 엄마 등골을 빼먹었고 오랜 자취 생활에도 살림, 요리는 질색이었다. 밥은 그저 한 끼 때우는 존재였고 그래서 늘 사 먹거나 배달시켜 먹었다. 그런데 귀농과 결혼을 한 방에 했더니 ‘주부’ 정체성이 세트로 따라왔다. (나는 고등학교 때 가사 과목도 ‘가’ 맞은 여자라고!) 가뜩이나 우리 주생계가 농사여서 외식할 돈이 없었기 때문에 울며 겨자 먹기(?)로 자급자족을 할 수밖에 없었고, 그래서 주방에서는 어떻게든 먹고 살기 위한 사투와 실험이 매일 펼쳐졌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막상 나를 내던져보니 의외로 요리가 싫지 않았다. 실력도 변변치 않은 주제에 예쁘게 담아 사진을 찍어서 ‘새댁의 밥상’ 따위의 제목으로 우리 농산물 홍보 블로그에 올리기도 했다. 그렇게 내가 ‘요리사 꿈나무’로 셀프 성장할 동안 나의 파트너는 식탁 앞에 오도카니 머물러 있었다. 나도 어쩐지 그에게 이거 해라, 저거 해 달라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농사를 짓지 않을 때에도 그는 늘 시골에서 가장 고된 ‘몸 노동(가스배달, 공장일 등)’으로 생계를 보살폈기에 그에게 어디까지 ‘요구해도 되’는지 알 수 없었다. 그의 영역과 나의 영역이 분명한 게 좋은 건지, 유연하게 넘나들어야 하는지, 무엇이 공평하고 어떤 기준을 가져야 하는지 도무지 판단할 수 없었다.
그렇게 나는, 완전한 백수도 베테랑 농부도 주부 9단도 아닌 채 부엌을 지키는 ‘집귀신’이 되어갔다. ‘이 일이 내 일 맞나’ ‘이렇게 하는 게 맞나’ 하는 혼란스러움과 무력감이 퍼져갔다. 학교 다닐 땐 커서 훌륭한 사람이 되라고 배웠는데 이제와 가장 심각한 인생의 화두가 ‘오늘은 또 뭐 먹지’라는 게 황당할 뿐이었다. 더 어이없는 건 그 와중에도 ‘잘 하’려 애썼다. 나에게 아무도 이렇게 살아야 한다고 가르쳐주지 않았고 이렇게 살지 않으면 욕할 것도 아닌데(하려나? 할 수도 있겠다) 나는 이미 알아서 그렇게 살고 있었다. 마치 결혼과 동시에 뇌 한구석에 숨어있던 프로그램이 착착 돌아가듯 말이다.
그러나 우리 관계의 껍데기 속을 보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내가 맞벌이를 시작한 것이다. 유니폼을 입고 하루 열 시간 이상 서서 일하고 집에 돌아와도 그는 나에게 오늘 메뉴가 뭐냐고 물었다. (내가 자판기야?) 살림을 자기 것, 본인의 노동이 필요한 곳이라 여기지 않았다. 그렇다. 얹혀 산 건 내가 아니라 그였다. 결혼으로 달라진 건 나뿐이었다. 작년에 마을의 한 조직에서 다음 회의시간을 정해야 하는데 서로 시간이 맞지 않아 우왕좌왕한 적이 있다. 그때 50대 남성 한 분이 회의시간으로 ‘오후 5시 30분’을 제안했다. 듣자마자 나도 모르게 자동반사적으로 소리쳤다.
“밥은요?” 으악, 바로 얼굴이 빨개졌다. 그때 얼마나 내 말을 주워 담고 싶었는지. ‘공적’인 자리에서 ‘사적’인 의무에 둘둘 싸여있음을 커밍아웃한 자신이 얼마나 부끄러웠는지. 보살핌 노동을 수행하는 여성들에게 가장 바쁘고 짜증 나는 시간임을 알지 못하는 남성들에게 얼마나 분노가 치솟던지. 매일 ‘사랑의 블랙홀’에 빠지는 그 시간, 그때 유유히 ‘바깥일’을 할 수 있다는 저 상상력과 자신감. 그것도 평생보증이라니. XY라는 이유만으로. 얼마나 부럽고 속이 뒤틀리던지. 7년 전 H가 내게 던진 ‘밥은?’의 주문에 걸린 나는 한 치도 해방되지 못한 걸까. 무엇 때문에 스스로를 붙들어 매어놨던가. 그날 이후 나는 더 악착같이 변해야겠다고 다짐했고, 계속 변하고 있다.
평생 밥 짓는 노동 – 매끼의 반찬거리와 맛과 영양소를 고민하기, 음식 사이의 궁합, 조화를 상상하기, 요리 기술을 연마하기 위해 노력하기, 신메뉴 개발하기, 몸에 좋지만 가격은 저렴한 재료 준비하기, 프로페셔널하게 다듬고 썰기, 깔끔하게 설거지하기, 그리고 이 모든 것을 하기 위한 에너지와 시간을 내고 기꺼이 사랑으로 행하기 – 에서 비켜난 채 ‘받아 먹’고 ‘품평’할 수 있는 권력을 생래적으로 부여받은 자들은 모른다. 누가 당신 몫을 대신 살아주는지. 당신 입에 들어가 함께 삼켜지는 타인의 고통과 수고, 그리고 그들이 포기한 삶을 말이다.
오늘 우리집 반찬은 ‘비만을 방지하고 혈압을 낮추며 변비, 암을 예방하고 노화를 억제하는 효과가 있’는 한국인의 만병통치약, 김치다. 우리는 맛있게 밥을 먹을 것이다. #일품요리_좋아요[워커스 33호]